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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31. 04:29
바티칸 Vatican City
2009/01/03

바티칸은 명성이 자자한 바티칸 투어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론 썩 나쁘지 않았고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괜한 나의 성격은 투어 가이드와 좀 떨어져서 멀찍이 따라걸어가게끔 했다.


1) 추기경 친구
바티칸에서의 예술 감상의 정점은 결국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일 것이다. 길고 긴 설명 끝에 두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관광객으로 시끄럽게 북적거리는 상황에선 역시나 편안한 감상은 힘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두고두고 생각한 거지만, 진짜 주교나 추기경급의 친구를 하나 사귀고 싶었다. ㅋㅋ 그럼 개장 시간 외의 시간에 친구따라 들어가서 홀로 여유롭고 조용하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2) 미술 작품의 감상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보면서 생각했다. 위대한 작품이란 무엇일까.
진짜 전공자가 보면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생동감이라던가 색감이라는 면에 있어서 탁월하게 다를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은) 그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림의 수준 자체가 다른 화가의 그림보다 뛰어나다 할지라도, 사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감탄은 그림의 아름다움 자체보다도 그 규모에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개인이 이렇게나 거대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해 경탄하고 감동받는다. 천지창조를 보고 우리가 나누는 얘기는 - 5분간 천장화를 감상하는 것도 목이 아픈데 어떻게 이걸 목을 젖힌채 5년동안 그렸을까 - 정도의 얘기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술작품이 아니라 그 노력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똑같은 규모와 똑같은 수준의 그림을 100명의 화가가 부분부분 나누어 완성했다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보내는 것과 같은 찬사를 보낼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시간 인내하여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도 물론 존경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의 끈기와 인내심에 대한 존경이지 미술적 가치에 대한 존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끈기와 노력을 많은 사람들이 [못] 발휘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안] 발휘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켈란젤로야 4년이 걸려서 완성했다지만, 다른 모든 환경적 요소들을 누군가 뒷받쳐 줘서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면, 나같은 사람도 100년동안 매달리면 천지창조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100년간의 매달림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마 [하면 안되는 것은 없다]라는 나의 가치관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도데체 나는 그림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내 논리대로라면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타고난 재능만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금 [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라는, 전제와 모순되는 결론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뭘까? 우리는 미술 작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오랜시간 인내하여 작품을 완성한 그 인내심? 아니면 정말 타고난 천재성? 미술 작품 탄생까지에 있었던 뒷 배경 이야기? 무엇이 진짜 [미술]일까.



3) 진품
바티칸의 피나코테카의 그림 중에 아주 유명한 몇몇개의 그림은 외부 전시에 대여 중이었고, 덕분에 모조화를 전시장에 걸어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쉽게 됬다는 가이드의 설명과 그 설명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사람들의 [진품]에 대한 집착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도데체 묻고 싶다. 진품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조품이라면, 그 진품과 똑같은 미술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진품과 원작자가 갖는 가치는 미술사에서 그 사람이 첫 사람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일 뿐이지, 미술적 가치는 작품만으로 따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모조품과 진품에 미술적 가치의 차이가 과연 있을까? 그림 제대로 볼줄도 모르면서 뭘 진품을 따지냐고 묻고 싶은게 아니다. 진짜 그림을 볼 줄 안다고 할지라도, 굳이 진품을 따질 필요가 있는지를 묻고 싶은 거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소설책의 초판이 10쇄판보다 우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물론 수집가들은 이런 점도 따지지만 ㅎㅎ)



4) 베드로 성당
베드로 성당은 거대했다. 그 모든 것들이 대리석이란 얘기에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매우 부정적인 나는 면죄부 생각을 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약했는지를 떠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나쁜 의미로써의 면죄부 판매를 통해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어느정도 조달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거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매해에도 수만 수십만명씩 베드로 성당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꾸준히 입장료를 바티칸에 기부하고 있는 거다. 카톨릭 교회라는 단체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남는 건 과정이 아닌 결과일 뿐이라는 그 뻔한 역사적 진실이 정치나 종교나 이렇게도 똑같이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정치는 지저분하고 종교는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베드로 성당을 제일 숭고한 성당인척 엄숙하게 방문하는 사람들도 교황청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아 물론,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이란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냥 번뜩 생각하고 씌익 웃고 말았다. 저런 식이면 떳떳할 수 있는 사람/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거다.



으음... 써놓고 보니 해본 생각들이 다 너무 비관/비판적이네...



그리고 좋았던 작품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 Raphael, 1509–1510, Fresco

같이 갔던 친구랑 이 그림은 우리가 싫어 할 수 없을거라는 얘기를 했다. 완벽한 원근법 등등의 얘기들을 다 떠나서라도, 지식과 지혜를 상징하는 그 모든 고대의 인물들을 모아놓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림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게 했다. 가운데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 이름만으로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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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변용 The Transfiguration, Raphael, 1516-1520, oil on wood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엄함/숭고함의 절정 중에 하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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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Laocoön and His Sons, Between 160 BC and 20 BC, White marble

드디어 봤다. 라오콘. 한 240도 돌아가면 자세히 구석구석 본 거 같다. 만져보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벨베데레의 토르소 The Belvedere Torso

작자 미상의 전설적 조각작품.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사라진 부분들을 채워보라고 시켰지만 - 감히 이 작품을 저따위가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 라고 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어우, 저 허벅지 실제로 보면 정말 쩐다. 남자가 봐도 섹시해 ㅋㅋㅋ

2009. 3. 25. 06:08
[]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문학동네
2009/03/17

새벽 1시. 방학이라 여유는 넘치고, 잠은 딱히 오지 않고, 그렇다고 할일들을 하고 싶진 않아서 책을 펼쳤다. 아무리 황석영 작가의 책이라도 그래도 책인데 읽다보면 졸리겠지, 했지만 결국 밤새 다 읽고나서야 잠에 들었다.


1) 시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준과 그의 친구들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인칭 시점이 갖는 친숙함, 편안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1인칭 시점이 갖는 단조로움도 벗어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자전적 성장소설
황석영 작가의 팬으로써 그의 인생역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던 나로써는 곧 주인공 준이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작가 본인임을 금방 눈치챘는데, 사실 작가 본인의 인생과 너무나도 흡사한 나머지 '소설'이라는 느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칭하지만 사실 거의 자서전과 다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사실과 거리를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덕분에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 많이 오버랩됬는데, 둘 사이의 개인적 취향의 우위는 딱히 정하지 못했다. 둘다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ㅎㅎ

3) 준이.
어린날의 치기에 불과하더라도, 용기를 갖고 모든것에 온몸 던져 부딪히는 준이가, 아니 황석영 작가가 다시 한번 너무나도 부러웠고, 존경스러웠으며, 아련했다. 그리고 결국 그 뜨거운 무언가를 끝끝내 찾지 못하자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준이. 당연히 자살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여전히 삶은 제자리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경험 뒤에 겪는 제자리의 삶은 그 의미가 다른 법일 거다.

내 결정의 뒷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당연히 지금의 나는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냥 한번 씨익 웃으며, 담담하게 그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상깊었던 부분은 몇 구절이라기 보다는 책 전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울렸다. 물론 그래도, 특히 좀더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갈무리해 봤다.

41페이지
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168페이지
포플러가 우리말로 미루나무인 것처럼 시골 사람들은 플라타너스를 방울나무라고 부르더라.

222페이지
며칠 뒤 미아에게서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우체국에서 파는 약간 두꺼운 지질의 종이에 우표가 새겨져 있고 뒷면은 백지인 멋대가리없는 관제엽서였다. 거친 만년필로 눌러쓴 글씨가 말하는 것처럼 씌어 있었다.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전화하면
누가 뭐래요?

227페이지
여름방학 같은 때, 장마중에 비 그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날 있잖아. 누군가 놀려줄라구 얘, 너 학교 안가니? 그러면 정신없이 책가방 들고 뛰쳐나갔다가 맥풀려서 되돌아오지. 내게는 사춘기가 그런 것 같았어. 감기약 먹고 자다 깨다 하는 그런 나날.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

256페이지
그에게는 산다는 게 두렵거나 고생스러운 것도 아니고 저 하늘에 날아가는 멧새처럼 자유롭다. 이른 봄에는 바닷가 간척공사장을 찾아가 일하다가, 오월에 보리가 팰 무렵이면 시골마을로 들어가 보리 베기를 도우며 밥 얻어먹고, 여름에는 해수욕장이나 산간에 가서 일거리를 찾고, 늦여름부터 동해안에 가서 어선을 탄다. 속초에서부터 오징어떼를 따라 남하하다가 울산 근처까지 내려오면 가을이 깊어져 있다. 이제는 다시 농촌으로 들어가 가을추수를 거든다. 황금들판에서 들밥에 막걸리 마시고 논두렁에 누워 곤한 낮잠 한숨 때리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단다. 그리고 겨울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쪽방을 한 칸 얻고 거리 모퉁이나 버스 종점이나 동네 시장 어귀에 자리를 잡아 드럼통과 손수레 세내어 군고구마 장수로 나선다. 아니면 돈 좀 더 보태어 포장마차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이번처럼 괜찮은 도시 공사판을 만나면 함바에서 겨울을 난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대위는 늘 말했다.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261페이지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7페이지
며칠 지나면 다 그렁저렁 좋은 사람들이지. 생각해봐라. 제 힘으루 일해서 먹구 살겠다는 놈들인데 아주 나쁜 놈들이 있겠냐구. 나쁜 놈들이야 저 서울 번듯한 빌딩들 속에 다 있지.

269페이지
저녁 무렵의 신탄진 강변은 언제나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일끝내고 씻으러 내려가면 어두워지기 시작한 강변의 숲과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로 가끔씩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물속에 텀벙대며 들어가기가 아까워서 잠시 서 있곤 했다.
2009. 3. 22. 03:19
피에타 Pietà
성 베드로 성당 St. Peter's Basilica
바티칸 시국 Vatican City
200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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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미술작품이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성모의 그 슬픈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조각 속의 성모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 큰 기대를 품고 들어갔던 베드로 성당이었지만, 아쉽게도 바로 눈 앞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한 정신병 환자가 망치를 휘둘러 성모의 얼굴을 깨버렸고 그 사건 이후 방탄 유리를 설치하여 그 유리 밖에서만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조각은 직접 만져보면서 바로 옆에서 그 조각이 숨쉬는 것을 느껴야 하는데..

이 작품을 완성했을때 미켈란젤로는 25세였다고 한다. 자랑스럽게 만든 후 세상에 내놓았을때 수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당시 미켈란젤로의 라이벌 조각가였던 크리스토포로 솔라리 Christoforo Solari의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분한 미켈란젤로는 밤에 몰래 조각을 다시 찾아가서는 성모 가슴의 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후회했다고. 자신의 젊은 날의 오만에 뼈저리게 후회하고 그 이후 다시는 자신의 조각에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비드상 David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 Galleria dell'Accademia
피렌체, 이탈리아 Florence, Italy
2008/12/26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는 회화보다는 조각 위주의 박물관이다.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사실 그건 단 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바로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물론 다른 많은 조각들도 훌륭하지만, 그닥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은 드물고, 많은 이들이 다비드 상 하나만을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물론 나와 내 친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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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조각이구나 싶었다. 우아함, 장엄함. 가만히 앉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26세의 미켈란젤로가 성당 뒤편에 버려져있던 대리석을 보고는 자신이 맡고 싶다고 자청하고 3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3대 조각 중 다비드가 가장 좋았다. 옷의 주름이나 수염의 복잡함보다는 깔끔한 다비드의 나체가 훨씬 아름다웠다. 그 단순함. 그렇게나 단순하게 느껴진다는건, 이 조각이 가장 복잡한 조각이라는 뜻일거다. 20대에 미켈란젤로는 이미 저 두 조각을 만들었다.....



모세상 Moses
산 피에트로 성당 San Pietro in Vincoli
로마, 이탈리아 Rome, Italy
200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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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장식하는 조각 중 하나이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중 하나이지만 다비드상이나 피에타에 비하면 많은 이들이 모르는 조각이고 (나도 로마 가기 전까진 몰랐다.) 박물관이 아니라 성당 안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관광객들이 놓치는 곳 중 하나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안찾아가게 된다고나 할까. 우리도 늦어서 성당 문이 닫히기 직전에야 들어갔었다. 우리가 들어갔을때 마침 성당이 닫을 시간이었고, 제대로 보지도 못한채 쫓겨나다시피 해서 나왔는데 때마침 몰려온 단체관광객들의 성화에 경비원들이 잠시 관람할 기회를 더 허락해 주었다.

미켈란젤로가 41세가 될때 완성한 작품이다. 원래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위해 40개의 조각을 만들겠다고 계획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전체 프로젝트가 축소되었다고 했다.




기회가 잘 닿아 한번의 여행으로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다른 피에타 조각, 그리고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도 보았으니 미켈란젤로 주요 작품은 다 봤다고나 할까. 나는 그의 회화보다도 조각이 좋았다. 원래 조각엔 흥미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조각의 재미를 느꼈다. 조각을 만지는 것이 작품을 회손하는 일인건 맞지만, 그래도, 조각은 만지면서 바로 옆에서 그 조각이 내뿜는 숨을 직접 느끼면서 감상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