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29)
잡담 (46)
일상 (15)
생각 (11)
(20)
전시 (15)
영화 (4)
CF (9)
연극 (6)
공연 (2)
음악 (1)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09. 3. 25. 06:08
[]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문학동네
2009/03/17

새벽 1시. 방학이라 여유는 넘치고, 잠은 딱히 오지 않고, 그렇다고 할일들을 하고 싶진 않아서 책을 펼쳤다. 아무리 황석영 작가의 책이라도 그래도 책인데 읽다보면 졸리겠지, 했지만 결국 밤새 다 읽고나서야 잠에 들었다.


1) 시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준과 그의 친구들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인칭 시점이 갖는 친숙함, 편안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1인칭 시점이 갖는 단조로움도 벗어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자전적 성장소설
황석영 작가의 팬으로써 그의 인생역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던 나로써는 곧 주인공 준이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작가 본인임을 금방 눈치챘는데, 사실 작가 본인의 인생과 너무나도 흡사한 나머지 '소설'이라는 느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칭하지만 사실 거의 자서전과 다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사실과 거리를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덕분에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 많이 오버랩됬는데, 둘 사이의 개인적 취향의 우위는 딱히 정하지 못했다. 둘다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ㅎㅎ

3) 준이.
어린날의 치기에 불과하더라도, 용기를 갖고 모든것에 온몸 던져 부딪히는 준이가, 아니 황석영 작가가 다시 한번 너무나도 부러웠고, 존경스러웠으며, 아련했다. 그리고 결국 그 뜨거운 무언가를 끝끝내 찾지 못하자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준이. 당연히 자살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여전히 삶은 제자리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경험 뒤에 겪는 제자리의 삶은 그 의미가 다른 법일 거다.

내 결정의 뒷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당연히 지금의 나는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냥 한번 씨익 웃으며, 담담하게 그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상깊었던 부분은 몇 구절이라기 보다는 책 전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울렸다. 물론 그래도, 특히 좀더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갈무리해 봤다.

41페이지
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168페이지
포플러가 우리말로 미루나무인 것처럼 시골 사람들은 플라타너스를 방울나무라고 부르더라.

222페이지
며칠 뒤 미아에게서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우체국에서 파는 약간 두꺼운 지질의 종이에 우표가 새겨져 있고 뒷면은 백지인 멋대가리없는 관제엽서였다. 거친 만년필로 눌러쓴 글씨가 말하는 것처럼 씌어 있었다.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전화하면
누가 뭐래요?

227페이지
여름방학 같은 때, 장마중에 비 그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날 있잖아. 누군가 놀려줄라구 얘, 너 학교 안가니? 그러면 정신없이 책가방 들고 뛰쳐나갔다가 맥풀려서 되돌아오지. 내게는 사춘기가 그런 것 같았어. 감기약 먹고 자다 깨다 하는 그런 나날.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

256페이지
그에게는 산다는 게 두렵거나 고생스러운 것도 아니고 저 하늘에 날아가는 멧새처럼 자유롭다. 이른 봄에는 바닷가 간척공사장을 찾아가 일하다가, 오월에 보리가 팰 무렵이면 시골마을로 들어가 보리 베기를 도우며 밥 얻어먹고, 여름에는 해수욕장이나 산간에 가서 일거리를 찾고, 늦여름부터 동해안에 가서 어선을 탄다. 속초에서부터 오징어떼를 따라 남하하다가 울산 근처까지 내려오면 가을이 깊어져 있다. 이제는 다시 농촌으로 들어가 가을추수를 거든다. 황금들판에서 들밥에 막걸리 마시고 논두렁에 누워 곤한 낮잠 한숨 때리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단다. 그리고 겨울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쪽방을 한 칸 얻고 거리 모퉁이나 버스 종점이나 동네 시장 어귀에 자리를 잡아 드럼통과 손수레 세내어 군고구마 장수로 나선다. 아니면 돈 좀 더 보태어 포장마차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이번처럼 괜찮은 도시 공사판을 만나면 함바에서 겨울을 난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대위는 늘 말했다.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261페이지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7페이지
며칠 지나면 다 그렁저렁 좋은 사람들이지. 생각해봐라. 제 힘으루 일해서 먹구 살겠다는 놈들인데 아주 나쁜 놈들이 있겠냐구. 나쁜 놈들이야 저 서울 번듯한 빌딩들 속에 다 있지.

269페이지
저녁 무렵의 신탄진 강변은 언제나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일끝내고 씻으러 내려가면 어두워지기 시작한 강변의 숲과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로 가끔씩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물속에 텀벙대며 들어가기가 아까워서 잠시 서 있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