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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8. 05:22
다른 학자들이 멀리 떨어진 두 물체가 서로 어떻게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느냐를 따질때 뉴턴은 그냥 힘은 거기에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서술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고전역학이란 학문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학자들이 대체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이 어떻게 말이되냐를 따질때 플랑크는 그러면 모든게 설명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면서 양자역학은 시작됬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는 모든 관성계에서 일정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가정함으로써 특수상대성이론을 시작했고, 또 (어쩌면 질량의 정의 자체로부터 너무나도 당연한) 중력과 관성력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인정함으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을 시작했다.

그때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이 우리가 보는 세상과 실제 세상이 일치하냐 마냐를 지리멸렬하게 따질때 칸트는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두 세계를 분리함으로써 인식론이 다시금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렇다. 기술적인 부분은 주어지면 누구나 해 낼 수 있는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저들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존의 방법론 내에서 이룰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저렇게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야 하는 거다. 그래야, 저들처럼 된다.




4월도 어느덧 다 흘렀다. 변덕스런 이타카의 날씨도 이제 비로소 안정적인 봄이라 할만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학생들(특히나 여학생들)의 기분과 옷차림에서 이젠 정말 봄이 왔다는 걸 알게 된다. (^^) 집 앞 잔디 색깔도 언제부턴가 유난히 푸르다.

수업이 지루해질때면, 쟤는 왜 저걸 저렇게 밖에 설명을 하지 못할까 - 하는 생각이 들면, 가만히 창밖을 쳐다본다. 투박하게 창틀에 걸리는 데로 풍경을 잘랐을 뿐인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여서인지 창밖 풍경은 그 어느 사진 속 장면보다도 더 조화롭다. 그냥 쓰윽 흘려보기에는 너무 아까워 마음속으로나마 그 장면을 받아그려보곤 한다.

며칠전,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서 어떤 불문과 학생의 푸념을 읽었다. 인문학의 위기, 문사철 수업들의 폐강, 강의실 속의 신자유주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문제의식이야 나도 늘 갖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젠 조금 지루한 얘기들이다. 그런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도 없고, 한다고 해도 취업도 안된다고 하는데....... 에라이 내가 알바 아니다.

반가운 봄 햇살 앞에서, 오늘도 나는 그저 [순수 이성 비판]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면 되는 거지 뭐.
2009. 4. 8. 00:36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
할레드 호세이니 Khaled Hosseini
Riverhead Books
2008/03/27 금요일

여행중에 이동하면서 혹은 이동수단을 기다리면서 거의 3/4 가량을 다 읽었었지만, 개학과 함께 손을 놓고 있다가 봄방학을 맞이하여 이제서야 마무리했다. 리스본의 어느 서점에서 이언 플레밍의 퀀텀 오브 솔리스와 이 책을 사이에 놓고 고민하다가, 더 싸고 더 두껍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기억이 있다.


책은 1970년대부터 몇년 전에 이르기까지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한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성이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쿠데타, 테러, 전쟁, 이슬람교, 가뭄, 등등의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는 온갖 배경/환경적 고난 속에서 어떻게 저 두 주인공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지, 또 그 속에서 어떻게 그들이 살아남는지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풀어가듯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글을 이끌어간다. 그들의 삶의 고통에 대한 나의 '공감'과 '실감'이라는 것이 아마 어설픈 흉내내기에 그쳤을텐데도 불구하고, 나에겐 그런 나의 피상적인 이해조차도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과 현실이란 것들이 그 둘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다가가는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책의 힘이란 그런 것일거다. 책을 읽고 나면, 표면적으로만 접했던 이슬람 종교 내의 여성인권 유린이 어떤것인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그것을 관통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백날 떠들어봐야 여느 뉴스거리일 뿐이겠거니 하고 넘기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가니스탄인인 저자에게 아마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이 책을 쓰게 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렇게 오랬동안 미국내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고 책이 미국인에게 수행했을 역할을 생각하면, 이제 그 죄책감에서, 그 빚진 듯한 기분에서 자유로워도 괜찮지 않을까.


그치만 그 외에는 그닥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책이었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에서 조금 아쉬웠던것은, 책의 마지막이 주인공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좀 더 처절한 [현실은 어쩔 수 없다]류의 잔인한 결론이었다면, 읽은 후의 내 마음은 더 무거웠겠지만 글 자체는 좀 더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이 책을 [청소년 권장 도서]로 선정했다는데,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책이지만, 이 책은 [청소년]이라는 한정사가 갖는 한계도 어쩔 수 없이 가지는 책이었다. 책이 안좋았다고 비판하는게 아니라 뭐 그냥 저런 생각도 들었다는 거다. ㅎㅎ
2009. 4. 4. 01:07
시계가 멈췄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시계가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된거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늘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가 멈춘 거였다. 시계를 흔들어도 보고 손으로 탁탁 치기도 했지만, 별 소용 없었다. 시계는 새벽 3시였고 세상은 아침 8시였다.

아버지께서 선물로 사다주셨던 시계인데, 이제 거의 3년 정도 사용해 온 것 같다. 워낙에 밥달라는 소리도 없이 늘 잘 작동하니까 마치 시계는 건전지따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당연히 그럴리가 없는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할지라도 시계는 아주 조금씩 건전지를 쓰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이제 다 썼나보다. 바닥이 났나보다. 그래, 너도 시간이 흐르면 멈추는 구나. 왠진 모르겠는데, 괜시리 기분이 싸했다.


그치만, 새 전지 넣으면 언제 멈췄냐는듯 잘 굴러가겠지. 그리고 다시 세상 시각에 맞추면 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