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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해당되는 글 3건
2009. 1. 24.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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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Travel / 여행의 기술
Alain de Botton / 알랭 드 보통
Vintage International

여행하는 동안 읽었던 책. 나름 첫 배낭여행을 떠나는 지라 이런 책 하나 들고 다니면서 읽어주는 척 하면서 멋있는척 해보고 싶었다.ㅋㅋ 막상 여행하는 동안에는 읽을 일이 없어서 괜히 가져왔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여행 마지막에 날씨가 너무 안좋은 날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출발부터 도착까지의 여러 여행의 단계에서 여행자가 생각하고 느낄 만한 것들에 대해 기존의 작가, 미술가, 시인들이 쓴 글들을 인용하고 거기에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덧붙이면서 에세이는 진행된다. 사실 여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보거나, 혹은 직접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겪은, 느낀, 그리고 생각한 사실들이기에 내용 자체는 조금 진부하기도 했지만, 내용 자체보다도 그 수많은 인용구에서 그의 폭넓은 독서량에 놀랐고, 다음엔 - 정말 이미 거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생각되어져 있구나 -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책을 많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됬다.

이번 여행에서 미술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고, 나름 미술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인지 [예술] 부분의 On Eye-Opening Art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관하여)와 On Possessing Beauty (아름다움의 소유에 관하여)가 제일 즐거웠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미술 감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내용. 읽고 나서는 스케치하는 법을 연습하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제 금전적 여유도 좀 생기는데, 책을 사서 보자고. 문제집이나 교과서류가 아니고서야 한번 읽고 마는 책을 사는 것이 항상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경훈 선생님(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 책은 읽으려고 사는게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려고 사는 거야 - 라고 말씀해 주시곤 하셨다. 물론 가십거리로 한번 즐기고 말 책을 살 생각은 없다. 그치만, 정말 좋은 책들, 그리고 고전들은 비록 한번 읽고 말지라도 직접 구입하고 싶어졌다. 책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아무튼 앞으론 차근차근 한권씩 사서 읽어보련다.


그리고 멋있었던 구절들.

page 98
When asked where he came from, Socrates said not 'From Athens' but 'From the world.'

page 205
How vain painting is, exciting admiration by its resemblance to things of which we do not admire the originals. (Pensée, 40)

2009. 1. 21. 06:41
겨울방학동안의 이탈리아,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새 학기가 개학했다. 여행덕분에 정신적으로야 잘 쉬었다 온 셈이더라도 육체적으로는 새학기 시작이 꽤나 피곤할 줄 알았는데, 딱히 뭐 그럴것도 없다. 잊을 수 없는 한 학기를 보내고 새학기를 맞이하는 과정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좋은 다짐들 - 매번 꼭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 과 함께 새 학기를 시작하고 있다.

다음은 간략한 여행과정과 약간의 생각들.

12/20 출국

12/21 로마, 밀라노행 야간기차
가는 길에 암스테르담을 경유했는데, 암스테르담 들어갈때 여권 검사를 하더니 로마에 들어설때는 마치 국내선을 빠져나오듯 아무런 검사 없이 그냥 통과했다. EU회원국 끼리는 이미 여권 검사를 안하는 모양이었다. 정말 많이 통합됬구나.

12/22-23 밀라노
미리 예약하지 않은 덕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지 못한게 좀 아쉽긴 했지만, [뭐 나랑 인연이 아닌가보지 뭐] 하고 넘겨버렸다. 개인적으로 밀라노 두오모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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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25 베네치아
크리스마스를 베네치아에서 보냈지만 별로 특별한 건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는 0시에 성당에 가 봤으면 좋았을텐데 0시가 되어서야 그 생각을 했다. 오래된 풍의 거기서 거기인 듯한 건물들만 잔뜩 있어서 꽤나 질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야경은 좋았다. 멋있는척 하고 사진좀 찍어봤는데 그건 쫌 아니었다.ㅋㅋ 첫날은 계속 안개가 자욱했지만, 둘째날은 날이 무척 맑았고, 덕분에 한 도시의 두가지 면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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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피렌체
이쁜 도시였다. 냉정과 열정사이 덕분에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이탈리아에서 꼭 들러야 하는 도시가 되고 말았는데, 그래서인지 괜히 좀 거북했다. 난 여기 두오모보다 밀라노 두오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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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피사, 루카
나폴리로 내려가기 전, 작은 두 도시를 들렸다. 탑이 잘못지어져서 얼떨결에 기울어지면 관광지가 된다는 사실이 꽤나 웃겼다. 루카에서는 대도시보다 소도시를 여유롭게 둘러보는게 좋은 여행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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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나폴리
오는 길에 너무 고생했다. 끊었던 기차표엔 좌석 번호가 없었고 덕분에 간이석에서 밤새도록 졸고 내려갔다. 도착 후 일단 한인민박에 연락해서 1박은 아니고 낮에 좀 자고 가겠다고 우기고서는 잠부터 잤다. 도시는 4시간 남짓 둘러봤는데, 피자는 맛있었고, 도시는 정말 지저분했으며, 덕분에 도시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별 아쉬움 없이 또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다.

12/29-31 시칠리아 섬 -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아그리젠토, 시라큐사
타오르미나에서 뜨는 해를 보겠다는 야심은 비오는 날씨로 인해 망쳤고, 카타니아 가서도 비는 계속 내려서 그냥 첫날 하루는 쉬었다.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려고 알아봤지만 다 수동기어일뿐 오토가 없어서 포기하고 기차로 이동하자고 마음먹은 30일 아침, 얼떨결에 렌트카 업체를 하나 더 발견했고 오토인 차가 있어서 렌트했다. 이틀간 500키로를 달리면서 아그리젠토의 그리스 유적과 시라큐사의 그리스 유적을 돌아다녔다.
시칠리아의 초원은 눈부셨다. 가다가 양치기 청년과 양떼를 만나 차를 잠시 멈췄다. 그리스 신전을 성당으로 바꾼 시라큐사의 성당은 독특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린 타오르미나에서는 멋있는 절벽 아래의 바다를 볼 뻔 했지만 다시 비가 왔고, 여행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새해는 로마로 돌아가는 야간기차에서 맞이했다. 새해의 첫 한시간은 기차가 배에 실려 메시나 해협을 건너가는 동안 배의 갑판위에서 바다를 보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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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사진찍는 것에 대해 의욕이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맘에 카메라는 들고 갔지만 충전기는 챙기지 않았었는데, 이때쯤에 밧데리가 다되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했다. 카메라가 아니라 눈에 좋은 것들을 담고자 갔었던 여행이었기에 별로 아쉽지 않았다. 저 양떼 사진은 못찍었으면 아쉬웠을텐데 그래도 저건 찍었으니까 ㅎㅎ 그 이후엔 반드시 찍고 싶은 장면도 없었다.

1/1-4 로마
첫날 로마는 하루종일 비가 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타오르미나에서 새해 일출이나 볼걸, 하고 무척 아쉬웠다. 여행 내내 느껴왔던 것이긴 했지만, 주요 관광지마다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맥도날드의 힘이 정말 놀라웠다. 

1/5-7 바르셀로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 가우디의 건축물도 건축물이지만, 도시 전체가 조형물, 설치물, 디자인으로 가득차 있었다. 평범한 아파트들도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사실 바르셀로나뿐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전체가 그랬다.

1/8 세비야
여행중 가장 맑은 날이었다. 햇살 밝은 날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성당벽에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들이 어른거렸다.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를 사용하길래 꽤나 신기했고, 보기에도 이뻤다. (물론 먹을 순 없다더라)

1/9 코르도바
우연히 들어갔던 뷔페집이 중국뷔페길래 반가워하면서 마구 먹고 있는데 흘러나오는 중국 노래 사이에 장나라의 한국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갑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중국내에서 정말 장나라는 대단하구나.

1/10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은 거대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로 이어지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각종 이슬람 유적은, 백인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장소인것 같았다. 이슬람의 미술은 패턴의 반복에 '집착'하다시피 한다.

1/11-13 마드리드
지쳐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몸도 좀 안좋기도 했고 마드리드엔 볼것이 없다길래, 마음 깨끗하게 비우고 편하게 쉬면서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만 제대로 보자고 결심했다. 자고 먹고 미술관다니고 그랬다.

1/13-15 리스본
흑인이 무척 많았다. 대항해시대의 흔적일런지. 물가가 무척 쌌다.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라는 호까곶에도 갔었는데, 해안의 절벽과 그 사이사이의 마을들이 꽤나 멋잇었다.

1/15 출국.


그리고 전반적인 여행동안 했던 생각들.

1. 론리플래닛 영어판에는 정말 주옥같은 표현이 넘쳐났다. 읽으면서 몇번을 폭소를 터뜨렸고, 방학동안 영어공부 덕분에 정말 많이 했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그 감칠맛이 살아남지 못할텐데, 아쉬웠다.

2. 인상적이려면, 기억에 남으려면, 적당히 다른 것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압도적이어야 한다.

3. 결국은 어떻게 프레임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전시장을 꾸며서 잘 전시하고 이름표를 갖다 붙이면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실 그 안에 결정적인 역사적인 작품은 많아야 서너개일 뿐이었다.

4. 우리는 왜 목조건물만 지었을까. 석조건물들이라면 오늘날까지 남아서 훌륭한 문화유산이 되었을텐데.

5. 예전부터 한국인과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 만나 한글도 중어도 일어도 아닌 영어로 서로 대화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라나다의 버스 안에서, 더듬더듬 억지로 영어를 이어가는 스페인인과 그와 대화하는 미국인을 보았다. 미국인이 스페인 땅에서 스페인어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거고, 스페인땅에서 스페인인이 미국인과 대화하려면 어설픈 영어라도 써야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어이없었다. 힘의 논리상 당연한 건걸까. 너무 오만한 것은 아닐런지. 여행하는 미국인 혹은 영국인은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이 없을까, 부끄러울까, 아니면 당연하게 여길까.

6. 백인이 다수인 땅에서는 소수이지만, 그래도 아시아인은 본인들이 인종적으로 다수가 되는 고국이 존재한다. 인도인, 무슬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흑인은 어떨까. 아프리카가 그들에게 그런 의미일까?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챙겨간 것
입은옷 + 양말 2켤레, 팬티 2장, 반팔티 2개, 읽을 책, 여행책, 장갑, 카메라, 잠옷 츄리닝 바지, 수건, 여권, 수첩, 볼펜, 휴지,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

안챙겼어도 괜찮았을 것
여분의 양말 팬티 반팔티 모두 하나씩이었어도 여행은 가능했을거 같다 (먼산)
겨울철이라 장갑을 챙겼지만 쓸 일이 없었다.

챙겨가면 좋지만 굳이 챙길필요는 없는 것
손톱깎기 -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다.
우산 - 매번 들고다니자니 무거운데 막상 비오면 아쉽다.
읽을 책 - 읽을 일이 거의 없긴 한데, 아무 할일 없는 날에 요긴하게 쓰인다.

챙겨갔어야 했던 것
무언가 있었는데 지금 당장 기억이 나질 않는다. ㅡ.ㅡ;;




유럽에서 보낸 25박 26일동안 1600유로 가량을 썼다. 하루 평균 64유로. 교통비까지 포함된 계산 결과임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숫자다. 학교에서 출발해서 돌아오기까지 달러로 계산하면 약 3200달러 정도를 사용했다. 옛 환율이면 꽤나 잘 절약한 돈일텐데, 요즘 환율론 450만원 가량이나 된다. 쩝.

여행중 봤던 것들, 만났던 이들 모두가 직접적인 가르침을 내게 주진 않았다해도, 무의식 속에서 나에게 새로운 인상과 느낌을 전해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여행이 날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앞으로 차츰 드러나겠지. 기대된다.

여행하면서 지금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고, 자주 보고싶고, 계속 친하게 지고 싶은 사람들. 엽서를 받았다면 나의 그 소중한 몇명안에 든거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ㅎㅎ



마지막으로, 여행중 들렸던 미술관에 대한 품평은 천천히 차례대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2008. 7. 15. 13:40
일요일, 시카고의 Museum of Contemporary Art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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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Balloon Dog (Orange), 199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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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Rabbit, 1986.

처음 봤을때에는 이런 풍선 작품은 어떻게 보관할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터질 위험도 크고 안의 공기도 잘 빠질텐데, 정말 관리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팜플렛을 읽어봤더니 작품의 재질이 알루미늄, 혹은 철이었다. 아주 견고하고 단단한 작품이었고, 그저 표면에 마치 풍선인것처럼 주름을 잡고 투명페인트로 반짝거리는 효과를 만듦으로써 흔히 보아왔던 그 헬륨넣은 놀이공원 풍선인양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알루미늄이라는 설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살펴봐도 여전히 풍선처럼 보여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손으로 만져보면 금방 확인 할 수 있을테지만, 물론 그건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시각적 이미지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 혹은 인상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작가가 이 작품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다른 것이었겠지만, 작품은 나에게 미리 알고 있는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때때로 부정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불편한 진실이 만져서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과 같이 버무려지면서 뭔가 마음 한켠이 근질근질하게 했다. 그리고 그 가려움은 작품 감상의 묘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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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Pink Panther, Porcelain,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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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Titi, Oil on canvas, 2003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다. Jeff Koons는 이 두 작품처럼, 어린 시절의 동심을 상징하는 것과 성적인 것을 같이 배치해 놓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의 나였다면 핑크팬더와 티티가 먼저 눈에 들어왔겠지만, 지금의 내 눈엔 손으로 가려진 가슴, 혹은 어깨선과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야 핑크팬더와 티티가 눈에 들어온다. 서로 반대쪽 끝에 위치하던 두가지를 섞어놓은 이 작품 또한 뭔가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게 만들긴 하지만, 사실 이제 이런 건 좀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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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on Lockhart, Maja & Elodie, Photographs, 2003

처음 이 두 사진을 보았을때, 한참동안 두 사진이 어떻게 다른가를 찾아보고 있었다. 몇분을 쳐다보며 비교했는데, 차이점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뭐야, 같은 사진 그냥 두 장 인쇄해서 붙여놓은거 아냐? - 라고 투덜거리며 지나치려는 그 순간, 어떻게든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던 내 행동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우리는 (혹은 나는) 비슷한 두 사진을 봤을때 그냥 - 비슷하네 - 혹은 - 같은 사진인가 보네 - 하고 넘기지 않고, 어떻게든 차이점을 찾아내서 비교 분석하려고 하는 걸까. 서로 같은 점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고, 덕분에 그런 방법으로밖에 감상할 줄 모르게 된 것 아닐까. 같은 걸 같다고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내 자신이 갑자기 안타까웠다.

(방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사실 다른 점이 있긴 있었다. 한 사진에서는 엄마로 짐작되는 여자가 퍼즐 조각을 집고만 있고, 다른 사진에서는 그 퍼즐 조각을 약간 집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 올린 파일 상으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실제 전시장의 큰 사진에서는 구분된다고도 했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이런 미세한 차이점을 제외하곤 완전히 동일한 두 사진을 전시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사진을 스쳐지나가며 보는 수동적인 감상이 아닌, 무엇이 다른지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의미는 내가 생각해온 의미와는 매우 상반되는 것인 듯 하다.)


현대 미술을 점점 더 많이 접하면서 느끼는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미술이 미술은 고상하고 수준높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려고 많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숭고하고, 장엄하고, 성스러운 것만이 미술이 아니라, 아주 값싼 대중문화, 키치적인 것들, 외설적인 것들 까지도 다 미술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의 의도 중 하나는 귀족들의 전유물이기만 했던 미술을 수많은 대중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던데, 그 목적이 과연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시도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미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술가들이 하는 미술, 혹은 우리가 미술관에서 만나는 미술로 범위를 국한시켜 얘기한다면, 그 존경받던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미술이 오히려 대중과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미술이 이젠 [나도 저런거 충분히 만들 수 있다]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어지고, 덕분에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고, 결국 더욱더 그들만을 위한 미술이 되어버린게 아닐까. 우러러볼 미술이 사라진 지금 일반 대중과 미술가 모두가 우왕자왕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우상을 잃어버린건, 비단 미술영역 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람을 마치고, 시카고 Water Tower 옆의 벤치에 앉아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벤치 앞에는 사람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도시의 비둘기답게, 어떤 비둘기 한마리가 바닥에 들러붙은 껌을 쪼아먹고 있었다. 그 비둘기에 대한 감상으로부터 우연찮게 내 옆에 앉아있던 어떤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비둘기들이 너무 비위생적이라는 불평부터 시작해서, 시카고 도심에서 박쥐도 보인다는 얘기로 넘어갔다가, 종교, 영성(靈性), 결국엔 작년에 발간된 어떤 한 책의 아인슈타인에 대한 글귀까지로 대화가 흘렀다. 시간이 되어 그 아주머니와 서로 가볍게 인사하며 헤어진 후엔, 한 한국인 관광객 커플이 내 옆옆에 앉아있던 백인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을 마음에 안들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라고 말했더니, 두 분은 나를 매우 반가워하며 영어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주문들 - 허리 위로만 나오게 해서 뒤에 있는 건물까지 사진에 다 보이게 이렇게 저렇게 찍어주세요 - 을 쏟아냈다. 고맙게도, 두 분 다 내가 찍은 사진에 많이 만족해 하셨고, 서로 손을 꼭 잡고는 걸어가셨다. 잠깐의 만남, 잠깐의 대화들이었지만,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 이런게 여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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