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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에 해당되는 글 2건
2008. 11. 23. 19:32
#1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128쪽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그리고 연기를 한다.

163쪽
도대체 어째서 나는 어른으로 심판받고 추방되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선언되고 탄광으로 보내지고 그렇게 모든 데에서 어른이어야 하면서 사랑에서만은 어른이 될 권리도 없고 이렇게 미숙해서 모든 창피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20대가 되면 어른이 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현실을 마주친 그 첫 시기에, 저 구절들은 나에게 정말 뜨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벌써 거의 20대의 2년을 보낸 지금, 이젠 - 왜 대체 나는 어른인척해야 하는가 - 라고 어리광 부리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그렇다. 어리광. 나는 어리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 나만 왜 나만 - 이라고 외치는건 어리광이다. 세상에 대한, 주변 사람에 대한, 그리고 본인에 대한. 이젠 그렇게 투정부리고 싶을때 잘 참곤 한다. 그리고 그럴때면, 저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도 저 구절이 뜨겁게 내 마음에서 울리는건, 여전히 나는 어리광 피우는 중이라는걸. 아직은 좀 더 커야 한다는 걸.



#2
이번 학기에 유독 내 주변 사람들의 이성관계가 시끄럽다. 만나기만 하면, 맥주 한잔만 걸치면 오직 그런 얘기 뿐이다. 지금은 그런 문제들에 한걸음 비켜서 있는 나로써는 그저 웃으며 내 나름의 조언들을 해줄 뿐인데, 스스로 말하면서도 과연 내 조언이 신빙성이 있는가 싶을때가 많다 ㅎㅎ 나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을게 뻔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왕좌왕 고민고민 좌충우돌 찌질찌질 대고 있는 얘기들을 듣다보면 과거의 내가 많이 생각난다. 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 4년간의 기억들이 약간은 찝찝하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요즘엔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단 생각이 많이 든다. 나는 그래도 일찍 감정적으로 풍부한 경험들을 -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많이 했구나. 덕분에 그래도 그때보단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하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는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얼마전 다시한번 일기장을 읽어봤는데, 몇번을 혼자 킥킥거렸다. 난 정말 어찌나 그렇게도 뭘 몰랐는지. 여전히 알아가야할 것들이 많이 남았는데, 그땐 정말 훨씬 더 어렸었다. 그때에 나는 여자관계에 있어서 찌질하다고 할 수 있는 왠만한 모든 행동은 다 해봤던거 같다. - 문자로 고백하기, 혹은 엠에센이나 전화로 고백하기, 친구들한테 징징대기, 사소한것에 지나친 의미두기, 혼자 소설쓰기, 안좋은 면만 바라보고 부정적으로만 난 안된다고만 생각하기. - 모두다 지금 현재 내가 남들에게 절대 해선 안되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들인데, 정말 난 다 해봤구나. 그때 정말 무슨 생각으로 저런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3
일기 속 옛 여자친구와 관련된 글 중 거의 마지막 글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다.

070712 오후 5:40 목요일
너 유학가는거 진짜 따악 한달 남았다 ㅇ_ㅇ?
근데 막상 다가오니까
또 ㅎㅎ
너 유학가도 우리 더 잘 지낼 수 있을거 같고 ㅎ
그래 ㅎ
유학가면 당장 몇 달은 너 무지 바빠서 연락 많이 못하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ㅎ
그렇다고 해서 속상해 한다거나 못 믿는다거나 안그럴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잘 하자 +ㅂ+

출국하기 한달 전, 여자친구가 내게 MSN메신저로 했던 말인 것 같다. 그 말을 들었던 그땐 너무나도 고마웠고 행복했고 따뜻해 했었다. 그 친구도 많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비웃고 말았다. 그 수많은 사랑의 속삭임들이 과도하게 분비된 호르몬이 뱉어낸 말들에 불과했던것만 같았다. 얼마나 허무한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래도, 결국 중요한건 그 말의 의미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말을 했던 그 순간의 마음의 진실함일 것이다. 그 정도의 말을 할 정도로 그 순간엔 뜨겁게 사랑했다는 점, 먼 미래도 약속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순간엔 진실했다는 점. 말 하나하나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지는 않되, 그렇다고 너무 허무하지도 말자. 그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작년 가을학기, 틀어진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나는 왠만하면 되돌리고 싶었다. 나는 다시 잘 해보고 싶었고, 힘들겠지만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혹은 믿고 싶었다.)

전화상의 대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곧 맞이하는 방학에 만나서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에 그 친구를 만났다. 다시 시작하자는 나의 말에, 그 친구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했던 말이었기 때문일까. 다듬어지지 않은, 아픈 말들이 많았다. - 솔직히 나는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왔을때 만날 여자를 만들어놓고 싶어서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든다. - 정도의 말들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 충분히 기분나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들 까지는 정말 모두다 이해했다. - 딱 까놓고 말해서, 저 말이 백프로 틀린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결정적이었던건, 이 말이었다. -
네가 물론 유학을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고생하겠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유학이라는게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가는 건데 너는 네가 잘나서 간거고, 그런 면에서 너의 힘듬이라는 것이 배부른 힘듬이 아닌가.

멍했다. 친구들이 마냥 미국갔다고 부러워하며 그런 말을 했을땐 웃어 넘겼었다. 그치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온전하게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아꼈던 힘든다는 말을, 그것도 너무 해대면 무거워할까봐 아껴아껴가면서 몇번만 말했었는데, 나의 그런 말들이 너에겐 그정도의 의미 뿐이었구나. 차라리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이 더 듣기 좋았을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아무리 친해도 내 속을 온전히 열어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하나님조차 믿지 못했던 나에게, 사랑은 절대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런 믿음으로 만난 그 친구였고, 나는 정말 내 마음을 온전히 열었었다. 아무리 친해져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생각들, 마음들 그 모두를 열었던 사람이었는데,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이해한 나의 아픔이라는 것이 고작 저정도의 깊이였구나.

배부른 아픔일거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 친구가 속으로만 저런 생각을 했다면 이해했을 거다. 나도 그 친구가 힘들다고 했던 말들을 온전히 함께 아파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남의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말했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큰 의미없이 뱉어진 한마디였을수도 있고, 본인이 학부유학을 와본것도 아니니까 모르는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정황이었든 간에 그런 말을 나에게 내뱉었고, 그 사실 하나로도 그 친구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가를 알기엔 숨막히게 충분했다. 그건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때에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 친구도 정말 너무 힘들었고, 나한테 섭섭했겠지만, 그 말 만큼은 내겐 해선 안되는 말이었다. 심장이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카페 안의 공기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몇초간의 침묵 후에, 도무지 태연한척 할 수가 없어서, 자리를 벌떡 일어나 나와 그 친구의 찻컵을 들고 새 차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충분한 한마디였다. 그렇게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나는 마냥 웃으며 이런 저런 농담이나 주고 받다가 그냥 헤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 아. 결국은 인생 혼자사는 거구나. 세상에 믿을 사람 정말 아무도 없구나. 남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이 하는 척에 불과한 거구나. 남을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오만한 자세인가.

그 이후의 며칠간 나는 그 말 한마디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며칠간 만난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어딘가 한켠에 정신을 놓고 있는거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고마워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젠 미련 없이, 깔끔하게 잊을 수 있겠지.

만병통치약이라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덕분에 이젠 작년의 그 아픔들에 대해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그 생각들도 이제 - 인간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도, 완전히 이해해 보겠다는 자세만큼은 유지하자. 이해할 수 없는게 현실이라면, 이해의 정도가 아닌 이해하려는 자세가 결국 중요한 것이겠지 - 정도의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젠 그 당시의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게 되었다. 나는 뭘 그렇게 힘들어했고, 고작 말 한마디에 뭘 그렇게 상처받은 걸까. 그 친구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건 당연한 거였는데. 안겪어봤으니까 알리 없잖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젠 머리로 이해가 간다 해도, 그 순간 가슴이 받았던 감정과 상처는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5
이번 학기 시작하면서, 아는 장거리 연애 커플이 대여섯 정도 있었던거 같다. 솔직히 난 속으로 - 한두달 있음 다 깨지겠지, 길어야 한학기다 - 정도로 비웃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정말 끝까지 계속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인들이 있길 바랬다.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 나의 사랑이 물리적 거리에 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자, 나는 부족한건 [내 사랑]이었지 [사랑]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증명해 주길 바랬다. 그래서 나의 비웃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다들 헤어지네.

친한 누나 하나가 그렇게 얼마전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누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과거의 나는 어떤 남자친구였을까 많이 궁금해졌다. 장거리 연애라는 현실 속에서라도 과연 나는 최선을 다했는지, 시간이 흐른다면 남자는 변한다는 비난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운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판단하는 문제니까.

과거의 나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앞으로 좀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등등의 각종 자기 합리화를 거친 후에 결국은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 했고 변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정녕 그게 듣고 싶은 대답이었을까? 기분이 묘했다. 도데체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었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전화를 건 걸까. 헤어진 후에 남자가 할 수 있는 찌질한 짓도 정말 다 해보는 구나.

그리고 내 자신이 참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 말로는 늘 헤어짐의 궁극적 이유는 내가 유학온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내 잘못이 없다고 증명해내고 싶어하는 구나.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구나. - 얼마나 비겁한 생각들인지. 부끄러웠다. 결국은 내 자신에게 좀더 실망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던 걸까.



#6
여자문제에 있어서, 남자가 쿨하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쿨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겁이 많다는 뜻이다. 거절당하거나 꼬이는 것에 대해선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찌질한 단계는 벗어난 거겠지만, 그래도 다가올 아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올인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겁이 많다는 거다.

겨울방학의 그날, 그 친구를 만나서 다시 시작하자고 붙잡으려 했던 말 중에는, - 내년엔 카투사도 지원해서 꼭 되서 한국에 들어올테니까 그렇게 또 만나고 하면 안되겠냐 - 는 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나 부끄럽고 우습고 어린 말이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때 어떻게 저런 말까지 했을까.ㅎㅎ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땐 그렇게 내 바닥을 보이는 것에 대해 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립기도 하다. 다시 그렇게 내 바닥을 드러낼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친구와는 헤어졌지만, 어찌됬든 카투사는 지원했다. 지원여부를 고민할때, 그리고 발표가 임박해 올때 저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 여자친구가 그리워서 였던건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내 자신이 묘하게 그리울 뿐.



#7
며칠전 카투사 결과가 나왔고, 나는 떨어졌다.ㅎ 사실 군대가 정말 너무나도 가고싶다. 모든 남자가 가는 곳 나도 가야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혼자 오바하는) 묘한 부채의식과 함께 지금 당장의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뒤엉키면서, 그저 눈 딱감고 군대 갔다오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현역으로라도 갈지, 나중에 전문연구요원을 할지,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야겠지. 과연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 걸까. 군대를 갈까.



그런데 세상아, 이런 생각만 하고 사는 내가 사실 참 부끄럽다.
2007. 11. 16. 14:33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도 먹고 1교시도 가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어김없이 10시 반에 깨고 말았다. 덕분에 내일 아침 2교시 공강때 하자 하며 약간 덜해놨던 독일어 숙제도 제대로 못하고 수업을 가야 했다. 꿈자리는 또 어찌나 찝찝했던지.. 일어나자 마자 한숨 부터 푹 쉬고 말았다. 웅-하고 울리는 머리 속을 털어내려고 애써본다.

     그 와중에도 친구 녀석의 카투사 발표 결과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나는, 얼른 컴퓨터를 켜고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다 떨리더라. 컴퓨터를 켜놓고 어딘가 나갔는지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수업하러 걸어가는 길, 전화도 걸어봤지만 받지 않더라. 결과 나면 째깍째깍 엠에센에 말 남겨놔야지 이녀석!
     내년 카투사를 지원할까 생각중이다. 거의 마음은 기울었다. 군대라는 것. 도데체 뭘까. 중학교 동기들은 벌써 여럿 군대를 갔고,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가려고 마음 먹은 녀석이 여럿이다. 그런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 일처럼 떨렸나 보다. 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 09년 1월 혹은 2월에 갔으면 하는 곳.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한 관문이라는 그 곳.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은, 모두가 갔다와서는 인생 낭비한 곳이라고 욕한다. (물론 군대에서 사회를 좀 배웠다고 하는 분도 많지만 그 배움이 2년이라는 기간에 상응하냐라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이들이 아니라고 답하더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막상 공익이나 면제로 안갔다온 사람들을 은근 무시하고 미필자나 여성 앞에서 항상 군대 경험을 으스대기로 유명하다. 아마 내가 군대를 갔다온다면 전형적인 그런 사람이 되겠지. 당연히 그런 최악의 사람처럼 대놓고 말하는 일이야 절대로 없겠지만, 마음 속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지 - '저 녀석 할튼 군대를 안갔다와서 저래.' 정말 절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농담삼아 내뱉으려나.ㅎ 이런 내가 부조리하다는 걸 잘 알지만, 이게 나인걸 어떡하겠는가.
     또 한편으로 나란 놈은, 병특 등의 방법으로 대체복무를 한다면 현역 사람들에 대한 묘한 부끄러움, 혹은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살아갈 것 같다. 약간은 당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아, 그렇다고 이런 생각때문에 다녀와야겠다는 결정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고작 그걸 위해서는 2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 다만 훗날 병특하는 것보단 미리 군대문제 해치우는게 내 인생에 더 이로울 것 같아서..)
     군대를 들어갈때는 마냥 어린 소년이지만, 나올때는 진짜 남자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진실 - 혹은 어설픈 사회의 고정관념. 만약 진짜 입대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찌됬든 한국에 계속 머무른다는 생각에 미국 오던 그날보다는 마음이 편할까, 아니면 더 복잡할까. 내 생각엔 후자일 것 같다.

     정신없이 독일어 수업하고, 점심먹고, 수영하고, 수업가고.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마지막 수업땐 꾸벅 꾸벅 졸았는데, 그러고 수업을 마치자 너무나도 자고 싶은 생각에 가까운 도서실 같은데 가서 등받이 아주 높은 의자에 맘 먹고 앉았다. 잠오면 기대서 잘라고ㅎㅎ 노트북을 열고 다음에 접속했더니 황석영 씨가 귀국했다더라. 대선철, 상당히 정치적인 문인에 속하는 그의 귀국 소식은 기삿거리인가 보다.
     지난 봄 다양한 한국 근현대 소설을 읽었었다. 나는 황석영의 글이 참 좋았다. 황석영 뿐만 아니라, 요즘 작가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50-70년대의 작가들에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쉽게 쓴 글이 아니라는 그 느낌. 이건 단순히 소재가 소소한 일상이냐 혹은 거대한 관념이냐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치열한 사투가 느껴지는 그런 글. 몸서리칠정도로 쩍쩍 묻어나던 그 진정성. [삼포 가는 길] [객지] [탑] 등등으로 이어지던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 숨이 거칠어지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인간, 전쟁, 민중, 그리고 우리의 70년대. 나도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 50이 되면, 나도 글쟁이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 [진정성]이 쩍쩍 묻어나오는.
     사실 황석영의 글들은 70년대를 거치지 못한, 거기에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고작 스물인 내가 공명하며 이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공감까지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진정성&공감 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너무나도 적절한 시기에 그 글을 읽은 덕이겠지만.)
     경복고 재학 중 등단했던 그는 다니던 숭실대를 때려치우고 전국 각지를 유랑한 경험으로 [삼포 가는 길]을 썼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전국 각지를 유랑하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걸 느끼고 경험했을까.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쌓은 경험들이 다 글들에 녹아났겠지. 누군가 글쟁이는 상상으로 글을 쓰는게 아니라 경험으로 글을 쓴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어떤 상황일까. 누군가는 지금 내 나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던졌는데, 온 몸으로 그 [진정성]을 경험했는데,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다시금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 귀국하는 기회마다 시골 구석구석을 누벼보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 본다.

     토요일 공연을 앞두고 8시부터 풍물 동아리 연습이 있었다. 연습 후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다음에 접속했다가, 어떤 블로거가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 시집간 딸래미가 친정 엄마로부터 받은 문자에 엉엉 울고 말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링크) 예전 같았으면 별 생각 없었겠지만, 이번엔 잠깐 멍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원래 나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라던가 이런게 없었다. 물론 가족을 모두 사랑하지만, 뭐 [그렇게] 애틋하고 그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온지 3개월. 이제는 조금 느끼는 것 같다.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 내가 그저 나이가 좀 찬건지. 결국 무조건적으로 바라는 것 없이 늘 나를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은 가족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유학이라는 선택이 그런 그들에게 너무 큰 아픔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잘되보자고 한명은 대전에, 한명은 천안에, 한명은 미국에 뿔뿔이 흩어진 지금. 텅빈 집에서 매일 밤 부모님은 허탈한 공허함을 느끼고 계시진 않으실지.. 차라리 내가 멀리 있어도 - 뭐 잘 살지? 그랴~ 알아서 잘 혀~ -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면 마음이 더 편할텐데, 밤낮없이 걱정하고, 휴일 아침이면 혹시나 날 인터넷으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컴퓨터를 켜 놓고 계시는 부모님을 알기에,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자주 연락드려야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자주 연락하면 내가 여기에 마음 못잡고 집을 그리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어서 그러지도 않고 있다.ㅋㅋ 사실 괜한 걱정이 아닐 꺼거든...ㅎ 뭐, 겨울에 가면 잘 해야지 ㅎㅎ

     저녁 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하루종일 몸도 마음도 뭔가 어지러운 날이었는데, 오늘 하루동안 생각했던 것들, 경험했던 것들을 이렇게 적고 나니 조금은 정리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비는 잠깐 눈으로 바뀌었었다. 첫눈. 지금은 다시 비가 내린다.  한 친구녀석은 눈 오는데 여자도 없고 외롭다며 징징거렸다. 훗. 이젠 그런 녀석이 귀찮은 단계를 넘어서서 마냥 귀엽기만 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저 녀석도 곧 그딴 감정 다 부질없다는 거 알게 되겠지. 이런 생각하는 내 자신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면서도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그런 것들을 바라고 기대하는 내 자신이 좀 우습기도, 불쌍하기도, 답답하기도 하다. 결국 이런게 인간이겠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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