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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8. 17:41

인턴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내가 배정된 프로젝트는 레이저에 관한 것인데, 덕분에 아직까지는 각종 레이저 관련 안전교육이나 눈 검사 등을 치루느라 별다른 특별한 것을 하지 못했다.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뭔가 배우고, 실험하고 하게 될 것 같다.

5/19 - 5/31 - 이타카에서
심타 졸업여행을 다녀오고 인턴시작하기까지 생긴 2주간의 시간은 대부분 범준이형과 뒹굴뒹굴 빈둥빈둥하며 보냈다. 매일 10시간씩 꼬박꼬박 자고, 10시간 못채우면 낮잠으로 채우고, 같이 맥주마시고 얘기하고 밥먹고 운동하며 보낸 열흘 가량이었다. 그리고 졸업식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덕분에, 졸업을 앞둔 많은 심타 선배들과 즐겁고 좋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그들을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특히 범준이형이랑은 너무 친해져버렸다. ㅋㅋㅋ 뭐 좋은게 좋으거지 뭐 ㅋㅋㅋㅋ 범준이형은 참 좋다. 형에대해 겉만 아는 사람들은 쉽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살고 근성있는 형이다. 그리고 난 열심히 살고 근성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5/31 토요일 -  인턴하는 시카고로 가는길
시카고로 오는길, 필라델피아를 경유하도록 예약되 있었는데 이타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연착되서 필라델피아에서 타기로 된 비행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많이 걱정했었다. 혹시나 했던 연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필라델피아발 시카고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20분 전에 게이트에 도착해서는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국내선이라 아직도 입장을 시작하지 않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있다가 가만히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ㅡ.ㅡ;; 다음 비행기 티켓으로 바꾸고 (다행이 추가 비용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기다리다가, 비가 내리던 날씨로 인해 그 비행기도 1시간 늦춰져 예상했던 것보다 시카고엔 3시간 가량 늦게 도착해버렸다. 그냥 웃겼다. 나 참, 천하의 윤종민이 이런 멍청한 일을 다 겪는 구나. 좋은 경험이었지 뭐.
페르미랩에서 예약해준 리무진 서비스는 너무나도 좋은 차를 몰고 왔고(거의 에쿠스 급이었다) 도착한 아파트도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좋은 매트리스에 시트와 이불이 깔려져 있는 바람에 가져온 이불과 배개가 무색해졌고, 각종 식기도구가 모두다 갖추어져 있는 것에 매우 안도했다.

6/2 월요일 - 인턴 첫날
첫날은 그저 각종 서류 처리와 끝없는 안전교육으로 잔뜩 지쳐버렸다. 그런 일정 끝에 멘토와 만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의 멘토가 중국인 유학생이길레 솔직히 많이 실망해버렸다. 전체 인턴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인 나에게 전체 멘토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이 배정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참 웃겼고, 멘토의 이름을 미리 알았으므로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지만, 중국계 미국인이 아니라 대학까지 중국에서 마쳤을 것이 분명한 중국식 액센트와 어색한 발음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토종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좀 꽤나 많이 실망하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도 아직 영어가 미숙한 아시아인인 주제에 영어에 능수능란하고 유머러스한 백인을 바라고 있는 내 자신도 참 웃기지만, 뭐 내가 인종[구별]적인걸 어떡하겠는가. 사실 게다가 이왕이면 좋은 학부를 나오고 좋은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어서 인맥적으로 나중에 도움이 됬으면 하는 매우 기회주의적인 기대까지 하고 있었던 나다. 딱 까놓고 얘기해서 그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멘토이어야 내가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그런 내가 별로 부끄럽진 않다. 그치만 딴것보다도, 영어만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중국인이었다면 별 실망 안했겠지만 그게 제일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러한 나의 바램과 불평불만은 어디까지나 주가 아닌 덤일 뿐이니까,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6/6 금요일 - 그룹 미팅
내가 속한 그룹의 미팅이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있다. 서로 토론하는 물리 내용을 잘 몰라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런게 회의라는 것이구나, 이런걸 직장에서는 하는구나, 이런 연구소에서 하는 형태는 일반적인 경우와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요런 종류의 것이 회의라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덧붙여 같은 실험실을 공유하는 물리학자들이 서로 약간씩 다른 연구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모습이, 꽤나 멋있어 보였다. 여러명의 어른이 서로 물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그 전엔 본 적이 없었거든.



영어
벌써 유학 1년차가 되었지만, 항상 영어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묘한 부채감이 있었고, 덕분에 이번 인턴 기간동안 만큼은 영어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참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너무 답답하지는 않을까. 애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일주일 살아보니, -아, 이제 내가 정말 미국에 어느정도 적응하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미국와서 느꼈던 그런 불안함과 답답함도 없고, 그냥 애들이랑도 잘 지내고 잘 놀고 떠들고 같이 밥해먹고 출근하고 있다. 한 아파트에 4명이서 같이 살고 있는데, 둘은 괜찮은 애들이긴 한데 하나는 정말 제대로된 [영재] 혹은 [geek, nerd] 혹은 [재수없는 잘난척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걔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이서 계속 걔 뒤땅까면서 놀고 있기 때문에 ㅋㅋㅋㅋ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이제 그닥 답답하지는 않은 수준에 이르렀고, 나랑 대화하는 친구들도 그닥 답답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내가 서사를 풀어내지는 못한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하고 맞장구치고 한번씩 대화하고 하는 것은 이제 잘 되지만, 자 들어봐-하며 내가 이야기를 풀어놓기에는 많이 답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다시한번 영어공부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른다. 그들과 기회가 있을때는 절대 빼놓지 않고 열심히 대화하고 놀고 어울려야지. 그리고 따로 영어공부를 하자. 아예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우는 거다. 결국은 멍청하고 묵직한 방법이 승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미국까지 왔는데, 공부라는 토끼만 잡으면 아무래도 섭섭할 것 같다. 영어는 원어민이 되겠다. 반드시.

하지만, 아무리 영어에 많은 노력을 붓는다 해도 절대 영어와 한국어를 섞지는 않겠다. 평상시 말할때 그 둘을 섞어 쓰는 것은 이미 매우 싫어했지만, 내가 한국말로 한국말 할 줄 아는 한국인한테 말 걸었는데 상대방이 영어로 대답할때의 그 이질감과 어의없음과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다른 미국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때는 한국사람과도 영어로 대화해야 겠지만, 1:1 대화에서 한국인끼리 영어를 사용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미국에는 정말 이상한 방향으로 미국화된 한국인이 너무 많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영어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러는 것일 뿐이라고? 근데 난 그게 싫다는 거다. 나는 절대 섞지는 않겠다. 영어로 말할때는 영어만, 한글을 말할때는 한글만.



미국식 생활
그리고 미국애들은 정말 한국애들과 다르다. 어찌나 개인주의적인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어색하다는 얘기다. 한날은 같이 사는 넷이서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봤는데, 각자 장을 보고 각자 계산해서 각자 요리하고 각자 설거지하고 지낸다. 한번씩 요리도 해주고 설거지도 같이하고 하지만, 주로 [각자] 식이라는 거다. 각자가 각자의 것을 산 덕분에, 지금 냉장고엔 1갤런 짜리 우유가 무려 4통이나 있다. 남 신경 안쓰고 살기엔 매우 편하긴 하겠지만, 역시 이건 아무래도 한국인이 할만한 짓이 아니다. 한국인은 한국식으로 살아야지. 그나마 하기 쉬운 베이컨&에그 샌드위치 정도는 여러개 만들어서 같이 먹자고 했다. 한국 음식을 해 줄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는데, 오늘은 반갑게도 마트에서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발견해서 잔뜩 사가지고 왔다. 내가 해먹을때 같이 해서 나눠먹고 그래야지. 그들의 개인주의의 선은 내가 침범하면 안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개인적일수록 내가 비개인적으로 행동한다면 더 큰 울림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한국식]인거다. 미국에서는 철저한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바람직한 한국적임은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한국적임이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관계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  아무튼 요즘 절대 해본적 없는 요리를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ㅋㅋ 말그대로 정말 [다양한] 경험중이다.



인턴쉽
내가 배정된 프로젝트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 페르미랩에서 인턴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은 입자물리나 가속기와는 전혀 무관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자물리에 아직까진 전혀 관심이 없는 나로써는 이게 좋은 일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번 일주일은 각종 레이저 안전교육과 눈 검사 등으로 시간을 보내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맛배기로나마 접한 나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한번 내가 미리 공부해놓고 익혀놓은 것들은 어떻게든지 나중에 쓰인다는 사실을 느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나의 과거의 공부들이 지금의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었다. 수학, 물리는 최고가 되고, 프로그래밍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지금의 노력과 희생은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고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이제 좀 바닥나고 있는 것 같지만...ㅠㅠ)

멘토의 어색한 영어는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주어지 현실은 인정하되, 최대한 앵기고 노력하고 잘보이고 뽑아낼대로 뽑아내자. 결국은 이것이 정답인걸.

10주간의 인턴 경험은 물리라는 학문적으로나, 영어적으로나, 또 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해 많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벌써 근무중에 적당히 인터넷이나 하고 facebook, 싸이, 블로그, 미디어 다음 기사등을 떠돌며 근무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떤건지를 느끼고 터득해버렸다. ㅡ.ㅡ;; 앞으로의 10주가 꽤나 기대된다. 무엇을 더 겪고 느끼게 될까.



믿음
길고 긴 방황끝에 이제 정말 정신 좀 차린 거 같다.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4년간의 그 끝없었던 곁눈질의 과정은 다시 내가 앞만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에서 쇠고기에 촛불에 시끄러운건 알지만, 이곳에서 내가 그것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신경쓰는건 적극적 참여가 아닌 곁눈질일 뿐이고, 양심에 대한 어줍잖은 자위행위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 왔고, 이곳에 온 이상 나의 현실에 집중하고 이 현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뽑아내서, 나는 그저 나중에 갚으면 되는 것이다. 부채의식을 잃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다. 내가 할일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 있다.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함에 꿈을 낮추고 안정적인것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이제 사라졌다. 결국은 그 어느것도 쉽지 않고 그 어느것도 안정적이지 않고, 그 어느 것의 미래도 불안하다. 그 수많은 진로와 미래에 대한 문제는 끝에 이르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더라. -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뭔가 해낼 수 있는 놈이라고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내가 뭔가 해낼 수 있는 가를 의심하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다. 그리고 그 답없는 문제에 의문을 갖는 단계는 졸업할때가 됬다. 결국은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가]의 차이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해낼 수 있다 해도, 언제 해낼 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믿는 것이다. 4년간의 불안함, 두려움, 허무함, 그리고 방황은 나에게 이 결론을 주었다. 어줍잖은 자기경영서나 주변의 충고조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가슴으로 느낀다. -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자.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달리자. - 무언가 나름 많이 이뤘던 중학교 시절과 지금의 나의 차이는 저 두가지 생각 뿐이다.

믿음이 흔들릴땐 지금 99도라고 믿자. 조금만 더 달리면 이제 끓을거라고. 99도에서 멈추긴 아깝지 않냐고.




6/7 토요일엔 인턴중의 일원인 Jennifer의 집이 위치하는 St. Charles의 Riverfest에 다들 함께 놀러갔다가, Jenn의 집에서 바베큐하고 떠들고 놀았다. 거기서 다들 같이 찍은 사진 한장. 그러고 보니 프로필 사진 외에는 처음으로 블로그에 내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ㅎㅎ (클릭하면 크게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 3. 4. 12:08

지난번 지원했었던 여름 프로그램에 대한 전화 인터뷰를 오늘 했다. 내가 한 대답들이 좋은 대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별로 준비도 안하고 그냥 전화받은 거였거든... ㅡ.ㅡ;; 떨어지면 뭐 코넬 교수한테 들러붙지 하는 마음에서인지 사실 별로 절실하지 않았다..ㅋㅋ

근데 주목해야 할 것은, [내가 한 대답들이 좋은 대답이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못해서 아쉬웠다.] 혹은 [내가 한 말이 제대로 전해졌을지 의문이다.]가 아닌 것이다.


종민아. 축하해. 너 영어 많이 늘었더라 ㅋㅋㅋㅋㅋㅋ




물론 아직 멀었지만ㅋㅋㅋㅋㅋㅋ

2008. 2. 10. 12:18

토요일 점심때의 기숙사 식당은 특히 붐빈다. 수업이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식당으로 향하는 데다가 주말인지라 아침 늦게 일어나 첫 끼니로 먹는 사람들까지 겹치기 때문에, 12시 - 1시 사이에는 바글바글하다. 들어갈때마다 늘 중얼거려지는게 - 아 저기에 핵 하나 떨어뜨려서 깨끗하게 정리했음 좋겠다... 정도니까. ㅎㅎ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때에는 늘 먹던 오믈렛을 먹는 것이 조금 망설여 진다. 오믈렛은 조그만한 쪽지에다가 원하는 재료를 적어주면 그것을 바탕으로 직원이 만들어주는데, 주문이 많이 밀려 있을 경우 그 조그만 쪽지를 나눠주지 않고 밀린 주문이 어느정도 해결되야 다음 쪽지를 나눠주게 된다. 그래서 주말 점심때는 오믈렛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워낙 길다. 줄서기가 싫어 식당을 한바뀌 쭉 둘러 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먹을게 없어서 한숨 푹 쉬며 결국 오믈렛 줄에 섰다. 먹을건 이거 밖에 없구나.

줄에 서 있는 사이 어떤 아주머니와 세 자녀가 보였다. 기숙사 거주 교수의 가족일런지, 그냥 어쩌다 오게된 관광객인지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톡톡 튀는 세 아들, 딸 들을 조절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식당 사정을 어느정도 아신 아주머니였는지, 갑자기 줄 맨 뒤에 있던 내게 다가와 [지금 오믈렛 종이를 기다리는 중인건가요?]라고 물었다.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아들래미 하나가 먹고 싶어 했는지 내 뒤에 줄을 세운다. [줄 서있다가 네 차례 되면 주문하렴].

마침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친구 하나가 내 뒤에 줄을 섰다. 낯설어서인지, 제대로 줄에 서 있지 못하는 그 아들 녀석을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내 뒤에 끌어당겨 세웠다. [어, 얘 줄 선 거였어?] [응 ㅋㅋ] 어라, 근데 이녀석 뭔가 나를 꺼려하는 눈치다. 음, 아주 약간, 정말 아주 약간 정도,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식당 직원이 몇장의 오믈렛 쪽지를 더 갖다줬다. 내 앞의 사람들이 죽죽 지나가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때, 쪽지는 단 한장 남아 있었다. 이런. 꼬마에게 양보하고 내가 좀 더 기다려야 되는 건가. 꼬마의 엄마는 어딘가 보이지 않았다.

[자 꼬마야 이게 주문하는 종이거든? 여기다가 네가 오믈렛 속에 넣고 싶은 것들을 적어야 해요. 주문대가 너한텐 너무 높으니까, 내가 적어줄께ㅎㅎ, 재료 종류에는 양파, 햄, 베이컨, 피망, 치즈, 토마토, 정도가 있는데 뭐 먹고 싶니?]

라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머리 속에 펼쳐졌다. 그러나 순간, 겁이 났다.

[이녀석, 날 조금 꺼려하던데. 음. 저 말들을 어떻게 꼬마한테 알아듣게 영어로 표현하지? 내 발음을 알아 듣기는 할까? 괜히 문제만 만드는거 아닌가, 아 그렇다고 한장 남은거 꼬마가 내 뒤에 서있는데 그냥 달랑 내가 쓰고 가기도 뭐하고. 뭐지. 아놔. 한국같았으면 이런 걱정 안하고 꼬마에게 아주 친절한 형이 되어줄텐데]

두 그림이 서로 좀 갈팡질팡하다가, 에라이, 그냥 내가 그 종이에 주문내용 적고 자리를 떠났다. 찝찝한 기분에 뒤를 돌아봤더니, 마침 꼬마 어머니가 달려와서 식당 직원과 이리저리 얘기하고 있더라. 다행이었다..


핑계 같겠지만, 한국같았으면 정말 저 아름다운 그림을 실현시켰을 텐데. 나 그런거 잘 하는거 모두들 잘 알잖아요ㅎㅎ [영어] 속에서는 나만의 매력과 장점을 자꾸만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경우가 그런 경우다. 뭔가 씁쓸하고, 쩝, 하고 혀를 한번 차게 되는. 사실 한학기 좀 넘게 미국에 있으면서 좀더 많이 영어로 말하게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영어가 늘었다기 보다는 그저 틀리는거 이상하게 말하는거 겁내지 않고 뻔뻔해진게 주요한 발전이었다. 음, 그래도 아직 많이 겁나나 보다. 100%는 영원이 불가능하다손 인정하더라도, 한 95%정도까지만이라도 영어가 겁나지 않는 시기는 언제쯤 올까.

2007. 10. 26. 13:03

오늘은 수학 시험을 쳤던 날..
시험장을 나오자 마자 하나 실수 했음을 깨달았다.
100점이 아니면 안되는 시험은 정말 짜증스럽다.
내용을 더 잘 아는가,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실수를 덜 하냐 많이 하냐 하는 시험은 정말 짜증스럽다.
이곳에서 아직까지 겪어온 시험들이란 다 이런식이니...
200점 만점에 150점 맞고도 감사해하고 기뻐하던 고등학교적 시험이 그립다.
아무리 공부해도 충분히 공부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그 기분이
어떤 문제가 나의 사고의 한계를 느끼게 해줄까,
시험문제가 두렵고 짜증남을 넘어 자못 기대되기까지 했던 그 때가.

낮에 있었던 Writing Seminar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쓴 글을 서로 읽은 후 비평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워크숍 시간을 가졌다. 자원하는 세명의 에세이를 모두가 읽어 온 후, 다음 시간에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감히 건방지게도, 지난 시간 이번 에세이의 워크샵을 하겠다고 나섰었는데;; 나름 만족스럽게 쓴 글이었지만 역시나 다들 콕콕 잘 찔러 주었다. 근데 뭐 다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어떤 한 논점에 대해 약간의 논쟁이 있었는데, 순간 흥분해 버렸던 나는, 가뜩이나 이상한 나의 영어를 더욱 이상하게 말해버렸다. 흥분한 나머지.
"Do we cannot !@$$#^%"
뭐시기 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하. 솔직히 에세이는 꽤나 준수하게 썼다. 근데 말은 저따구다. 같이 수업듣는 애들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읽기 쓰기는 되고 말하기는 안되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이구나 했겠지.
순간의 흥분이 가라앉자, 내 말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깨달았고,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아.. 토론식 수업에서 말로 밀린다는거, 솔직히 한글로였으면 나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준비된 논리의 철저성과 사고의 참신함, 다양한 시각 등등 질적인 면에서도 당연 밀릴리 없고, 말빨이라는 기교적 면에서도 절대 밀릴리가 없는 나다. 쩝. 어쩌겠는가. 그래도 계속 애써야지 뭐.
친구들이 내 에세이를 읽고 코멘트 해 놓은 종이들을 토론 후에 모두 다 받았는데, 그 중 한 녀석의 코멘트의 마지막 부분은,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님에도 이렇게 글을 썼다는데 놀랬다는 이야기였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중에서도 이만큼이나 글을 잘 쓰지는 못하는 사람이 많을거라고 했다. 읽고 기분이 좋았어야 하는 코멘트였을까? 내 글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저런 낯뜨거운 실수 직후에 읽어서인지 씁쓸했다. 내 생각과 논점, 내 사고와 비판, 인식 능력의 깊이를 말로는 아직 저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보고 - 저녀석 생각좀 있는 녀석이야 -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조각난 나의 영어로부터 나라는 인간 자체가 조각난 것으로 생각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입 뿐만 아니라 내 사고도 벙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들보다 훨씬 더 깊게 성숙하게 사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 쓰다보니 좀 격해졌네..?ㅎ 뭐 그래도 나쁜 생각 속에 침잠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모두 나라는 인간을 꽤나 알테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안할거라고 생각한다ㅎㅎ
뭐 좀 기분 씁쓸했어도 - 에구 뭐 다 그런거지. 우야겠어. 계속 애써야지 뭐. 허허. - 하고 넘기는게 나니까ㅎ


요한이형과 맹탕과 소주, 혹은 정모와 신천 동래 파전과 좀쌀 동동주, 재형, 강섭과 어은동 투다리와 꼬치 모듬 세트, 혹은 기원형과 할리우드와 롱아일랜드아이스티, 혹은 용현과 삼성역과 둘둘치킨이 그리운 순간이다.
조금이나마 내가 만든 벽들을 허물 수 있는 그런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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