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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3. 12:3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나는 5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다녔고 어머니는 그 바로 앞의 마트에 일을 다니셨다. 6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후 7시에 일을 마치시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낮잠을 자다 눈을 뜨니 그만 6시 40분이 넘어 있었다. 깜짝 놀라 헐레벌떡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지만, 수업에 들어가도 어짜피 몇 분 안되 끝날거라는 걸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꿔 마트에 들어갔다. 잠깐이나마 그냥 학원 잘 갔다가 마치면서 어머니를 보러 온 것처럼 행세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용서를 빌고, 설사 많이 혼나더라도 잘못한 벌은 달게 받아야된다는 돌이켜보면 기특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를 뵙고,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자다가 학원을 안갔어요-말했는데, 그 때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씀없이 날 바라만 보셨다. 몇 초 묵묵한 눈빛으로 날 보시다 몇 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서 혼내지 않으신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어머니의 표정이 기억나는 거 보면 그 어린 마음에도 그 표정의 함의가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었나보다. 


저지난 주말이 우리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하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졸업식을 보러 오셨고, 그 친구의 초대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러가지 가벼운 대화가 오고가던 가운데, 그 친구도 나도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친구 어머님께서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한동안 아들을 군대보낸 어머니의 맘고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입대식 때 삐뚤삐뚤한 줄 속에서 경례하던 아들의 모습, 일주일쯤 뒤 소포로 배달된 아들의 옷과 편지를 보고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 첫 면회때 아들의 모습, 등등. 군대가 짧아지고 편해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의 입대는 어머니에게 무거운 일이고, 또 거꾸로 아들들에겐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내가 입대할 때는 신종플루 덕분에 입대식이 없었다. 논산 훈련소 입구 바로 뒤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 선에서 부모님과 인사하고 혼자 걸어들어가게끔 했다. 그 앞 잔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이윽고 이제 진짜 입소해야할 시간이 됬다. 아버지와는 가벼운척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고, 이제 어머니와 인사할 차례. 포옹 후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으셨다. 그렁그렁한 눈빛과 손 안에 꽉 담긴 힘. 옆에선 기간병이 얼른 들어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끝끝내 날 놓지 못하는 그 손을 그냥 뿌리칠 순 없었다. 두 손 모아 어머니의 손을 몇 차례 꽉 감싸쥐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손을 놓으셨다. 그렇게 안녕 - 손을 흔들고 난 후, 나는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고 연병장을 향해 걸었다.

첫 휴가날,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머니께서 기다리시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우리집 차가 보였고 그 속에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차 속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발견하셨나보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시더니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부들부들 떠시던 그 모습. 그리고 나를 보는 눈물 가득했던 그 눈빛. 조수석에 타자마자 얼른 내 얼굴부터 만지셨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무제한적인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내 평생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만큼 잘해드린다고 해도, 그 눈빛에 담긴 사랑만큼 돌려드릴 수 있을까. 훈련소에서의 그 손길과 첫 휴가날 그 눈빛을 떠올리면 나는,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입대 며칠 후 배달된 소포 속 편지 얘기를 하는 친구 어머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교들의 눈치 속에서 몰래 쓰느라 마음이 급했는지, 편지 속 삐뚤삐뚤한 글씨며 곳곳에 틀린 맞춤법이 더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편지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지금도 금방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때 였다. 그저 옆에서 미소짓고 계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갑자기 지갑을 꺼내셨다. 지갑 속 한 켠에선 꼬깃꼬깃 접힌 친구의 편지가 나왔다. 이번엔 내가, 금방,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2009. 6. 10. 01:51
5/18-6/7
이번 한국행에선 계속 집에 머무르며 한번만 2박3일로 외출했다. 지난번들에 비하면 훨씬 조용히 보낸셈이다. 어학병 시험을 앞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엔 눈치가 보여서 집에 있었는데 ㅎㅎ 그렇다고 집에서 제대로 공부한 것은 당연 아니었다.


하나. 공항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이었는데, 신종 인플루엔자 검역으로 인해 일본에서 환승한 비행기의 이륙이 두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덕분에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을 넘기고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어디 아는 집으로 가자니 짐도 너무 많고 그래서, 그냥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차 덕분에 크게 졸린 건 없었고, 덕분에 책 좀 읽다가, 햄버거 하나 먹고, 인터넷 좀 하다가, 티비 좀 보다가 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떴다. 기다리면서 지난 겨울 로마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하루씩 노숙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나름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을 다닌 덕인지, 가끔 영상매체를 통해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을 접하면 묘한 그리움과 아련함에 휩싸이곤 했었다 - 역과 터미널이 '내 공간'인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이제까지의 각종 공항에서의 경험에 이번 밤샘이 더해지면서 이제 공항도 '내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구나.. 싶었다.


둘. 소소한 일상의 행복
거의 매일, 저녁 식사 후 어머니와 손을 꼭 붙잡은 채 아파트 뒤를 산책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웃고, 토닥토닥 소소한 말다툼을 하고, 산책로 위의 수많은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드렸다. 아파트 뒤의 논에는 이미 모내기가 끝나 있었는데, 그게 자꾸만 눈에 들어오더라 -  해가 덜 진 초저녁에 산책할때면 조금씩 삐뚤삐뚤하게 심어진 모를 보며 그 특유의 옅은 초록색이 참 이쁘다고 생각했고, 밤엔 논을 거울삼아 비치는 아파트의 불빛들, 한국 특유의 요란한 상가 간판들, 그리고 달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도 귀에 찐했다. 산책 중간중간 어머니와의 대화가 끊길때면, 내가 얼마나 많은 일상의 소소함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생각했다. 행복이란게 별게 아닌데.

그렇게 놓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어져 한국에 있지 않음으로써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하나둘 떠올랐다. 아마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한두개의 동아리 안에선 회장 정도쯤 하면서 온갖 엠티와 술자리를 주선했을테이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각종 영화제에 자원봉사를 신청했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이 지나기 전에 맘에 맞는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도 해보고 싶고, 자전거에 텐트하나 얹이고 동해안 일주도 해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 남는건 그렇게 쌓아 놓은 추억들 - 산장속에서의 하룻밤, 여름임에도 냉기가 쩍쩍 올라오는 텐트바닥,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내 눈에 담긴 우리나라 - 일텐데, 이런 것들을 놓친 만큼 혹은 그 이상을 미국에서 얻어내고 있을까.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했다. 이제는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가. 밖에 있으면 환상이었던 그 모든 것들이 안으로 들어가서보면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걸. 그렇게 안밖이 뒤바뀌면 어느덧 이젠 안에서 밖을 그리워하고, 일상이었던 것들이 환상이 되어버린다. 이것도 그런 걸꺼다. 이제는 재현 불가능해진 과거의 경험들에 대해선 감사해하고, 내 마음에서 그만 놓아야할 것들에 대해선 너무 안타까워 하지 말아야 겠지. 아 물론, 아직도 가능한 것들은 어떻게든 누려내고 말꺼다 ㅎㅎ


셋. 어학병
미국에서 머무르다 바로 인턴하러 갈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굳이 한국을 들린 주된 이유는 사실 어학병 시험때문이었다. 지난 6월 4일이 시험 날이었고, 시험 전까진 집에 머무르면서 공부하는 척을 했다. 시험에선 오전에 영한 한영 번역을 하고, 오후에 영한 한영 통역을 해야한다. 앞의 세개는 그런데로 괜찮았지만 마지막 한영 통역에서 거의 한마디도 못하고 나와버렸다. 영어로 못 옮기겠었던건 아니었는데, 문제는 단 일초전에 한국말로 들었던 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는 거였다.... 덕분에 시험은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고 나의 군대행은 계획에서 벌써 한칸 어긋나 버리고 말았다.. 에고.


넷. 내 오랜 친구들
목요일 아침 9시였던 어학병 시험에 구미에서 곧바로 갈 차편이 없어 전날 천안의 작은누나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천안에서 누나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이, 먼저 어학병으로 입대한 정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삼십분 남짓 통화했는데, 녀석도, 나도, 어찌나 여전한지. 어학병 시험과 군대 생활, 그리고 여자에 관한 시덥잖은 얘기들로 삼십분을 꼬박 채우면서 몇번이나 낄낄 거리고 웃었는데 - 참 좋았다.

시험이 끝나고 서울에서 만난 친구와도 한참을 얘기를 나눴는데, 내가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왠지 그 친구가 흉봤을 것만 같다. ㅎㅎ 그리고 그날 밤 내려간 대전에선 재형, 강섭, 수연이를 만나 각자의 요즘의 삶과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이야기들로 밤을 꼬박 새버렸다. 나 덕에, 그리고 각자의 대학에서의 갈라진 삶 덕에 이젠 삶의 공통분모가 꽤나 많이 사라졌다지만, 그들도 나도 참 여전했다. 맘 푹 놓고 마신 덕인지 맥주 서너잔에 벌써 취기가 올라왔고 정신없이 서로 놀리고 갈구고 욕하고 웃었다. 그 편안함.


그리고 다시 출국해서 지금은 이스라엘에 있다. 어떻게 운이 잘 닿아 이번 방학에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게 됬다. 하는 일은 초전도체와 관련된 건데, 일도 일이지만 이스라엘에서만 겪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겪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학병 시험을 공부하는 척 하면서 봤던 각종 영화와 드라마들.

와니와 준하
티비에서 결혼한 김희선이 나오길래, 몇번 뒤지다가 못찾겠음을 반복한 끝에 여전히 보지 못한, 김희선이 가장 아름다웠다던 영화 와니와 준하를 찾아봤다. 영화는 그냥 썩 괜찮은 정도였다.

미녀는 괴로워
와니와 준하의 주진모를 보고 이 영화도 보지 않았음이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다. 극중 주진모의 대사가 참 맘에 들었다. -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

시티홀
극 중 차승원이 맡은 역할에 끌렸다. 사시와 행시를 동시에 패스한 천재이고, 매우 현실적이고 야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숨겨진 아픔이 있는 그런 캐릭터? ㅎㅎ 이젠 좀 정형화된 뻔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걸 내가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 거기에 파리의 연인을 썼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결국 일부러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는데, 김은숙 작가라는 사실이 초반부의 재미를 보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후반부의 늘어짐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
시 티홀을 보면서 차승원의 길이, 몸매, 수트빨에 반해버렸고, 그래서 그의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괜찮은 영화였다는 입소문이 기억나서 박수칠 때 떠나라를 가장 먼저 찾아보았는데, 이 영화도 그냥 그럭저럭이었다. 내가 장진식 유머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틈틈히 그런 유머가 영화의 흐름을 끊었던 것만 아니었다면 꽤나 괜찮은 스릴러물 이었을 것 같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찬가지로 찾아본 차승원의 영화.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럭저럭한 장르물이었다.

그저 바라보다가
우 연히 주말 재방송으로 9화와 10화를 보고는 재미있길래 앞 화도 다 찾아보았다. ㅡ.ㅡ;; 평범한 우체국 직원(황정민)과 우리나라 최고의 톱스타(김아중)가 어떤 계기로 위장결혼한 끝에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인데, 둘의 로맨스의 전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나도 별 수 없이 황정민이 나고 김아중이 김태희 혹은 송혜교라는 환상을 품으며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 덕분에 드라마가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미녀는 괴로워와 이 드라마를 통해서, '몸매만 좋지 얼굴은 별로잖아'였던 김아중에 대한 평가가 '몸매는 정말 최고고 얼굴도 저만하면 충분히 이쁘지!'로 바뀌었다.

너무 놀라지 마라
때마침 구미에서 개최된 전국연극제의 개막작으로, 어머니와 함께 관극했다. 극중에선 가난과 정신이상과 패륜에 의한 놀랄 일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데, 주인공들은 연극의 제목처럼 그걸 전혀 놀라지 않고 받아들인다. 장영남의 넘치는 에너지가 돋보이는 연극이었다.

2009. 4. 4. 01:07
시계가 멈췄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시계가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된거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늘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가 멈춘 거였다. 시계를 흔들어도 보고 손으로 탁탁 치기도 했지만, 별 소용 없었다. 시계는 새벽 3시였고 세상은 아침 8시였다.

아버지께서 선물로 사다주셨던 시계인데, 이제 거의 3년 정도 사용해 온 것 같다. 워낙에 밥달라는 소리도 없이 늘 잘 작동하니까 마치 시계는 건전지따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당연히 그럴리가 없는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할지라도 시계는 아주 조금씩 건전지를 쓰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이제 다 썼나보다. 바닥이 났나보다. 그래, 너도 시간이 흐르면 멈추는 구나. 왠진 모르겠는데, 괜시리 기분이 싸했다.


그치만, 새 전지 넣으면 언제 멈췄냐는듯 잘 굴러가겠지. 그리고 다시 세상 시각에 맞추면 되는거다.
2009. 2. 16. 18:39
지난 토요일은 발렌타인 데이였다. 중간중간 여러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었음에도, 바쁜 일상속에서 나는 계속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온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뭐 어짜피 내겐 그저 여느 토요일로 지나갈 뿐일 텐데 뭐. - 라고 생각했었는데, 하하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배경은 이렇다. 2주 전 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기 A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잠깐만- 하며 갑자기 전화를 누군가에게 바꾸는데, 내가 이번학기 새로 이사온 집의 하우스메이트 중 하나인 B였다.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인건지 당황해하는 와중에 대화를 시작했다. 알고봤더니, A의 하우스메이트 중 하나의 생일파티가 진행중이었고 B가 거기에 참석한 것이었다. A와 B가 서로 어디 사느냐를 묻다가 내 얘기가 나왔고, 반가움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상하리만큼 좁은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신기해 하면서, 파티에 얼른 놀러오라는 B의 친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A가 전화를 받았을때, 웃음 섞인 목소리로 A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A에 따르면, B가 말하길 같은 집 하우스메이트 중 어떤 여자애 하나가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나한텐 이 얘기 절대 비밀로 해야한다고 했다더라. ㅋㅋ 이건 뭐 뚱딴지 같은 소린가 하며 어이없어 하는 나에게, 외국 여자와의 로맨스에 대해 환상이 있는 A는 혼자 들떠서 내게 마구 떠들어댔다. 물론 기분 나쁜 소식은 아니었지만, 뜬구름에 불과한 이야기일지 모르니까 나는 애써 담담한 척 했다. 그 이후로 그 주인공인 여자애의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지만 ㅎㅎㅎ

정말 사실인걸까 - 하고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솔직히 진짜 별 생각 없었다. 뭐 호감이 있었던건 사실이더라도 금방 식겠지, 호감이 있다한들 내가 무슨 상관이리 - 정도의 생각들로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간간히 만나는 A는 나를 만날때마다 그 여자애 이야기를 꺼냈고, 혼자 즐거워했다. 조금 짜증났던건, A가 A의 친구들에게 그 생일파티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다. A의 친구답게 A만큼, 혹은 그 이상 찌질한 그 외국애들도 낄낄거리며 내게 물어왔다. 자꾸 놀리는 듯한 A와 그의 친구들에 모습에 슬쩍 짜증이 나려고도 했지만, 에고 불쌍한 것들, 여자 한번 못 사겨본데다 찌질하기까지 한 녀석들이 저러면서 자위하고 있구나 - 정도로 가엾게 여겨주기로 했다. 어쩌겠니, 형이 이해해야지 ㅋㅋㅋ

그런데, 발렌타인 데이였던 지난 토요일, 늦잠을 실컷 자고 늘그막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는데 내 방앞에 초콜릿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핑크색 하트 종이에 글귀도 하나 적혀 있었다 - "Jong Min, Be My Valentine!" 이란다. 하하. 잠이 활짝 깼고, 순간 당황해서 얼른 주워들어 책상에 숨겼다. 그리곤 아침식사 자리를 향하는 내내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뭐야 A와 B의 이야기가 진짜인건가, 설마. 표정관리 어떡하지. 등등등등. 염려했던 대로 만나는 하우스메이트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누구에게서 온거냐고 물어봤다. 그중 B의 발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자기가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다며 자기도 누군지 모르지만 곧 알아내고 말거라고 하더라 ㅡ.ㅡ;;

이제 정말 그 A와 B의 얘기가 진짜인건가 - 라고 생각했다. 아 이제 명백한 움직임을 보이는 구나, 난 어떡해야 하지. 아 조용히 살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날 가만 안놔두네(ㅋㅋㅋ) 등등과 같은 종류의, 찌질한 남자가 어떤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할때 하는 상상들을 마구 펼쳐보았다. 그래도 나이좀 먹었다고 어느정도 말에 조심스러워 져서 A의 이야기를 그때까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진짜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우울한 발렌타인이라며 궁상떨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괜히 자랑도 하고 싶었다. 끝내 그 간지러움은 참았지만, 친하게 마음을 열고 지내는 어떤 누나에게 상담 비슷한 것을 받아버렸다ㅎㅎ 물론 여태까지의 정황으로는 그 누나도 나와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고.

진짜 솔직하게는, 저 가능성을 한 반정도 믿었다. 그렇지만 꽤나 빠른 나의 눈치는, 그래도 나머지 반은 믿을 수 없게 붙잡아 놓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하게도 이야기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과, 같은 집 하우스 메이트들의 질문들, 그리고 A와 그 친구들의 낄낄거림 등을 종합해볼때 뭔가 이게 장난일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우스 메이트들이 새로온 친구 재미로 놀려먹는 건가도 싶었고 A와 그 친구들이 장난 치는 것인가도 싶었는데, A와 그 친구들이 그정도 스케일의 장난을 칠 위인도 못되는 애들이어서 걔네들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우스 메이트 짓인가.

이런 생각에 찝찝했지만 점차 내게 기분좋은 쪽으로 마음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토요일밤 꿈에 그 여자애가 나왔다 (나도 참 이런거 보면 대단하다.) ㅋㅋ 그런데, 역시나 완벽 범죄로 놔두고 조용히 즐길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나의 친구 A는 오늘 일요일 밤 내게 일부러 찾아와서는 대뜸 모르는 척 뭐 받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나야 - 아무 것도 없었는데? - 라고 태연하게 반문했고, 그러자 - 뭐야 어제 아침에 방문 앞에 뭐 없었어? - 라고 물어보더라. 모든게 선명했다. 아. A의 장난이구나 ㅋㅋ 이녀석 의외인걸 이런 장난도 칠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나의 모습에 실망한 A에게 그제야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다른 A의 친구들에겐 내가 아직 사건의 진상을 모르는 걸로 하고, 이번 주에 그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마구 호들갑 떨며 아무래도 그 여자애한테서 초콜릿은 받은 거 같다며 자랑하기로 했다. ㅎㅎ 녀석들 그럼 좋아라 하겠지.

A는 돌아갔고, 혼자 피식 웃었다. 결국 다 헛된 망상이었군. 혼자 상상한 거 하며, 어젯밤 꿈 하며, 그 누나에게 받은 상담하며 모두 얼굴이 화끈거리게 했다. A 앞에서야 다 알았던 척 태연한 척 했지만, 그래도 좀 쪽팔렸다 ㅎㅎ 혼자했던 생각들이야 뭐 어짜피 남들이 모르는 거 다 좋은데, 그 누나한텐 뭐라고 말할지 참 부끄러웠다. 그나마 그 누나 외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게 다행스럽기도 했고.

그런데 뭐, 그냥 웃겼다. 솔직하게 내가 - 이런 생각들을 했고, 착각들을 했고, 이렇게 장난에 넘어갔다 - 라고 인정하면 뭐 어떠랴. 그래도 반틈은 눈치채고 있었고, 덧붙여 그런 착각을 하는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니까. 부끄러울꺼 뭐 있어, 웃으며 받아들이고 우스운 이야기로 써먹고 그러면 되는 거지. 20대 초반의 남자중에 저 상황에서 착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ㅎㅎ 부끄러운 면을 자꾸 감추려고 하면 더 드러나고 부끄러워지지만, 인정하고 다 드러내면 오히려 별 느낌 없어지는 법이다. 부끄러운게 없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이라고 말하는게 너무 거창하다면, 그런 찌질한 내 일면을 인정하고 감추지 않을때 그나마 좀 덜 찌질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ㅎㅎㅎ 이런 내 자신이 참 귀여우면서도, 이제 이런게 안부끄럽고 담담한거 보면 그래도 좀 내가 컸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쓴다. 읽는 분들 모두 귀여운 피식 웃음 이라도 한번 지으시라고.
2008. 10. 29. 17:38
날씨도 춥고 배는 고프고 몸은 나른하고 해서 침대에 슬며시 파고들었던 5시 무렵, 살풋 잠들려 하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쩝 역시 이시간에 잘려고 하니까 하늘이 날 막는구나 - 싶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왠걸, 친한 친구녀석의 여자친구님이셨다.

순간 전화의 용건을 직감했고, 적중했다. 다음날이 내 친구의 생일이었고, 여자친구는 유학생의 공허한 생일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그 친구의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전화라도 한통화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맞이하는 생일과 실질적으로 다를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괜히 유학생이 되어 맞이하는 생일에 대해 감상적이 된다.)

난 당연히 전화하겠다고 답했고, 그러고는 그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에 관해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이 친구가 뭘 갖고 싶어 했었는데 똑같은걸 못찾아서 비슷한걸 주문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좀 별로인거 같은데 다른거 갖고 싶어했던걸 사줄지 어떻게 해야될지 - 정도의 이야기. 물건 고르는거 따위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나로써는 사실 아무런 조언을 해줄수 없었지만, 그리고 사실 나에게 기막힌 답변을 바라고 물었던 것도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열심히 같이 고민해주는척(?!) 하며 맞장구쳤다. 결론은? 내가 좀더 생각해보고 결정할게 아무튼 고마워~

전화온 순간부터 용건을 짐작했던 이유는 작년에도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이맘때쯤 받았었기 때문이다. 작년 그때 그 시기의 나의 감정과, 그때 그 전화를 받았을때의 기분이 언풋 떠올랐다. 그리고 덕분에, 살짝 기분이 묘했다. 작년엔 개인적 사정 탓에 솔직히 아닌척 하긴 했지만 그 전화에 어느정도 심통이 났었는데, 이번엔 그냥 그런 여자친구가,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있는 둘의 모습이 마냥 이쁘게만 보였다. 이렇게 나에게 전화하는게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부터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가 좋아해줄까 고민하고 행동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이뻤다. 이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저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뭐 맘에 안들면 바꾸면 되지만 그래도 생일 선물인데 짠! 하는 맛이 있어야 하잖아~ 정도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녀석이 여자친구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걸 충분히 헤아리고 고마워할지 의문이 들었다. 선물보다도 그 마음을 알아야 하는건데. 그래서 그 여자친구에게 니가 이런 고생 하는거 은근슬쩍 말하라고 ㅎㅎ 조언해줬다.

솔직히 난 생일을 특별하게 챙기는 것이 뭔가 어색하다. 뭔가 나한텐 맞지 않는 옷 같은 기분. 아무리 친한 친구가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고, 오히려 유별나게 챙겨주면 고맙기도 하지만 얘가 왜이러나 하는 생각이 먼저든다. 덕분에 남의 생일도 그닥 특별하게 챙기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외우고 있는 생일이라곤 우리 가족 생일 더하기 옛 여자친구의 생일정도다. 유별난 내 성격은 이런데서도 특이하고 싶어하는지 난 생일날 근사한 선물과 이벤트보다는 절친한 친구와의 생맥주 한잔,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어린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그 친구와 여자친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뻐보이는 걸까. 요즘 혼자 지내는게 너무 좋긴 한데, 요렇게 가끔씩 조금은 연인들이 부러울때가 있다. 그 따뜻함. 에잇. 부러우면 지는건데, 졌다.ㅠㅠㅠ


사실 그 친구는 참 고마운 친구다. 주로 남의 얘기를 듣는 역할만 하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얘기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친구다. 그정도로 친한 친구중에 나랑 가장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고, 또 현재 가장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중학교때 근성있게 미친듯이 공부했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똑같이 똑같은 방황과 고민을 했던 친구. 작년 한해동안 내가 나를 그래도 어떻게든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줬던 그 몇명의 사람중 하나다. 너 없었으면 나 작년에 무너졌을지도 몰라.


그런 친구의 생일이다. 새삼스레 다시 고마워해본다.
용현아. 생일축하한다.ㅎㅎ

2008. 7. 7. 15:17
여기 있은지 한 3주차쯤 부터인가, 초저녁에 아파트 문을 나서서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면 뭔가 반짝 거리는 불빛이 보인다. 처음에는 요새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허한 나머지 헛게 보이나 했다. 고작 한 3주 했는데 이러다니 나 스스로가 참 불쌍하다 싶었다.

그런데 고 깜박이는 불빛이 내 시야 속에서 일정한 위치에서만 계속 보이는게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끊이지 않게 계속 보이는 것이었다. 눈의 문제라면 내 시야의 일정한 위치에서 계속 보여야 할텐데, 그럼 눈이 이상한건 아닌가보다 - 따위의 별로 그닥 체계적이지 못한 논리를 펼치며 저 불의 정체가 뭘까 생각했다.

그 다음 생각난 건 - 드디어 내가 도깨비 불을 보는 건가. - 하는 거였다. 음, 도깨비 불은 공기중에 떠다니는 인이 산화되면서 생기는 불이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인의 종류에는 흰 인과 붉은 인이 있는데 붉은 인은 성냥개비 끝에 붙어 있는 그것으로써 상온에서 발화가 안되지만 흰 인은 상온에서도 발화가 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도깨비 불의 정체다. 흰 인과 붉은 인의 차이는 결정구조의 차이로써 4개의 인 원자가 사면체의 형태로 하나의 결정을 이루는 것이 흰 인이고 붉은 인은 결정이 아닌 연속된 체인의 형태로 인 원자가 이어진 것이다. 고온에서 인을 녹인 후 급히 식히는가 서서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두 인으로 갈리는데, 전자는 붉은 인 후자는 흰 인이 된다. 이렇게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을 띠는 것을 동소체라고 하는데 인 외의 대표적인 동소체로는 황이 있겠다. 어? 근데 서서히 혹은 급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달라지는건 황이었던가, 모르겠네. 음 아무튼 보통 도깨비불은 묘지 부근에서 잘 보이는데 이는 사람의 뼈에 흰 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이 썩고 시체가 토양과 섞이면 그 흰인이 흙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공기 중을 떠다니게 된 인이 산화되면서 도깨비불이 보인다. 음, 근데 여기 주변이 묘지인것도 아닌데 어디서 인이 이렇게 많이 흘러오는 거지? - 따위의 생각이 마구 터져나왔다. 음. 그나저나 다른 친구들도 이걸 봤으려나. 영어로는 도깨비 불을 뭐라고 할까. 얘기해 봐야겠네. - 이러며 5분가량도 걸리지 않는 집과 헬스장 사이의 거리를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였나. 그날따라 너무나도 많이 그 불빛이 보였다. 그냥 - 또 보이네 - 하며 지나가고 있는데 우연찬게 내 눈앞 한뼘 거리에서 갑자기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며 꺼진 불빛이 위치한 곳을 살펴보니, 곤충이 날아가고 있었다. 하하. 불빛의 정체가 이녀석이었구나. 이게 반딧불인가? 음 뭔가 아닌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반딧불이를 실제로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구나. - 이러는 와중에 그 녀석은 날아가 버렸다.

순간 멍했다. 그리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냥 곤충 한마리일 뿐인데, 나는 어쩜 그렇게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내가 배우고 경험한 세상을 바탕으로 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려고 하는거야 당연한 거긴 한데, 그 이미 구축된 나의 세상이라는 것이 어찌나 이렇게 좁은 걸까. 반딧불이라는 생각보다 도깨비불의 정체가 흰인이라는 해석이 내 머리속에 먼저 떠올랐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딱 이럴때 적용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어릴적에 반딧불이를 보고 자랐다면 - 어라, 미국에도 반딧불이가 있구나 -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산골에 위치한 할머니댁 덕분에, 그리고 친구들에 비해 나름 시골에 위치한 환경 덕분에 나는 그래도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반딧불이를 보고 도깨비 불에 흰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더 배워서 더 어리석은 이 현실. 마냥 웃기지 않은가.

작은 반딧불이한테 이번에 많이 배웠다. 고 녀석은 자기가 작지만 뜻깊은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 짝을 꼬실려고 그렇게나 불을 깜빡거린 것이었을텐데 말이다.ㅎㅎ



첨언 : 내 중학과학경시의 기억은 어쩜 아직도 저렇게나 상세하게 남아있을까. 그 시절엔 정말 내가 열심히 했었구나 싶다. 몇번에 몇번을 걸쳐 외웠으니까 5년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다 기억나는 거겠지. 그 시절의 내가 참 자랑스럽긴 한데, 한편으론 참 그립다.
2008. 3. 30. 15:25

나만의 피해의식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가족과 보낸 시간이 참 없다. 어릴때는 너무 생각이 없었고, 어느정도 기억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때 엄마는 직장에 다니셨고, 큰누나는 기숙사에 살았고, 작은누나는 입시학원에서 12시가 넘어서 돌아왔으며, 내가 중학교 다닐땐 누나들 둘다 기숙사에 살았고, 나도 나름 학원 비스무리한걸 좀 다녔으며, 고등학교에서는 기숙사에 살았다. 대학은 미국에 와있고.
 
덕분에 언제나 가족은 내편이고 가족이니까 사랑하는 것이라 머리로는 늘 생각해오면서도 가슴으로 그렇게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뭐 한편으로는 그냥 어려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미국에 오니까 참 다르다. 막 가족이 보고 싶어서 엉엉 울고 그런건 당연 아닌데, 결국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이 있구나, 저기에 어떻게 되든 간에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구나, 날 늘 생각하고 응원하는 가족이 있구나.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정말 정 없는 나였는데, 이런게 큰다는 건가.


지난 목요일은 엄마 생일이었다. 엄마 생일이라고 선물 준비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잊어버린적도 자주 있었던듯 하다. 개학하고 다시금 누나들도 학교로 병원으로 돌아갔고, 나도 미국에 와서, 꽤나 적적하실지도 모를 생일. 전형적 경상도 남자인 우리 아버지께서 특별 이벤트를 마련하신다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 데려가신다거나 하실리도 없어보였다.ㅡ.ㅡ;;

그래서 며칠전부터 고민하다가, 어머니 직장으로 장미꽃 한다발을 배달시켰다. [직장으로]가 뽀인트다. 생일날 근무중에 친구분들이 다 보시는 중간에 새빨간 장미꽃 한다발을 배달받기!ㅋㅋ 이쁜 꽃을 찾다가, 우리 엄마 제대로 찐한 빨간장미도 받아본적 없으실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빨간 장미로만 가득 찬 다발을 선택했다. 그리고 큭큭 웃으며 문구를 담았다.

  사랑하는 숙자씨에게 뜨거운 정열을....
     - JM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에 주문하면 마음이 정말 뿌듯할 것 같았다. 그런데, 딸깍딸깍 클릭을 하고 주문하고 나니, 마냥 마음이 뿌듯하지만은 않더라. 묘했다. 오히려 지나간 생일들때 못해드렸던게 더 생각났다. 어머니께 죄송하다기 보다는 내 자신이 참 마음에 안들더라. 그리고 내가 미국에 오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엄마 생일을 챙긴다는게 참 서글프면서도 웃겼다. 한편으론 우리 엄마 감동의 도가니에서ㅋㅋ 좋아하기 보다 펑펑 우는거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다음날 전화하신 엄마는 그런건 돈벌기 시작하고 나서 하는 거라고 역시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날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어어, 돈벌면은 이런거 꼭 해야된단 말이네? 지금 은근히 교육 시키는거?] 라고 역시나 촌철살인의 대답을 날려드렸다. 사진의부진辭盡意不盡, 언외지의言外之意. 이런거 보면 나도 영락없는 경상도 남자다.


왠지 어머니 생신이란 말은 싫었다. 엄마 생일. 이 말이 사람들에겐 어떤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내년, 10년후, 또 그 이후에 나에겐 어떤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음.. 분위기 조금 칙칙한데 ㅋㅋㅋ
사실 이 포스팅의 목적은 - 나 좋은 일 했으니 칭찬해주세요 - 요거다.
좀 늦긴 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아들인듯?ㅋㅋ

2008. 3. 10. 13:39

요즘 이타카에 꽃이 한창이다.

이 꽃은 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피어난다.
1) 꽤나 추운 날씨에 눈이 왔다가, 2) 날씨가 약간 풀리면서 그 눈이 살포시 녹는가 싶더니, 3) 다시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번엔 눈이 아닌 비가 내려야 한다.

그러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잠깐 녹다가 얼어붙고 마는데, 이렇게 얼음꽃이 탄생한다. 나뭇가지들이 굵게는 새끼 손가락 만하게, 얇게는 동전두께 만하게 얼음으로 덮힌다. 낮에 햇빛에 산란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밤에 가로등 불빛을 받는 모습에도 넋을 잃는다. 게다가 저 멀리 깜박이는 신호등 불빛에 따라 붉게 혹은 푸르게 색깔도 바꾼다.

더 결정적인건 소리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그 위를 얇게 덮은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정말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다. 작은 얼음조각들이 연속적으로 갈라지는 그 소리는,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멋들어진 계절적 대칭을 이뤄낸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하면 떠올렸던 그 기분 나쁜 인상이, 이번 경험으로 확 바뀌고 말았다.

이건 정말 이타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ㅎㅎ 하루 눈왔다가 하루는 파카입고 돌아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따뜻하다가 다음날 다시 눈오는 이런 날씨 ㅡ.ㅡ;; 이런 젠장같은 날씨가 짜증나지 않는건, 순전히 이 얼음꽃 덕분이다.

원래 빛과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비온뒤의 습함 혹은 안개 속에서 뿌옇게 퍼져나가는 가로등 불빛이었다. 안개까지 자욱한 오늘 밤, 뿌연 가로등 불빛 속에서 얼음꽃은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빛난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어느덧 걸음은 느려졌다. 귀에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덕에 특유의 자근자근한 얼음 소리가 감긴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 반짝거림을 바라보며 동시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는 나를 느낀다. 이 순간 내가, 세상이 너무나도 좋다. 빛과 물과 공기가 선사한 이 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그 광경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아, 세상은 정말 살아볼만한 곳이구나.


뭔가 내 눈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내 자신이 뭔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트해 수평선에 걸려 끝내 지지 못했던 태양, 캠브리지 King's College의 Cathedral 출구를 나오며 만났던 그 영국의 아찔한 하늘, 그리고 이젠 그 목록에 코넬 Arts Quad에 가득 핀 얼음꽃이 추가 되었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 것이 많고, 그 많은 것들을 다 챙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2008. 2. 15. 15:25

처음 맞이하는 학기중의 발렌타인 데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 시기가 방학이라 못받는 이유로 방학을 탓하며 애써 날 위로 했었는데. 여기서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미국 유학생들은 딱히 남녀를 따지지 않고 뭔가 주고 받는 분위기인가 보다. 주는 것은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받는 것은 좋긴 좋은 일이지만 부담스러운 일이다. 주고받는 것보단 안주고안받는 게 훨씬 좋다는, 이런 메마른 감정과 귀차니즘.

발렌타인데이, 더 귀찮은 이유중에 하나는 나는 초콜릿보다 사탕이 더 좋다는 것이다.ㅎㅎ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왜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는 이렇게 반대로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초중고 시절 초콜릿을 받으면 (별로 받은 적도 없다만) 주로 누나들이 즐거워 하며 내 초콜릿을 먹었다. 초콜릿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는 그런 누나들이 별로 밉지도 초콜릿이 아깝지도 않았다. 단걸 별로 안좋아하는 나로써는 초콜릿이 있으면 그냥 주변 사람들을 주곤 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 겨울방학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 앉은 입술에 피어싱한 여자애가 기내식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이 다 녹아빠졌다고 스튜어디스한테 새로 달라길래 나 초콜릿 안먹으니까 먹을래? 하면서 줬던 기억이 있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 과연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받을 수 있을까 - 당연히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같은 동아리의 한 여자애가 초콜릿을 주었다. 물론ㅎ, 동아리 멤버 전체에 돌리는 거를 받은 거다. 고마워는 했지만, 음 저걸 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도 그렇고 어쩐다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기분이 쌉싸름해 졌다.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알고서, 별 말 없이 알아서 발렌타인 데이에 나에게 사탕을 선물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내가 화이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해 줄 사람,
혹은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아니까, 발렌타인 데이라고 나에게 초콜릿을 사주고서는
너 근데 초콜릿 싫어하지? 내가 먹을께~ ㅋㅋ
하고 마냥 웃으며 내 앞에서 그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사람.

서로 뭔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럴 사람.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이 아득하다.

2008. 2. 10. 12:18

토요일 점심때의 기숙사 식당은 특히 붐빈다. 수업이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식당으로 향하는 데다가 주말인지라 아침 늦게 일어나 첫 끼니로 먹는 사람들까지 겹치기 때문에, 12시 - 1시 사이에는 바글바글하다. 들어갈때마다 늘 중얼거려지는게 - 아 저기에 핵 하나 떨어뜨려서 깨끗하게 정리했음 좋겠다... 정도니까. ㅎㅎ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때에는 늘 먹던 오믈렛을 먹는 것이 조금 망설여 진다. 오믈렛은 조그만한 쪽지에다가 원하는 재료를 적어주면 그것을 바탕으로 직원이 만들어주는데, 주문이 많이 밀려 있을 경우 그 조그만 쪽지를 나눠주지 않고 밀린 주문이 어느정도 해결되야 다음 쪽지를 나눠주게 된다. 그래서 주말 점심때는 오믈렛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워낙 길다. 줄서기가 싫어 식당을 한바뀌 쭉 둘러 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먹을게 없어서 한숨 푹 쉬며 결국 오믈렛 줄에 섰다. 먹을건 이거 밖에 없구나.

줄에 서 있는 사이 어떤 아주머니와 세 자녀가 보였다. 기숙사 거주 교수의 가족일런지, 그냥 어쩌다 오게된 관광객인지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톡톡 튀는 세 아들, 딸 들을 조절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식당 사정을 어느정도 아신 아주머니였는지, 갑자기 줄 맨 뒤에 있던 내게 다가와 [지금 오믈렛 종이를 기다리는 중인건가요?]라고 물었다.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아들래미 하나가 먹고 싶어 했는지 내 뒤에 줄을 세운다. [줄 서있다가 네 차례 되면 주문하렴].

마침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친구 하나가 내 뒤에 줄을 섰다. 낯설어서인지, 제대로 줄에 서 있지 못하는 그 아들 녀석을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내 뒤에 끌어당겨 세웠다. [어, 얘 줄 선 거였어?] [응 ㅋㅋ] 어라, 근데 이녀석 뭔가 나를 꺼려하는 눈치다. 음, 아주 약간, 정말 아주 약간 정도,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식당 직원이 몇장의 오믈렛 쪽지를 더 갖다줬다. 내 앞의 사람들이 죽죽 지나가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때, 쪽지는 단 한장 남아 있었다. 이런. 꼬마에게 양보하고 내가 좀 더 기다려야 되는 건가. 꼬마의 엄마는 어딘가 보이지 않았다.

[자 꼬마야 이게 주문하는 종이거든? 여기다가 네가 오믈렛 속에 넣고 싶은 것들을 적어야 해요. 주문대가 너한텐 너무 높으니까, 내가 적어줄께ㅎㅎ, 재료 종류에는 양파, 햄, 베이컨, 피망, 치즈, 토마토, 정도가 있는데 뭐 먹고 싶니?]

라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머리 속에 펼쳐졌다. 그러나 순간, 겁이 났다.

[이녀석, 날 조금 꺼려하던데. 음. 저 말들을 어떻게 꼬마한테 알아듣게 영어로 표현하지? 내 발음을 알아 듣기는 할까? 괜히 문제만 만드는거 아닌가, 아 그렇다고 한장 남은거 꼬마가 내 뒤에 서있는데 그냥 달랑 내가 쓰고 가기도 뭐하고. 뭐지. 아놔. 한국같았으면 이런 걱정 안하고 꼬마에게 아주 친절한 형이 되어줄텐데]

두 그림이 서로 좀 갈팡질팡하다가, 에라이, 그냥 내가 그 종이에 주문내용 적고 자리를 떠났다. 찝찝한 기분에 뒤를 돌아봤더니, 마침 꼬마 어머니가 달려와서 식당 직원과 이리저리 얘기하고 있더라. 다행이었다..


핑계 같겠지만, 한국같았으면 정말 저 아름다운 그림을 실현시켰을 텐데. 나 그런거 잘 하는거 모두들 잘 알잖아요ㅎㅎ [영어] 속에서는 나만의 매력과 장점을 자꾸만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경우가 그런 경우다. 뭔가 씁쓸하고, 쩝, 하고 혀를 한번 차게 되는. 사실 한학기 좀 넘게 미국에 있으면서 좀더 많이 영어로 말하게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영어가 늘었다기 보다는 그저 틀리는거 이상하게 말하는거 겁내지 않고 뻔뻔해진게 주요한 발전이었다. 음, 그래도 아직 많이 겁나나 보다. 100%는 영원이 불가능하다손 인정하더라도, 한 95%정도까지만이라도 영어가 겁나지 않는 시기는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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