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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04:04

루키야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중략)...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중략)...


한恨의 정서라고나 할까. 올림픽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 (혹은 동양) 선수들과 서양 선수들의 정서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보인다. 금메달을 따거나, 안타깝게 은메달에 그치거나 하는 두 경우 모두에 우리네 선수들은 무릎꿇고 주저 앉아 울부짖지만, 서양 선수들은 폴짝 폴짝 뛰며 웃으며 즐거워하거나, 에이, 하고 가볍게 아쉬워할 뿐이다.

결승전 패배, 은메달에 미친듯이 울부짖고 아쉬워하는 왕기춘도 그 근성과 욕심에 멋있긴 하지만,
최민호에게 한판패 당하고도 먼저 다가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부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오스트리아의 파이셔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는 왠지 그가 - 나는 할만큼 했고, 그런 나를 넌 이겼다. 짜슥, 인정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 라고 생각하며 씨익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올림픽 금메달 은메달을 가르는 패배였지만, 그날밤 생맥주 한잔하며 - 에이씨, 아쉽네. 쩝. 담엔 이겨주마 - 정도로 그냥 한번 웃으면 털어버릴 수 있는 패배에 불과하게 여길 것만 같았다. 그 여유. 그 담담함.

그정도 여유는 갖추어야, 자기 인생에서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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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별 | 2008/08/12 07: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승전 패배, 은메달에 미친듯이 울부짖고 아쉬워하는 왕기춘도 그 근성과 욕심에 멋있긴 하지만,
최민호에게 한판패 당하고도 먼저 다가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부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오스트리아의 파이셔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 의미있는 비교네요.. 정말 그러고보니깐 오스트리아 쿨가이가 멋져보이네요.
(아마 국민들의 의식과 관련있지 않나 싶어요.. 오직 금메달만 인정하는 한국과
동메달을 따도 은메달을 따도 좋아하는 유럽...
방금 전에도 왕기춘 선수 미니홈피에 악플이 달리고 있다는 포스트를 보고 왔는데..
왕기춘 선수가 우는 모습도 이해가 갑니다...금메달을 못따면 인정을 못받고)

최민호 선수 인터뷰 중
 -아테네올림픽 이후 방황도 했다는데.

▶아테네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속으로는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주위의 반응이 그게 아니었다.
금메달과 동메달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줄 몰랐다.

한마디로 찬밥이었다. 금메달을 딴 (이)원희와는 친한 사이라 매번 같이 다녔다. 금메달리스트와 함께 다니다보니 난 늘 뒤에 있었다. 내 스스로처량하고 힘들었다.
당장 금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운동할 때도 없고, 메달을 딸 곳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가서 여관방에서 혼자 술을좀 마셨다.
(웃으며)소주가 아니라 맥주 7병인데.(사실을 확인해보니 소주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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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14:41
우연찮은 기회로 언론인에 대한 영화 두편을 보게 되었다. [굿 나잇, 앤 굿 럭]이 언론인을 다룬 영화라는 사실은 미리 알았었지만, [인사이더]가 이 영화와 이런 묘한 연관이 있는 줄은 모르고 본 두 영화였다. 둘 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라서, 영화 감상 후 배경 사건에 대해 위키피디아등을 떠돌며 이것 저것 읽어보았고, 덕분에 아래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재밌는 공부 많이 했다.


인사이더 The Insider 1999
감독 마이클 만
주연 알 파치노, 러셀 크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는 97년경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미국 주요 담배회사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금으로 지출해야했던 그 판결. 그 판결의 배경 이야기다.

거대 담배재벌의 불법 행위에 대한 기밀을 폭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회사의 퇴직한 중역(제프리 와이겐드; 러셀 크로)과 CBS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60 Minutes]의 PD(로웰 버그만; 알 파치노)가 주인공이다. 살인위협에 시달리며 과대망상증 증상까지 보이려고 하는 내부고발자를 러셀 크로가 실감나게 연기했고, 정의와 양심에 불타는 정열적인 언론인을 알 파치노가 연기했다. 이정도 요약이면 사실 이 영화 견적 다 나온다. 본인과 가족에 대한 각종 살인 위협, 담배회사의 로비, 방송사 고위직의 간섭과 압력, 최종적인 승리. 당연한거 아닌가?

내부고발자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회사에서 누릴 만큼 잘 누리다가 해고당하게 되자, 혹은 관리금/위로금 따위가 끊긴 이후에야 비밀을 폭로하는 것은 사실 그 내부 고발자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회의감을 당연히 품게 한다. 내부에 있을때, 도저히 이건 내 양심에 어긋난다고 소리치며 고발하는 사람이야 의심의 여지 없이 찬성하지만, [굳이 나쁘게 표현하자면] 단물 다 빨아먹고 나서 이제와서 뒷얘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아무 말도 없이 부조리를 숨기는 것보다야 고발하는 것이 낫긴 하겠다. 내가 아직 조직생활이라 할만한 것을 해본적이 없어서 잘 실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을텐데, 그래서인지 내부고발자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은 나의 인식보다 훨씬 나쁜 것 같다. 삼성과 관련된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보았을때, 내가 만난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삼성의 비리를 욕하면서도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와 결단에 동감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변절자]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 그대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평하고 있었고, 본인이 그 속에서 충분한 돈과 명예를 대접받으며 살아온 주제에 이제와서 저런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점은 내부고발자와 같은 영화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영화 속에서 모든 인물과 기업/언론이 실제 이름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단, 제프리 와이겐드의 딸은 가명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실화라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실제 기업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 법적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해도, 소송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정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담배회사들이야 그런 판결이 났으니 할말 없겠다만 - 각종 언론사들의 행동이 실명 그대로 영화속에서 묘사되는건 정말 감탄스러웠다.

각 언론사와 관련된 줄거리를 대충 간추리자면,
CBS 방송사의 고위직들은 내부고발자의 인터뷰를 방영하여 담배회사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법적 소송을 당하는 것이 곧 있을 회사의 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PD인 버그만에게 인터뷰를 방영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고, 결국 방영하지 않았다. 담배회사는 내부고발자의 과거를 추잡하게 들추어 그의 발언이 어떠한 신빙성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려 5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뿌렸다. 이에 대해 버그만은 본인의 각종 언론인 인맥을 동원하여 보고서의 공개를 막았고, CBS 내부 검열로 인해 인터뷰가 방송되지 않았다는 것이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와 같은 주요 신문의 사설에 실리게 만들었다. 뉴스 방송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은 CBS는 결국 인터뷰를 방송하게 된다.
정도 된다.

이 에피소드가 영화속에서 묘사될 때,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의 각종 언론 이름이 그대로 등장하고, 특히나 CBS의 경우 부끄러운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CBS라는 실제 이름으로 영화 속에 실려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제작사(디즈니)는 CBS와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렇게나 당당하게 영화속에서 각종 회사의 실제 이름이 등장하고, 또 그 뒤에 회사 단위의 소송 등의 뒷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그러나 조연으로 등장한 몇 명의 실제인물들은 영화적 효과를 위한 본인 캐릭터의 극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인적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발표되었다면 하다못해 간접광고가 도를 지나치느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라도 나오지 않았을까.

CBS의 내부검열을 비판하는 뉴욕타임즈의 사설에서 편집자는 CBS가 에드워드 머로의 유산을 스스로 파괴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 에드워드 머로가, 바로 [굿 나잇, 앤 굿 럭]의 주인공이다.


굿 나잇, 앤 굿 럭 Good Night, and Good Luck 2005
감독 조지 클루니
주연 데이빗 스트래던, 조지 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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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냉전시대의 미국은 극렬한 반공주의 속에서 매우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위스콘신의 상원의원 이었던 조셉 메카시다. 어느날 뜬금없이 정부내에 205명의 공산당원이 존재한다며 명단을 공개했고, 뚜렷한 근거도 없던 이 명단은 비이성적이었던 반공주의를 타고 미국 전역을 공포에 빠지게 했다. 섣불리 메카시 의원의 발언에 토를 달았다가는 그저 공산당원으로 몰리고 마는 현실 속에서 모든 언론인들이 숨을 죽이고 있던 가운데, CBS의 Person to Person 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에드워드 머로는 처음으로 금기를 깨고 메카시의 반공발언에 의문을 표현한다. 그 둘의 언쟁은 이제까지 메카시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준 공산주의 척결에 앞장서는 애국자라는 껍데기를 부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곧 메카시는 몰락하게 된다.

이러한 메카시의 마녀사냥적 행동 이후로 생긴 말이 메카시즘(McCarthyism)이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가 우리나라와 참 연관이 깊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냄비 근성]이라는 말로 종종 자기비하되곤 하는 우리 민족의 그 특성상,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여론의 이성은 마비되고 그에 대한 동의를 개개인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다. 멀리 보지 않고 최근만 살펴봐도, 심형래 감독과 디워에 관한 이야기나, 미국의 수입산 쇠고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미국 쇠고기에 관한 얘기는, 보수 언론과 정부가 잘못한 것이 백배 많긴 하지만, 과연 집회 여론과 진보언론들도 메카시즘에 떳떳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언론쪽이야 보수언론에 비해 진보언론이 약자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과연 우리의 여론은 좌우 균형이 맞추어진 여론이었을까? 광우병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속에서 사실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과장된 이야기 또한 넘쳐났고, 그것들이 여론의 공포를 더 비이성적으로 몰아가는 양성 피드백을 형성했다. 광우병을 공산주의로 바꾸면, 저 영화 속 상황과 많은 점들이 유사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적절한 순간에 적절히 저울을 바로잡을 줄 아는 문명화된 지성인답게 행동했는지.

이 과정 속에서 재미있는 일도 발생했다. 디워의 영화적 가치에 비신사적이기까지한 독설을 퍼부은 진중권씨는 그 당시 [디워사랑=애국심]이었던 여론의 적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쇠고기 정국 속에서 진중권씨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저 자신의 의견을 여전히 종종 [비신사적으로] 말할 뿐이다. 변한건 여론이다. 지식과 논리만 갖추었을 뿐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교양이 없었던 그의 비신사적 어법은, 지금은 통쾌함을 가져다 주는 어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나도 천민 민주주의 얘기에는 정말 통쾌하긴 했다.ㅎㅎ)

나 또한 쇠고기 사건에서 정부와 보수언론이 백번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 그래도 이런거 저런것들은 여론이 좀 지나친거 아닐까?/과장된거 아닐까? - 라는 발언을 뱉었을때(지금 이 블로그 글처럼), 일부 사람들은 내 논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그 일부의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나의 비뚤어진 인식에 불과했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까. 이번 쇠고기 파동을 예로 들어 말을 했지만, 이러한 우리나라 여론의 경향은 비단 쇠고기 파동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영화속에서, 머로의 선제공격에 대한 답변으로 메카시는 머로가 영국의 한 공산주의자 교수로부터 금서를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머로의 사상에 의심을 제기했는데, 그에 대한 반박에서 머로는 이런 말들을 한다.
He[The professor] was a civilized individual who did not insist upon agreement with his political principles as a pre-condition for conversation or friendship.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I believed years ago and I believe today that mature Americans can engage in conversation and controversy the clash of ideas, with Communists anywhere in the world without becoming contaminated or converted.
물론 모든 미국인들이 저 mature Americans인건 아닐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는 에드워드 머로와 같은 언론인도 있었다. 그리고 머로의 발언이 먹히는 국민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메카시즘 얘기를 떠나서 이 영화에 대한 [인사이더]와 연결된 감상을 말하자면,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메카시가 실제 메카시라는 점이다. 50년대 메카시가 찍힌 영상등을 그대로 영화속에서 사용하였는데, [인사이더]에서 각종 기업의 실명이 거론된거와 더불어, 실제 인물의 부정적인 면모를 이렇게 그대로 영화속에서 사용한다는게 참 놀라웠다. 본인은 죽었고 옛날일인데 뭐 어떠냐 싶을 수도 있지만, 몇년전 우리나라에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실제 영상을 사용하는 것을 가지고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를 생각해보면, [굿 나잇, 앤 굿 럭]도 참 놀라운 영화다.

그 유명한 [표현의 자유]와 그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미국보다 덜 성숙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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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13:40
일요일, 시카고의 Museum of Contemporary Art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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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Balloon Dog (Orange), 199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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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Rabbit, 1986.

처음 봤을때에는 이런 풍선 작품은 어떻게 보관할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터질 위험도 크고 안의 공기도 잘 빠질텐데, 정말 관리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팜플렛을 읽어봤더니 작품의 재질이 알루미늄, 혹은 철이었다. 아주 견고하고 단단한 작품이었고, 그저 표면에 마치 풍선인것처럼 주름을 잡고 투명페인트로 반짝거리는 효과를 만듦으로써 흔히 보아왔던 그 헬륨넣은 놀이공원 풍선인양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알루미늄이라는 설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살펴봐도 여전히 풍선처럼 보여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손으로 만져보면 금방 확인 할 수 있을테지만, 물론 그건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시각적 이미지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 혹은 인상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작가가 이 작품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다른 것이었겠지만, 작품은 나에게 미리 알고 있는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때때로 부정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불편한 진실이 만져서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과 같이 버무려지면서 뭔가 마음 한켠이 근질근질하게 했다. 그리고 그 가려움은 작품 감상의 묘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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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Pink Panther, Porcelain,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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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Koons, Titi, Oil on canvas, 2003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다. Jeff Koons는 이 두 작품처럼, 어린 시절의 동심을 상징하는 것과 성적인 것을 같이 배치해 놓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의 나였다면 핑크팬더와 티티가 먼저 눈에 들어왔겠지만, 지금의 내 눈엔 손으로 가려진 가슴, 혹은 어깨선과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야 핑크팬더와 티티가 눈에 들어온다. 서로 반대쪽 끝에 위치하던 두가지를 섞어놓은 이 작품 또한 뭔가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게 만들긴 하지만, 사실 이제 이런 건 좀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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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on Lockhart, Maja & Elodie, Photographs, 2003

처음 이 두 사진을 보았을때, 한참동안 두 사진이 어떻게 다른가를 찾아보고 있었다. 몇분을 쳐다보며 비교했는데, 차이점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뭐야, 같은 사진 그냥 두 장 인쇄해서 붙여놓은거 아냐? - 라고 투덜거리며 지나치려는 그 순간, 어떻게든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던 내 행동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우리는 (혹은 나는) 비슷한 두 사진을 봤을때 그냥 - 비슷하네 - 혹은 - 같은 사진인가 보네 - 하고 넘기지 않고, 어떻게든 차이점을 찾아내서 비교 분석하려고 하는 걸까. 서로 같은 점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고, 덕분에 그런 방법으로밖에 감상할 줄 모르게 된 것 아닐까. 같은 걸 같다고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내 자신이 갑자기 안타까웠다.

(방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사실 다른 점이 있긴 있었다. 한 사진에서는 엄마로 짐작되는 여자가 퍼즐 조각을 집고만 있고, 다른 사진에서는 그 퍼즐 조각을 약간 집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 올린 파일 상으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실제 전시장의 큰 사진에서는 구분된다고도 했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이런 미세한 차이점을 제외하곤 완전히 동일한 두 사진을 전시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사진을 스쳐지나가며 보는 수동적인 감상이 아닌, 무엇이 다른지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의미는 내가 생각해온 의미와는 매우 상반되는 것인 듯 하다.)


현대 미술을 점점 더 많이 접하면서 느끼는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미술이 미술은 고상하고 수준높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려고 많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숭고하고, 장엄하고, 성스러운 것만이 미술이 아니라, 아주 값싼 대중문화, 키치적인 것들, 외설적인 것들 까지도 다 미술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의 의도 중 하나는 귀족들의 전유물이기만 했던 미술을 수많은 대중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던데, 그 목적이 과연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시도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미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술가들이 하는 미술, 혹은 우리가 미술관에서 만나는 미술로 범위를 국한시켜 얘기한다면, 그 존경받던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미술이 오히려 대중과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미술이 이젠 [나도 저런거 충분히 만들 수 있다]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어지고, 덕분에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고, 결국 더욱더 그들만을 위한 미술이 되어버린게 아닐까. 우러러볼 미술이 사라진 지금 일반 대중과 미술가 모두가 우왕자왕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우상을 잃어버린건, 비단 미술영역 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람을 마치고, 시카고 Water Tower 옆의 벤치에 앉아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벤치 앞에는 사람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도시의 비둘기답게, 어떤 비둘기 한마리가 바닥에 들러붙은 껌을 쪼아먹고 있었다. 그 비둘기에 대한 감상으로부터 우연찮게 내 옆에 앉아있던 어떤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비둘기들이 너무 비위생적이라는 불평부터 시작해서, 시카고 도심에서 박쥐도 보인다는 얘기로 넘어갔다가, 종교, 영성(靈性), 결국엔 작년에 발간된 어떤 한 책의 아인슈타인에 대한 글귀까지로 대화가 흘렀다. 시간이 되어 그 아주머니와 서로 가볍게 인사하며 헤어진 후엔, 한 한국인 관광객 커플이 내 옆옆에 앉아있던 백인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을 마음에 안들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라고 말했더니, 두 분은 나를 매우 반가워하며 영어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주문들 - 허리 위로만 나오게 해서 뒤에 있는 건물까지 사진에 다 보이게 이렇게 저렇게 찍어주세요 - 을 쏟아냈다. 고맙게도, 두 분 다 내가 찍은 사진에 많이 만족해 하셨고, 서로 손을 꼭 잡고는 걸어가셨다. 잠깐의 만남, 잠깐의 대화들이었지만,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 이런게 여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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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 2008/07/16 06: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카고 여행을 앞두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제목만 보고 들어왔는데 너무 좋은 글이네요:)
현대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아직도 이해하기 난해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덕분에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
유또피아 | 2008/07/31 20: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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