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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8. 00:50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 미생 82수

오랜만의 긴 한국에서의 여름, 그동안 못만났던 많은 사람을 만났다. 4년전엔 그 친구 눈에 나는 분명 반짝거리는 아이였는데, 이번 만남에서는 잔뜩 때가 낀 녀석일 뿐이었던 것 같다. 6년만에 만난 어떤 친구는 그 사이에 겪은 경험들, 생각들이 너무나 감탄스러운 멋진 청년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멋진 녀석과 친구라는 사실이 좋기도 했지만, 왠지모를 그 묘한 기분이란. 2년만에 만난 은사님은 내게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거듭하셨다. 이미 주어진 것들만 해도 너무나도 풍요로운 것이라고..

인생의 단계마다 나름의 결심이 있었다. 수도권의 사교육에 공포감을 느꼈던 고등학교 입학때에는 '서울애들 보란듯이 이겨보자' 정도였던것 같고, 유학이라는 거대담론 앞에서 숨을 고르던 대학 입학때에는 '뭐든지 가능한 대학시기 알차게 보내자'였다. 군 입대 때에는 거창한 출사표인양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사기 이사열전의 말을 인용했었고, 복학시기엔 '대학교 1,2학년때의 후회/아쉬움을 되풀이 하지 말자' 정도의 결심을 했다. 돌이켜보면 어처구니 없는 걱정이었던 것도 있고 민망한 과대포장도 있지만, 결국은 그 시기 나의 화두를 담은 결심들이었을 것이다.  


이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매진과 여유는 언뜻 보면 서로 반의어 같지만, 분명 그 둘의 교집합이 존재한다. 열심이지만 그 이유가 집착이나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라면, 마음의 넉넉함이 알뜰한 시간관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게 바로 그 교집합을 찾은것 아닐까. 쉴 땐 친구와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술한잔도 하면서 지낼테지만, 제대로 쉬지도 않고 멍하니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이나 쳐다보고 있는 시간은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놀거리마저도 없는 시간엔, 책을 펼치자. 그 책이 내 놀거리가 될 때 까지. 그게 내 박사과정에 대한 기억이 될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