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29)
잡담 (46)
일상 (15)
생각 (11)
(20)
전시 (15)
영화 (4)
CF (9)
연극 (6)
공연 (2)
음악 (1)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1. 12. 3. 17:25

금요일 밤, 놀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고, 졸립긴 하고 - 푹 자고 일어나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10시에 잠에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왠걸, 새벽 2시다. 너무 불규칙적으로 살아서 몸이 이 시간을 낮잠으로 생각한 걸까. 허탈한 마음에 책상에 앉았다.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로 일주일정도 마음을 잘 못잡았다. 옛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처럼 반가웠지만, 덕분에 현실을 잃고 과거 속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한가지 생각했던건, 내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도 그 추억이 스스로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서로가 같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 추억이 바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 속에 자리잡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래도 결국은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언제나 돌아가면 집에 온 것만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는 그들 - 기억할만한 기억을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맙다.

복학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은 건, 쓸 거리도 쓰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였다. 군대에서의 경험덕인지 예민했던 내 감수성이 많이 가라앉았고, 그런 마음상태가 너무 좋았다. 똑같이 큰 돌이 날라와도 이제는 고요하게만 일렁이는 감정들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는데 - 이제와 느끼는 건 그저 진폭을 삼킨 것일 뿐, 다 어른인 척 굴었을 뿐이라는 거다. 개뿔. 결국은 너나 나나 다 그대로인데, 연기가 늘었을 뿐인거야. 물론 그런게 어른인 거겠지만. 출사표 마냥 던졌던 입대 전 다짐들도 현실 속에서 많이 희석되었는데, 그래도 내 가슴속 어딘가에 남아서 나란 사람의 채도를 변하게 했을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성장해 가는 걸테니까. 그래, ㅎㅎ 군대 안갔다온 애기들이 뭘 알겠니ㅎㅎ - 그리고 나는 뭘 쥐뿔이나 알겠니ㅎㅎ

이제 남은건 시험 둘과 페이퍼 둘. 이제까지 중에서 최악의 학점이 기대되는 와중에 (복학의 여파라기 보다는 골랐던 수업들이 어려운 것들이라서라고 믿고 싶은...) 마지막 최선을 다해봐야지..?

2011. 8. 17. 02:16

2009. 09. 14 ~ 2011. 07. 10

하나. 서론
전역하면 꼭 군 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무 기간 동안 새로운 경험이나 느낌을 받을때면 그 내용을 꼭 머리 속에, 그리고 수첩 속에 갈무리 하곤 했다.


둘. 군생활은 정말 잃어버린 시간일까?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전역했다. 결국은 나도 저러한 접두어를 쓰며 제대를 묘사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년이 온전한 낭비와 잃어버린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으로써의 2년에 걸맞는 생산성을 지닌 시기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군생활 후반부쯤부터 미필인 사람들에게 여러번 말하곤 했다. - 군대, 와서 배우는 것도 많으니까 굳이 억지로 안올 것 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합법적인 절차로 안올 수 있다면 안오는 것이 낫다고.

회한스럽게 시작했지만 ㅎㅎ 물론 말했던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군생활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남은 평생 겪을 조직생활을 2년이란 기간에 압축해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고와 유학생이라는 지엽적인 경로로 살아왔던 입대 전 5년 가량의 시간동안 잊었던 보통다수의 삶에 대해 다시금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 아부지와의 절대적 공감대가 하나 더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제일 반가웠다.


셋. 천안함과 연평도.
내가 직접적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것은 분명 남다른 경험이었다. 천안함때 느꼈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나 내 속이 상하던지, 답답한 현실은 눈물을 흘리기에도 부끄러웠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다.

특히나 연이어 벌어지는 논란에 속터지게 답답했다. 그 어느 증거와 정황을 떠나서, 우리나라 해역에서 우리 함정이 두 동강 났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느 정황도 100% 확실하게 북한의 소행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원인이라는 증거도 명백하지 않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실제로 정부의 조사 결과와 발표가 틀렸다고 할지라도 그 것이 북한의 공격이라고 결론지은 정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틀림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것이었다면 나도 경악하겠지만, 나는 다시금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또 속겠다. 0.01%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하며 우리나라 정부를 불신하며 살 수는 없다. 첨언하자면, 한편으론 그런 음모론적 의견도 마음껏 개진하는 모습을 보며 기쁘기도 했다 - 이정도까지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구나! - 하지만 0.01%의 가능성이라면 국민의 0.01% 정도가 그런 의견을 개진하는 게 표현의 자유지 그의 천배 만배 되는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전투 중에 전사한 해병대 장병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저런 논란 때문에 연평도 포격은 사실 전화위복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로 아무도 이제 북한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직접 겪지 못했기에 과거의 군사정권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현재의 10대, 20대들이 오히려 30대보다 더 투철한 안보의식 - 혹은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 - 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 세대의 구성원이고.

훈련소에서 '진군가'라는 군가를 처음 배웠을 때 그 가사 - 백두산 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 에 조금 놀랐었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 '밀고 나가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 훈련소에선 그렇게 민감하게 다가왔는데, 군생활 하면서 내가 쇄뇌당한걸까? 지금 보기엔 당연한 가사인 것만 같다. 어찌됬든 총칼을 겨누고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주민은 아닐지 몰라도 엄연히 북한이라는 국가는 우리의 적이다. 맞다. 둘 다 총을 내려놓고 얼싸안으면 조국의 통일이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결국은 모두가 최고의 이익을 얻는 게임이론적 평화를 주장하기엔 내 목숨은 한 개 뿐이고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총을 내려놓진 못하겠다.


넷. 군생활은 힘들다. 
나의 군생활은 밖에 나와서 자랑할만큼 대단하거나 힘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디가서 부끄러워할만큼 시시하거나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어찌됬든 군생활은 힘든 것이다. 해병대건 행정병이건, 전방이건 후방이건, 육군이건 카츄사건, 현역이건 산업체건, 군생활은 힘들다. 결국 힘든 건 노동의 강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의 정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복무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국가제도의 폭력적 강제성에 휘둘려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 아무리 할만한 일과 훈련이더라도 진절머리나는 가혹행위가 되고 만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마취제 덕에 그 사실을 잊고 2년간의 군생활을 버티어 내지만, 그래도 한번씩 마취가 풀릴때면 분통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유난히 사소한 의미에 민감하고 섬세한 면이 있다.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첫 날, 밤 늦게 농협을 갔다. 밤 10시에, 반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고, 집 밖으로, 어머니와 함께, 나서는 순간 - 눈물이 날 뻔 했다. 아, 나 이제 진짜 전역했구나. 이제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 박탈된 자유의 복권. 저 지극히도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하다못해 채식홍보 켐페인단의 서명부탁도 거절했던 나였는데, 이제 지하철 역에서 국제 앰네스티 활동에 서명을 추가할 수 있는 어엿한 민간인이 된 것이다. 개인이 아닌 부분이 되어 스스로의 (이른바) 정치적 정체성을 잃고 복무했을 전의경들이 특히 저런 부분에선 전역후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다섯. 어머니
아무리 군대가 편해지고 짧아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군대라는 곳은 남자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직접 겪어서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아버지보다, 부풀고 과장된 소문들로만 군대를 접한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입대가 그리도 무거운 일인가 보다. 훈련소 바리케이트 너머로 내 손을 끝끝내 놓치 못하시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첫 휴가때 터미널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시던 어머니의 눈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정녕 누군가에게 이리도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 손길과 눈빛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섯. 돌이켜보면.
전역한 지금에 이르러선 대학교를 1년만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게 아쉽다. 어짜피 할 거라면, 가능한한 빨리 할걸.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데, 군복무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이 날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원죄같은 걸지도 모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어짜피 받을 벌이라면 빨리 받는 게 좋다. 자랑스런 국방의 의무를 죄에 비유하다니 국방부와 기무사에서 이 글을 보면 천인공노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꺼야? 난 이제 민간인인데.


일곱. 결론
어쨌든 군생활이라는게 이 글의 제목처럼 반점하나 찍고 숨 한번 돌리지 않고서는 말 할 수 없는 경험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내 가장 최근 2년이니까 별 수 없겠지. 그것이 허송세월이었을지 알찬 시간이었을지 군생활의 의미에 관한 길고 긴 탐색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 어떻게 보낸 시간인들, 20대에 의미없는 2년이 어딨겠는가? 

각설하고 지금까지의 글이 너무 길었다면 이 한 문장만 읽으면 된다.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윤종민이에요~
그리고 이 글의 독자 중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복무 해결에 대해 고민중인 군미필자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생각하지마. 그냥 지금 입대해. 그것이 정답.





그리고 나의 군생활을 위로해준 문화적 존재들에 대한 내맘대로 Top List.

1. 최고의 작가 : 김훈
칼의 노래, 남한산성도 좋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도적이었던건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중편 [화장]. 살을 에는 잔혹함에 그가 괜히 손꼽히는 작가인게 아니구나 싶었다. 마찬가지로 박완서님도 경탄스러웠고.

2. 최고의 단편 : 구효서, [밤이 지나다] - 2004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객관적 탁월성은 [화장]이었다면 나의 주관적 최고작은 이 단편이었다. 서정적 아름다움과 공허함, 욕망, 혼란. 그냥 읽어봐ㅎㅎ 그 외엔 신경숙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권지예 [꽃게 무덤], 이혜경 [그리고 축제]

3. 최고의 책 :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는 정말 압도적 영웅이었다.

4. 최고로 힘들었던 책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300쪽이 넘는 책을 감히 영어로 읽겠다고 덤비다니. 결국 다 읽었지만 정신력 소모도 컸다 ^^

5. 최고의 가수 : f(x)
NU ABO부터 좋았다. 그냥 '꿍디꿍디'에 팍 꽂혔고 피노키오에서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징징윙윙'이라고 노래불러 주었다. 포스트모던한 가사와 멜로디의 선구자!

6. 최고의 노래 : SanE, LoveSick
봄날의 감성힙합. 들을 때마다 첫사랑이 생각나던 노래. 아쉽게 2위한 노래는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

7. 최고의 드라마 : 로열 패밀리
따로 쓴 리뷰를 참조하세요~

8. 최고의 여배우 : 김태희
아이리스도 재밌긴 했지만 군인에게 최고는 역시 마이 프린세스였다. 발랄한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신세계(?!)를 나에게 열어주었다. 십몇화가 넘어가면서 드라마 내용이 산으로 갈때마다 그만 볼까 싶다가도 그냥 태희누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소름끼치게 이쁘다. 태희누나 사랑해요 히히

9. 최고의 광고 : 두산, 서점편
한번씩 나 자신이 의심스러울때면 생각날 것 같다. 볼때마다 울컥울컥했던 광고. 다음에 따로 올리겠다.
2011. 7. 1. 10:37
토이 스토리 Toy Story
존 라세터, 리 언크리치, 앤드류 스탠튼 John Lasseter, Lee Unkrich, Andrew Stanton
우디(톰 행크스), 버즈(팀 알렌), 제시(조안 쿠삭)


1. 픽사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올때마다 제작사가 드림웍스인지 픽사인지 늘 헷갈려했던 나에게 확실하게 픽사를 각인 시킨 영화는 [월-E]였다. 그래도 비교적 좀 더 어릴때 봤던 [니모를 찾아서], 케이블 채널에서 언뜻언뜻 비추던 [인크레더블], [업] 등을 통해서는 그저 - 컴퓨터 애니메이션 대표회사구나 -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월-E]는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최첨단의 기술과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만남. [슈렉]으로 대표되는 드림웍스의 파격적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선을 그으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픽사의 첫 작품이 바로 [토이 스토리]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고 늘 소개되기 때문에 내가 과소평가했던 걸까. [월-E] 이후 늘 픽사의 신작에 귀 기울였는데, 그런 와중에 전작들인 1, 2편에 대한 특별한 감흥없이 [토이 스토리 3]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E]에 대한 평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가 - 픽사는 다시 한번 최신 작품이 그들의 최고 작품임을 증명했다. -  였는데, 이번에도 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한 평론가들의 반응이었다. 어른도 울 수 밖에 없다는 소개글들에 너무나도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토이 스토리 3]이 극장에 걸려있을 때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2. 토이 스토리
어릴 적 한번쯤은 봤던 영화지만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의 생김새 정도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기에, 3편을 보기 전 명작에 대한 예의(^^)삼아 1, 2편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각각 95년, 99년 개봉했던 두 전작들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20대 중반의 청년이 봐도 숨막히게 긴장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나 1편 시작에서 장난감 병정들의 '정찰' 장면에선 그냥 탄성이 쩍쩍 튀어나왔다. 2편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가상) NG컷 모음 또한 재기발랄했다. 그 넘치는 재치와 위트, 아이디어, 유머감각.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전개와 유머장치들을 보며 나는 왜 애니메이션이 그저 아동용인게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 영화 장르로써 인정받는지 그 존재의미와 매력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장면 장면마다의 재치와 더불어, 스토리라인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이 있다. 1편에서 새로 나타난 장난감(버즈-우주전사)에게 앤디(장난감주인)의 사랑을 뺐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우디(카우보이)의 모습은 사랑받는 입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소년층에게는 새로 태어난 동생만 챙기는 부모님을 보며, 그리고 부모세대에겐 아빠랑 결혼할거라던 어린 딸이 커서 남자친구를 사귈때 느끼는 섭섭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새 학년이 되면 새로 만난 급우들에게 내 친한 친구를 뺏길까 걱정했던 경험도 한 두 번 쯤은 다 있을 것이다. 나는 구닥다리 카우보이인데, 사랑을 뺏기는 대상이 하필 우주전사라는 것도 가슴아픈 대조였다. 열등감과 조바심, 질투가 버무려진 그 묘한 감정을 어떤 거부감이나 외면하고 싶은 느낌없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장난감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버디영화적 전개 끝에 앤디가 사실은 우디와 버즈 둘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1편은 끝이 나는데, 이를 통해서 미래의 꿈나무들은 세상속에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힌트를 약간이나마 얻었을 것이다.

버즈의 캐릭터 또한 가슴아프다. 버즈가 TV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장면에선 정말 울 뻔 했다. 우주전사답게 독불장군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스스로가 우주전사가 아닌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심하는 버즈. 하지만 결국 우디와 다른 장난감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 다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여느 인간의 성장담과 다름없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유년기의 기억.

2편과 3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2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3편에서 결정판을 찍는 주제는 극 중 제시의 대사처럼 - 앤디가 대학에 가고 신혼여행 갈 때도 널 데려갈 것 같아? - 언젠가는 잊혀지고 버려질 운명에 대한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뒤틀린 결론을 엊고 삐뚤어진 캐릭터들이 만화적 상상력과 전개 속에서 갱생하거나 징벌받고, 꿋꿋이 앤디에 대한 사랑[혹은 충성]을 견지하는 우디와 친구들은 [프리즌 브레이크]에 버금가는 모험 끝에 행복을 맞이한다. 3편의 마지막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앤디의 텅 빈 방을 보며 앤디의 엄마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울먹이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앤디. 결국 사랑하는게 사랑 받는 것이다. 정작 사랑을 준 건 앤디였고 받은 건 우디와 친구들이었음에도 마치 앤디를 보살펴야 할 보호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장난감들의 모습은, 우리네 부모님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에 대한 통쾌하면서도 가슴아픈 아날로지다. '성인의 외모'를 지녔지만 정체성은 '장난감'인 우디의 아이러니적 상징은 그 어떤 명배우의 명연기보다도 더 찌릿찌릿했다. 

끝끝내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결국 장난감과 헤어지는 앤디. 마지막으로 장난감과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았던 것은 유년기의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잊을 건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당연한거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디와 친구들은 아마 앤디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앤디를 향한 그들의 사랑은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맞이하는 앤디에게 가슴 한 켠 속 든든한 고향이 되어줄 것이다.


3. 다시 픽사.
[월-E]에서도 확인했지만 픽사의 이야기는 무척 고전적이다. 흑백 무성영화나 50년대 할리우드 명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전개는 그들의 영화가 최첨단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오랜시간 사랑받는 원동력일 것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역할극 정도로도 스펙타클한 화면자랑은 충분하다. 최신 기술이라는 시제적 표현부터가 일단 그것의 일시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두고두고 사랑받는 캐릭터와 영화를 만들어내려면 시대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이를 멋지게 달성했다. 20세기에 디즈니가 그랬던 것처럼, 픽사는 21세기의 안데르센이요, 그림형제요, 이솝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처음이 [토이 스토리]였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