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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에 해당되는 글 1건
2012. 7. 27. 15:07

내가 다니는 학교의 10가지 졸업요건 중에는 수영시험이 있다. 수영장에 점프해서 입수한 후, 25야드 레인을 한번은 엎어져서, 한번은 뒤집어서, 그리고 아무 자세로나 한번 더 수영하면 되는 시험인데, 제대로된 자세일 필요없이 개헤엄이든 어떤 자세든 그저 가기만 하면 되는, 시간제한도 없는 시험이다. 처음 코넬을 가기로 결정하고 이 수영시험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엔 (무늬만) 서울대 학생이었는데, 잠시 포스코 센터 수영 수업을 들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마냥 노느라 정신없던 시기라 고민만 하다 말았고, 결국 코넬 입학 후 주변 친구들 모두 수영시험치러 갈 때 난 멍하니 방에 있었던 것 같다.  

20살 그 때까지 나는 수영할 줄 모르는게 그렇게 이상한 건지 몰랐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평생 수영장을 단 한번 갔었더란다 - 아마 초등학생때 였던거 같은데, 엄청 추워했던 기억, 그리고 거울 속 새파란 내 입술을 아주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우리 가족이 피서를 그렇게 많이 가는 편조차 아니었고, 모두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해수욕도 몇번 못해봤다. 말 그대로 '수영'이란 것을 접해본 적 조차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수영에 대해 크게 얘기를 나눌 일도 없었고, 취미생활로 수영을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기 (혹은 학창시절엔 다들 운동취미같은 사치를 부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걸, 미국에선 수영을 할줄 모른다니까 마치 나를 걸을 줄 모르는 사람 취급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단 신기했다. 한국 친구들은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녔다면서 어떻게 수영할 줄 모르냐며 핀잔이었고, 백인애들은 '아.. 그으래..?' 하며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2007년 가을, 대학 첫 학기에 초급 수영 수업을 들었다. 다른 강의들 중간에 끼어있는 수영 수업은 너무나도 귀찮았고 (수업 전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업 후엔 샤워를 해야하고..), 수영 후의 강의시간엔 깨어 있었던 적이 더 적었던거 같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수업 참여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평생 물에 떠보려고 한 적 조차 없는 사람이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 10주 했다고 해서 수영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가 없는 거였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친구들도 힘들텐데, 뛰어나기는 커녕 평범한 수준도 못되는 나로써는 택도 없었다. 수업을 듣고 수영 시험을 통과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멋지고 부러워 보이던지....

시험 통과를 못해도 수영 수업을 들으면 그 졸업요건을 만족시켜 줄 만도 하건만, 그런건 얄짤 없었다. 난 초급수업에서도 늘 가장 못하는 축에 속하는 나 자신을 보며 과연 수영시험을 언젠가라도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땐 1학년이었으니까 그냥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2학년도 지나고, 군대를 갔다왔다. 복학 후 어쩌다 동생들이랑 (복학한지라 다들 동생들이니까..) 수영 얘기가 나오면 아직도 통과 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이 은근히 뭔가 부끄럽더라.. 그치만 운동과 관련된 건 모조리 다 자신이 없는 터라 - 과연 연습한다고 내가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을까 - 라고 생각했기에 수업을 다시 들을 생각은 없었다. 덧붙여 앞서 말했던 대로 학기 중에 수영 수업을 듣는다는 건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해결책은 편법 뿐이었다.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을 외모로는 잘 구분해내지 못하고, 더군다나 시험중에 학생증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수영을 못하는 친구들은 할 줄 아는 친구에게 대신 시험을 쳐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악의 경우엔 나도 그렇게 해야겠지...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그러던 마침, 이번 여름을 학교에 남아 있기로 마음 먹으면서, 한번 더 수영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방학중이라 비교적 덜 귀찮을테고, 또 '수업'이 주는 강제성 덕분에 방학중에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한번 더 들으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그래도 나는 안될것 같다는 자기부정을 동시에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알고 봤더니, 수업을 두 번 들으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도 졸업요건충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험을 통과하든 못하든 어찌됬든 나는 편법이 아닌 떳떳한 방법으로 졸업요건을 채운 것이 되니까, 그걸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5주 동안 화수목, 4시부터 5시 반까지의 수업이었다. 그래도 한번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초급 수업 내에서 그나마 잘하는 편에 낄 수 있었다. 운동도 많이 되고, 조금씩 조금씩 실력이 느는게 느껴지면서 재미도 느꼈다. 2주차 쯤이 끝났을 때, 5년 전 수업을 다 듣고 난 직후 정도의 수준으로 회복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진짜 연습 시작이겠지 - 한번씩 유튜브에서 수영강습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기 전 침대에 누으면 수영 자세들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잠들고 그랬다. 하하. 게다가 수영장 개방 시간에 찾아가서 혼자 따로 연습까지 하고 했는데, 이게 왠걸, 도무지 늘지 않았다. 물흐르듯 부드럽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부드럽지 않으니까.. 별다른 진전 없이 3주차, 4주차가 끝났고, 이번에도 이렇게 통과 못하고 수업을 마치나... 생각했다. 괜시리 안풀리는 다른 일들까지 함께 뭉쳐서 역시 나는 안되는 건가하는 말못할 패배감에 짜증스러웠다.

이번 화요일 수업이 끝나고, 한번 현실적으로 생각해봤다. 수업은 세번 더 남았는데, 그 사이에 실력이 충분히 늘 것 같진 않고, 하지만 느리게라도 늘고 있는 건 느껴지니까 조급해 하지 말자. 개학할때까지 아직 삼사주 더 남았고 그럼 수업 끝나도 꾸준히 와서 연습하다가 개학 직전 시험을 치면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운동을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지만 이렇게까지 하고도 수영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건 자존심에 상처이기도 했고, 덧붙여 그나마 요즘 생활에서 수영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도 계속 수영을 하고싶어 하게끔 했다. 학교에서 하고 있는 연구참여가 잘 풀리지 않는 덕에 현재는 답답하기만 했고, 게다가 다가올 가을학기의 숨가쁨과 대학원 지원의 부담감까지 컸던지라 눈 앞에 육체적 목적을 하나 만들어 놓으니 무언가 현실도피적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먹고, 수요일 수업을 치르고,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오늘 아침엔 연구실에 일찍 가야할 일이 있어 평소보다 많이 못자고 일어났는데, 감기에 걸린 건지 그저 비염이 잠깐 심해진건지 하루종일 재채기에 눈물 콧물만 잔뜩이었다. 그렇게 수영 수업시간쯤 되자 너무 피곤했다. 어짜피 오늘도 안될텐데, 그냥 집에 갈까. 어짜피 삼주 더 연습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 싶었지만, 수영장에 콧물 다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연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 수영 수업을 향했다. 얕은 물에서 한시간 정도 계속 연습하다가, 수영 선생님이 깊은 물에 점프해서 들어가는 연습이라도 하자며 깊은 풀로 이끌었다. 무서움은 이제 많이 없어져서 난 쉽게 점프했고, 그 모습을 보고는 선생님이 점프 후 자연스럽게 수영 자세로 이어지는 연습을 하자며 한 5미터 정도만 수영해서 앞으로 나아가서 멈춰 보라고 했다. 다시금 물에 풍덩 빠졌고, 수영하기 시작했는데, 한번 갈만큼 가보자 하는 생각에 계속 나아갔다. 죽죽 죽죽 - 아 이제 더 못하겠다 싶어서 덱을 잡고 물에서 나왔을 때, 눈 앞엔 5미터도 남아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보라고,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나가면 해내는 건데 왜 멈췄냐면서, 한번 더 해보자고 하셨다. 화요일 수요일 수업때 한명 씩 이미 시험을 통과한터라 걔네들이 무지하게 부러웠는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도 해볼만 할 것 같았다. 숨을 고르며 잠시 쉬는데, 한 시간이 넘는 연습에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서 과연 할 수 있을까, 자유형으로 한 레인 했다고 해도 두 레인을 더 수영해야 되는데 이렇게 지쳐서 과연 가능할까 또 한번 나를 의심했다. 에잇, 뭐 안되면 멈추고 한번 더 남은 마지막 수업시간에 하면 되지, 오늘 이정도 한거 보면 적어도 화요일엔 눈 딱 감고 하면 통과하겠네 - 라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통과했다. 세 레인을 마치고 났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온 몸은 녹초가 되고 다리가 풀려서 그냥 털썩 수영장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결국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은 정말 짜릿짜릿했다. 같이 수업듣는 친구들 모두 축하한다며 하이파이브를 날렸고, 고맙다고, 웃으며 받아쳤다. 수영 후 샤워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지쳤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결국 해냈구나! 결국! 결국! 결국! 별로 늘지 않는다고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 했으며, 감기기운에 수영장을 안갔으면 어떡할 뻔 했으며, 지쳤다고 한번 더 시도해보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 했는가! 그래도 이번 여름, 여러가지 성취하고 해내는구나 싶어서 너무 뿌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마지막 레인에서 나는 다 도착한 줄 알고 (배영이라 얼마나 갔는지 제대로 안보였다) 멈춰 섰는데, 한 50센티? 정도 덜 도착한 상태에서 내가 일어선거였다. 한번만 더 팔을 저으면 닿는 거리였고, 아무리 지쳐있었다지만 한번 더 저을 수 있는 정도는 됬었기에, 그리고 수영 선생님도 그정도면 됬다고 해서 시험은 합격한 거였지만, 뭔가 마음이 사실 좀 찜찜했다. 남들에겐 가볍게 그냥 치면 되는 시험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로써는 너무나 큰 목표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결벽스럽게 달성하고 싶었던 걸까. 괜시리 찜찜한 기분에 다음 화요일 마지막 수업에 다시 시험을 쳐서 제대로 채울까, 아냐 또 한번 더 하기엔 너무 힘들었어 -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계속 마음이 불편한가보다, 싶었는데, 사실 시간이 좀더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이 묘한 기분은 그것 때문만은 아닌거 같다.


현재의 답답함과 미래의 숨가쁨과 부담감. 눈 앞에 단기간의 작은 목표를 세워서 그걸 바라보며 저 거대담론들을 잊고 도피하려고 했나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막상 생각보다 그 작은 목표를 빨리 달성하니까 기분이 불안한거다. 이제 뭘 붙잡고 버티지. 뭘 생각하며 저것들을 잊지.  

며칠 전 힐링캠프에선 안철수 교수가  안랩 초기시절의 일화를 말했다. 단 몇십원 정산이 맞지 않아 야근하며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순간 내 동기들은 지금 의대 교수하면서 인정받고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단다. 그 생각에 와르르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는데 사흘이 걸렸다고 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상병이 되고 몇개월 후였나, 어느 한 날 동시에 고등학교 동기는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교 동기는 하버드와 예일 로스쿨이 붙어서 고민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썩어가고 있는데 저들은 저렇게 성취하며 나아가고 있구나 - 현실에 대한 짜증과 답답함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그 슬럼프에서 벗어나오는데 나도 사나흘 정도 걸렸다. 다만 사나흘만에라도 그 함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건, 중요한 건 나 자신이지 남과의 비교가 아니고, 나는 내 갈 길을 잘 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면 지금 저들의 저런 소식에 내가 이렇게 속상해할리 없으니까, 결국 중요한건 얼마만큼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느냐 인거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얼마나 성실히 걸어가고 있는가 -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비로소 슬럼프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며 괜히 스스로 많이 성숙했구나 싶어서 뿌듯해 했던 것 같다.ㅎㅎ

어떻게 보면 저 비슷한 슬럼프를 사나흘이 아니라 이번 방학 내내 앓아왔던것 같다. 이번엔 비교대상이 남이 아니라 내가 그렸던 허영스런 내 미래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헤어나오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나보다. 안철수 교수는 그런 슬럼프를 다시는 겪지 않기위해 크지 않은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성취감에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지금 나에겐 수영이 그런 작은 목표였는데, 이제 끝났다. 그런데 그 성취감에 취해 있기에는, 작은 장애물로 어설프게 가렸던 압도적 현실이 다시 보이니까 두렵고 막막한거다. 

하지만, 언젠간 맞닥뜨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루지 못 할 것만 같았던 수영시험마저 합격한(!!^^) 자신감으로 한층 더 무장했다. 작은 목표의 성취감이라는건 그 자체로써 보상이라기 보단 미래를 향한 벽돌같은 건가보다. 작은 벽돌들을 많이많이 모아야 집을 지을 수 있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스무살 무렵,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항상 뭔가 대단한걸 이뤘던 적이 있는 것처럼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 목표만 맹목적으로 보고 가는건 좋은 것만이 아냐, 막상 그 목표에 도달하면 내가 왜 이걸 이루고 싶어했는지, 여기에 도착해서 뭘 하고 싶어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 그때 느끼는 허무함과 막막함이 오히려 더 힘든거 같애.. - 저런 염세적 생각에서 제대로 빠져나온건 군대를 갔다온 스물네살이 되어서였다. 아니, 다 정리됬다기 보단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됬다고나 할까. 그 허무와 막막을 겁내며 목표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 하는 건 그 목표를 마치 인생의 최종 도착지인양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목표들은 사실 인생의 중간과정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러면서도 무의미하고 불가치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중간걸음 하나하나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다 보면, 아쉬울 순 있어도 후회는 없을 최종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계단 오른 기쁨과 다음 계단을 바라보는 기대감을 늘 함께 가진다면,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그저 몇 개의 계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나아가는 한걸음 한걸음은 설레면서도 담담하고, 무겁지만 가볍고, 겁이 나지만 여유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엔 사나흘이 아니라 서너시간만에 슬럼프를 딛고 나온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헤헤. 그나저나 나도 참, ㅎㅎ '고작' 수영시험 하나로 생각이 이리도 많다 ㅋㅋ 쓸데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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