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야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중략)...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중략)...
한恨의 정서라고나 할까. 올림픽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 (혹은 동양) 선수들과 서양 선수들의 정서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보인다. 금메달을 따거나, 안타깝게 은메달에 그치거나 하는 두 경우 모두에 우리네 선수들은 무릎꿇고 주저 앉아 울부짖지만, 서양 선수들은 폴짝 폴짝 뛰며 웃으며 즐거워하거나, 에이, 하고 가볍게 아쉬워할 뿐이다.
결승전 패배, 은메달에 미친듯이 울부짖고 아쉬워하는 왕기춘도 그 근성과 욕심에 멋있긴 하지만,
최민호에게 한판패 당하고도 먼저 다가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부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오스트리아의 파이셔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는 왠지 그가 - 나는 할만큼 했고, 그런 나를 넌 이겼다. 짜슥, 인정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 라고 생각하며 씨익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올림픽 금메달 은메달을 가르는 패배였지만, 그날밤 생맥주 한잔하며 - 에이씨, 아쉽네. 쩝. 담엔 이겨주마 - 정도로 그냥 한번 웃으면 털어버릴 수 있는 패배에 불과하게 여길 것만 같았다. 그 여유. 그 담담함.
그정도 여유는 갖추어야, 자기 인생에서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