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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16. 09:33
[연극]
연극 39계단
2008. 8. 21. 목요일 밤 7시 39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래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토니상 노미네이트와 히치콕 원작의 영화라는 배경을 보고 그냥 보기로 결정했다. 19일이 초연이었으니 거의 처음에 연극을 본 셈이다. 점심먹고 매그넘 코리아 전에 갔던 친구와는 기분좋게 헤어진 후, 다른 친구를 만나 극장으로 향했다.
원작 소설이 있고, 히치콕이 1935년에 영화화한 작품이 있다. 물론 그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인터넷에서 살짝 찾아봤더니 히치콕이 영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엉겹걸에 큰 사건에 휘말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이야기인데,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바로 연극을 봐서 미리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히치콕적인 줄거리에 히치콕적인 장치들로 가득한 연극이였다. 50년대 흑백영화같은 느낌이 팍팍 묻어나는.
영화라는 장르와 연극이라는 장르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배경장소 변경에 관한 점이다. 영화는 자유롭게 장면 전환과 위치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한히 많은 배경장소가 등장하는 반면, 연극은 정해진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장소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거나, 혹은 거대한 세트를 동원한다 해도 고작 장소변경은 2-3번에 불과하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의 연극화는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나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와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 해도 지금은 전세계인이 다 아는 줄거리 구조, 기승전결의 방식, 유머와 스릴 유도의 장치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연극으로 잘 번안한다 해도 지루하기 쉽다. 그렇다면, 영화 원작을 연극으로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울 뿐더러, 특히 장소변경의 제한이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매우 치명적이고, 마지막으로 어찌어찌 잘 번안한다 해도 이젠 히치콕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진부하다. 그럼 도대체 이 연극에서 우리는 뭘 얻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연극에서는 모든 것이 관객들과 함께 숨쉬며 일어난다. 그리고 무대공간의 한계 덕분에 인정되는 배우와 제작자, 관객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그리고 이 연극 39계단은 그 약속이 연극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닌, 연극을 더욱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그 수많은 장면전환이 아주 간단한 소품과 동작으로 소개되는데, 별것도 아닌 방법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객(즉, 나 자신)이 참 신기하면서도, 어떻게든 그런점들을 감추려고 애쓰는 일반적인 공연들과는 달리 대놓고 그런 점들을 이용하는 이 연극은 참 즐겁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기차를 타는 장면에서는 기차 모형조차도 준비되있지 않은 무대에서 주인공이 [그럼 나는 이만 기차에 타야겠소] 정도의 대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흉내를 낸 다음 긴 의자위에 앉음으로써 기차에 탔다고 관객들에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영국 전역을 기차가 이동하는 것은 뒤 배경에 역 표지판이 지나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말하자면 무대와 주인공이 앉은 의자는 정지해있는데, 그 뒤로 대전 표지판, 대구 표지판이 지나고 부산 표지판이 등장하면 부산에 도착했다는 식이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집에 들어간거고 잠깐 둘러보며 집주인과 얘기하다가 방금 들어갔던 그 문을 다시 나오면 이젠 집 안의 방 안으로 들어간거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이해해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한 두번이면 그냥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점들을 관객들이 매우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불필요한 장면이지만 의도적으로 집 안에서 대여섯번에 걸쳐서 방안의 방안의 방안의 방들에 들어가는 장면을 넣어 놓고서는, 그 문짝 하나만 계속 들락날락 하고 있는 거다. 관객들은 첨엔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다가도 일부러 저런다는걸 곧 눈치채고, 그러면 큰 웃음이 터진다. 몇가지 더 예들 들자면, 네모난 나무액자를 배우가 직접 들고서는 창문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쎈 바람이 부는 초원 위에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외투를 펄럭이며 달린다. 물론 제자리 달리기로.
사실 그런 장면들이 웃긴건, 관객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가 웃기기 때문이 아닐까. 이때까지 많은 영상물 혹은 공연들 혹은 일상생활 속의 장면들을 봐 오면서, 우리는 어떤 장면의 작은 부분들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몇가지를 골라서 인식한다. 그 덕에 심하게 간략화된 이 연극 속에서의 이동, 장면전환 등도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거긴 한데, 어떻게보면 문짝 하나를 보고 당연스레 집 전체를 생각하는 관객 본인 자신이 너무나도 신기하면서 웃긴거다. 뻔한 속인수에 불과한데,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이해가 되니까. 공연물이라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훈련받았다는 의미인가.
그리고 주인공과 달리 주변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연극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100여차례에 걸쳐 바꾼다. 목소리톤의 변화, 분장, 입은 옷, 모자 등을 미묘하게 다르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리는데, 관객 들이 뻔히 보는 한 장면 안에서 모자를 쓰면 기차 승무원, 벗으면 승객이 되는 식으로 역할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정말 거친 표현 방식이지만, 너무나도 대놓고 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론 참 잘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이 매우 희극적이다. 그 두분 덕분에 몇번 제대로 웃었다.
애시당초 작자는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를 포기한 것 같았다. 스릴러라는 원작의 장르는 연극에서는 그저 배경설정, 혹은 소재에 불과하다. 내용 자체를 떠나 세트와 소품등에 관한 점이 너무 재밌었다는 점에서, 내가 위에서 아무리 저렇게 글로 묘사해봤자 사실 소용없고 실제로 연극에서 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연극은 내용과 감동따위는 포기했고, 덕분에 효과적으로 웃기기에 충실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런 잔재미만으로 연극을 본다는게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연극이다 보니 대학로 코미디홀의 공연이나 어줍잖은 코미디연극, 혹은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들을 본 것 보다야 마음이 채워지지만, 연극 특유의 징한 공명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 딱 좋은 작품.
그리고 처음 가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은.. 소극장이라기 보다는 마치 뮤지컬 극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꽤나 큰 공연장에, 편안한 좌석. 뮤지컬 극장의 크기까지는 아니겠지만, 100명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반 소극장과는 달리 수백명 정도는 가뿐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소극장보다 의자가 훨씬 편하고 전체적으로 깨끗한 덕에 좋기도 했지만, 소극장 특유의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고 땀방울 맺히는게 보이는 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아무래도 둘다 욕심내기는 무리인건가.
제목이 39계단 이라서 39분에 시작해서 2시간 후의 39분에 끝나는 연극이다. 나와 친구가 봤을때는 배우들이 약간 빨랐는지 9시 38분에 끝나고 말았다. 큰 고민 없이 골랐던 연극이 꽤나 괜찮아서 둘다 매우 만족했고, 그리고 신천으로 파전을 먹으러 갔다. 서울행 첫날이 목요일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2008. 8. 21. 목요일 밤 7시 39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래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토니상 노미네이트와 히치콕 원작의 영화라는 배경을 보고 그냥 보기로 결정했다. 19일이 초연이었으니 거의 처음에 연극을 본 셈이다. 점심먹고 매그넘 코리아 전에 갔던 친구와는 기분좋게 헤어진 후, 다른 친구를 만나 극장으로 향했다.
원작 소설이 있고, 히치콕이 1935년에 영화화한 작품이 있다. 물론 그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인터넷에서 살짝 찾아봤더니 히치콕이 영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엉겹걸에 큰 사건에 휘말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이야기인데,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바로 연극을 봐서 미리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히치콕적인 줄거리에 히치콕적인 장치들로 가득한 연극이였다. 50년대 흑백영화같은 느낌이 팍팍 묻어나는.
영화라는 장르와 연극이라는 장르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배경장소 변경에 관한 점이다. 영화는 자유롭게 장면 전환과 위치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한히 많은 배경장소가 등장하는 반면, 연극은 정해진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장소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거나, 혹은 거대한 세트를 동원한다 해도 고작 장소변경은 2-3번에 불과하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의 연극화는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나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와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 해도 지금은 전세계인이 다 아는 줄거리 구조, 기승전결의 방식, 유머와 스릴 유도의 장치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연극으로 잘 번안한다 해도 지루하기 쉽다. 그렇다면, 영화 원작을 연극으로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울 뿐더러, 특히 장소변경의 제한이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매우 치명적이고, 마지막으로 어찌어찌 잘 번안한다 해도 이젠 히치콕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진부하다. 그럼 도대체 이 연극에서 우리는 뭘 얻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연극에서는 모든 것이 관객들과 함께 숨쉬며 일어난다. 그리고 무대공간의 한계 덕분에 인정되는 배우와 제작자, 관객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그리고 이 연극 39계단은 그 약속이 연극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닌, 연극을 더욱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그 수많은 장면전환이 아주 간단한 소품과 동작으로 소개되는데, 별것도 아닌 방법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객(즉, 나 자신)이 참 신기하면서도, 어떻게든 그런점들을 감추려고 애쓰는 일반적인 공연들과는 달리 대놓고 그런 점들을 이용하는 이 연극은 참 즐겁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기차를 타는 장면에서는 기차 모형조차도 준비되있지 않은 무대에서 주인공이 [그럼 나는 이만 기차에 타야겠소] 정도의 대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흉내를 낸 다음 긴 의자위에 앉음으로써 기차에 탔다고 관객들에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영국 전역을 기차가 이동하는 것은 뒤 배경에 역 표지판이 지나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말하자면 무대와 주인공이 앉은 의자는 정지해있는데, 그 뒤로 대전 표지판, 대구 표지판이 지나고 부산 표지판이 등장하면 부산에 도착했다는 식이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집에 들어간거고 잠깐 둘러보며 집주인과 얘기하다가 방금 들어갔던 그 문을 다시 나오면 이젠 집 안의 방 안으로 들어간거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이해해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한 두번이면 그냥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점들을 관객들이 매우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불필요한 장면이지만 의도적으로 집 안에서 대여섯번에 걸쳐서 방안의 방안의 방안의 방들에 들어가는 장면을 넣어 놓고서는, 그 문짝 하나만 계속 들락날락 하고 있는 거다. 관객들은 첨엔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다가도 일부러 저런다는걸 곧 눈치채고, 그러면 큰 웃음이 터진다. 몇가지 더 예들 들자면, 네모난 나무액자를 배우가 직접 들고서는 창문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쎈 바람이 부는 초원 위에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외투를 펄럭이며 달린다. 물론 제자리 달리기로.
사실 그런 장면들이 웃긴건, 관객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가 웃기기 때문이 아닐까. 이때까지 많은 영상물 혹은 공연들 혹은 일상생활 속의 장면들을 봐 오면서, 우리는 어떤 장면의 작은 부분들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몇가지를 골라서 인식한다. 그 덕에 심하게 간략화된 이 연극 속에서의 이동, 장면전환 등도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거긴 한데, 어떻게보면 문짝 하나를 보고 당연스레 집 전체를 생각하는 관객 본인 자신이 너무나도 신기하면서 웃긴거다. 뻔한 속인수에 불과한데,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이해가 되니까. 공연물이라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훈련받았다는 의미인가.
그리고 주인공과 달리 주변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연극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100여차례에 걸쳐 바꾼다. 목소리톤의 변화, 분장, 입은 옷, 모자 등을 미묘하게 다르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리는데, 관객 들이 뻔히 보는 한 장면 안에서 모자를 쓰면 기차 승무원, 벗으면 승객이 되는 식으로 역할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정말 거친 표현 방식이지만, 너무나도 대놓고 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론 참 잘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이 매우 희극적이다. 그 두분 덕분에 몇번 제대로 웃었다.
애시당초 작자는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를 포기한 것 같았다. 스릴러라는 원작의 장르는 연극에서는 그저 배경설정, 혹은 소재에 불과하다. 내용 자체를 떠나 세트와 소품등에 관한 점이 너무 재밌었다는 점에서, 내가 위에서 아무리 저렇게 글로 묘사해봤자 사실 소용없고 실제로 연극에서 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연극은 내용과 감동따위는 포기했고, 덕분에 효과적으로 웃기기에 충실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런 잔재미만으로 연극을 본다는게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연극이다 보니 대학로 코미디홀의 공연이나 어줍잖은 코미디연극, 혹은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들을 본 것 보다야 마음이 채워지지만, 연극 특유의 징한 공명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 딱 좋은 작품.
그리고 처음 가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은.. 소극장이라기 보다는 마치 뮤지컬 극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꽤나 큰 공연장에, 편안한 좌석. 뮤지컬 극장의 크기까지는 아니겠지만, 100명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반 소극장과는 달리 수백명 정도는 가뿐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소극장보다 의자가 훨씬 편하고 전체적으로 깨끗한 덕에 좋기도 했지만, 소극장 특유의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고 땀방울 맺히는게 보이는 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아무래도 둘다 욕심내기는 무리인건가.
제목이 39계단 이라서 39분에 시작해서 2시간 후의 39분에 끝나는 연극이다. 나와 친구가 봤을때는 배우들이 약간 빨랐는지 9시 38분에 끝나고 말았다. 큰 고민 없이 골랐던 연극이 꽤나 괜찮아서 둘다 매우 만족했고, 그리고 신천으로 파전을 먹으러 갔다. 서울행 첫날이 목요일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