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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9. 23:22
우피치 미술관 Uffizi Gallery
피렌체, 이탈리아 Florence, Italy
2008/12/26

이쁘고 아기자기한 도시 피렌체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덕분에 어느덧 한국인과 일본인에겐 이탈리아 여행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는데, 청개구리 심보가 강한 나로써는 덕분에 괜시리 피렌체가 싫었다. ㅎㅎ

이곳에선 가야할 두 군데의 미술관 중 첫번째가 바로 유럽의 3대 회화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는 우피치 미술관이다. 여름철엔 예약 안하면 세시간씩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알려져있고, 우리도 겨울이라 괜찮겠지 하고 갔다가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은 짜증났지만, 미술관 내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정책 자체에는 열렬히 환영했다.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관광객으로 홀이 꽉 차면 미술 작품 감상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덕분에 관람 환경 자체는 참 쾌적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그림들. 딱히 구체적인 감상은 없다. ㅎㅎ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회화를 집대성한 미술관이다 보니, 그런 회화에 많이 질려있던 상황에서 별로 뜻깊은 감상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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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ustice of Seleucus by Perino del Vaga

무언가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움직임이 가득한 장면을 그린 것도 아닌데, 무언가 역동성이 느껴졌다. 색감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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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John the Evangelist and Saint Francis by El Greco

엘 그레코 특유의 색감과 가늘고 긴 느낌은 힘차보이면서도 어딘가 순식간에 바스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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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anità, di Mattia Preti, 93,5 x 63, Firenze, Uffizi

빛이라는 것이 그림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에 다시 한번 느낀 그림. 그리고 역시나 그림의 밝고 어두움 같은 점들은 사진으로 보면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걸 사진을 찾아보고 다시 느꼈다...
2009. 3. 16. 19:07

운이 좋게 기회가 닿아 이번학기부터는 기숙사가 아니라 Telluride House라는 곳에 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교류전기 발전기를 만들었다는 L. L. Nunn이라는 전기공학자가 1911년 우리학교에 만든 집이다. Self-governing (자치), Intellectually Stimulating Atmosphere (활발한 지적교류) 이 두가지가 이 집이 추구하는 목표다.

그리고 그 공학자는 Telluride Association이라는 비영리 자선 단체를 만들었는데, 그 단체에서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 중 하나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름방학 캠프다. Telluride Association Summer Program, 이른바 TASP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고등학생들은 방학동안 대학에 거주하면서 대학교수들이 준비한 일련의 특별 강의를 듣고 토론을 나누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짧게 말하자면 고등학생에게 내가 사는 이 집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맛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끼린 프로그램 지원서를 TASP + Application을 줄여서 TASPlications라고 부른다. 

미국 전역 뿐만 아니라 터키, 유럽, 남아공 등지에서도 지원서가 오는데, 지원자들 중에 먼저 인터뷰 대상자를 결정한 후 그들을 해서 최종 프로그램 참가자를 뽑는다. 그런데, 그 인터뷰 대상자를 정하는 심사위원들이 바로 이 집에 현재 살고 있는 대학생들이다. 나보다 영어 더 잘하는 학생들의 에세이를 읽고 평가하는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상황인것이다. 4주간 일주일에 스무명씩, 한 학생당 5개의 에세이를 읽었다. 시간을 많이 뺏길까 걱정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고, 특히 고등학생들의 에세이가 재미있기도 하고 내가 배울 점도 많아서 에세이 읽는 것을 꽤나 즐길 수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모두 자기 학교에서 1,2등 하는 학생들이기에 사실 성적표는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혹은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다해도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중요한건 학점 하나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 스스로가 비록 학생으로써 그런 담대함을 가질 정도는 못되지만, 채점자로써는 그 사소한 '학점'에 학생을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은 많은 에세이를 써야 했고, 덕분에 그 속에 충분히 잘 나타나는 학생의 모습을 기준으로 했다. 고등학생이 겪은 경험과 생각의 폭이란게 물론 한정되 있겠지만, 전형적인 공부잘하는 학생의 에세이들은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그리고 정말 반짝반짝거리는 특별한 경험들을 가진 학생은 다른 모든것이 수준이하더라도 뽑자고 했다. 내 개인적이 가치관이 심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당당하지 못할거야 없었다. 억울하면 어쩔꺼야 내가 심사위원인데 ㅋㅋㅋ

그리고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대학 입시 에세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에세이 밖에 쓰지 못했을까. 나같은 애들은 너무나 흔해서, 그렇게 전형적인 그저그런 [똑똑한 학생 에세이]를 써서는 심사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반짝반짝거리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굳이 대단한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하면 좋다.) 그치만 누구나 본인의 인생에서 극적인 순간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글로 잘 반짝거리게 풀어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내 대학입시 에세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전형적인 공부잘하는 학생에 불과해 보였을 것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했었다. 당연히. 그런 애들은 전 세계에 널렸거든. 한편으론 그런 에세이에 관한 교육은 전혀 받을 수 없는 한국이 아쉽기도 했다. 그런 글을 잘쓰는 게 진정 자기PR을 잘 하는 건데.


읽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고등학생의 장래희망 설계가 한국의 현실과 전 세계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는 점이다. 괜찮은 집안에서 좋게 곱게 자란 아이들은 인문학 같은 것들 하겠다고 하는 한편, 개발도상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오고 싶어하는 학생들, 미국 내에서 소수인종에 속하거나 경제적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에 속한 아이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 처럼. 그리고 의사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들이 장래희망 에세이에 무슨 말을 적겠는가? 백명이면 백명 모두 박애주의 의사가 되어 보람찬 삶을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장래희망 유형이다. 덕분에 그런 녀석들은 모두 나의 부정적인 선입견에 불이익좀 받았을 거다. ㅎㅎ 차라리 - 나 돈벌려고 의사할꺼야 - 라고 말했다면 더 잘봐줬을지도 모르겠다. 패기 넘치는 장래를 꿈꿔도 모자랄 판에 벌써부터 타협하는 고만고만한 인생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긴 싫었다. 적당히 우수한 학생들을 뽑는 거라면 이해할 만한 부분이었겠지만, 모두가 뛰어난 학생들 중에서 더 눈에 띄는 애들을 추려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나는 냉정했다. 저런 장래희망은 전혀 [반짝거리지] 않는다.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한국 본토에서 지원한 학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들이 지원한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됬지만, 한국 본토에서 지원한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물론, 그 학생은 민사고 학생이었다. 유학이란 목적에 있어서 민사고가 국내 고등학교 중 가장 좋은 점은 교수진도 학생들의 실력도 아니라, 바로 그 정보력이 아닐까. 이번에 그 정보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혹시나 사심이 들어갈까 싶어 내가 그 학생을 평가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너무나 반짝거리거나 너무나 보기싫어서 인상깊었던 지원자들.

1)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하는 어떤 애는 같이 일하는 이란 불법 이민자와 함께 설거지를 할때마다 영어 단어를 소리치며 가르쳤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아쉬워했다는 사실이 그 이민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너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들은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칭찬은, 그 이란 노동자가 그 친구에게 했던 말이라고 했다. - 넌 내가 만난 백인 남자애중 가장 열심히 일하는 애야. 찡했다. 이 학생은 장래 희망에 관해 적는 에세이에 이 에피소드를 적으며, 아직까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 이란 노동자와 대화하면서 느낀 그 마음으로, 그 칭찬을 들었을 때의 그 마음으로 계속 살아갈 거라고 했다. 다른 에세이들은 보통 혹은 양호 정도일 뿐이었지만 바로 YES 했다.

2)
다섯 개의 에세이 주제 중에, 살아오면서 겪은 갈등에 대해 쓰라는 것이 있다. 부모님이 모두 의사인 터키의 어느 학생은, 자신의 가정 환경 덕에 본인이 정말 쉬운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하며 그 에세이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흥미진진해하며 에세이를 읽어나갔지만, 학생이 그 도입부 이후에 소개한 자신의 인생의 가장 큰 갈등이라는 것이, 터키 고등학교 입학시험(터키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어서 그 성적순으로 고등학교를 간다고 한다)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얻어서 터키 최고의 기숙사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기숙사 학교를 가느냐 혹은 집에 가까운 학교를 가서 계속 가족과 같이 함께 사느냐에 관한 고민이었다고 했다. 정말 말 그대로 기가 찼다. 지금 그걸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 내 인생은 쉬웠고 난 어려운 일 겪은 적이 없어요 -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글도 잘쓰고 성적도 뛰어났지만, 이 학생은 고민없이 바로 NO를 줬다.

3)
뉴저지의 어떤 한국계 미국인 여학생은, 모델 혹은 영화배우가 꿈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연기와 관련된 수업을 들어보고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단다. 집안의 당연한 반대가 이어졌고, 고민하다가 자신의 능력을 가족들에게 먼저 보여주고자 해서, 혼자 유명 오디션에 몰래 참가해 합격했고, 그 이후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려 활동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몇 개의 아동용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광고에 출연했으며, 작년에는 헬렌헌트가 주연인 영화에 출연했다고 했다. 독특한 경험과 진취적 마음 가짐이 마음에 들었지만, 다른 에세이들이 보통일 수준 뿐이어서 Weak Yes를 줬다.

4)
오레곤의 어떤 남학생은 친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삼십대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세차례 암을 겪다 돌아가셨으며, 작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911 이후 어머니는 실직하셔 한동안 집세까지 밀리는 가난도 경험했고, 누나는 똑똑하지만 대학생때 강간당한 잊지 못할 아픔을 갖고 있고, 여동생은 항상 조울증에 시달리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들을 자신에게 쏟아낸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암까지 걸리셨고, 학생은 그 암수술을 겪는 시기에 자신이 학업에 시달리느라 소홀했던 가족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그 갈등 에세이에 적었다. 18세의 고등학생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인생의 무게를, 너무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담담히 받아내고 있는 이 친구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그 학생은 911 이후의 가난경험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가난에 시달리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런 다사다난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학업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이 친구에겐 당연히 YES를 줬다.


이 반짝 거렸던 친구들이, 훗날 어떻게 자랄까. 궁금하다.

2009. 3. 14. 13:55
Peggy Guggenheim Collection
Venice, Italy
2008/12/14

로마에서 밀라노를 들린 후 찾아간 베네치아에서는, 이제 겨우 세번째 도시에 불과하건만 벌써 이탈리의 그 르네상스적 화려함에 질려가고 있었다. 그 화려함을 잔뜩 기대하고 찾아간 이탈리아였건만, 역시나 과하면 모자라는 것만 못했다. 그래서인지 구겐하임 콜렉션은 무척 좋았다. 새삼스레 현대미술이 어찌나 반갑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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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of Shock, April 1951. Wax encaustic on hardboard, Victor Brauner


같이 갔던 친구와 이 그림을 보면서 한동안 쓰잘데기 없는 잡담을 한참 나누었다. 그림에서 가슴이 그려진 모양에 웃다가 - 저 새는 분명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임이 틀림없을거야 - 같은 얘기로 이어져서는 밑도끝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었던거 같다. (그 이상은 상상에 맡긴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재미는 크게 두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익숙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풍부한 그림 속의 이야기가 좋고, 두번째로는 가리려고 하거나 포장하려고 하지 않고 금기시 되는 소재였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타낸다는 점이 좋다. 물론 미술관에 그림이랍시고 걸어놓아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쳐다보는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어찌됬든 일상생활 속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미지들을 이렇게 저렇게 버무려 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뭔가 구체적으로 꼬집기 힘든 묘한 조화라던가 미적 유희를 느낀다는 것이 참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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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tage City (Città ostaggio), 1954 Tempera, india ink, sand, and enamel on paper, Emilio Vedova


전형적인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혼돈속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조화. 느껴지는 감정. 색감. 우연성. 있어보이는 척.(ㅋㅋ) 이 그림은 특히 수묵화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페기 구겐하임은 말년을 저곳 베네치아의 미술관에서 보냈고, 그녀의 묘비가 미술관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평생 혼자 살았던 그녀는 늘 수많은 개들을 키웠는데, 그런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나는 물론 안쓰럽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한 인간이 모은 콜렉션의 수준이 이정도라는데 너무나도 놀라웠고, 또 부러웠다. 미술관 정면의 발코니에서 운하에 비쳐 반짝이는 베네치아의 야경을 보며 언젠가 다시 한번쯤 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