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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에 해당되는 글 1건
2009. 7. 1. 23:25
어릴적 재미 한인을 위한 콘서트가 티비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여러 가수들이 차례차례 노래를 부르고나서 마지막에는 모든 가수들이 다 함께 무대 위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머리가 하얗게 샌 재미동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펑펑 우시면서 그 노래를 같이 부르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어린 마음에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때 배운 이래로, 그리고 저렇게 콘서트에서 본 이후로는 접하지 못했던 [고향의 봄]을 다신 만난건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에서 학교 근처 우체국을 가는 길의 담벼락에는 [고향의 봄] 가사와 악보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그 담벼락을 만났을 때,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봄]에 반가워하며 슬며시 흥얼거리며 따라불러보았다. 그리고 그때 그 콘서트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그분들이 그렇게 우셨던 거구나... 대체 어쩜 이런 가사를, 이런 가락을 쓸 수 있을까. 이런게 한국을 정의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어린 맘에도 뭉클 느껴지는 감동은 내가 느낀 그 감정이 한국인이 아니면 공감하지 못할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담벼락 앞을 지나갈때면 뭔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곤 했다.




새로이 조성되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들어설 세종대상 동상이 친일파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친일파의 세종대왕이 광화문에 - 한겨레21 기사) 우리 역사 속 위인들의 영정을 통일하기 위해 문화관광부가 표준영정을 정한 것이 있는데, 만원권 지폐에도 그려져 있는 그 세종대왕의 표준영정을 그린 사람이 바로 운보 김기창 화백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왠만한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인 김기창 화백도 친일파였다는데 있다. 친일파가 그린 모습으로 세종대왕의 동상이 광화문에 들어선다는데, 논란이 안 일어날 수 없겠다.



친일파 논란에 대해 고민할때마다 나는 경계를 긋는 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낀다. 솔직히 만원권에 세종대왕이 그려진지 25년이나 흘렀고 또 덕분에 그 그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모습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지금, 단지 친일파가 그렸다는 이유로 그 만원권 도안을 바꿔야 한다거나 광화문의 동상 모양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난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친일 청산을 향한 대전제에야 공감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이젠 불가능해진 혹은 의미없어진 부분들까지 너무 지나치게 결벽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나는 그걸 지나친 결벽스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비단 그 유명한 친일수구꼴통에 속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마 상당수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친일파에 대한 논란에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거라고 생각한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논란을 지켜보다 보니 이젠 친일파 관련기사만 뜨면 솔직히 '또 난리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 세월도 지났는데 그만 용서하자 - 를 말하고 싶은 것도 절대 아니다. 60년이 지나도 청산해야할 과거는 물론 청산해야 하는 거지만, 세종대왕 영정과 같은 그런 부분도 그 청산해야 할 과거에 속하는 건지 의문이라는 거다. 오히려 이런 식의 지나친 노출이 대중을 친일문제에 무감각해지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정작 진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또 난리냐' 하고 넘겨버리게 되지 않을까. 그 영정을 친일파가 그렸냐는 것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그 영정을 사용했을 때 그 친일파가 혹은 그의 유족이 이익을 챙기게 되는가를 문제삼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료 같은 걸 유족에게 준다면 그건 문제이지만 이런 부분은 깔끔한 경계를 그으며 합리적으로 법 제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확실하게 친일청산을 하려고 했으면 애시당초 광복 직후에 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나 화가나고 잘못된 역사라고 해도, 이미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과거에 제대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채 60년이 넘게 흐른 것은 사실이고, 제대로된 친일 청산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과 의식 성장이 이루어진지도 이제 겨우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는 사이 그 모든 친일파들의 흔적들은 너무나도 깊숙이 우리네 삶 속에 녹아 있어서, 이제와서 그런 것들을 구분해서 흔적을 지우기에는 그 경계 긋기나 너무나도 어렵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장편 소설이라는 [무정]의 작가 이광수가 친일파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최남선도 일제 강점기 말년에는 친일파로 활동했었다. 처음 친일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져 여러 글들을 읽어 보았을 때, 이광수와 최남선의 이야기 정도는 쉽게 받아들일 만했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만주국 축전곡을 작곡했고 또 만주국 축전 음악회에서 지휘를 했었다는 사실도, 어디선가 언풋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억지로라도 소화해낼만 했다. 그런데, [고향의 봄]의 작사자 이원수 작곡자 홍난파 모두가 친일파였다는 부분에 이르러선 결국 난 숨이 막히고 말았다. 온 국민의 동심을 상징하는, 스무살만 넘어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고향의 봄]도 친일파의 작품이라면, 도데체 우리의 뿌리 중에, 나의 뿌리 중에 친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광수가, 최남선이,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친일파가 열정적인 친일파였건 그저 불어노는 바람에 조용히 몸을 기울인 갈대였건 아니면 버티고 버티다 부러진 나뭇가지였건 어쨌던 간에, 그들의 친일 행적 자체는 사실이다. 그치만, [무정]은 그 문학사적 중요성 덕분에 작가의 친일 행적과 작품의 가치는 따로 보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익숙한 논리로 여전히 중고생 추천도서 목록에 꼭 들어간다. 또 기미독립선언서는 우리 마음 속에 뿌듯한 항일 운동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매주 월요일 아침 9시면 전국 수천개의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애국가를 따라부르고 있고, 그리고 누군가는 고향의 봄 가사를 생각하며 눈물짓고 있다.

세종대왕 영정을 그린 사람이 김기창인 것이 문제가 된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거칠게 표현하자면) 전국의 [무정]을 모아서 불태워버리지 않는가. 기미독립선언서는 친일파의 때에 더럽혀진 종이조각일 뿐이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황국 신민임을 열창하는 것이며, [고향의 봄]을 부를 때마다 일본 열도의 꽃피는 산골을 찬양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당연히 이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너무나도 깊숙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어서, 이젠 친일파의 작품이라고 해서 지우기엔 너무 늦었다.

혹자는 이광수는 30년을 항일 운동을 하며 살다가 일제 패망직전 6년만 친일 행적을 했으니까 그 점을 참작해야 되고, 또 [무정]은 항일 운동 기간 중에 집필된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정도의 문제로 친일 문제를 바꿔버리면, 처벌 받아야 하는 자와 처벌 받지 않을 만한 자, 욕먹어야 하는 자와 욕먹지 않아도 괜찮은 자의 경계는 정말 모호해진다. 그리고 굳이 그런 모호함까지 가지 않더라도 - 김기창 화백도 세종대왕을 일제시대에 그린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 세종대왕 영정을 김기창 화백이 그렸다고 해서 문제삼을 필요가 있는지 나는 의문스럽다. 우리가 [무정]에 부여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를 김기창의 세종대왕 영정에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매해 설날마다 꾸벅 세배하고 넙죽 받고나면 좋아라 하면서 꼬깃꼬깃 주머니에 숨겨넣었던 파란 지폐 속 세종대왕님을 사실은 친일파가 그린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오히려 난 앞으로 내가 만원짜리를 지갑에서 꺼낼때마다 우리 삶 속 깊숙깊숙이 박혀있는 친일파의 흔적에 씁쓸함을 느낄까봐 걱정스럽다.

친일파가 그린게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대체 어디에 경계를 그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향의 봄]과 애국가를 부를때마다 찝찝한 기분을 느끼는 게 옳은 경계를 긋는 것일까. 그렇다고 엄청난 국민적 혼란과 혈세를 소모하며 그런 흔적들까지 깨끗하게 지워버리는게 옳을까. 에이, 현실적으로 당연히 그건 아니지 -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거라고 믿고 있는 이런 나의 생각이 사실은 친일파의 자기합리화에 물들어 버린 것에 불과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홍난파와 이원수의 친일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후였던 고등학교 3학년 말, 나는 한참 유학을 준비중이었고 유학관련 서류를 미국에 부치기 위해 자주 우체국을 들렀다. 그렇게 다시 담벼락의 [고향의 봄]을 만났을 땐, 어쩔 수 없이 예전같은 기분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세상은 참 묘하다. 독일은 2차대전이 끝난지 60년이 넘은 지금도 나치의 흔적들을 발견할때마다 죄의식에 몸서리치는데, 비슷한 가해자였던 일본의 총리는 오늘날에도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면 A급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그리고, 한국에선 해방 40년이 넘은 후에야 태어난 평범한 학생조차도 [고향의 봄]을 따라 불러도 괜찮은 건지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피해자인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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