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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 해당되는 글 2건
2009. 2. 16. 18:39
지난 토요일은 발렌타인 데이였다. 중간중간 여러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었음에도, 바쁜 일상속에서 나는 계속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온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뭐 어짜피 내겐 그저 여느 토요일로 지나갈 뿐일 텐데 뭐. - 라고 생각했었는데, 하하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배경은 이렇다. 2주 전 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기 A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잠깐만- 하며 갑자기 전화를 누군가에게 바꾸는데, 내가 이번학기 새로 이사온 집의 하우스메이트 중 하나인 B였다.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인건지 당황해하는 와중에 대화를 시작했다. 알고봤더니, A의 하우스메이트 중 하나의 생일파티가 진행중이었고 B가 거기에 참석한 것이었다. A와 B가 서로 어디 사느냐를 묻다가 내 얘기가 나왔고, 반가움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상하리만큼 좁은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신기해 하면서, 파티에 얼른 놀러오라는 B의 친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A가 전화를 받았을때, 웃음 섞인 목소리로 A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A에 따르면, B가 말하길 같은 집 하우스메이트 중 어떤 여자애 하나가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나한텐 이 얘기 절대 비밀로 해야한다고 했다더라. ㅋㅋ 이건 뭐 뚱딴지 같은 소린가 하며 어이없어 하는 나에게, 외국 여자와의 로맨스에 대해 환상이 있는 A는 혼자 들떠서 내게 마구 떠들어댔다. 물론 기분 나쁜 소식은 아니었지만, 뜬구름에 불과한 이야기일지 모르니까 나는 애써 담담한 척 했다. 그 이후로 그 주인공인 여자애의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지만 ㅎㅎㅎ

정말 사실인걸까 - 하고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솔직히 진짜 별 생각 없었다. 뭐 호감이 있었던건 사실이더라도 금방 식겠지, 호감이 있다한들 내가 무슨 상관이리 - 정도의 생각들로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간간히 만나는 A는 나를 만날때마다 그 여자애 이야기를 꺼냈고, 혼자 즐거워했다. 조금 짜증났던건, A가 A의 친구들에게 그 생일파티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다. A의 친구답게 A만큼, 혹은 그 이상 찌질한 그 외국애들도 낄낄거리며 내게 물어왔다. 자꾸 놀리는 듯한 A와 그의 친구들에 모습에 슬쩍 짜증이 나려고도 했지만, 에고 불쌍한 것들, 여자 한번 못 사겨본데다 찌질하기까지 한 녀석들이 저러면서 자위하고 있구나 - 정도로 가엾게 여겨주기로 했다. 어쩌겠니, 형이 이해해야지 ㅋㅋㅋ

그런데, 발렌타인 데이였던 지난 토요일, 늦잠을 실컷 자고 늘그막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는데 내 방앞에 초콜릿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핑크색 하트 종이에 글귀도 하나 적혀 있었다 - "Jong Min, Be My Valentine!" 이란다. 하하. 잠이 활짝 깼고, 순간 당황해서 얼른 주워들어 책상에 숨겼다. 그리곤 아침식사 자리를 향하는 내내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뭐야 A와 B의 이야기가 진짜인건가, 설마. 표정관리 어떡하지. 등등등등. 염려했던 대로 만나는 하우스메이트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누구에게서 온거냐고 물어봤다. 그중 B의 발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자기가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다며 자기도 누군지 모르지만 곧 알아내고 말거라고 하더라 ㅡ.ㅡ;;

이제 정말 그 A와 B의 얘기가 진짜인건가 - 라고 생각했다. 아 이제 명백한 움직임을 보이는 구나, 난 어떡해야 하지. 아 조용히 살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날 가만 안놔두네(ㅋㅋㅋ) 등등과 같은 종류의, 찌질한 남자가 어떤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할때 하는 상상들을 마구 펼쳐보았다. 그래도 나이좀 먹었다고 어느정도 말에 조심스러워 져서 A의 이야기를 그때까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진짜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우울한 발렌타인이라며 궁상떨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괜히 자랑도 하고 싶었다. 끝내 그 간지러움은 참았지만, 친하게 마음을 열고 지내는 어떤 누나에게 상담 비슷한 것을 받아버렸다ㅎㅎ 물론 여태까지의 정황으로는 그 누나도 나와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고.

진짜 솔직하게는, 저 가능성을 한 반정도 믿었다. 그렇지만 꽤나 빠른 나의 눈치는, 그래도 나머지 반은 믿을 수 없게 붙잡아 놓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하게도 이야기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과, 같은 집 하우스 메이트들의 질문들, 그리고 A와 그 친구들의 낄낄거림 등을 종합해볼때 뭔가 이게 장난일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우스 메이트들이 새로온 친구 재미로 놀려먹는 건가도 싶었고 A와 그 친구들이 장난 치는 것인가도 싶었는데, A와 그 친구들이 그정도 스케일의 장난을 칠 위인도 못되는 애들이어서 걔네들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우스 메이트 짓인가.

이런 생각에 찝찝했지만 점차 내게 기분좋은 쪽으로 마음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토요일밤 꿈에 그 여자애가 나왔다 (나도 참 이런거 보면 대단하다.) ㅋㅋ 그런데, 역시나 완벽 범죄로 놔두고 조용히 즐길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나의 친구 A는 오늘 일요일 밤 내게 일부러 찾아와서는 대뜸 모르는 척 뭐 받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나야 - 아무 것도 없었는데? - 라고 태연하게 반문했고, 그러자 - 뭐야 어제 아침에 방문 앞에 뭐 없었어? - 라고 물어보더라. 모든게 선명했다. 아. A의 장난이구나 ㅋㅋ 이녀석 의외인걸 이런 장난도 칠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나의 모습에 실망한 A에게 그제야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다른 A의 친구들에겐 내가 아직 사건의 진상을 모르는 걸로 하고, 이번 주에 그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마구 호들갑 떨며 아무래도 그 여자애한테서 초콜릿은 받은 거 같다며 자랑하기로 했다. ㅎㅎ 녀석들 그럼 좋아라 하겠지.

A는 돌아갔고, 혼자 피식 웃었다. 결국 다 헛된 망상이었군. 혼자 상상한 거 하며, 어젯밤 꿈 하며, 그 누나에게 받은 상담하며 모두 얼굴이 화끈거리게 했다. A 앞에서야 다 알았던 척 태연한 척 했지만, 그래도 좀 쪽팔렸다 ㅎㅎ 혼자했던 생각들이야 뭐 어짜피 남들이 모르는 거 다 좋은데, 그 누나한텐 뭐라고 말할지 참 부끄러웠다. 그나마 그 누나 외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게 다행스럽기도 했고.

그런데 뭐, 그냥 웃겼다. 솔직하게 내가 - 이런 생각들을 했고, 착각들을 했고, 이렇게 장난에 넘어갔다 - 라고 인정하면 뭐 어떠랴. 그래도 반틈은 눈치채고 있었고, 덧붙여 그런 착각을 하는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니까. 부끄러울꺼 뭐 있어, 웃으며 받아들이고 우스운 이야기로 써먹고 그러면 되는 거지. 20대 초반의 남자중에 저 상황에서 착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ㅎㅎ 부끄러운 면을 자꾸 감추려고 하면 더 드러나고 부끄러워지지만, 인정하고 다 드러내면 오히려 별 느낌 없어지는 법이다. 부끄러운게 없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이라고 말하는게 너무 거창하다면, 그런 찌질한 내 일면을 인정하고 감추지 않을때 그나마 좀 덜 찌질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ㅎㅎㅎ 이런 내 자신이 참 귀여우면서도, 이제 이런게 안부끄럽고 담담한거 보면 그래도 좀 내가 컸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쓴다. 읽는 분들 모두 귀여운 피식 웃음 이라도 한번 지으시라고.
2008. 2. 15. 15:25

처음 맞이하는 학기중의 발렌타인 데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 시기가 방학이라 못받는 이유로 방학을 탓하며 애써 날 위로 했었는데. 여기서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미국 유학생들은 딱히 남녀를 따지지 않고 뭔가 주고 받는 분위기인가 보다. 주는 것은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받는 것은 좋긴 좋은 일이지만 부담스러운 일이다. 주고받는 것보단 안주고안받는 게 훨씬 좋다는, 이런 메마른 감정과 귀차니즘.

발렌타인데이, 더 귀찮은 이유중에 하나는 나는 초콜릿보다 사탕이 더 좋다는 것이다.ㅎㅎ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왜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는 이렇게 반대로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초중고 시절 초콜릿을 받으면 (별로 받은 적도 없다만) 주로 누나들이 즐거워 하며 내 초콜릿을 먹었다. 초콜릿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는 그런 누나들이 별로 밉지도 초콜릿이 아깝지도 않았다. 단걸 별로 안좋아하는 나로써는 초콜릿이 있으면 그냥 주변 사람들을 주곤 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 겨울방학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 앉은 입술에 피어싱한 여자애가 기내식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이 다 녹아빠졌다고 스튜어디스한테 새로 달라길래 나 초콜릿 안먹으니까 먹을래? 하면서 줬던 기억이 있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 과연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받을 수 있을까 - 당연히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같은 동아리의 한 여자애가 초콜릿을 주었다. 물론ㅎ, 동아리 멤버 전체에 돌리는 거를 받은 거다. 고마워는 했지만, 음 저걸 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도 그렇고 어쩐다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기분이 쌉싸름해 졌다.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알고서, 별 말 없이 알아서 발렌타인 데이에 나에게 사탕을 선물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내가 화이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해 줄 사람,
혹은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아니까, 발렌타인 데이라고 나에게 초콜릿을 사주고서는
너 근데 초콜릿 싫어하지? 내가 먹을께~ ㅋㅋ
하고 마냥 웃으며 내 앞에서 그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사람.

서로 뭔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럴 사람.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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