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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8. 17:41

인턴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내가 배정된 프로젝트는 레이저에 관한 것인데, 덕분에 아직까지는 각종 레이저 관련 안전교육이나 눈 검사 등을 치루느라 별다른 특별한 것을 하지 못했다.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뭔가 배우고, 실험하고 하게 될 것 같다.

5/19 - 5/31 - 이타카에서
심타 졸업여행을 다녀오고 인턴시작하기까지 생긴 2주간의 시간은 대부분 범준이형과 뒹굴뒹굴 빈둥빈둥하며 보냈다. 매일 10시간씩 꼬박꼬박 자고, 10시간 못채우면 낮잠으로 채우고, 같이 맥주마시고 얘기하고 밥먹고 운동하며 보낸 열흘 가량이었다. 그리고 졸업식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덕분에, 졸업을 앞둔 많은 심타 선배들과 즐겁고 좋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그들을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특히 범준이형이랑은 너무 친해져버렸다. ㅋㅋㅋ 뭐 좋은게 좋으거지 뭐 ㅋㅋㅋㅋ 범준이형은 참 좋다. 형에대해 겉만 아는 사람들은 쉽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살고 근성있는 형이다. 그리고 난 열심히 살고 근성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5/31 토요일 -  인턴하는 시카고로 가는길
시카고로 오는길, 필라델피아를 경유하도록 예약되 있었는데 이타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연착되서 필라델피아에서 타기로 된 비행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많이 걱정했었다. 혹시나 했던 연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필라델피아발 시카고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20분 전에 게이트에 도착해서는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국내선이라 아직도 입장을 시작하지 않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있다가 가만히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ㅡ.ㅡ;; 다음 비행기 티켓으로 바꾸고 (다행이 추가 비용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기다리다가, 비가 내리던 날씨로 인해 그 비행기도 1시간 늦춰져 예상했던 것보다 시카고엔 3시간 가량 늦게 도착해버렸다. 그냥 웃겼다. 나 참, 천하의 윤종민이 이런 멍청한 일을 다 겪는 구나. 좋은 경험이었지 뭐.
페르미랩에서 예약해준 리무진 서비스는 너무나도 좋은 차를 몰고 왔고(거의 에쿠스 급이었다) 도착한 아파트도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좋은 매트리스에 시트와 이불이 깔려져 있는 바람에 가져온 이불과 배개가 무색해졌고, 각종 식기도구가 모두다 갖추어져 있는 것에 매우 안도했다.

6/2 월요일 - 인턴 첫날
첫날은 그저 각종 서류 처리와 끝없는 안전교육으로 잔뜩 지쳐버렸다. 그런 일정 끝에 멘토와 만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의 멘토가 중국인 유학생이길레 솔직히 많이 실망해버렸다. 전체 인턴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인 나에게 전체 멘토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이 배정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참 웃겼고, 멘토의 이름을 미리 알았으므로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지만, 중국계 미국인이 아니라 대학까지 중국에서 마쳤을 것이 분명한 중국식 액센트와 어색한 발음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토종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좀 꽤나 많이 실망하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도 아직 영어가 미숙한 아시아인인 주제에 영어에 능수능란하고 유머러스한 백인을 바라고 있는 내 자신도 참 웃기지만, 뭐 내가 인종[구별]적인걸 어떡하겠는가. 사실 게다가 이왕이면 좋은 학부를 나오고 좋은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어서 인맥적으로 나중에 도움이 됬으면 하는 매우 기회주의적인 기대까지 하고 있었던 나다. 딱 까놓고 얘기해서 그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멘토이어야 내가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그런 내가 별로 부끄럽진 않다. 그치만 딴것보다도, 영어만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중국인이었다면 별 실망 안했겠지만 그게 제일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러한 나의 바램과 불평불만은 어디까지나 주가 아닌 덤일 뿐이니까,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6/6 금요일 - 그룹 미팅
내가 속한 그룹의 미팅이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있다. 서로 토론하는 물리 내용을 잘 몰라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런게 회의라는 것이구나, 이런걸 직장에서는 하는구나, 이런 연구소에서 하는 형태는 일반적인 경우와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요런 종류의 것이 회의라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덧붙여 같은 실험실을 공유하는 물리학자들이 서로 약간씩 다른 연구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모습이, 꽤나 멋있어 보였다. 여러명의 어른이 서로 물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그 전엔 본 적이 없었거든.



영어
벌써 유학 1년차가 되었지만, 항상 영어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묘한 부채감이 있었고, 덕분에 이번 인턴 기간동안 만큼은 영어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참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너무 답답하지는 않을까. 애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일주일 살아보니, -아, 이제 내가 정말 미국에 어느정도 적응하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미국와서 느꼈던 그런 불안함과 답답함도 없고, 그냥 애들이랑도 잘 지내고 잘 놀고 떠들고 같이 밥해먹고 출근하고 있다. 한 아파트에 4명이서 같이 살고 있는데, 둘은 괜찮은 애들이긴 한데 하나는 정말 제대로된 [영재] 혹은 [geek, nerd] 혹은 [재수없는 잘난척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걔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이서 계속 걔 뒤땅까면서 놀고 있기 때문에 ㅋㅋㅋㅋ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이제 그닥 답답하지는 않은 수준에 이르렀고, 나랑 대화하는 친구들도 그닥 답답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내가 서사를 풀어내지는 못한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하고 맞장구치고 한번씩 대화하고 하는 것은 이제 잘 되지만, 자 들어봐-하며 내가 이야기를 풀어놓기에는 많이 답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다시한번 영어공부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른다. 그들과 기회가 있을때는 절대 빼놓지 않고 열심히 대화하고 놀고 어울려야지. 그리고 따로 영어공부를 하자. 아예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우는 거다. 결국은 멍청하고 묵직한 방법이 승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미국까지 왔는데, 공부라는 토끼만 잡으면 아무래도 섭섭할 것 같다. 영어는 원어민이 되겠다. 반드시.

하지만, 아무리 영어에 많은 노력을 붓는다 해도 절대 영어와 한국어를 섞지는 않겠다. 평상시 말할때 그 둘을 섞어 쓰는 것은 이미 매우 싫어했지만, 내가 한국말로 한국말 할 줄 아는 한국인한테 말 걸었는데 상대방이 영어로 대답할때의 그 이질감과 어의없음과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다른 미국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때는 한국사람과도 영어로 대화해야 겠지만, 1:1 대화에서 한국인끼리 영어를 사용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미국에는 정말 이상한 방향으로 미국화된 한국인이 너무 많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영어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러는 것일 뿐이라고? 근데 난 그게 싫다는 거다. 나는 절대 섞지는 않겠다. 영어로 말할때는 영어만, 한글을 말할때는 한글만.



미국식 생활
그리고 미국애들은 정말 한국애들과 다르다. 어찌나 개인주의적인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어색하다는 얘기다. 한날은 같이 사는 넷이서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봤는데, 각자 장을 보고 각자 계산해서 각자 요리하고 각자 설거지하고 지낸다. 한번씩 요리도 해주고 설거지도 같이하고 하지만, 주로 [각자] 식이라는 거다. 각자가 각자의 것을 산 덕분에, 지금 냉장고엔 1갤런 짜리 우유가 무려 4통이나 있다. 남 신경 안쓰고 살기엔 매우 편하긴 하겠지만, 역시 이건 아무래도 한국인이 할만한 짓이 아니다. 한국인은 한국식으로 살아야지. 그나마 하기 쉬운 베이컨&에그 샌드위치 정도는 여러개 만들어서 같이 먹자고 했다. 한국 음식을 해 줄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는데, 오늘은 반갑게도 마트에서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발견해서 잔뜩 사가지고 왔다. 내가 해먹을때 같이 해서 나눠먹고 그래야지. 그들의 개인주의의 선은 내가 침범하면 안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개인적일수록 내가 비개인적으로 행동한다면 더 큰 울림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한국식]인거다. 미국에서는 철저한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바람직한 한국적임은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한국적임이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관계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  아무튼 요즘 절대 해본적 없는 요리를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ㅋㅋ 말그대로 정말 [다양한] 경험중이다.



인턴쉽
내가 배정된 프로젝트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 페르미랩에서 인턴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은 입자물리나 가속기와는 전혀 무관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자물리에 아직까진 전혀 관심이 없는 나로써는 이게 좋은 일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번 일주일은 각종 레이저 안전교육과 눈 검사 등으로 시간을 보내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맛배기로나마 접한 나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한번 내가 미리 공부해놓고 익혀놓은 것들은 어떻게든지 나중에 쓰인다는 사실을 느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나의 과거의 공부들이 지금의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었다. 수학, 물리는 최고가 되고, 프로그래밍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지금의 노력과 희생은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고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이제 좀 바닥나고 있는 것 같지만...ㅠㅠ)

멘토의 어색한 영어는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주어지 현실은 인정하되, 최대한 앵기고 노력하고 잘보이고 뽑아낼대로 뽑아내자. 결국은 이것이 정답인걸.

10주간의 인턴 경험은 물리라는 학문적으로나, 영어적으로나, 또 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해 많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벌써 근무중에 적당히 인터넷이나 하고 facebook, 싸이, 블로그, 미디어 다음 기사등을 떠돌며 근무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떤건지를 느끼고 터득해버렸다. ㅡ.ㅡ;; 앞으로의 10주가 꽤나 기대된다. 무엇을 더 겪고 느끼게 될까.



믿음
길고 긴 방황끝에 이제 정말 정신 좀 차린 거 같다.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4년간의 그 끝없었던 곁눈질의 과정은 다시 내가 앞만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에서 쇠고기에 촛불에 시끄러운건 알지만, 이곳에서 내가 그것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신경쓰는건 적극적 참여가 아닌 곁눈질일 뿐이고, 양심에 대한 어줍잖은 자위행위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 왔고, 이곳에 온 이상 나의 현실에 집중하고 이 현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뽑아내서, 나는 그저 나중에 갚으면 되는 것이다. 부채의식을 잃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다. 내가 할일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 있다.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함에 꿈을 낮추고 안정적인것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이제 사라졌다. 결국은 그 어느것도 쉽지 않고 그 어느것도 안정적이지 않고, 그 어느 것의 미래도 불안하다. 그 수많은 진로와 미래에 대한 문제는 끝에 이르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더라. -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뭔가 해낼 수 있는 놈이라고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내가 뭔가 해낼 수 있는 가를 의심하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다. 그리고 그 답없는 문제에 의문을 갖는 단계는 졸업할때가 됬다. 결국은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가]의 차이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해낼 수 있다 해도, 언제 해낼 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믿는 것이다. 4년간의 불안함, 두려움, 허무함, 그리고 방황은 나에게 이 결론을 주었다. 어줍잖은 자기경영서나 주변의 충고조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가슴으로 느낀다. -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자.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달리자. - 무언가 나름 많이 이뤘던 중학교 시절과 지금의 나의 차이는 저 두가지 생각 뿐이다.

믿음이 흔들릴땐 지금 99도라고 믿자. 조금만 더 달리면 이제 끓을거라고. 99도에서 멈추긴 아깝지 않냐고.




6/7 토요일엔 인턴중의 일원인 Jennifer의 집이 위치하는 St. Charles의 Riverfest에 다들 함께 놀러갔다가, Jenn의 집에서 바베큐하고 떠들고 놀았다. 거기서 다들 같이 찍은 사진 한장. 그러고 보니 프로필 사진 외에는 처음으로 블로그에 내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ㅎㅎ (클릭하면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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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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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nell University photo by Sol Goldberg

도서관 설명 책자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 사진을 발견했다. 코넬의 윌슨 입자 가속기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스 베테와 보이스 맥다니엘. 나도 모르게 눈이 멎었고, 순간 약간의 짜릿함이랄까, 소름이랄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왜 난 이 사진이 정말 간지나고 로망스러운 사진으로 보이는 걸까.

이럴때 내가 정말 과학을, 혹은 물리를 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라기보다는.

이젠 나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이공계인인 것을 느낀다. 꾸엑ㅠ 별 수 없군....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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