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중학교 배치고사를 앞두고 어머니와 누나들은 내게 필승 전략을 알려주었다. 간단했다. - "배치고사 문제집 10권 풀면 수석한다!" - 3일에 한 권씩 한 달간 10권의 문제집을 풀었고, 그렇게 입학식 때 교단 위에서 선서를 했다.
중학교 과학경시대회를 앞두고는 역대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세 번째에 이르자,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소숫점 둘째 자리까지의 답이 기억이 났다. 특정 숫자들이 주는 그 묘한 익숙함. 그렇게 대회가 끝난 얼마 후 중앙일보엔 내 이름이 실렸다.
고등학교 2학년, 매 시험마다 미적분학 성적이 항상 A0 수준을 넘지 못했다. 해당 범위 모든 연습문제를 풀었는데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일까, A+를 받은 친구에게 대체 너는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간단히 대답했다. - "두 번 풀었어."
언젠가부터 뒤쳐져 있다는 기분이 많이 든다. 대학원에 오면서 경쟁과 비교의 범위가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훨씬 더 넓어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앞서나가는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는 뒤쳐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연구의 세계는 단순히 무언가를 익히는 것을 넘어 이른바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요즘같이 고도로 발달한 학문의 세계에서, 특히나 수직적 특성이 강한 학문에서라면 진정 창의성이 유의미해지는 것은 대학원 고년차 혹은 박사후 과정이 되어서야 가능한 얘기 아닐까. 어찌됬든, 지금 당장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한들 부족하고 모르는 기초가 너무 많다.
사실 난 '창의성'이란 개념을 믿지 않는다. 혹은 내가 그렇게 창의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학업적 성취라는 것들은 돌이켜 보면 유난한 번뜩임이었기보다는 비효율과 미련함에 더 가까웠다고 하는게 정확할 반복학습의 결과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뒤따라온 좋은 성과들이 반복의 지루함을 소급해서 미화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사실 반복 과정에서 늘어가는 그 '익숙함'이 주는 즐거움도 컸다. 무언가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내 지적 통제와 소유의 범위 안으로 넣는 것. 악보를 보며 떠듬떠듬 치던 곡을 눈을 감고도 자유롭게 연주하고, 강약이나 리듬의 미묘한 조절까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건 정말 반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거니까.
하지만 학년이 오르면서,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기에는 양과 범위가 너무 많다는 핑계만 점점 늘었다. 효율적 공부랍시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데나 시간을 더 쓸 뿐 정작 실제 공부량은 줄었고, 두세 시간 앉아 있었으면 이제 좀 쉬어도 되겠지- 하는 적당주의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아마, 내 반짝임이 조금씩 조금씩 바래왔을 것이다. 다시 반짝이고 싶다. 그래서 다시 무식해지려고 한다.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허생의 마음으로 박사과정을 보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10년 공부를 채우고 세상을 바꾸려던 허생은 아내의 바가지를 이기지 못하고 7년 만에 책상을 박차고 나와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됬다. 비록 계획된 나머지 3년을 채우지 못해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그런 허생도 아마 사서삼경 정도는 줄줄 외웠을 것이다. 내가 그 '10년'을 채울지, 아니면 '7년'에 참지 못하고 책을 덮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찌되든 나도 '사서삼경' 정도는 눈감고도 읊어야 겠다. 어디가서 허생 따라했다고 명함이라도 내밀라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