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나는 5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다녔고 어머니는 그 바로 앞의 마트에 일을 다니셨다. 6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후 7시에 일을 마치시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낮잠을 자다 눈을 뜨니 그만 6시 40분이 넘어 있었다. 깜짝 놀라 헐레벌떡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지만, 수업에 들어가도 어짜피 몇 분 안되 끝날거라는 걸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꿔 마트에 들어갔다. 잠깐이나마 그냥 학원 잘 갔다가 마치면서 어머니를 보러 온 것처럼 행세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용서를 빌고, 설사 많이 혼나더라도 잘못한 벌은 달게 받아야된다는 돌이켜보면 기특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를 뵙고,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자다가 학원을 안갔어요-말했는데, 그 때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씀없이 날 바라만 보셨다. 몇 초 묵묵한 눈빛으로 날 보시다 몇 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서 혼내지 않으신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어머니의 표정이 기억나는 거 보면 그 어린 마음에도 그 표정의 함의가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었나보다.
저지난 주말이 우리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하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졸업식을 보러 오셨고, 그 친구의 초대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러가지 가벼운 대화가 오고가던 가운데, 그 친구도 나도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친구 어머님께서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한동안 아들을 군대보낸 어머니의 맘고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입대식 때 삐뚤삐뚤한 줄 속에서 경례하던 아들의 모습, 일주일쯤 뒤 소포로 배달된 아들의 옷과 편지를 보고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 첫 면회때 아들의 모습, 등등. 군대가 짧아지고 편해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의 입대는 어머니에게 무거운 일이고, 또 거꾸로 아들들에겐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내가 입대할 때는 신종플루 덕분에 입대식이 없었다. 논산 훈련소 입구 바로 뒤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 선에서 부모님과 인사하고 혼자 걸어들어가게끔 했다. 그 앞 잔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이윽고 이제 진짜 입소해야할 시간이 됬다. 아버지와는 가벼운척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고, 이제 어머니와 인사할 차례. 포옹 후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으셨다. 그렁그렁한 눈빛과 손 안에 꽉 담긴 힘. 옆에선 기간병이 얼른 들어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끝끝내 날 놓지 못하는 그 손을 그냥 뿌리칠 순 없었다. 두 손 모아 어머니의 손을 몇 차례 꽉 감싸쥐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손을 놓으셨다. 그렇게 안녕 - 손을 흔들고 난 후, 나는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고 연병장을 향해 걸었다.
첫 휴가날,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머니께서 기다리시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우리집 차가 보였고 그 속에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차 속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발견하셨나보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시더니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부들부들 떠시던 그 모습. 그리고 나를 보는 눈물 가득했던 그 눈빛. 조수석에 타자마자 얼른 내 얼굴부터 만지셨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무제한적인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내 평생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만큼 잘해드린다고 해도, 그 눈빛에 담긴 사랑만큼 돌려드릴 수 있을까. 훈련소에서의 그 손길과 첫 휴가날 그 눈빛을 떠올리면 나는,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입대 며칠 후 배달된 소포 속 편지 얘기를 하는 친구 어머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교들의 눈치 속에서 몰래 쓰느라 마음이 급했는지, 편지 속 삐뚤삐뚤한 글씨며 곳곳에 틀린 맞춤법이 더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편지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지금도 금방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때 였다. 그저 옆에서 미소짓고 계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갑자기 지갑을 꺼내셨다. 지갑 속 한 켠에선 꼬깃꼬깃 접힌 친구의 편지가 나왔다. 이번엔 내가, 금방,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2009. 09. 14 ~ 2011. 07. 10
하나. 서론
전역하면 꼭 군 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무 기간 동안 새로운 경험이나 느낌을 받을때면 그 내용을 꼭 머리 속에, 그리고 수첩 속에 갈무리 하곤 했다.
둘. 군생활은 정말 잃어버린 시간일까?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전역했다. 결국은 나도 저러한 접두어를 쓰며 제대를 묘사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년이 온전한 낭비와 잃어버린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으로써의 2년에 걸맞는 생산성을 지닌 시기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군생활 후반부쯤부터 미필인 사람들에게 여러번 말하곤 했다. - 군대, 와서 배우는 것도 많으니까 굳이 억지로 안올 것 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합법적인 절차로 안올 수 있다면 안오는 것이 낫다고.
회한스럽게 시작했지만 ㅎㅎ 물론 말했던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군생활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남은 평생 겪을 조직생활을 2년이란 기간에 압축해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고와 유학생이라는 지엽적인 경로로 살아왔던 입대 전 5년 가량의 시간동안 잊었던 보통다수의 삶에 대해 다시금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 아부지와의 절대적 공감대가 하나 더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제일 반가웠다.
셋. 천안함과 연평도.
내가 직접적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것은 분명 남다른 경험이었다. 천안함때 느꼈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나 내 속이 상하던지, 답답한 현실은 눈물을 흘리기에도 부끄러웠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다.
특히나 연이어 벌어지는 논란에 속터지게 답답했다. 그 어느 증거와 정황을 떠나서, 우리나라 해역에서 우리 함정이 두 동강 났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느 정황도 100% 확실하게 북한의 소행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원인이라는 증거도 명백하지 않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실제로 정부의 조사 결과와 발표가 틀렸다고 할지라도 그 것이 북한의 공격이라고 결론지은 정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틀림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것이었다면 나도 경악하겠지만, 나는 다시금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또 속겠다. 0.01%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하며 우리나라 정부를 불신하며 살 수는 없다. 첨언하자면, 한편으론 그런 음모론적 의견도 마음껏 개진하는 모습을 보며 기쁘기도 했다 - 이정도까지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구나! - 하지만 0.01%의 가능성이라면 국민의 0.01% 정도가 그런 의견을 개진하는 게 표현의 자유지 그의 천배 만배 되는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전투 중에 전사한 해병대 장병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저런 논란 때문에 연평도 포격은 사실 전화위복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로 아무도 이제 북한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직접 겪지 못했기에 과거의 군사정권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현재의 10대, 20대들이 오히려 30대보다 더 투철한 안보의식 - 혹은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 - 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 세대의 구성원이고.
훈련소에서 '진군가'라는 군가를 처음 배웠을 때 그 가사 - 백두산 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 에 조금 놀랐었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 '밀고 나가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 훈련소에선 그렇게 민감하게 다가왔는데, 군생활 하면서 내가 쇄뇌당한걸까? 지금 보기엔 당연한 가사인 것만 같다. 어찌됬든 총칼을 겨누고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주민은 아닐지 몰라도 엄연히 북한이라는 국가는 우리의 적이다. 맞다. 둘 다 총을 내려놓고 얼싸안으면 조국의 통일이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결국은 모두가 최고의 이익을 얻는 게임이론적 평화를 주장하기엔 내 목숨은 한 개 뿐이고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총을 내려놓진 못하겠다.
넷. 군생활은 힘들다.
나의 군생활은 밖에 나와서 자랑할만큼 대단하거나 힘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디가서 부끄러워할만큼 시시하거나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어찌됬든 군생활은 힘든 것이다. 해병대건 행정병이건, 전방이건 후방이건, 육군이건 카츄사건, 현역이건 산업체건, 군생활은 힘들다. 결국 힘든 건 노동의 강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의 정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복무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국가제도의 폭력적 강제성에 휘둘려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 아무리 할만한 일과 훈련이더라도 진절머리나는 가혹행위가 되고 만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마취제 덕에 그 사실을 잊고 2년간의 군생활을 버티어 내지만, 그래도 한번씩 마취가 풀릴때면 분통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유난히 사소한 의미에 민감하고 섬세한 면이 있다.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첫 날, 밤 늦게 농협을 갔다. 밤 10시에, 반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고, 집 밖으로, 어머니와 함께, 나서는 순간 - 눈물이 날 뻔 했다. 아, 나 이제 진짜 전역했구나. 이제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 박탈된 자유의 복권. 저 지극히도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하다못해 채식홍보 켐페인단의 서명부탁도 거절했던 나였는데, 이제 지하철 역에서 국제 앰네스티 활동에 서명을 추가할 수 있는 어엿한 민간인이 된 것이다. 개인이 아닌 부분이 되어 스스로의 (이른바) 정치적 정체성을 잃고 복무했을 전의경들이 특히 저런 부분에선 전역후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다섯. 어머니
아무리 군대가 편해지고 짧아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군대라는 곳은 남자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직접 겪어서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아버지보다, 부풀고 과장된 소문들로만 군대를 접한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입대가 그리도 무거운 일인가 보다. 훈련소 바리케이트 너머로 내 손을 끝끝내 놓치 못하시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첫 휴가때 터미널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시던 어머니의 눈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정녕 누군가에게 이리도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 손길과 눈빛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섯. 돌이켜보면.
전역한 지금에 이르러선 대학교를 1년만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게 아쉽다. 어짜피 할 거라면, 가능한한 빨리 할걸.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데, 군복무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이 날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원죄같은 걸지도 모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어짜피 받을 벌이라면 빨리 받는 게 좋다. 자랑스런 국방의 의무를 죄에 비유하다니 국방부와 기무사에서 이 글을 보면 천인공노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꺼야? 난 이제 민간인인데.
일곱. 결론
어쨌든 군생활이라는게 이 글의 제목처럼 반점하나 찍고 숨 한번 돌리지 않고서는 말 할 수 없는 경험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내 가장 최근 2년이니까 별 수 없겠지. 그것이 허송세월이었을지 알찬 시간이었을지 군생활의 의미에 관한 길고 긴 탐색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 어떻게 보낸 시간인들, 20대에 의미없는 2년이 어딨겠는가?
각설하고 지금까지의 글이 너무 길었다면 이 한 문장만 읽으면 된다.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윤종민이에요~
그리고 이 글의 독자 중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복무 해결에 대해 고민중인 군미필자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생각하지마. 그냥 지금 입대해. 그것이 정답.
그리고 나의 군생활을 위로해준 문화적 존재들에 대한 내맘대로 Top List.
1. 최고의 작가 : 김훈
칼의 노래, 남한산성도 좋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도적이었던건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중편 [화장]. 살을 에는 잔혹함에 그가 괜히 손꼽히는 작가인게 아니구나 싶었다. 마찬가지로 박완서님도 경탄스러웠고.
2. 최고의 단편 : 구효서, [밤이 지나다] - 2004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객관적 탁월성은 [화장]이었다면 나의 주관적 최고작은 이 단편이었다. 서정적 아름다움과 공허함, 욕망, 혼란. 그냥 읽어봐ㅎㅎ 그 외엔 신경숙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권지예 [꽃게 무덤], 이혜경 [그리고 축제]
3. 최고의 책 :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는 정말 압도적 영웅이었다.
4. 최고로 힘들었던 책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300쪽이 넘는 책을 감히 영어로 읽겠다고 덤비다니. 결국 다 읽었지만 정신력 소모도 컸다 ^^
5. 최고의 가수 : f(x)
NU ABO부터 좋았다. 그냥 '꿍디꿍디'에 팍 꽂혔고 피노키오에서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징징윙윙'이라고 노래불러 주었다. 포스트모던한 가사와 멜로디의 선구자!
6. 최고의 노래 : SanE, LoveSick
봄날의 감성힙합. 들을 때마다 첫사랑이 생각나던 노래. 아쉽게 2위한 노래는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
7. 최고의 드라마 : 로열 패밀리
따로 쓴 리뷰를 참조하세요~
8. 최고의 여배우 : 김태희
아이리스도 재밌긴 했지만 군인에게 최고는 역시 마이 프린세스였다. 발랄한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신세계(?!)를 나에게 열어주었다. 십몇화가 넘어가면서 드라마 내용이 산으로 갈때마다 그만 볼까 싶다가도 그냥 태희누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소름끼치게 이쁘다. 태희누나 사랑해요 히히
9. 최고의 광고 : 두산, 서점편
한번씩 나 자신이 의심스러울때면 생각날 것 같다. 볼때마다 울컥울컥했던 광고. 다음에 따로 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