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타카에 꽃이 한창이다.
이 꽃은 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피어난다.
1) 꽤나 추운 날씨에 눈이 왔다가, 2) 날씨가 약간 풀리면서 그 눈이 살포시 녹는가 싶더니, 3) 다시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번엔 눈이 아닌 비가 내려야 한다.
그러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잠깐 녹다가 얼어붙고 마는데, 이렇게 얼음꽃이 탄생한다. 나뭇가지들이 굵게는 새끼 손가락 만하게, 얇게는 동전두께 만하게 얼음으로 덮힌다. 낮에 햇빛에 산란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밤에 가로등 불빛을 받는 모습에도 넋을 잃는다. 게다가 저 멀리 깜박이는 신호등 불빛에 따라 붉게 혹은 푸르게 색깔도 바꾼다.
더 결정적인건 소리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그 위를 얇게 덮은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정말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다. 작은 얼음조각들이 연속적으로 갈라지는 그 소리는,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멋들어진 계절적 대칭을 이뤄낸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하면 떠올렸던 그 기분 나쁜 인상이, 이번 경험으로 확 바뀌고 말았다.
이건 정말 이타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ㅎㅎ 하루 눈왔다가 하루는 파카입고 돌아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따뜻하다가 다음날 다시 눈오는 이런 날씨 ㅡ.ㅡ;; 이런 젠장같은 날씨가 짜증나지 않는건, 순전히 이 얼음꽃 덕분이다.
원래 빛과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비온뒤의 습함 혹은 안개 속에서 뿌옇게 퍼져나가는 가로등 불빛이었다. 안개까지 자욱한 오늘 밤, 뿌연 가로등 불빛 속에서 얼음꽃은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빛난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어느덧 걸음은 느려졌다. 귀에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덕에 특유의 자근자근한 얼음 소리가 감긴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 반짝거림을 바라보며 동시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는 나를 느낀다. 이 순간 내가, 세상이 너무나도 좋다. 빛과 물과 공기가 선사한 이 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그 광경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아, 세상은 정말 살아볼만한 곳이구나.
뭔가 내 눈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내 자신이 뭔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트해 수평선에 걸려 끝내 지지 못했던 태양, 캠브리지 King's College의 Cathedral 출구를 나오며 만났던 그 영국의 아찔한 하늘, 그리고 이젠 그 목록에 코넬 Arts Quad에 가득 핀 얼음꽃이 추가 되었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 것이 많고, 그 많은 것들을 다 챙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