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이하는 학기중의 발렌타인 데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 시기가 방학이라 못받는 이유로 방학을 탓하며 애써 날 위로 했었는데. 여기서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미국 유학생들은 딱히 남녀를 따지지 않고 뭔가 주고 받는 분위기인가 보다. 주는 것은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받는 것은 좋긴 좋은 일이지만 부담스러운 일이다. 주고받는 것보단 안주고안받는 게 훨씬 좋다는, 이런 메마른 감정과 귀차니즘.
발렌타인데이, 더 귀찮은 이유중에 하나는 나는 초콜릿보다 사탕이 더 좋다는 것이다.ㅎㅎ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왜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는 이렇게 반대로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초중고 시절 초콜릿을 받으면 (별로 받은 적도 없다만) 주로 누나들이 즐거워 하며 내 초콜릿을 먹었다. 초콜릿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는 그런 누나들이 별로 밉지도 초콜릿이 아깝지도 않았다. 단걸 별로 안좋아하는 나로써는 초콜릿이 있으면 그냥 주변 사람들을 주곤 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 겨울방학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 앉은 입술에 피어싱한 여자애가 기내식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이 다 녹아빠졌다고 스튜어디스한테 새로 달라길래 나 초콜릿 안먹으니까 먹을래? 하면서 줬던 기억이 있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 과연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받을 수 있을까 - 당연히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같은 동아리의 한 여자애가 초콜릿을 주었다. 물론ㅎ, 동아리 멤버 전체에 돌리는 거를 받은 거다. 고마워는 했지만, 음 저걸 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도 그렇고 어쩐다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기분이 쌉싸름해 졌다.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알고서, 별 말 없이 알아서 발렌타인 데이에 나에게 사탕을 선물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내가 화이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해 줄 사람,
혹은 내가 초콜릿 싫어하는 걸 아니까, 발렌타인 데이라고 나에게 초콜릿을 사주고서는
너 근데 초콜릿 싫어하지? 내가 먹을께~ ㅋㅋ
하고 마냥 웃으며 내 앞에서 그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사람.
서로 뭔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럴 사람.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