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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7. 15:17
[일상]
여기 있은지 한 3주차쯤 부터인가, 초저녁에 아파트 문을 나서서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면 뭔가 반짝 거리는 불빛이 보인다. 처음에는 요새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허한 나머지 헛게 보이나 했다. 고작 한 3주 했는데 이러다니 나 스스로가 참 불쌍하다 싶었다.
그런데 고 깜박이는 불빛이 내 시야 속에서 일정한 위치에서만 계속 보이는게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끊이지 않게 계속 보이는 것이었다. 눈의 문제라면 내 시야의 일정한 위치에서 계속 보여야 할텐데, 그럼 눈이 이상한건 아닌가보다 - 따위의 별로 그닥 체계적이지 못한 논리를 펼치며 저 불의 정체가 뭘까 생각했다.
그 다음 생각난 건 - 드디어 내가 도깨비 불을 보는 건가. - 하는 거였다. 음, 도깨비 불은 공기중에 떠다니는 인이 산화되면서 생기는 불이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인의 종류에는 흰 인과 붉은 인이 있는데 붉은 인은 성냥개비 끝에 붙어 있는 그것으로써 상온에서 발화가 안되지만 흰 인은 상온에서도 발화가 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도깨비 불의 정체다. 흰 인과 붉은 인의 차이는 결정구조의 차이로써 4개의 인 원자가 사면체의 형태로 하나의 결정을 이루는 것이 흰 인이고 붉은 인은 결정이 아닌 연속된 체인의 형태로 인 원자가 이어진 것이다. 고온에서 인을 녹인 후 급히 식히는가 서서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두 인으로 갈리는데, 전자는 붉은 인 후자는 흰 인이 된다. 이렇게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을 띠는 것을 동소체라고 하는데 인 외의 대표적인 동소체로는 황이 있겠다. 어? 근데 서서히 혹은 급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달라지는건 황이었던가, 모르겠네. 음 아무튼 보통 도깨비불은 묘지 부근에서 잘 보이는데 이는 사람의 뼈에 흰 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이 썩고 시체가 토양과 섞이면 그 흰인이 흙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공기 중을 떠다니게 된 인이 산화되면서 도깨비불이 보인다. 음, 근데 여기 주변이 묘지인것도 아닌데 어디서 인이 이렇게 많이 흘러오는 거지? - 따위의 생각이 마구 터져나왔다. 음. 그나저나 다른 친구들도 이걸 봤으려나. 영어로는 도깨비 불을 뭐라고 할까. 얘기해 봐야겠네. - 이러며 5분가량도 걸리지 않는 집과 헬스장 사이의 거리를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였나. 그날따라 너무나도 많이 그 불빛이 보였다. 그냥 - 또 보이네 - 하며 지나가고 있는데 우연찬게 내 눈앞 한뼘 거리에서 갑자기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며 꺼진 불빛이 위치한 곳을 살펴보니, 곤충이 날아가고 있었다. 하하. 불빛의 정체가 이녀석이었구나. 이게 반딧불인가? 음 뭔가 아닌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반딧불이를 실제로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구나. - 이러는 와중에 그 녀석은 날아가 버렸다.
순간 멍했다. 그리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냥 곤충 한마리일 뿐인데, 나는 어쩜 그렇게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내가 배우고 경험한 세상을 바탕으로 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려고 하는거야 당연한 거긴 한데, 그 이미 구축된 나의 세상이라는 것이 어찌나 이렇게 좁은 걸까. 반딧불이라는 생각보다 도깨비불의 정체가 흰인이라는 해석이 내 머리속에 먼저 떠올랐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딱 이럴때 적용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어릴적에 반딧불이를 보고 자랐다면 - 어라, 미국에도 반딧불이가 있구나 -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산골에 위치한 할머니댁 덕분에, 그리고 친구들에 비해 나름 시골에 위치한 환경 덕분에 나는 그래도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반딧불이를 보고 도깨비 불에 흰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더 배워서 더 어리석은 이 현실. 마냥 웃기지 않은가.
작은 반딧불이한테 이번에 많이 배웠다. 고 녀석은 자기가 작지만 뜻깊은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 짝을 꼬실려고 그렇게나 불을 깜빡거린 것이었을텐데 말이다.ㅎㅎ
첨언 : 내 중학과학경시의 기억은 어쩜 아직도 저렇게나 상세하게 남아있을까. 그 시절엔 정말 내가 열심히 했었구나 싶다. 몇번에 몇번을 걸쳐 외웠으니까 5년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다 기억나는 거겠지. 그 시절의 내가 참 자랑스럽긴 한데, 한편으론 참 그립다.
그런데 고 깜박이는 불빛이 내 시야 속에서 일정한 위치에서만 계속 보이는게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끊이지 않게 계속 보이는 것이었다. 눈의 문제라면 내 시야의 일정한 위치에서 계속 보여야 할텐데, 그럼 눈이 이상한건 아닌가보다 - 따위의 별로 그닥 체계적이지 못한 논리를 펼치며 저 불의 정체가 뭘까 생각했다.
그 다음 생각난 건 - 드디어 내가 도깨비 불을 보는 건가. - 하는 거였다. 음, 도깨비 불은 공기중에 떠다니는 인이 산화되면서 생기는 불이다.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인의 종류에는 흰 인과 붉은 인이 있는데 붉은 인은 성냥개비 끝에 붙어 있는 그것으로써 상온에서 발화가 안되지만 흰 인은 상온에서도 발화가 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도깨비 불의 정체다. 흰 인과 붉은 인의 차이는 결정구조의 차이로써 4개의 인 원자가 사면체의 형태로 하나의 결정을 이루는 것이 흰 인이고 붉은 인은 결정이 아닌 연속된 체인의 형태로 인 원자가 이어진 것이다. 고온에서 인을 녹인 후 급히 식히는가 서서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두 인으로 갈리는데, 전자는 붉은 인 후자는 흰 인이 된다. 이렇게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을 띠는 것을 동소체라고 하는데 인 외의 대표적인 동소체로는 황이 있겠다. 어? 근데 서서히 혹은 급히 식히는 가에 따라서 달라지는건 황이었던가, 모르겠네. 음 아무튼 보통 도깨비불은 묘지 부근에서 잘 보이는데 이는 사람의 뼈에 흰 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이 썩고 시체가 토양과 섞이면 그 흰인이 흙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공기 중을 떠다니게 된 인이 산화되면서 도깨비불이 보인다. 음, 근데 여기 주변이 묘지인것도 아닌데 어디서 인이 이렇게 많이 흘러오는 거지? - 따위의 생각이 마구 터져나왔다. 음. 그나저나 다른 친구들도 이걸 봤으려나. 영어로는 도깨비 불을 뭐라고 할까. 얘기해 봐야겠네. - 이러며 5분가량도 걸리지 않는 집과 헬스장 사이의 거리를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였나. 그날따라 너무나도 많이 그 불빛이 보였다. 그냥 - 또 보이네 - 하며 지나가고 있는데 우연찬게 내 눈앞 한뼘 거리에서 갑자기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며 꺼진 불빛이 위치한 곳을 살펴보니, 곤충이 날아가고 있었다. 하하. 불빛의 정체가 이녀석이었구나. 이게 반딧불인가? 음 뭔가 아닌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반딧불이를 실제로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구나. - 이러는 와중에 그 녀석은 날아가 버렸다.
순간 멍했다. 그리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냥 곤충 한마리일 뿐인데, 나는 어쩜 그렇게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내가 배우고 경험한 세상을 바탕으로 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려고 하는거야 당연한 거긴 한데, 그 이미 구축된 나의 세상이라는 것이 어찌나 이렇게 좁은 걸까. 반딧불이라는 생각보다 도깨비불의 정체가 흰인이라는 해석이 내 머리속에 먼저 떠올랐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딱 이럴때 적용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어릴적에 반딧불이를 보고 자랐다면 - 어라, 미국에도 반딧불이가 있구나 -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산골에 위치한 할머니댁 덕분에, 그리고 친구들에 비해 나름 시골에 위치한 환경 덕분에 나는 그래도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반딧불이를 보고 도깨비 불에 흰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더 배워서 더 어리석은 이 현실. 마냥 웃기지 않은가.
작은 반딧불이한테 이번에 많이 배웠다. 고 녀석은 자기가 작지만 뜻깊은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 짝을 꼬실려고 그렇게나 불을 깜빡거린 것이었을텐데 말이다.ㅎㅎ
첨언 : 내 중학과학경시의 기억은 어쩜 아직도 저렇게나 상세하게 남아있을까. 그 시절엔 정말 내가 열심히 했었구나 싶다. 몇번에 몇번을 걸쳐 외웠으니까 5년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다 기억나는 거겠지. 그 시절의 내가 참 자랑스럽긴 한데, 한편으론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