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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 해당되는 글 1건
2009. 9. 14. 00:44
귀국 후 입대 전 3주간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텔레비전 광고는 대한항공 황하편이었다.



사기 이사열전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책 [오래된 정원]의 후기에서 황석영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나의 반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인 듯한 생각이 든다. 곡절 많은 세월이었지만 나는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문학을' 오롯이 살아냈다. 어쨌든 죽는 날까지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산전수전은 작가로서의 마음바탕이 되었으리라.



입대한다는 소식에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며 내게 말을 건넨 친구들에게 늘 했던 얘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이때쯤 되면 졸업은 얼마 남지 않았고, 뭔가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막연한 두려움 답답함은 지워지지 않고, 그런 현실을 도피하면서 좀 쉴 수 있는 아주 괜찮은 핑계로 군대가 딱이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투로 뱉은 말이긴 하지만 농담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대학교에서의 2, 3년 후 입대하는 친구들의 상당수가 저 말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어찌됬든 나의 지난 2년은 50점짜리였다. 뭣도 모르고 100점을 기대하고 시작했지만 나의 현실은 빵점이었고, 나름의 부단한 노력 끝에 점수를 끌어올리긴 했다지만 그러는 와중에 수많은 현실과 타협해버렸다. 그렇게 결국은 50점이라는 절충안에서 자리를 잡아버린 것 같다. 가끔씩 그런 현실과 내 자신이 몸서리치도록 싫었지만, 나약한 핑계를 대자면 그 속에선 도무지 더 어쩔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왜 결국 현역으로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냐고 물으면 이렇게 얘기했다. 현역 경험이 없다면 느낄 것만 같은 부채감이 5프로 정도, 군문제를 미리 해결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거라는 생각이 25프로 정도, 그리고 현실도피욕구가 70프로 정도. 제대 후엔 그래도 빵점이 아닌 50점부터 시작하는데, 그때엔 내 타협점을 100점까진 아니라도 90점으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2년 후에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과 그때의 현실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치만, 똑같은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해도, 중간에 평지에서 숨을 한번 고르고 난 후라면 그 길을 좀 더 잘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초연超然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용감하고 담담하게. 어떠한 믿음이나 신념을 맹신하거나 거기에 함몰되어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염세적이지 않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일 수 있는 마음. 나는 내가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히며 살아가면서도, 과정을 즐겼기에 훗날의 보상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은 되게 거창한데, 짧게 말하자면 -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 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ㅎㅎ



적다보니 출사표마냥 되어버려 좀 멋쩍다.ㅎㅎ 그치만 가벼운 마음으로 향한다.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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