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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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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
Penguin Classics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1권이었던 이유로 (그래도 읽지는 않았었지만) 제목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책이었다. 나도 왠지 모를 이유로 제목에서 굉장히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1930년대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에 괜히 놀래버렸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가 닥치자 은행들은 서류상으로만 소유하고 있었던 미국 남부의 척박한 땅들까지도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주인 없는 땅이라고만 생각하고 2-3대째 개간한 끝에 가까스로 자리잡고 살아가고 있던 농민들은 쫓겨나게 된다. 이 [분노의 포도]는 그런 농민 가족 중 하나인 조드 가족이 생존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길 위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겪는 일들에 관한 책이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스타인벡은 실제로 주변 이주민들의 처참한 삶을 보게 되고, 그 내용을 책으로 쓰기로 마음 먹고는 오클라호마로 직접 찾아가서 한 이주가정과 동행하며 취재한 끝에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황석영의 [객지], [삼포 가는 길]로 대표되는 우리네 1970년대의 현실주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참하리만큼 보편적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한국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우리네만 겪은 역사라는 생각에 부끄러우면서도 (어느정도는) 그 과거를 이겨낸 현실에 자랑스러워했던 부분들 전부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恨의 정서, 가족애, 모성의 위대함 등은 우리들 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심 미국 애들을 향해 - 니네가 이걸 알어? - 라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과거는, 그들이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50년 일찍 겪었던 것이었다. 더욱 재밌는 사실은, 내가 1970년대의 한국을 병치하며 공감할 수 있었던 이 책이 독자들이 꼽은 역사상 가장 미국적인 소설 1, 2위를 다툰다는 점이다. 미국 독자가 잘 번역된 [삼포 가는 길]을 읽는 다면, 그는 반대로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며 나처럼 삶의 보편성에 대해 놀라워 하지 않을까.

책은 이렇게 내게 생각치도 못한 깨달음을 주었지만, 그 지독한 내용 덕분에 반가움이기 보다는 숨막힘에 더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특히 책 중간 어머니의 위대함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표현된 부분에선 울컥 하고 말았다.) 책 속의 각종 인간군상들의 관계가 단순한 가해자-피해자의 구도를 넘어서서 자본주의라는 제도 아래에서 모두가 피해자일 수 밖에 그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 강력히 고발하면서도, 그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현실들을 '굳게 다문 입 사이로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조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한다.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읽히는 위대한 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책이 쓰여진 시대를 초월하는 내용이거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내용이거나. [분노의 포도]는 후자에 속하는 책일거다. 아니, 후자에만 속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1930년대를 대표하는 이 책의 내용이 한국의 1970년대와 공감대를 가지고, 또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는 지금 이 2000년대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책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비인간성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갈무리들.

Page 11
He[Joad in a truck] rubbed the butt to a pulp and put it out the window, letting the breeze suck it from his fingers.


Page 72
Tom stood looking in. Ma was heavy, but not fat; thick with child-bearing and work. ...[중략]... She looked out into the sunshine. Her full face was not soft; it was controlled, kindly. Her hazel eyes seemed to know, to accept, to welcome her position, the citadel of the family, the strong place that could not be taken. And since old Tom and the children could not know hurt or fear unless she acknowledged hurt and fear, she had practiced denying them in herself. And since, when a joyful thing happened, they looked to see whether joy was on her, it was her habit to build up laughter out of inadequate materials. But better than joy was calm. Imperturbability could be depended upon. And from her great and humble position in the family she had taken dignity and a clean calm beauty. From her position as healer, her hands had grown sure and cool and quiet; from her position as arbiter she had become as remote and faultless in judgment as a goddess. She seemed to know that if she swayed the family shook, and if she ever really deeply wavered or despaired the family would fall, the family will to function would be gone.

Page 77
Tommy, looking at her, gradually drooped his eyelids, until just a short glitter showed through his lashes.

Page 225
"You think it was a sin to let my wife die like that?"
"Well," said Casy, "for anybody else it was a mistake, but if you think it was a sin - then it's a sin. A fella builds his own sins right up from the groun'."

Page 230
"It's purty," she said. "I wisht they[Grampa and Granma] could of saw it."
"I wisht so too," said Pa.
Tom patted the steering wheel under his hand. "They was too old,"he said. "They wouldn't of saw nothin' that's here. Grampa would a been a-seein' the Injuns an' the prairie country when he was a young fella. An' Granma would a remembered an' seen the first home she lived in. They was too ol'. Who's really seein' it is Ruthie an' Winfiel'."
Pa said, "Here's Tommy talkin' like a growed-up man, talkin' like a preacher almos'."
And Ma smiled sadly. "He is. Tommy's growed way up - way up so I can't get a holt of 'im sometimes."

Page 283
The local people whipped themselves into a mold of cruelty.

Page 284
The great companies did not know that the line between hunger and anger is a thin line.
2009. 7. 20. 23:09
Museo Julio Romero de Torres
2009/01/09 코르도바 Cordova

코르도바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는 Julio Romero de Torres. 독특한 화풍에 들려볼만하다는 론리 플래닛을 믿고 방문했었는데, 이 미술관 등등을 통해 마냥 유명한 큰 미술관도 좋지만 적당한 크기의 도시에 자리 잡은 적당히 덜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때로는 좀 더 살갑게 다가온다는 걸 느꼈다. 그치만 이런 미술관에서 인상깊었던 그림들은 필히 직접 사진을 찍어야 하는 듯 하다. 인터넷에서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

작품의 대부분에서 여성이 주인공이었고, 그림 속 여성들의 강렬한 눈빛과 묘한 섹시함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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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 de Sant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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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scopeta de c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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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hiquita Picon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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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ecado




2009. 7. 17. 03:49
이스라엘에서 둘러본 곳들 - 1


06/18-19 텔아비브 Tel Aviv
4000년 역사의 항구라던 Jaffa에서는 진짜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새 건물만 있길래 조금 실망했다. 텔아비브의 집들은 모두 하얀 색이었는데, 더운 나라라면 당연한 하얀 집들을 보고 - 그리스 같다.. - 고 생각하는 날 발견했다. 역시나 첫인상은 참 중요하다.

지중해로 떨어지는 석양을 봤다. 간간히 파도자락에 흰 달빛이 비추기도 했지만, 밤 바다는 정말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이제 육지 내에서는 어느 곳이듯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는 경우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텐데, 그런 생각때문이었을까, 괜시리 마음이 시원하게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치만 그런 반가운 마음 한 켠으론, 무척 무서웠다. 원양어업선 위의 선원들은 매일 밤 아무 불빛없는 사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06/29 마사다 Masada, 사해 Dead Sea, Ein Prat - 여름 인턴 단체 여행.
1세기경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장소 중 하나. 끝까지 저항하다가 패배가 확실해지자 모두들 자결하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 얘기에 당연스레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끝까지 저항하던 그 사람들의 명칭에서 질럿Zealot이란 말이 유래했다.) 동편엔 사해가 보였고 서편엔 험준한 바위사막이 있었다. 유적보다도 주변 경관이 압도적이었고, 여기가 이런데 그랜드 캐니언 가면 정말 기절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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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꼭대기에서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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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에서. 유명한 사진처럼 책읽는 포즈를 잡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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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Prat에서의 하이킹을 마치고 규섭이와 한 장.



07/03 아코 Akko
혼자 찾아갔던 도시. 기원전 19세기 이집트 문헌에서부터 등장한다는 아코는 가장 다사다난 했던 도시 중 하나다. 헤라클레스가 부상 회복을 위해 쉬어갔다는 전설도 있고, 알렉산더 대왕도 지나갔었다고 한다. 십자군 시절에는 유럽 각지에서 오는 십자군들과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이던 항구였고, 살라딘에게 잠시 빼앗기기도 했던 도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밑에 있다가 근대에 이르게 됬다.

아코를 갔다 온 며칠 후 네이버 오늘의 세계 인물의 주인공으로 사자왕 리처드가 등장한 것을 봤다. 리처드가 살라딘과 이 아코에서 했던 전투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등장했다. 묘한 인연/타이밍이 참 재밌었다.

좁은 길들을 이곳 저곳 뒤지고 다니면서 십자군들이 지었던 건물의 흔적과 모스크 등을 둘러보았다. 대체 종교가 뭐길래 이 거대한 것들을 짓고 부수고 다시 짓고 다시 부수고 또 짓고 또 부수고 했을까.




07/14 예루살렘 - 여름 인턴 단체 관광.
예루살렘 근교에는 Yad Vashem이라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반유대주의의 기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서, 히틀러의 등장부터 2차대전의 끝까지는 그들의 만행과 유대인들의 안타까운 역사에 대한 아주 상세한 설명/인터뷰/자료 들이 이어졌다. 2차대전만 아니었어도 독일이 지금의 미국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고, 그 비인간적인 학살의 방식을 보며 인간은 참 어이없게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역사이니만큼 어느정도는 감정이입을 하고 관람을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잘 마련된 기념관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러곤 참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작 이 먼 곳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에는 와봐도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은 가 본적이 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덧붙여 예루살렘 관광에서 여름 인턴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이 참 정치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비드 시 city of David에선 Hezekiah의 터널이란 곳이 있었다. 3000년 전의 사람들이 400미터 가량의 터널을 뚫어 예루살렘으로 물을 공급하는 터널을 만들었는데, 그 터널을 관광객들이 따라 걸어갈 수 있었다. 단순히 끌과 망치로만 그 터널을 만들었을텐데, 역시 고대인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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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ien, Nathanel과 함께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성지에선 여성들은 어깨를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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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유적 중 한곳에서 여름 인턴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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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시에서 올리브 산 Mt. Olive을 배경으로.

연구소에서 마련해준 단체 여행인 만큼 유대인과 관련된 부분들만 둘러보게 되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관련 장소들은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가 볼 계획. 예루살렘까지 가서 예수님 무덤이랑 십자가를 안보고 돌아올 순 없잖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