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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해당되는 글 6건
2012. 6. 13. 12:3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나는 5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다녔고 어머니는 그 바로 앞의 마트에 일을 다니셨다. 6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후 7시에 일을 마치시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낮잠을 자다 눈을 뜨니 그만 6시 40분이 넘어 있었다. 깜짝 놀라 헐레벌떡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지만, 수업에 들어가도 어짜피 몇 분 안되 끝날거라는 걸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꿔 마트에 들어갔다. 잠깐이나마 그냥 학원 잘 갔다가 마치면서 어머니를 보러 온 것처럼 행세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용서를 빌고, 설사 많이 혼나더라도 잘못한 벌은 달게 받아야된다는 돌이켜보면 기특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를 뵙고,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자다가 학원을 안갔어요-말했는데, 그 때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씀없이 날 바라만 보셨다. 몇 초 묵묵한 눈빛으로 날 보시다 몇 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서 혼내지 않으신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어머니의 표정이 기억나는 거 보면 그 어린 마음에도 그 표정의 함의가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었나보다. 


저지난 주말이 우리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하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졸업식을 보러 오셨고, 그 친구의 초대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러가지 가벼운 대화가 오고가던 가운데, 그 친구도 나도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친구 어머님께서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한동안 아들을 군대보낸 어머니의 맘고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입대식 때 삐뚤삐뚤한 줄 속에서 경례하던 아들의 모습, 일주일쯤 뒤 소포로 배달된 아들의 옷과 편지를 보고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 첫 면회때 아들의 모습, 등등. 군대가 짧아지고 편해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의 입대는 어머니에게 무거운 일이고, 또 거꾸로 아들들에겐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내가 입대할 때는 신종플루 덕분에 입대식이 없었다. 논산 훈련소 입구 바로 뒤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 선에서 부모님과 인사하고 혼자 걸어들어가게끔 했다. 그 앞 잔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이윽고 이제 진짜 입소해야할 시간이 됬다. 아버지와는 가벼운척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고, 이제 어머니와 인사할 차례. 포옹 후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으셨다. 그렁그렁한 눈빛과 손 안에 꽉 담긴 힘. 옆에선 기간병이 얼른 들어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끝끝내 날 놓지 못하는 그 손을 그냥 뿌리칠 순 없었다. 두 손 모아 어머니의 손을 몇 차례 꽉 감싸쥐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손을 놓으셨다. 그렇게 안녕 - 손을 흔들고 난 후, 나는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고 연병장을 향해 걸었다.

첫 휴가날,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머니께서 기다리시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우리집 차가 보였고 그 속에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차 속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발견하셨나보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시더니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부들부들 떠시던 그 모습. 그리고 나를 보는 눈물 가득했던 그 눈빛. 조수석에 타자마자 얼른 내 얼굴부터 만지셨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무제한적인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내 평생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만큼 잘해드린다고 해도, 그 눈빛에 담긴 사랑만큼 돌려드릴 수 있을까. 훈련소에서의 그 손길과 첫 휴가날 그 눈빛을 떠올리면 나는,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입대 며칠 후 배달된 소포 속 편지 얘기를 하는 친구 어머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교들의 눈치 속에서 몰래 쓰느라 마음이 급했는지, 편지 속 삐뚤삐뚤한 글씨며 곳곳에 틀린 맞춤법이 더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편지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지금도 금방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때 였다. 그저 옆에서 미소짓고 계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갑자기 지갑을 꺼내셨다. 지갑 속 한 켠에선 꼬깃꼬깃 접힌 친구의 편지가 나왔다. 이번엔 내가, 금방,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2011. 8. 17. 02:16

2009. 09. 14 ~ 2011. 07. 10

하나. 서론
전역하면 꼭 군 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무 기간 동안 새로운 경험이나 느낌을 받을때면 그 내용을 꼭 머리 속에, 그리고 수첩 속에 갈무리 하곤 했다.


둘. 군생활은 정말 잃어버린 시간일까?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전역했다. 결국은 나도 저러한 접두어를 쓰며 제대를 묘사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년이 온전한 낭비와 잃어버린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으로써의 2년에 걸맞는 생산성을 지닌 시기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군생활 후반부쯤부터 미필인 사람들에게 여러번 말하곤 했다. - 군대, 와서 배우는 것도 많으니까 굳이 억지로 안올 것 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합법적인 절차로 안올 수 있다면 안오는 것이 낫다고.

회한스럽게 시작했지만 ㅎㅎ 물론 말했던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군생활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남은 평생 겪을 조직생활을 2년이란 기간에 압축해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고와 유학생이라는 지엽적인 경로로 살아왔던 입대 전 5년 가량의 시간동안 잊었던 보통다수의 삶에 대해 다시금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 아부지와의 절대적 공감대가 하나 더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제일 반가웠다.


셋. 천안함과 연평도.
내가 직접적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것은 분명 남다른 경험이었다. 천안함때 느꼈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나 내 속이 상하던지, 답답한 현실은 눈물을 흘리기에도 부끄러웠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다.

특히나 연이어 벌어지는 논란에 속터지게 답답했다. 그 어느 증거와 정황을 떠나서, 우리나라 해역에서 우리 함정이 두 동강 났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느 정황도 100% 확실하게 북한의 소행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원인이라는 증거도 명백하지 않다면 일단 북한부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실제로 정부의 조사 결과와 발표가 틀렸다고 할지라도 그 것이 북한의 공격이라고 결론지은 정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틀림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것이었다면 나도 경악하겠지만, 나는 다시금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또 속겠다. 0.01%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하며 우리나라 정부를 불신하며 살 수는 없다. 첨언하자면, 한편으론 그런 음모론적 의견도 마음껏 개진하는 모습을 보며 기쁘기도 했다 - 이정도까지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구나! - 하지만 0.01%의 가능성이라면 국민의 0.01% 정도가 그런 의견을 개진하는 게 표현의 자유지 그의 천배 만배 되는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전투 중에 전사한 해병대 장병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저런 논란 때문에 연평도 포격은 사실 전화위복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로 아무도 이제 북한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직접 겪지 못했기에 과거의 군사정권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현재의 10대, 20대들이 오히려 30대보다 더 투철한 안보의식 - 혹은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 - 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 세대의 구성원이고.

훈련소에서 '진군가'라는 군가를 처음 배웠을 때 그 가사 - 백두산 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 에 조금 놀랐었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 '밀고 나가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 훈련소에선 그렇게 민감하게 다가왔는데, 군생활 하면서 내가 쇄뇌당한걸까? 지금 보기엔 당연한 가사인 것만 같다. 어찌됬든 총칼을 겨누고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주민은 아닐지 몰라도 엄연히 북한이라는 국가는 우리의 적이다. 맞다. 둘 다 총을 내려놓고 얼싸안으면 조국의 통일이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결국은 모두가 최고의 이익을 얻는 게임이론적 평화를 주장하기엔 내 목숨은 한 개 뿐이고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총을 내려놓진 못하겠다.


넷. 군생활은 힘들다. 
나의 군생활은 밖에 나와서 자랑할만큼 대단하거나 힘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디가서 부끄러워할만큼 시시하거나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어찌됬든 군생활은 힘든 것이다. 해병대건 행정병이건, 전방이건 후방이건, 육군이건 카츄사건, 현역이건 산업체건, 군생활은 힘들다. 결국 힘든 건 노동의 강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의 정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복무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국가제도의 폭력적 강제성에 휘둘려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 아무리 할만한 일과 훈련이더라도 진절머리나는 가혹행위가 되고 만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마취제 덕에 그 사실을 잊고 2년간의 군생활을 버티어 내지만, 그래도 한번씩 마취가 풀릴때면 분통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유난히 사소한 의미에 민감하고 섬세한 면이 있다.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첫 날, 밤 늦게 농협을 갔다. 밤 10시에, 반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고, 집 밖으로, 어머니와 함께, 나서는 순간 - 눈물이 날 뻔 했다. 아, 나 이제 진짜 전역했구나. 이제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 박탈된 자유의 복권. 저 지극히도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하다못해 채식홍보 켐페인단의 서명부탁도 거절했던 나였는데, 이제 지하철 역에서 국제 앰네스티 활동에 서명을 추가할 수 있는 어엿한 민간인이 된 것이다. 개인이 아닌 부분이 되어 스스로의 (이른바) 정치적 정체성을 잃고 복무했을 전의경들이 특히 저런 부분에선 전역후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다섯. 어머니
아무리 군대가 편해지고 짧아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군대라는 곳은 남자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직접 겪어서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아버지보다, 부풀고 과장된 소문들로만 군대를 접한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입대가 그리도 무거운 일인가 보다. 훈련소 바리케이트 너머로 내 손을 끝끝내 놓치 못하시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첫 휴가때 터미널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시던 어머니의 눈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정녕 누군가에게 이리도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 손길과 눈빛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섯. 돌이켜보면.
전역한 지금에 이르러선 대학교를 1년만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게 아쉽다. 어짜피 할 거라면, 가능한한 빨리 할걸.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데, 군복무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이 날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원죄같은 걸지도 모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어짜피 받을 벌이라면 빨리 받는 게 좋다. 자랑스런 국방의 의무를 죄에 비유하다니 국방부와 기무사에서 이 글을 보면 천인공노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꺼야? 난 이제 민간인인데.


일곱. 결론
어쨌든 군생활이라는게 이 글의 제목처럼 반점하나 찍고 숨 한번 돌리지 않고서는 말 할 수 없는 경험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내 가장 최근 2년이니까 별 수 없겠지. 그것이 허송세월이었을지 알찬 시간이었을지 군생활의 의미에 관한 길고 긴 탐색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 어떻게 보낸 시간인들, 20대에 의미없는 2년이 어딨겠는가? 

각설하고 지금까지의 글이 너무 길었다면 이 한 문장만 읽으면 된다.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윤종민이에요~
그리고 이 글의 독자 중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복무 해결에 대해 고민중인 군미필자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생각하지마. 그냥 지금 입대해. 그것이 정답.





그리고 나의 군생활을 위로해준 문화적 존재들에 대한 내맘대로 Top List.

1. 최고의 작가 : 김훈
칼의 노래, 남한산성도 좋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도적이었던건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중편 [화장]. 살을 에는 잔혹함에 그가 괜히 손꼽히는 작가인게 아니구나 싶었다. 마찬가지로 박완서님도 경탄스러웠고.

2. 최고의 단편 : 구효서, [밤이 지나다] - 2004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객관적 탁월성은 [화장]이었다면 나의 주관적 최고작은 이 단편이었다. 서정적 아름다움과 공허함, 욕망, 혼란. 그냥 읽어봐ㅎㅎ 그 외엔 신경숙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권지예 [꽃게 무덤], 이혜경 [그리고 축제]

3. 최고의 책 :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는 정말 압도적 영웅이었다.

4. 최고로 힘들었던 책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300쪽이 넘는 책을 감히 영어로 읽겠다고 덤비다니. 결국 다 읽었지만 정신력 소모도 컸다 ^^

5. 최고의 가수 : f(x)
NU ABO부터 좋았다. 그냥 '꿍디꿍디'에 팍 꽂혔고 피노키오에서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징징윙윙'이라고 노래불러 주었다. 포스트모던한 가사와 멜로디의 선구자!

6. 최고의 노래 : SanE, LoveSick
봄날의 감성힙합. 들을 때마다 첫사랑이 생각나던 노래. 아쉽게 2위한 노래는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

7. 최고의 드라마 : 로열 패밀리
따로 쓴 리뷰를 참조하세요~

8. 최고의 여배우 : 김태희
아이리스도 재밌긴 했지만 군인에게 최고는 역시 마이 프린세스였다. 발랄한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신세계(?!)를 나에게 열어주었다. 십몇화가 넘어가면서 드라마 내용이 산으로 갈때마다 그만 볼까 싶다가도 그냥 태희누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소름끼치게 이쁘다. 태희누나 사랑해요 히히

9. 최고의 광고 : 두산, 서점편
한번씩 나 자신이 의심스러울때면 생각날 것 같다. 볼때마다 울컥울컥했던 광고. 다음에 따로 올리겠다.
2009. 6. 20. 08:11
그렇습니다.
9월 14일 논산에서 입대합니다.
절대 붙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어학병 시험에 붙어버렸네요 ㅎㅎ

군대를 가는 길에 시험/합격이라는 과정이 속해 있어서인지
결국 군대에 오라는 통지인건데 그걸 보고 좋아라 하고 있는게 뭔가 웃기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제 진짜 가는군요.
2008. 11. 23. 19:32
#1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128쪽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그리고 연기를 한다.

163쪽
도대체 어째서 나는 어른으로 심판받고 추방되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선언되고 탄광으로 보내지고 그렇게 모든 데에서 어른이어야 하면서 사랑에서만은 어른이 될 권리도 없고 이렇게 미숙해서 모든 창피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20대가 되면 어른이 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현실을 마주친 그 첫 시기에, 저 구절들은 나에게 정말 뜨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벌써 거의 20대의 2년을 보낸 지금, 이젠 - 왜 대체 나는 어른인척해야 하는가 - 라고 어리광 부리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그렇다. 어리광. 나는 어리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 나만 왜 나만 - 이라고 외치는건 어리광이다. 세상에 대한, 주변 사람에 대한, 그리고 본인에 대한. 이젠 그렇게 투정부리고 싶을때 잘 참곤 한다. 그리고 그럴때면, 저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도 저 구절이 뜨겁게 내 마음에서 울리는건, 여전히 나는 어리광 피우는 중이라는걸. 아직은 좀 더 커야 한다는 걸.



#2
이번 학기에 유독 내 주변 사람들의 이성관계가 시끄럽다. 만나기만 하면, 맥주 한잔만 걸치면 오직 그런 얘기 뿐이다. 지금은 그런 문제들에 한걸음 비켜서 있는 나로써는 그저 웃으며 내 나름의 조언들을 해줄 뿐인데, 스스로 말하면서도 과연 내 조언이 신빙성이 있는가 싶을때가 많다 ㅎㅎ 나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을게 뻔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왕좌왕 고민고민 좌충우돌 찌질찌질 대고 있는 얘기들을 듣다보면 과거의 내가 많이 생각난다. 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 4년간의 기억들이 약간은 찝찝하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요즘엔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단 생각이 많이 든다. 나는 그래도 일찍 감정적으로 풍부한 경험들을 -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많이 했구나. 덕분에 그래도 그때보단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하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는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얼마전 다시한번 일기장을 읽어봤는데, 몇번을 혼자 킥킥거렸다. 난 정말 어찌나 그렇게도 뭘 몰랐는지. 여전히 알아가야할 것들이 많이 남았는데, 그땐 정말 훨씬 더 어렸었다. 그때에 나는 여자관계에 있어서 찌질하다고 할 수 있는 왠만한 모든 행동은 다 해봤던거 같다. - 문자로 고백하기, 혹은 엠에센이나 전화로 고백하기, 친구들한테 징징대기, 사소한것에 지나친 의미두기, 혼자 소설쓰기, 안좋은 면만 바라보고 부정적으로만 난 안된다고만 생각하기. - 모두다 지금 현재 내가 남들에게 절대 해선 안되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들인데, 정말 난 다 해봤구나. 그때 정말 무슨 생각으로 저런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3
일기 속 옛 여자친구와 관련된 글 중 거의 마지막 글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다.

070712 오후 5:40 목요일
너 유학가는거 진짜 따악 한달 남았다 ㅇ_ㅇ?
근데 막상 다가오니까
또 ㅎㅎ
너 유학가도 우리 더 잘 지낼 수 있을거 같고 ㅎ
그래 ㅎ
유학가면 당장 몇 달은 너 무지 바빠서 연락 많이 못하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ㅎ
그렇다고 해서 속상해 한다거나 못 믿는다거나 안그럴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잘 하자 +ㅂ+

출국하기 한달 전, 여자친구가 내게 MSN메신저로 했던 말인 것 같다. 그 말을 들었던 그땐 너무나도 고마웠고 행복했고 따뜻해 했었다. 그 친구도 많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비웃고 말았다. 그 수많은 사랑의 속삭임들이 과도하게 분비된 호르몬이 뱉어낸 말들에 불과했던것만 같았다. 얼마나 허무한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래도, 결국 중요한건 그 말의 의미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말을 했던 그 순간의 마음의 진실함일 것이다. 그 정도의 말을 할 정도로 그 순간엔 뜨겁게 사랑했다는 점, 먼 미래도 약속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순간엔 진실했다는 점. 말 하나하나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지는 않되, 그렇다고 너무 허무하지도 말자. 그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작년 가을학기, 틀어진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나는 왠만하면 되돌리고 싶었다. 나는 다시 잘 해보고 싶었고, 힘들겠지만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혹은 믿고 싶었다.)

전화상의 대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곧 맞이하는 방학에 만나서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에 그 친구를 만났다. 다시 시작하자는 나의 말에, 그 친구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했던 말이었기 때문일까. 다듬어지지 않은, 아픈 말들이 많았다. - 솔직히 나는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왔을때 만날 여자를 만들어놓고 싶어서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든다. - 정도의 말들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 충분히 기분나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들 까지는 정말 모두다 이해했다. - 딱 까놓고 말해서, 저 말이 백프로 틀린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결정적이었던건, 이 말이었다. -
네가 물론 유학을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고생하겠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유학이라는게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가는 건데 너는 네가 잘나서 간거고, 그런 면에서 너의 힘듬이라는 것이 배부른 힘듬이 아닌가.

멍했다. 친구들이 마냥 미국갔다고 부러워하며 그런 말을 했을땐 웃어 넘겼었다. 그치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온전하게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아꼈던 힘든다는 말을, 그것도 너무 해대면 무거워할까봐 아껴아껴가면서 몇번만 말했었는데, 나의 그런 말들이 너에겐 그정도의 의미 뿐이었구나. 차라리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이 더 듣기 좋았을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아무리 친해도 내 속을 온전히 열어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하나님조차 믿지 못했던 나에게, 사랑은 절대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런 믿음으로 만난 그 친구였고, 나는 정말 내 마음을 온전히 열었었다. 아무리 친해져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생각들, 마음들 그 모두를 열었던 사람이었는데,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이해한 나의 아픔이라는 것이 고작 저정도의 깊이였구나.

배부른 아픔일거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 친구가 속으로만 저런 생각을 했다면 이해했을 거다. 나도 그 친구가 힘들다고 했던 말들을 온전히 함께 아파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남의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말했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큰 의미없이 뱉어진 한마디였을수도 있고, 본인이 학부유학을 와본것도 아니니까 모르는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정황이었든 간에 그런 말을 나에게 내뱉었고, 그 사실 하나로도 그 친구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가를 알기엔 숨막히게 충분했다. 그건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때에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 친구도 정말 너무 힘들었고, 나한테 섭섭했겠지만, 그 말 만큼은 내겐 해선 안되는 말이었다. 심장이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카페 안의 공기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몇초간의 침묵 후에, 도무지 태연한척 할 수가 없어서, 자리를 벌떡 일어나 나와 그 친구의 찻컵을 들고 새 차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충분한 한마디였다. 그렇게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나는 마냥 웃으며 이런 저런 농담이나 주고 받다가 그냥 헤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 아. 결국은 인생 혼자사는 거구나. 세상에 믿을 사람 정말 아무도 없구나. 남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이 하는 척에 불과한 거구나. 남을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오만한 자세인가.

그 이후의 며칠간 나는 그 말 한마디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며칠간 만난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어딘가 한켠에 정신을 놓고 있는거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고마워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젠 미련 없이, 깔끔하게 잊을 수 있겠지.

만병통치약이라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덕분에 이젠 작년의 그 아픔들에 대해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그 생각들도 이제 - 인간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도, 완전히 이해해 보겠다는 자세만큼은 유지하자. 이해할 수 없는게 현실이라면, 이해의 정도가 아닌 이해하려는 자세가 결국 중요한 것이겠지 - 정도의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젠 그 당시의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게 되었다. 나는 뭘 그렇게 힘들어했고, 고작 말 한마디에 뭘 그렇게 상처받은 걸까. 그 친구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건 당연한 거였는데. 안겪어봤으니까 알리 없잖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젠 머리로 이해가 간다 해도, 그 순간 가슴이 받았던 감정과 상처는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5
이번 학기 시작하면서, 아는 장거리 연애 커플이 대여섯 정도 있었던거 같다. 솔직히 난 속으로 - 한두달 있음 다 깨지겠지, 길어야 한학기다 - 정도로 비웃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정말 끝까지 계속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인들이 있길 바랬다.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 나의 사랑이 물리적 거리에 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자, 나는 부족한건 [내 사랑]이었지 [사랑]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증명해 주길 바랬다. 그래서 나의 비웃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다들 헤어지네.

친한 누나 하나가 그렇게 얼마전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누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과거의 나는 어떤 남자친구였을까 많이 궁금해졌다. 장거리 연애라는 현실 속에서라도 과연 나는 최선을 다했는지, 시간이 흐른다면 남자는 변한다는 비난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운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판단하는 문제니까.

과거의 나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앞으로 좀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등등의 각종 자기 합리화를 거친 후에 결국은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 했고 변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정녕 그게 듣고 싶은 대답이었을까? 기분이 묘했다. 도데체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었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전화를 건 걸까. 헤어진 후에 남자가 할 수 있는 찌질한 짓도 정말 다 해보는 구나.

그리고 내 자신이 참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 말로는 늘 헤어짐의 궁극적 이유는 내가 유학온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내 잘못이 없다고 증명해내고 싶어하는 구나.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구나. - 얼마나 비겁한 생각들인지. 부끄러웠다. 결국은 내 자신에게 좀더 실망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던 걸까.



#6
여자문제에 있어서, 남자가 쿨하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쿨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겁이 많다는 뜻이다. 거절당하거나 꼬이는 것에 대해선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찌질한 단계는 벗어난 거겠지만, 그래도 다가올 아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올인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겁이 많다는 거다.

겨울방학의 그날, 그 친구를 만나서 다시 시작하자고 붙잡으려 했던 말 중에는, - 내년엔 카투사도 지원해서 꼭 되서 한국에 들어올테니까 그렇게 또 만나고 하면 안되겠냐 - 는 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나 부끄럽고 우습고 어린 말이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때 어떻게 저런 말까지 했을까.ㅎㅎ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땐 그렇게 내 바닥을 보이는 것에 대해 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립기도 하다. 다시 그렇게 내 바닥을 드러낼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친구와는 헤어졌지만, 어찌됬든 카투사는 지원했다. 지원여부를 고민할때, 그리고 발표가 임박해 올때 저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 여자친구가 그리워서 였던건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내 자신이 묘하게 그리울 뿐.



#7
며칠전 카투사 결과가 나왔고, 나는 떨어졌다.ㅎ 사실 군대가 정말 너무나도 가고싶다. 모든 남자가 가는 곳 나도 가야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혼자 오바하는) 묘한 부채의식과 함께 지금 당장의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뒤엉키면서, 그저 눈 딱감고 군대 갔다오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현역으로라도 갈지, 나중에 전문연구요원을 할지,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야겠지. 과연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 걸까. 군대를 갈까.



그런데 세상아, 이런 생각만 하고 사는 내가 사실 참 부끄럽다.
2007. 12. 18. 18:50
카투사를 지원했던 친구녀석은 떨어지자 마자 어학병 지원해서 시험쳤고, 아는 선배한분도 입대하신단다. 서울대에서 친해졌던 형도 카투사 떨어졌지만 2월 입영이라 하신다. 간만에 찾은 목욕탕을 나오는 길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기 하나는 다음주 입대란다. 한번 얼굴보자며 만난 다른 중학교 동기 두명은 각각 1월 3월 입영이다. 그네들이 이미 입영한 친구로부터 힘들다는 전화를 한번씩 받는다고 얘기를 전해준다. 그러고 돌아온 집에서는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100일 휴가 나온 또다른 중학교 동기였다. 내가 구미 왔다는 소식에 전화 한번 걸었다며, 얼굴한번 보자면서 자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쪽을 지나가니까 연락하겠다더니 연락이 없다. 내가 연락을 다시 해볼까 싶다가, 가장 친한 녀석들이랑 놀다가 예정보다 늦어진거겠지, 싶어 그냥 말았다.

남자는 군대를 기점으로 아이와 어른이 나뉘고, 또래 여학생들보다 생각이 깊어지고, 세상을 배우고, 등등등등의 말들을 다 떠나서, 그냥 푸욱 한숨만 나온다. 다들 가는구나. 다들 가는구나.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다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느낌으로 떠났을런지. 많이들 힘들텐데.

막상 닥치지도 않은 일, 그리고 아마 나는 경우가 다를 텐데, 쓸데없이 왜 그렇게 부담을 가지는 거냐고 내게 말하고픈 사람이 많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냐 어쩌나. 이게 내 성격인걸. 집에 왔더니, 근 4일간 군대와 관련한 입력이 너무 많다. 마치 누군가 내 귀에다

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군대

라고 외치는 것 같다. ㅠㅠ




전화온 그 녀석은 자기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내게 말했다.
당연한 얘기인건데도 무언가 기죽은 말투, 고마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닌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참 아팠다. 묘했다.
나라고 너네랑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데....
2007. 11. 16. 14:33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도 먹고 1교시도 가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어김없이 10시 반에 깨고 말았다. 덕분에 내일 아침 2교시 공강때 하자 하며 약간 덜해놨던 독일어 숙제도 제대로 못하고 수업을 가야 했다. 꿈자리는 또 어찌나 찝찝했던지.. 일어나자 마자 한숨 부터 푹 쉬고 말았다. 웅-하고 울리는 머리 속을 털어내려고 애써본다.

     그 와중에도 친구 녀석의 카투사 발표 결과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나는, 얼른 컴퓨터를 켜고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다 떨리더라. 컴퓨터를 켜놓고 어딘가 나갔는지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수업하러 걸어가는 길, 전화도 걸어봤지만 받지 않더라. 결과 나면 째깍째깍 엠에센에 말 남겨놔야지 이녀석!
     내년 카투사를 지원할까 생각중이다. 거의 마음은 기울었다. 군대라는 것. 도데체 뭘까. 중학교 동기들은 벌써 여럿 군대를 갔고,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가려고 마음 먹은 녀석이 여럿이다. 그런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 일처럼 떨렸나 보다. 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 09년 1월 혹은 2월에 갔으면 하는 곳.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한 관문이라는 그 곳.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은, 모두가 갔다와서는 인생 낭비한 곳이라고 욕한다. (물론 군대에서 사회를 좀 배웠다고 하는 분도 많지만 그 배움이 2년이라는 기간에 상응하냐라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이들이 아니라고 답하더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막상 공익이나 면제로 안갔다온 사람들을 은근 무시하고 미필자나 여성 앞에서 항상 군대 경험을 으스대기로 유명하다. 아마 내가 군대를 갔다온다면 전형적인 그런 사람이 되겠지. 당연히 그런 최악의 사람처럼 대놓고 말하는 일이야 절대로 없겠지만, 마음 속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지 - '저 녀석 할튼 군대를 안갔다와서 저래.' 정말 절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농담삼아 내뱉으려나.ㅎ 이런 내가 부조리하다는 걸 잘 알지만, 이게 나인걸 어떡하겠는가.
     또 한편으로 나란 놈은, 병특 등의 방법으로 대체복무를 한다면 현역 사람들에 대한 묘한 부끄러움, 혹은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살아갈 것 같다. 약간은 당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아, 그렇다고 이런 생각때문에 다녀와야겠다는 결정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고작 그걸 위해서는 2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 다만 훗날 병특하는 것보단 미리 군대문제 해치우는게 내 인생에 더 이로울 것 같아서..)
     군대를 들어갈때는 마냥 어린 소년이지만, 나올때는 진짜 남자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진실 - 혹은 어설픈 사회의 고정관념. 만약 진짜 입대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찌됬든 한국에 계속 머무른다는 생각에 미국 오던 그날보다는 마음이 편할까, 아니면 더 복잡할까. 내 생각엔 후자일 것 같다.

     정신없이 독일어 수업하고, 점심먹고, 수영하고, 수업가고.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다. 마지막 수업땐 꾸벅 꾸벅 졸았는데, 그러고 수업을 마치자 너무나도 자고 싶은 생각에 가까운 도서실 같은데 가서 등받이 아주 높은 의자에 맘 먹고 앉았다. 잠오면 기대서 잘라고ㅎㅎ 노트북을 열고 다음에 접속했더니 황석영 씨가 귀국했다더라. 대선철, 상당히 정치적인 문인에 속하는 그의 귀국 소식은 기삿거리인가 보다.
     지난 봄 다양한 한국 근현대 소설을 읽었었다. 나는 황석영의 글이 참 좋았다. 황석영 뿐만 아니라, 요즘 작가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50-70년대의 작가들에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쉽게 쓴 글이 아니라는 그 느낌. 이건 단순히 소재가 소소한 일상이냐 혹은 거대한 관념이냐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치열한 사투가 느껴지는 그런 글. 몸서리칠정도로 쩍쩍 묻어나던 그 진정성. [삼포 가는 길] [객지] [탑] 등등으로 이어지던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 숨이 거칠어지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인간, 전쟁, 민중, 그리고 우리의 70년대. 나도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 50이 되면, 나도 글쟁이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 [진정성]이 쩍쩍 묻어나오는.
     사실 황석영의 글들은 70년대를 거치지 못한, 거기에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고작 스물인 내가 공명하며 이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공감까지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진정성&공감 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너무나도 적절한 시기에 그 글을 읽은 덕이겠지만.)
     경복고 재학 중 등단했던 그는 다니던 숭실대를 때려치우고 전국 각지를 유랑한 경험으로 [삼포 가는 길]을 썼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전국 각지를 유랑하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걸 느끼고 경험했을까.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쌓은 경험들이 다 글들에 녹아났겠지. 누군가 글쟁이는 상상으로 글을 쓰는게 아니라 경험으로 글을 쓴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어떤 상황일까. 누군가는 지금 내 나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던졌는데, 온 몸으로 그 [진정성]을 경험했는데,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다시금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 귀국하는 기회마다 시골 구석구석을 누벼보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 본다.

     토요일 공연을 앞두고 8시부터 풍물 동아리 연습이 있었다. 연습 후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다음에 접속했다가, 어떤 블로거가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 시집간 딸래미가 친정 엄마로부터 받은 문자에 엉엉 울고 말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링크) 예전 같았으면 별 생각 없었겠지만, 이번엔 잠깐 멍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원래 나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라던가 이런게 없었다. 물론 가족을 모두 사랑하지만, 뭐 [그렇게] 애틋하고 그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온지 3개월. 이제는 조금 느끼는 것 같다.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 내가 그저 나이가 좀 찬건지. 결국 무조건적으로 바라는 것 없이 늘 나를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은 가족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유학이라는 선택이 그런 그들에게 너무 큰 아픔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잘되보자고 한명은 대전에, 한명은 천안에, 한명은 미국에 뿔뿔이 흩어진 지금. 텅빈 집에서 매일 밤 부모님은 허탈한 공허함을 느끼고 계시진 않으실지.. 차라리 내가 멀리 있어도 - 뭐 잘 살지? 그랴~ 알아서 잘 혀~ -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면 마음이 더 편할텐데, 밤낮없이 걱정하고, 휴일 아침이면 혹시나 날 인터넷으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컴퓨터를 켜 놓고 계시는 부모님을 알기에,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자주 연락드려야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자주 연락하면 내가 여기에 마음 못잡고 집을 그리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어서 그러지도 않고 있다.ㅋㅋ 사실 괜한 걱정이 아닐 꺼거든...ㅎ 뭐, 겨울에 가면 잘 해야지 ㅎㅎ

     저녁 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하루종일 몸도 마음도 뭔가 어지러운 날이었는데, 오늘 하루동안 생각했던 것들, 경험했던 것들을 이렇게 적고 나니 조금은 정리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비는 잠깐 눈으로 바뀌었었다. 첫눈. 지금은 다시 비가 내린다.  한 친구녀석은 눈 오는데 여자도 없고 외롭다며 징징거렸다. 훗. 이젠 그런 녀석이 귀찮은 단계를 넘어서서 마냥 귀엽기만 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저 녀석도 곧 그딴 감정 다 부질없다는 거 알게 되겠지. 이런 생각하는 내 자신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면서도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그런 것들을 바라고 기대하는 내 자신이 좀 우습기도, 불쌍하기도, 답답하기도 하다. 결국 이런게 인간이겠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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