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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2. 17:00
07/18 하이파 Haifa
어떤 면에선 상당히 부산같았던 도시. 해변으로부터 근접한 산 정상까지 걸쳐서 도시가 펼쳐지는 덕에 도시의 가장 높은 곳(즉,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압권이었다. 바하이 정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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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 정원과 하이파 전경



08/19 예루살렘
예수님이 십자가를 끌고 간 길 Via Dolorosa를 따라 걸었다. 예수의 죽음 300년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자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는 이스라엘을 들러 예수와 관련된 각종 지역들을 찾아내서 성당을 지었는데, 이스라엘 내의 상당수의 유서깊은 성당은 그 시기에 처음 지어진 것들이 많다. 채찍으로 걸음을 재촉당한 곳, 쓰러지면서 벽에 손을 대었던 곳,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타 언덕까지 크게는 성당이 작게는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지막 골고타 언덕엔 성묘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를 만들었는데, 반동의식이 강한 나로써는 저게 사실은 예수님 무덤이 아니라 딴사람 무덤이면 진짜 대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산) 근데, 300년이나 지난 후에 찾아낸 건데 그 시절에 무슨 방사선 동위원소를 재봣을 것도 아니고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신하겠나..?

재밌는 점은 기독교 내의 각종 종파(카톨릭, 그리스 정교,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등등)가 성묘교회 내부의 영역을 나누어 소유하고 있고, 분쟁의 소지 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대문을 걸어 잠구면서 관리하는 것은 이슬람교도에게 맡긴다고 한다. 그 무덤이 실제 예수님 무덤이라고 한들, 저 사실을 알면 아마 예수님이 땅을 치며 안타까워 하실거다.

덧붙여 당연한거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한점은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엄마 헬레나 모두 카톨릭의 성인이라는 점이다. 콘스탄티누스야 유명한 카톨릭 철학자라고 쳐도, (아주 비꼬아서 얘기하자면) 황제의 엄마라는 본인의 정치적 위치를 이용해 교회 몇개 지은 걸로도 성인이 되는 거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물론 진짜 성인스러우셨을 수도 있다 ^^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라는 성 안나 St Anne을 위해 만든 성당에서는 엉겹결에 한 신부님과 조촐한 대화를 나누었다. 탄자니아에서 20년간 포교활동을 하시다가 이제 십년째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신다던데, 성 안나 성당의 소리울림이 유명하다며 자꾸 노래를 불러보라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머뭇머뭇 하다 결국 애국가 한소절 부르고 말았다...



08/20-21 요르단 페트라 Petra
페트라는 정말 많이 망설인 끝에 방문했다. 가는 길도 험하고 멀 뿐더러 서양 문화와 매스미디어가 쇄뇌시켜놓은 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덕분에 꾸물꾸물 거리다가, - 언제 내가 여기 부근을 다시 오겠어, 좋아 가는거야 - 하고 큰맘먹고 길을 나섰다.

갔다온 지금은 당연히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당연히 그닥 위험할 것도 없었고 (택시기사한테 덤탱이좀 씌이긴 했지만..) 페트라의 경관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편에서 등장한 덕에 유명해졌고, 몇 년 전에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 페트라는, 기원전 6세기경 나바테이아 인들이 사막 한가운데의 바위 산들을 깎아 만든 유적이다. 주변의 황폐한 환경적 조건에 그 유적의 거대함이 더해지면서 고대인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피어나는 곳이었다. 한 달 전 쯤 예루살렘에서 헤제키아의 동굴을 보고 고대인들의 위대함을 생각했던 것이 나바테이아 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유적은 압도적이었다. 14세기경 잊혀졌다가 19세기 경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재발견 되었다는데, 그렇게 처음 재발견한 그는 페트라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호스텔에서 만난 Will이라는 영국 친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끝도 없이 주절주절 얘기도 많이했다. 캄보디아에서 5년간 기자 생활을 했었다는데, 특히 그 곳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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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스라엘에서 했던 각종 생각들.

하나. 셰룻 sherut
먼저, 이스라엘은 금토가 휴일이고 일월화수목이 주중이다. 금요일 해가 지고 나서 부터 토요일 해가 지고 난 얼마 후까지가 안식일 Shabbat 인데 중요한점은 이 동안은 버스, 기차와 같은 모든 대중교통도 멈춘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론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는데, 바로 셰룻 sherut 이라고 불리는 (주로 10인승) 소형 버스다. 대도시 내부나 혹은 주요 도시 사이를 매일 24시간 운행하는데,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10명이 꽉 차면 출발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대중교통이 끊긴 늦은 밤이나 안식일때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

꽤나 괜찮은 시스템 같아보여서 뭔가 수입하고 싶었다. ^^ 다른덴 몰라도 버스와 지하철이 끊긴 새벽에 강남역 출발 - 각 수도권 도시 도착으로 운행하면 수요도 충분하고 경제성 있지 않을까. ㅎㅎ


둘. 유대인 학생 캠프
각종 관광 도중에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을 많이 만났다. 알고봤더니, 미국/유럽의 유대인 학생들이 캠프에 참가한 것이었다. 수많은 재단과 복지가들이 있어 무료로(!) 학생들의 이스라엘 캠프를 지원하고, 알고봤더니 같이 여름 인턴을 하는 친구들 중에도 그런 기회를 통해 한두번씩은 적어도 이스라엘의 명소들을 다 둘러봤더라.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이런게 진정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아끼고 지켜나가는 것인데, 미래엔 미국의 한인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한국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셋. 종교 - 국가/민족주의
10주가 넘게 머무르고 지켜보면서, 유대교가 종교라기보다는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종교와 애국심이 너무나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이런 얘기에 한 친구는 - 그래도 국가는 치안과 같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그 덕에 애국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냐 - 는 얘기를 했는데, 이상적으로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국가가 내게 어떤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 설명만으로는 괜시리 가슴속부터 올라오는 민족애 따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이른바 '나와 좀 더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는 감정이 민족주의라면, 생각해보면 그 가까움이라는 것의 기준도 정말 애매하고 비논리적일 뿐이다. 서양인들의 민족주의가 약한건 그 대신 그들에게 기독교가 있어서였기 때문이고, 상대적으로 종교의식이 약한 우리 아시아인들은 그래서 민족의식이 강한 걸까. 다분히 민족주의가 강한 편에 속하는 나로써는 이런 일련의 생각끝에, 원래 가지고 있던 종교인들에 대한 내 약간의 거부감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넷. 여행
지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의 겨울에 이어 이번 여름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건, 혼자거나 동성 친구와 여행을 다닐때면 자잘한 돌 몇개 남은 유적이나 미술관을 찾을게 아니라, 거대한 자연이나 놀라운 고대유적 따위를 쫓아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그 편이 여행이 훨씬 즐겁고 또 많이 남는다. 로맨틱함은 여자친구와 만끽하고, 친구랑은 뻘뻘 땀흘리며 하이킹한 끝에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대자연, 놀라운 고대문명을 만나도록. 그런점에서 다음 여행으로는 차타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한바퀴 돈다거나, 중남미의 마야, 잉카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어졌다. 그랜드 캐니언이야 그래도 미국 안인데 언젠가는 가겠지 ㅎㅎ


다섯.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
예루살렘 밑에서부터 홍해에 접한 휴양도시 에일랏을 지나 요르단 국경을 넘고 페트라에 가기까지, 대략 대여섯시간 동안 창 밖에는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바람, 그리고 끝없는 사막 뿐이었다. 이 황폐한 땅에서 수천년간 인간이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외감이 느껴졌다. 덧붙여 이런 환경이니까 그렇게 수많은 성인과 종교가 발생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본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상상해보라 - 그 사막을 몇시간씩 땀을 흘리며 걷다보면, 바위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조차도 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마 초등학교때부터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 땅이라서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얘기에 익숙할 것이다. 기름나는 저 아랍 국가들은 얼마나 축복받았는가에 대해 많이들 한탄들 많이 한다. 어휴, 그나마 기름이라도 나면 다행이긴 한데, 난 차라리 기름 안나도 사계절 뚜렷하고 어딜가나 푸른색을 만날 수 있는 땅에 살련다. 그 황폐한 환경에서라면 내 마음도 따라서 황폐해질것만 같다. (그런데도 과할만큼 친절한 아랍인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식수를 공급받지도 못하면서 페트라 유적 내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아둥바둥 작은 것들에 속상해하고 서로를 상처주고 싸우고 했던 모습들이 미안해진다. 그 속에서도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밝고 친절하기만 한데.





정리.
이제 마무리 하고 한국이다. 솔직히 말하면 각종 미국 경험에 지난 겨울 이번 여름까지 아무리 여행이 좋다지만 너무 잦은 덕에 조금씩 질려가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2년 후면 다시금 고파지겠지..? ㅎㅎ

아, 그래도 이 여름의 주는 연구활동이었는데, 놀러다닌 얘기만 한 것 같아 연구실 사진도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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