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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9. 17:38
날씨도 춥고 배는 고프고 몸은 나른하고 해서 침대에 슬며시 파고들었던 5시 무렵, 살풋 잠들려 하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쩝 역시 이시간에 잘려고 하니까 하늘이 날 막는구나 - 싶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왠걸, 친한 친구녀석의 여자친구님이셨다.

순간 전화의 용건을 직감했고, 적중했다. 다음날이 내 친구의 생일이었고, 여자친구는 유학생의 공허한 생일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그 친구의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전화라도 한통화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맞이하는 생일과 실질적으로 다를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괜히 유학생이 되어 맞이하는 생일에 대해 감상적이 된다.)

난 당연히 전화하겠다고 답했고, 그러고는 그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에 관해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이 친구가 뭘 갖고 싶어 했었는데 똑같은걸 못찾아서 비슷한걸 주문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좀 별로인거 같은데 다른거 갖고 싶어했던걸 사줄지 어떻게 해야될지 - 정도의 이야기. 물건 고르는거 따위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나로써는 사실 아무런 조언을 해줄수 없었지만, 그리고 사실 나에게 기막힌 답변을 바라고 물었던 것도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열심히 같이 고민해주는척(?!) 하며 맞장구쳤다. 결론은? 내가 좀더 생각해보고 결정할게 아무튼 고마워~

전화온 순간부터 용건을 짐작했던 이유는 작년에도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이맘때쯤 받았었기 때문이다. 작년 그때 그 시기의 나의 감정과, 그때 그 전화를 받았을때의 기분이 언풋 떠올랐다. 그리고 덕분에, 살짝 기분이 묘했다. 작년엔 개인적 사정 탓에 솔직히 아닌척 하긴 했지만 그 전화에 어느정도 심통이 났었는데, 이번엔 그냥 그런 여자친구가,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있는 둘의 모습이 마냥 이쁘게만 보였다. 이렇게 나에게 전화하는게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부터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가 좋아해줄까 고민하고 행동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이뻤다. 이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저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 뭐 맘에 안들면 바꾸면 되지만 그래도 생일 선물인데 짠! 하는 맛이 있어야 하잖아~ 정도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녀석이 여자친구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걸 충분히 헤아리고 고마워할지 의문이 들었다. 선물보다도 그 마음을 알아야 하는건데. 그래서 그 여자친구에게 니가 이런 고생 하는거 은근슬쩍 말하라고 ㅎㅎ 조언해줬다.

솔직히 난 생일을 특별하게 챙기는 것이 뭔가 어색하다. 뭔가 나한텐 맞지 않는 옷 같은 기분. 아무리 친한 친구가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고, 오히려 유별나게 챙겨주면 고맙기도 하지만 얘가 왜이러나 하는 생각이 먼저든다. 덕분에 남의 생일도 그닥 특별하게 챙기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외우고 있는 생일이라곤 우리 가족 생일 더하기 옛 여자친구의 생일정도다. 유별난 내 성격은 이런데서도 특이하고 싶어하는지 난 생일날 근사한 선물과 이벤트보다는 절친한 친구와의 생맥주 한잔,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어린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그 친구와 여자친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뻐보이는 걸까. 요즘 혼자 지내는게 너무 좋긴 한데, 요렇게 가끔씩 조금은 연인들이 부러울때가 있다. 그 따뜻함. 에잇. 부러우면 지는건데, 졌다.ㅠㅠㅠ


사실 그 친구는 참 고마운 친구다. 주로 남의 얘기를 듣는 역할만 하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얘기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친구다. 그정도로 친한 친구중에 나랑 가장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고, 또 현재 가장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중학교때 근성있게 미친듯이 공부했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똑같이 똑같은 방황과 고민을 했던 친구. 작년 한해동안 내가 나를 그래도 어떻게든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줬던 그 몇명의 사람중 하나다. 너 없었으면 나 작년에 무너졌을지도 몰라.


그런 친구의 생일이다. 새삼스레 다시 고마워해본다.
용현아. 생일축하한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