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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29. 04:50

이곳에서도 풍물동아리 - 심타 - 를 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교때 사물놀이를 하고 난 후, 이 짓(!)을 또 하게 될줄은 몰랐다. ㅡ.ㅡ;;
그런데 여기는 고등학교처럼 미친듯이 하는 분위기인 것도 아니고, 주말에 한번씩 만나 교류하는 정도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나를 원해(?) 주셔서 함께 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ㅠ 제가 뭐라고ㅠ)

내가 처음 접한 사물, 풍물은 고등학교때의 어우러짐 이었기에, 나는 솔직히 다들 우리 같은줄 알았다. 악기간 미세한 소리 일치에 대한 지나치리만큼 집착적인 강조. 모션의 극대화. 소리의 세기에 대한 강조. 등등등. 일반인들, 심지어 명인들도 듣고 느끼지 못할 만큼 디테일한 부분에 우리는 정말 고생했고 고생시켰다.
그런데 우리가 2학년일때 명인의 공연을 처음 봤을때,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강박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곳의 심타를 접했을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어디가 더 우월하고 더 낫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다만 초점이 다르다는거.
채를 가지고 돌리며 장난치거나, 세워논 악기를 넘어뜨리거나, 악기를 막굴리거나, 등등의 경우에 우리는 열심히 혼났고 열심히 혼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악기를 신성시 했는지. 그 독했던 부산과학고 선후배 문화 중에서도 유독 보수적이었던 우리는 고작 한살이라는 차이 뿐임에도 선배들을 선생님 보다 높이 봤었고, 그렇게 후배들을 한살어린 동생이라기 보다는 까마득한 어린애들로 바라봤다. 연습 안나오면 혼나고 혼냈고, 못하면 못한다고 혼나고 혼냈다. 거기에 연주를 [즐기라고] 강압받았고, 강압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폐쇄적이고 우리들만의 규칙과 방식에 젖어든 집단을 만들고 유지시켜 나갔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 덕분에 너무나도 그립고 아련한 기억이 되버렸다.
선배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너무나도 감동받던 시절이었고,
그렇게 신성시한 덕분인지 악기만 바라보면 묘한 애착과 사랑을 느꼈고,
각자의 인생만을 살아왔던 서로들이 거의 처음으로 서로의 소리가 어떠한지에 대해 귀기울였고,
어떻게든 서로의 소리를 일치시키고 공명시키려 노력했고,
그 노력은 결국 우리들 마음 자체의 공명이 되어버렸고,
너무나도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생겼고,
다시는 무언가를 그렇게 힘들게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리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인지를 가장 제대로 이해할, 우리와 똑같은 무언가를 한 선후배들에게 이유없는 애정이 생겼고,
그리고 우린 정말 너무 잘했고!!
이 모든 것이 [고등학교]라는 가장 아련한 시기와 함께 속해버렸다.


3주후면 심타의 공연이다.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은 북춤. 연습을 지난 금요일에 시작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때 선반 생각이 물씬 났다. (선반은 서서 악기를 연주하는 곡을 말한다.)
소개해 주는게 좋을 것 같아 다음 주 만남때까지 고등학교때 했던 오북놀이 영상을 구해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수연이로부터 파일을 받았고, 방금 막 재생시켜서 보았다.
아... 정말이지 너무 잘한다.... ㅡ.ㅡ;;
선반 연습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처음 선배들이 이런게 선반이고 너네가 해야 한다 하고 보여주셨을땐,
난 솔직히 한숨나왔었다. - 저걸 어떻게 하지?
그리고 축제까지 대략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저녁먹고 잠들때까지, 7시부터 12시까지 매일 연습했다.
축제기간에는 아침먹고 잠들때까지 연습했다.
솔직히 일주일 가볍게 연습해도 할 수 있는 공연인데, 뭘 그렇게 열심히 했나 싶을 수 있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설명가능하려나?
80%의 완성도에서 90%의 완성도로 끌어올리는덴 0부터 80%까지에 필요한 노력 만큼이 필요하다는거.
투자한 시간에 대한 완성도의 그래프를 그리면 그 함수는 기울기가 계속 감소하는 함수일거라는거.
단위 노력에 대한 완성도의 상승이 점점 작아진다는거.
Exponetial Growth 그래프라는거.
(아.. 이공계적이다 푸훗)
12시에 기숙사로 돌아가면, 그제서야 숙제하고 할일하고 그러고 2-3시에나 되야 잤고.
당연히 모자란 잠은 수업시간에 보충했다. ㄲㄲ
그 경험 이후로 어떠한 스파르타 방식에도 불평하지 않게 되버렸다. 정점을 한번 찍어봤다고나 할까.
그렇게 공연했고, 후배를 만나 후배들에게도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선배들의 시범을 처음 봤을때처럼, 후배들도 적잖이 겁먹었었겠지.
저렇게나 멋있는걸 한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했을 녀석도 많았을 것이다.


선반동영상 속에서는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멋있는 모습 보여주려고 하던 우리들이 있었고,
그런 나를 응원하러 와준 친구들이 있었고,
마치고 헐떡거릴때 음료수 가져다주던 녀석이 있었다.
그렇게, 대강의 고등학교가 다 녹아 있었다.
솔직히 그들이 그리웠던건 지금보다 더 이전, 이곳에 온 극 초반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이제 적응해가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점차 친해져 가며 자리잡아가는 느낌이 드는 요즘, 다시 약간 고등학교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제 절절히 그리워하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아릿한 기분이 남는 고등학교가 되겠지.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인연을 만들고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겠지.
고등학교때는 공부든, 동아리든, 친구든, 생활이든, 기숙사든, 다 너무 징했다.


곧 학교에서는 축제라고 한다.
졸업한 old boy가 되면 축제를 찾아가는 멋진 선배(!)가 되겠다고 다짐했건만. 힘들게 되었다.
처음 OB가 된 우리기 녀석들, 바쁘겠지만 많이들 가 주었으면 좋겠다. 미안한 마음 뿐이다.
매년 이렇게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11명씩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솔직히는, 우리를 직접 가르쳐준 13기 선배님들과 우리가 직접 가르친 15기 후배들까지에게만
개개인적인 정이 가는건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그런 15기 후배들을 세트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이번 겨울일 것이다.
귀국한 직후엔 아직 고등학교가 방학하지 않으니까,
꼭 고등학교를 찾아가 써클실을 가보고, 예전 기분도 느끼고 밥한끼 사주고 싶다.
다들 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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