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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3. 12:3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나는 5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다녔고 어머니는 그 바로 앞의 마트에 일을 다니셨다. 6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후 7시에 일을 마치시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낮잠을 자다 눈을 뜨니 그만 6시 40분이 넘어 있었다. 깜짝 놀라 헐레벌떡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지만, 수업에 들어가도 어짜피 몇 분 안되 끝날거라는 걸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꿔 마트에 들어갔다. 잠깐이나마 그냥 학원 잘 갔다가 마치면서 어머니를 보러 온 것처럼 행세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용서를 빌고, 설사 많이 혼나더라도 잘못한 벌은 달게 받아야된다는 돌이켜보면 기특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를 뵙고,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자다가 학원을 안갔어요-말했는데, 그 때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씀없이 날 바라만 보셨다. 몇 초 묵묵한 눈빛으로 날 보시다 몇 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서 혼내지 않으신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어머니의 표정이 기억나는 거 보면 그 어린 마음에도 그 표정의 함의가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었나보다. 


저지난 주말이 우리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하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께서 졸업식을 보러 오셨고, 그 친구의 초대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러가지 가벼운 대화가 오고가던 가운데, 그 친구도 나도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친구 어머님께서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한동안 아들을 군대보낸 어머니의 맘고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입대식 때 삐뚤삐뚤한 줄 속에서 경례하던 아들의 모습, 일주일쯤 뒤 소포로 배달된 아들의 옷과 편지를 보고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 첫 면회때 아들의 모습, 등등. 군대가 짧아지고 편해졌다고 한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의 입대는 어머니에게 무거운 일이고, 또 거꾸로 아들들에겐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내가 입대할 때는 신종플루 덕분에 입대식이 없었다. 논산 훈련소 입구 바로 뒤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 선에서 부모님과 인사하고 혼자 걸어들어가게끔 했다. 그 앞 잔디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이윽고 이제 진짜 입소해야할 시간이 됬다. 아버지와는 가벼운척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고, 이제 어머니와 인사할 차례. 포옹 후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으셨다. 그렁그렁한 눈빛과 손 안에 꽉 담긴 힘. 옆에선 기간병이 얼른 들어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끝끝내 날 놓지 못하는 그 손을 그냥 뿌리칠 순 없었다. 두 손 모아 어머니의 손을 몇 차례 꽉 감싸쥐었고, 그제서야 어머니는 손을 놓으셨다. 그렇게 안녕 - 손을 흔들고 난 후, 나는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고 연병장을 향해 걸었다.

첫 휴가날,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머니께서 기다리시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우리집 차가 보였고 그 속에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차 속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발견하셨나보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시더니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부들부들 떠시던 그 모습. 그리고 나를 보는 눈물 가득했던 그 눈빛. 조수석에 타자마자 얼른 내 얼굴부터 만지셨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무제한적인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내 평생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만큼 잘해드린다고 해도, 그 눈빛에 담긴 사랑만큼 돌려드릴 수 있을까. 훈련소에서의 그 손길과 첫 휴가날 그 눈빛을 떠올리면 나는, 두고두고 부끄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입대 며칠 후 배달된 소포 속 편지 얘기를 하는 친구 어머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교들의 눈치 속에서 몰래 쓰느라 마음이 급했는지, 편지 속 삐뚤삐뚤한 글씨며 곳곳에 틀린 맞춤법이 더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편지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지금도 금방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때 였다. 그저 옆에서 미소짓고 계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갑자기 지갑을 꺼내셨다. 지갑 속 한 켠에선 꼬깃꼬깃 접힌 친구의 편지가 나왔다. 이번엔 내가, 금방,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