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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해당되는 글 20건
2008. 4. 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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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2007. 12. 1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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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는데, 책장을 보자 - 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 - 이라는 전집이 눈에 들어 온다.
정말 너무나도 우리나라의 단편이 그리웠다.
뭐 물론, 이렇게 말해놓고 과연 한달동안 제대로 읽기나 할지 의문이긴 하지만..ㅎ
그냥 책장 가득한 한글만 봐도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다.

많이 읽어봐야지.

2007. 7. 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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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1900-1943)

<운수 좋은 날>
누구나 다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글이겠다. 다시 읽어봤는데도 그냥 말그대로 '쩔었다.' 도데체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는거지?

<B사감과 러브 레터>
조금은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단편. 개화기 초기인데도 불구하고 이시대 작가들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K군, B사감 하는 방식을 쓴다거나, '러브 레터'따위의 외래어를 들고 들어오는 경우가 참 많다. 그 시대에는 그러한 단어와 이름의 사용이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가져왔을까. 세련됨? 어려움? 경박함? 새로움? 어쨌든 지금과는 달랐겠지..

<빈처(貧妻)>
왠지 현진건 작가 본인의 이야기는 아닐런지. 조금 씩은 섞여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빈처>의 주인공과 <빈처>를 탈고한 때의 현진건의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작가라는 직업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도. 물질적 빈곤속에서 작가라는 허황되기만 한 꿈을 쫓아가는 남편을 믿으며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 그 둘의 약간의 소동과 사랑의 재확인 같은 내용인데,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 얼마나 통속적인가... 그치만 그놈의 진정성이라니.. 통속적인 주제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진정성 담긴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뻔함, 지루함을 해결하는 것인데, 결국 이야기를 어떻게 풀고 전개시켜나가는 가에 따라서 재미있는 감동이 있느냐, 아니면 뻔한 지루함이 있느냐가 달라지겠지. 그리고 그 전개방법에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이고.........ㅠ 정말 대단하다.

<술 권하는 사회>
이 글도 마찬가지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와 관련 있지는 않을지. 일본 유학까지 갔다온 지식인이지만 이 시대와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고 그 울분을 술으로 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 남편을 무식하기만 한 아내는(무식하다는게 부정적 의미인것은 아니다)안타깝게 지켜보는데. 아내의 무식함, 남편의 유식함과 울분, 그것을 이용한 '사회'라는 단어의 절묘한 이중적 사용.


<고향>도 읽었다.
2007. 6. 2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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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와서 도서관 출입이 귀찮아져버렸다. ㅡ.ㅡ;;
덕분에 늘상 방 한켠에 전시되있었던 한국문학 전집에 손을 대기 시작해본다.
한국 단편들의 묘미에 사실 요즘 푹 빠져있다.


김동인(1900-1951)
몇개의 단편만을 읽은 거긴 하지만 김동인의 경우는 1인칭 시점에서 그 주인공이 화자, 혹은 청자의 역할을 하는 방식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다시말하면,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하는 화자가 1인칭 주인공이거나, '어딜 갔더니 누가 있었다. 그의 사연을 물어보았다.'하는 방식의 청자로써의 1인칭 주인공이 존재하는 경우. 그의 스타일인걸까, 아직은 자리잡지 못한 소설 작법의 한계일 뿐인걸까. 1인칭이란 시점은 매력도 많지만 한계가 너무나도 많은 시점이다.


<태형>
항상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글은 알 수 없는 동경과 로망을 떠올리게 한다. 감옥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도저히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면서도, 극한의 상황, 깎이지 않고 모날데로 모난 사람들, 폭력성, 억압, 비리, 등등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바로 감옥이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Prison Break도 있지 않은가.ㅎㅎ <태형>은 최악의 수감환경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동물적, 비인간적, 이기적이 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그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척 으로나마 미워하지 않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광화사>
김동인이란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 쯤 되지 않을까? 항상 도데체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만들어낼까, 어떻게 자기가 담고 싶은 주제에 적합한 상황과 인물들을 만들어 그 주제를 저렇게도 절묘하게 표현해 내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곤 했는데, 조금은 다른 방식의 소설 작법에 대해 소개해주는 글이었다. 주제가 있고 상황,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있고 글이 생겨나는 이야기. 정처없이 마음가는데로 길을 가다가 보이는 어떤 특별한 풍경, 장소 등에 '어떤 사연이 이 곳에서 만들어졌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다가, 다시금 발길을 옮겨 보이는 장소에서 "그 사연과 이곳은 또 어떻게 연관되어질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본다는 것. 아.. 작가란 정말 멋진 직업이다.


<광염 소나타>
예술가의 천재성과 광인적 면모는 정말 양날의 칼처럼 혼재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이미 우리들에겐 뿌리깊게 자리잡아 있는 것 같다. 사실 뭐,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이니까 그 정도의 예술성을 발휘하는 것이겠지. 프로이트의 이야기처럼 넘치는 성욕을 발산하는 두가지 서로 다른 방법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K의 독백에 약간은 서늘한 기분을 느낀 단편.


그 외에도 <배따라기>, <붉은 산>, <감자>을 읽었다.
2007. 6. 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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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의 초상
이문열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은 3개의 이야기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고(하구, 우리 기쁜 젊은날, 그해 겨울), 특히 [우리 기쁜 젊은 날]의 경우 여러가지 에피소드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많은 공감, 느낌, 부러움이 혼재했던 책이다.

제1부 하구
최광탁과 박용칠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최광탁이 입원하자 그동안 쌓아놨던 허물을 서로 털어놓는 두 사람. 서로가 서로를 만나 기대고 힘을 얻어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왔지만, 세월의 무거운 두께가 쌓이고 털어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서로에게 얹이며 그 답답함을 그저 싸움으로 풀어왔다는 이야기.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인생이 이렇게 흘러왔다 나는 서럽다 - 이런 류의 이야기었는데. 가슴이 싸했다.

제2부 우리 기쁜 젊은 날
책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이지만, 주인공 특유의 사변적인 분위기, 현학적인 글들, 말투들, 무척 인상깊었다. 깊이는 없고 얄팍한 두께만 있는것이, 나 같았거든.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깊게는 파지 못하면서 이곳 저곳 학문들을 떠돌면서도 마치 다 아는 양 [지껄여]대고, 허영에 들떠 우월감에 젖지만 한번씩 느끼는 허무함, 절망감. 잠시 학생운동에도 가담했다가, 문학회에도 들어갔다가, 무엇에 전력을 쏟을지 헤매고, 이유없는 술자리에서의 객기와 장난들, 되돌이켜 보면 어이없게도 풋풋한 사랑놀이, 어느 싸구려 여관방에서 만난 어린 아이에게서 얻은 깨달음과 부끄러움 절망.. 이건 뭐, 완전 [우리 기쁜 젊은 날]이다. 젊음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가슴 속 깊이 공감하면서도 중간중간 얻는 가르침들.
특히 학생 운동에 가담했다 빠져나오면서 주인공이 생각한 것 - 지식인의 민중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그들이 민중 위에 군림하며 누리는 계층에 끼어들게 되리라는 예측에서 오는 부채감이나 죄의식의 변형이었지, 민중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는 아니었다. 그저 젊은 시절의 자랑스러운 기억을 만들고자 이러는 것은 아닐까. 막연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지성의 정신적인 자위행위 (86-87쪽) - 에 대해 읽을때 기분이 참 쌉싸름 했다. 결국 내가 표현하는 공감과 이해는 -척 에 불과한 것일까.

제3부 그해 겨울
김형의 죽음으로 폭발된 뜬금없는 무전여행. 광부가 되고자 하고 고기잡이 어선도 타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았고, 어느 주막 방우(머슴살이하며 숙식해결하는 것)로 머물며 만난 색시들. 주막을 떠날때 있었던 윤양과의 작별은 특히 인상깊었다. 이젠 너무나도 식상한 모습들이지만, 이미 1,2부를 지나오면서 주인공의 인생에 동화되어서인지 새삼 이유모를 아릿함을 느꼈다. 이유없는 절망과 답답함, 훌쩍 떠나고픔,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 너무나도 부러운 일이다.


전반적으로 아무래도 이 글의 주인공이 작가 이문열 자신이 아닐까 하는.. 인상이 강한 글이다. 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 이사, 학교 진학후 문학회 가입, 대학 중퇴 등의 저자 약력은 상당부분 이 글의 주인공과 겹친다. 뭐, 경험이 녹아들어간 픽션이겠지. 누군가 작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누구였지?) 멋있는 일이다. 역시 글은 50세 이후에 써야하는 것인가....ㅎㅎ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도. (214쪽)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235쪽)

그래. 저자의 말처럼 신도 구원하기를 포기한 인간인데, 결국 삶의 의미는 외재된 것이 아니라 내재된 것일까? 우정도, 사랑도, 학문도, 신도, 다 온전히 나를 채울 순 없는 것인지. 저 깊숙한 공허함과 답답함, 허무함, 채워지지 않음에 대한 절망에 대해 느끼는 나의 이 불행함은 결국 내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인건가. 이 끝없는 허전함에 대해 우정에, 사랑에, 학문에 끊임없이 책임 전가중인 나로써는, 무엇을 해도 내가 하면 깊이가 없고 잘 하지도 못하고 도달하지 못할것만 같은 느낌에 가득 겁먹은 나로써는, 이 내용을 읽을 때 순간 멍 했다. 먼저 나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도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데에, 그리고 그 절망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때 비로소 가득 찰 수 있다는 깨달음. 치열하게 절망하고, 그 속에서 새출발을, 내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도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난 뒤에야 진정으로 도달해보고자 노력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이라는 선언 - [사람의 아들]때도 느꼈지만, 작가 이문열은 인간의 존재와 그 의미를 탐구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혹은 아니었을까)

아무쪼록, 나도 내 삶 속에서 나의 [창수령]을 만날 수 있기를 빈다.


p/s : 어느덧. 내 문체도 이 책과 비슷해졌군. ㄲㄲ
2007. 5. 1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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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 밀란 쿤데라, 방미경 옮김, 민음사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 자유가 억압되고 모든 것이 감시 받던 그 시대의 체코에서, 마르케타에게 그저 눈길이나 끌고 싶어서 던졌던 루드빅의 농담 적힌 엽서는, 루드빅의 인생을 걷잡을 수 없는 실패로 치닫게 만드는데....


하나. 서술기법.
일단 인상깊었던 건 역시나 서술 방식이다. 책은 루드빅, 야로슬라브, 헬레나, 코스트카 라는 네 화자가 번갈아 가며 1인칭의 서술을 보인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하나의 독특한 묘미, 혹은 특성을 가지게 되는데, 말하자면 야로슬라브가 루드빅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그 시점 이후는 다시 루드빅이 야로슬라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동일 사건에 대해 두 화자의 다른 이야기를 듣고, 또 어떤 화자의 감쳐졌던 이야기를 다른 화자를 통해 듣는 경우가 곳곳에 보이면서 새로운 느낌의 독서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느낌은 특히 3부에서 루드빅의 시점에서의 루드빅-루치에 관계가 전부인줄 알다가 6부의 코스트카로부터 루치에 시점에서의 루드빅-루치에 관계에 대해 전해 들을 때에 극대화를 이룬다. 또 헬레나, 루드빅, 야로슬라브의 시점이 계속해서 뒤섞이는 7부에서도 서술 기법상의 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3인칭 시점은 가질 수 없는 1인칭 시점만의 매력은 살리면서도, 1인칭 시점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서술상의 한계를 교묘하게 극복해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덧붙여 이러한 서술 기법은, [이해]라는 동사의 주어-목적어가 능동-수동의 관계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결국 한 개인이 [이해]하는 타인, 그리고 이 세계는 파편화됬을 수 밖에 없다는 책의 메세지와 묘하게 겹치면서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둘. 공산주의.
앞서 읽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밀란 쿤데라는 공산주의 시절의 억압된 체코사회를 그저 책의 무대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로써, 책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장치로써 사용한다. 특히 [농담]에서는 루드빅이 가볍게 던지 농담이 모든 말과 글이 검열되던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받아지는지, 그로 인해 루드빅의 인생과 가치, 믿음이 얼마나 처참하게 부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책 속의 [공산주의]는 체코 국민, 혹은 공산주의 치하의 삶을 살았었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범세계적 관심과 집중을 불러냈다. 직접 겪은 이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 혹은 동감하지 못할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책의 배경은, 평단과 독자로부터 한단계 높은 찬사를 받아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게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결론은, 아주 잔인한 표현이겠지만, 그런 가슴아픈 역사가 오늘날 체코 문학을 살찌우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유사한 과거가 있지는 않은지. 조금 멀게는 일제시대도 있었고, 좀 더 가깝게는 3,4,5공으로 이어지는 독재시절이 있었는데, 우리의 이러한 배경은 민족적 공감을 초월하여 범세계적 환호와 찬사를 받아내는 문학을 왜 아직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아시아에 속한 나라라서? 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조정래, 황석영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밀란 쿤데라의 그것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뭐, 그럴 수 도 있는 거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된 번역과 홍보가 여실히 부족하다는데 있지 않을까. 아무튼 한국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아쉬움도 들게 했던 [농담]이었다.


셋. 민속문화.
또 책 속에서는 모라비아의 민속음악과 축제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관심이 돋보인다. 이전에 단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민속문화이지만, 책 속에서 처음 접한 모라비아 전통 결혼식 과정과 <왕들의 기마 행렬>에 대한 묘사는 나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게 했다. 수백년을 넘게 반복되고 내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은 어떤 식으로든 그 민족에게 통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 민족의 구성원에게 소속감과 일체감, 알 수 없는 어떤 초월된 감정, 환희, 도취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속'이 아닐까. 그 민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표식, 형식, 대사, 절차, 등등. 수백년의 역사가 있어야만 느껴지는 그 '진정성'까지. 특히 마지막 '고향'으로의 회귀를 통해 치유되는 루드빅의 모습에선 눈가에 아릿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방황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함을 느끼는 루드빅과, 한평생을 민속에 다 바쳤지만 점점 그 민속이 퇴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야로슬라브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민속'이 가지는 양면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건 아닌지. 어떤 면에선, '계륵'일 수 밖에 없는 민속문화.


넷. 책을 읽고 느낀.
아무런 악의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저항할 수 없는 사회의 그물에 걸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파괴시켰는데, 그런 파괴에 좌절하고 익숙해지면서 [그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왔는데, 어느덧 이젠 복수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들]은 그때의 [그들]이 아니라 이젠 나의 그 한마디를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까지도 내뱉는 [그들]이 되어있고, [나]는 오히려 아직도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자신의 지난 과거와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졌다는 느낌이 든다면. 결국 잘못한건 나도, [그들]도 아니라 이 세상 전체라는 걸 깨닫는다면. 이 세상이 너무나도 좁게 엉켜있어 도무지 헤어나오지 못하겠다면. 무언가 어디엔가 잘못한 게 있다고 끝없이 믿는 바람에 결국 나 스스로를 파괴했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내 속의 견고한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면.


갈무리들과. 몇개의 첨언들.

128쪽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그리고 연기를 한다.

163쪽
도대체 어째서 나는 어른으로 심판받고 추방되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선언되고 탄광으로 보내지고 그렇게 모든 데에서 어른이어야 하면서 사랑에서만은 어른이 될 권리도 없고 이렇게 미숙해서 모든 창피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젊은이-어른 이야기에 스무살인 나로써는 너무나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376쪽 - 예전과는 다른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제마넥의 이야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 나는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그들을 높이 사.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지. 우리는 무시했잖아. 그들은 여행을 좋아해. 우리는 한곳에서 처박혀 있었는데. 그들은 모험을 좋아하지. 우리는 회의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는데 말이야. 그들은 재즈를 좋아해. 우리는 부질없이 민속 음악이나 흉내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골몰해 있지.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고. 우리는 우리의 메시아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망가뜨릴 뻔했지. 이제 그들이, 그들의 이기주의를 가지고 이 세상을 구하게 될지도 몰라.

////제마넥의 체코의 예전과 오늘의 젊은이들에 대한 비교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예전의 젊은이들이었던 분들로부터 계속 지적받고 있는 점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92쪽
우리는 하도 끔찍하게 길어서 가로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자를 보러 갔다. 끔찍하게 생긴 여자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자는, 특히 우리에게 거의 여가가 없었으므로, 극히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토록 짧고 그토록 드물게 주어지는) 자유의 순간들을 반드시 잘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병사들은 괜찮은 것보다는 접근 가능한 것을 택했다. 시간이 가면서 그리고 서로 탐사 결과들을 주고 받은 끝에 비교적 수월한 (그리고 물론 겨우 참아줄 만한) 여자들의 조직망이 (아주 빈약하나마) 공동 사용을 위하여 형성되었다.
가로등은 이 공동 조직망에 속했다.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두 친구가 그녀의 비정상적인 키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해서는, 벽돌은 한 장 구해서 그때가 오면 우리 발밑에 받쳐야 할 것이라고 오십 번은 되풀이해 말하고 있었는데, 이 농담들이 내게 묘하게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여자에 대한 나의 강렬한 욕구를 더 자극해 주었던 것이다. 어떤 여자라도 좋았다. 개인화되지 않을수록 그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을 것이며 그편이 훨씬 나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어떤 여자인 것이 좋았다.
술을 아주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가로등이라는 그 여자를 보자 내 광적인 욕망은 사그라들어 버렸다. 모든 것이 역겹고 공허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친하게 지내는 혼자도 스타나도 옆에 없자 나는 지독한 숙취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이제 2주 전에 있었던 그 일까지 진저리를 치며 앞으로는 술 취한 가로등이든 농기계 좌석에 앉은 여자든 할 것 없이 절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106쪽
그러나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단지 이성과 의지의 차원에 있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잃어버린 운명에 대해 내가 속으로 흘리는 눈물은 마를 수가 없었다.

232쪽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이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루치에도 오스트라바의 변두리가 없다면, 철조망 사이로 밀어넣어 주던 장미, 그녀의 해진 옷, 희망 없던 내 오랜 기다림이 없다면, 내가 사랑했던 루치에가 더 이상 아닐지도 모른다.

238쪽
사람들이 더 많아지자 나는 곧 이런 곳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는 무단 침입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바깥으로 나왔고, 시계를 보았고 내 죽은 시간이 참으로 집요한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텅 빈 시간을 이용하기 위하여 나는 헬레나를 기억해 보고,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이 이어지질 않고 그대로 머문 채 겨우 헬레나의 모습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하기는 남자가 여자를 기다릴 때 그 여자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오로지 그녀의 고정된 초상화 밑에서 맴돌게 될 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267쪽
대개 여자가 자기 정부에게 남편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품위 때문이라든가 아니면 정말 순수해서인 경우는 아주 드물고, 다만 정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걱정을 없애주면 여자는 고마워하면서 훨씬 마음이 편해지고, 무엇보다도 특히 대화의 소재가 무한히 열려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언가 이야기할 거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에게는 남편이란 꿈 같은 주제, 그녀가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주제, 자신이 <전문가>로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주제를 제공해 주는 것이며, 어찌 되었든 사람은 누구나 전문가로서 행세하고 자신을 내세우기를 즐기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내게 거슬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안심시켜 주자 헬레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파벨 제마넥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옛일을 회상하는 가운데 감정이 고조되어서는 제마넥에 대해 아무런 부정적인 이야기도 덧붙이지 않았다.

315쪽
하루는 그녀에게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의 답은 내겐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살짝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는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은 그녀는 그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분의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 막연히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어떤 것과, 아무 의미도 형성하지 못하는 두세 개의 희미한 상징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루치에는 그때까지 신앙도 무신앙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몸에 다른 어떤 남자의 몸도 먼저 지나쳐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체험할 법한 그런 현기증을 느꼈다.

344쪽
코스트카는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의미하였고, 그녀를 위해서 더 많은 것을 하였으며, 그녀를 더 잘 사랑할 줄 알았다(더 많이는 분명 아닐 것이다. 내 사랑의 힘은 극도에 달했었으니까).

396쪽
그렇다, 내가 제마넥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넥이 ‘교수대 아래에서 쓴 르포’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428쪽
그때 나무에 죽 연결된 긴 전선에 매달린 램프들에 불이 밝혀졌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는 않고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하려는 무렵이었기 때문에, 그 램프들은 밝은 빛을 퍼뜨리지는 못하고, 마치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눈물 방울들처럼 잿빛의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닦아낼 수 없는 그리고 흘러내리지도 못하는 하얀색 눈물 방울들처럼.

2007. 5. 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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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사실 이 책은 지난 겨울방학동안에 읽었던 책이고, 지금 동일 저자의 [농담]을 읽고 있다. [농담] 포스팅 전에 왠지 포스팅하고 싶어서ㅎㅎ 사랑에 대한 역사상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소설이라는 그의 소설. 읽으면서 다양하게 공감도 하고,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책의 넓은 스펙트럼에 감상도 삐죽삐죽 다양하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공산주의 시절의 체코가 이 책도, 또 [농담]에서도 배경이 되는데,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생각도 가지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최근 내가 체코랑 인연이 많구나ㅎㅎ 아래 토마스의 이야기는 나로써는 열렬한 공감을 자아냈고, [비굴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은 소름끼칠정도로 감탄스러웠다. 독특한 소설의 구성방식이 생소했는데, 찾아보니 포스트모더니즘적 소설의 시초라고도 하더라. 하여튼 그놈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밀란 쿤데라는 문장구성방식이 왠지 나랑 스타일이 맞는 느낌이다.(너무 건방진 소린가?ㅎ) 쉼표와 형용사의 겹치기 사용, 괄호를 통한 중간중간 끼워넣기. 글을 쓰다보면 이 두가지가 많이 사용되는 걸 느낀다. 문어적이기 보단 구어적인 특성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찌됬든, 읽어볼만한 책이다.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족을 달자면.. 요즘 사랑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구나..)


그리고 또 갈무리들. 정말 맘에 들었다.

25페이지
토마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와 잔다는 것과 여자와 잠든다는 것은 두 가지 상이한 열정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열정이야. 사랑은 성교행위의 욕구에서 표명되는 것이 아니라(이 욕구는 무수한 여자에게 해당된다), 공동의 수면 욕구에서 표명된다(이 욕구는 오직 한 여자에게만 해당된다).

67페이지
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마치 성자 프란츠 폰 아시시의 어깨 위에 내려 앉은 새들처럼.

141페이지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 힘을 종종 내게 쓰지 않나요?]
[사랑은 힘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하고 프란츠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사비나에게는 두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첫째, 방금 프란츠가 말한 이 문장은 참되고 아름답다는 것, 둘째, 바로 이 문장은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프란츠를 격하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222페이지
토마스는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말하자면 모두가 그에게 미소지었다. 모두가 그가 철회성명을 쓰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모두에게 일종의 기쁨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한쪽 사람들은 비굴의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 그들에게 잃어버린 명예를 되돌려 주기 때문에 기뻐했을 것이다. 다른 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그들이 포기하려 하지 않는 각별한 특권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비굴한 사람들에 대한 은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이들 비굴한 자들이 없이는 그들 자신의 확고한 태도는 일상적인, 소용없는, 아무도 경탄해 주지 않는 노력이 되고 말 것이다.

2007.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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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 A. M. 파인스, 윤영삼 옮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사랑학 강의의 중간고사 텍스트로 쓰였다는 소식에 일부러 찾아서 읽어본 책이다. 인천공항에서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사이사이 시간에 틈틈히 읽어보았다.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무언가(여기서는 사랑)에 대해 글을 쓰는 것에는 결국 두가지 방법 뿐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완벽하게 개인화하여 자신의, 혹은 어떤 한 개인의, 혹은 어떤 상상속의 어떤 개인의 사랑이야기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일반화하여 비교적 포괄적이고 많은 경우에 적용 가능한 어떤 글을 쓰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방식에서는 일반화의 필수적인 요소로써 그 지극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을 분류, 체계화하여 과학적인 근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함하게 된다. 이 책은 두번째 방식의 책이다. 사랑만을 연구해온 심리학자가 수많은 연인, 혹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담해 온 얘기들과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사랑에 관해,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1)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의식적 원인, 2) 무의식적 원인, 3) 사랑을 지속시키는 현명한 방법,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솔직히 1)의 부분은 다양한 심리 실험과 그 통계적 결과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느낌이 강하고, 왠만한 사람들은 경험상 이미 체화한 얘기들을 글로 서술해 놓았을 뿐이었기에 지루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얘기를 다루는 2)에 이르러서는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상당히 흥미롭다.

갈무리한 부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현대 사회에서의 사랑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다. 사실 나는 책의 이야기와 반대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종교의 대체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체로 종교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랑의 관계에서 초월성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느끼는게 매우 힘들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기둥이 되어줄 절대자를 찾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는 신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로써는 정말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싶다.

사실 나는 이 책은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이런 불편함은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꼈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또 본인 스스로 신비하고 초월적인 무언가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감정에 대해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인과관계를 따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스럽고 고귀한 무언가에 분석과 통계라는 자를 들이미는 것은 왠지 (오염, 모독, 부정)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남과 다르고 특별하다는 자아의식에도 어떤 흠집을 가하는 것 같다. 그런 분석이 허무맹랑한 소리에 불과하다면 그저 피식 웃고 넘기면 되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근거와 설득력을 가지기에 마음 한켠이 무척이나 기분 나쁘면서도 부정은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기분이 되어, 여러번 책을 읽는 걸 멈추고 잠시 덮어두기도 했다.

결국 책은 주위 환경적 요인과 자신의 성장 배경 등에 의해 사랑할 사람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랑에 대해 환상을 가질 만한 스물이라는 어린 나이인 나는) 그런 원인과 결과, 과학적 분석, 그리고 통계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통계 수치에는 항상 예외가 있고, 모든 일은 case-by-case 이니까.

모두에게 각자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리고 나에게 만큼은, 다른 누구의 사랑보다도 나의 사랑이 '특별'하다.


그럼 이하는 갈무리들. 유명 책이나 사람들의 말에서 인용해 놓은 문구들이 인상적인 경우가 특히 많았다.

27쪽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그토록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속적인 현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 랭크가 말했듯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예전에 종교가 제공하던 기능을 남녀 간의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다.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큰 것과 자신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 대 개인의 경험이다. 종교나 어떤 특정한 소명의식, 혹은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신성한 경험이 바로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이처럼 유례 없이 중요하게 부각된 낭만적 사랑을 데니스 드 로니몬트는 이렇게 말한다.
“문명이 시작된 이후 7천 년 동안 그 어떤 문명에서도 낭만적 사랑을 지금처럼 높게 형가한 적인 없었다.”

57쪽
사랑의 2요인론은 감정과 관련된 좀 더 보편적인 이론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강렬한 감정은 언제나 2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나는 생리적 요인으로 ‘육체적 각성arousal 상태’를 말하며, 다른 하나는 인지적 요인으로 ‘심리적 꼬리표label’를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생리적 각성, 다시 말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는 등의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육체적 각성 상태를 해석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육체적 각성 상태에 사랑, 분노, 고통, 공포, 질투와 같은 특정한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각성 상태에 어떤 꼬리표를 붙여야 할 지 이미 알고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부모, 선생, 친구를 통해, 또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배운다. 예컨대 생리적 경험은 똑같은데도, 친한 친구가 찾아왔을 때는 ‘기쁠’것이고 어둑한 거리에서 누군가 따라오면 ‘불안’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실제 느끼는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경험은 어떠한 생리적 각성과 인식적 꼬리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까?
정열적으로 사랑하려면 먼저 신체적인 각성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경이 오싹해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각성 상태를 인식하고 나서,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정열적인 사랑’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이것이 곧 진정한 사랑의 경험이다. 처음 느낀 신체적 각성이 사실 엉뚱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만나 끌렸다면, 또 그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해석하고 꼬리표를 붙였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 된다.

98쪽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많다. 하지만 그녀와 똑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는 없다. <나탄 알터만Natan Alterman, 사랑의 시Love Poems>

165쪽
우리 사랑은 지금 나약한 꽃봉오리에 불과하지만 만물을 여물게 하는 여름철 숨결을 받아, 다시 만날 때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있을 거에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34쪽
마음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블레이즈 파스칼>

305쪽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의 파편화된 자아, 억눌린 자아에 들어맞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억눌린 부분을 드러내거나 상징한다고 인식되면, 자기 자아 속에 그러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여자가 있다고 하자. 이 여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 여자는 어떤 남자를 선택할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남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평함으로써 자신의 억눌린 자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인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89쪽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날개 달린 큐피드가 장님으로 그려졌겠지.<셰익스피어, 한여름밤의 꿈>


2007. 4. 1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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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그나마 헤세의 작품 중 가장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닐까.
여느 헤세 작품처럼 성찰적 지식을 느끼기 보다는
작가가 왠지 동경했을 법한,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동경하면서 무시할만한]
크눌프라는 캐릭터의 유희성을 가장 크게 느꼈다.
일 안하지, 여행다니지, 독일 곳곳 모르는 사람, 지역 없지,
모두가 그의 친구이고 모든 곳이 그의 고향인 사람
그래서 친구가 한 명도 없고, 정작 진짜 고향에 돌아가도 낯설음을 느끼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동경할 만한 삶이지만, 정작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는 삶을 살아간
크눌프.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노동에 힘쓰는 시민 생활과 유유자적한 여행자 생활의 의미를 비교한 부분이나,
죽음을 앞두고 신과 대화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와 타협하는 그의 모습이
많이 인상깊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좀 더 개연성 있게 그럴듯 하게 그런 얘기들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실 작가의 생각을 주인공을 통해 억지로 뱉어내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찌됬든, 즐겁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42페이지
햇빛은 마룻바닥 위에 흐릿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변덕스럽게 이리저리 흐느적거리다가, 푸른빛 천장에 이르러 소용돌이치며 전율하였다.

2007. 4. 1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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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관련 첫 포스트가 이런(?!) 책이 될 줄이야... 하핫
날 잘 아는 이들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로도 약간은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일본식 사랑이야기가 갑자기 읽고 싶었다. 못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 blue를 빌리려다가 우연히 이 책을 만나 같이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건. 학창시절의 풋풋한 어설픈 사랑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특히 남학생들이 매우 좋아할만한 책이라는 거다.
아무튼. 원래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드는 문구나 표현 나오면 갈무리하는데 이제 그런것도 다 포스팅해 보련다. 이 책은 사실 내용보다도(내용이야 뻔하잖아) 중간중간 맘에 드는 표현들이 많아서 무척 좋았다.


8페이지
꿈이 현실이고, 이 현실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나는 언제나 운다.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운 꿈에서 슬픈 현실로 돌아 올 때에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균열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그곳을 넘을 수가 없다. 몇 번 해도 안되는 것이다.

33페이지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아키는 교재에 시선을 박은 채 지금 막 다 읽은 이야기를 가슴속으로 반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머리가 늘어져 아키의 모양 좋은 콧날을 덮고 있다. 나는 머리에 반쯤 가려진 그녀의 귀를 보았다. 조그맣게 말린 입술도 보았다. 모든 것이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미묘한 선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들이 모두 아키라는 한 사람의 작은 소녀에게 모여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운 사람이 지금 나를 좋아해 주고 있다.

82쪽
"사람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이렇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내가 미래의 남편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니."
"겉으로는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
나는 아키의 걱정스런 농담을 흘려버리고 계속했다.
"자신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면 돼. 자신만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으면 돼. 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자신보다도 상대방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먹을 것이 조금 밖에 없으면 나는 내 몫을 아키에게 주고 싶어. 가진돈이 적다면 나보다 아키가 원하는 것을 사고 싶어. 아키가 맛있다고 생각하면 내 배가 부르고, 아키한테 기쁜 일은 나의 기쁜 일이야. 그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 이상 소중한 것이 달리 뭐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떠오르지 않아. 자신의 안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발견한 인간은 노벨상을 받은 어떤 발견보다도 소중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해. 그걸 깨닫지 않으면,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는 편이 나아. 혹성에든 뭐든 충돌해서 빨리 사라져 버리는 편이 낫다고 "
"사쿠짱 "
달래듯이 아키가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그치지 않았다.
"조금 머리가 좋다고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단지 바보일 뿐이야. 그런 녀석에게는 평생 공부나 하라고 말하고 싶어. 돈벌이도 마찬가지야. 돈벌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것만 평생 동안 하고 있으면 돼. 그리고 번 돈으로 우리를 먹여주면 되지. "
"사쿠짱! "
두 번째로 이름을 불리고 나서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키의 곤란한 듯한 웃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키스라도 하지 않을래? "

125쪽
밤이 깊어지자 다시 비가 왔다. 비는 호텔의 창문과 차양을 때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우리들은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비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눈을 감고 비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사물의 냄새가 강해졌다. 비 자체의 냄새, 뒷산의 흙이나 식물의 냄새, 마루에 쌓인 먼지 냄새, 벗겨지기 시작한 벽지의 냄새....... 그것들이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듯했다.

135쪽
커튼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나비의 가루처럼 방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140쪽
"나도 사쿠짱처럼 빨리 약을 발견하면 좋겠지만, 이대로라면 약을 발견하기도 전에 몸 쪽이 먼저 포기할 것 같아. "
"대신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
"실제로 이 괴로움을 체험하면 그런 말 할 수 없게 될거야. "
방안의 공기에 쩍 하고 금이 간 것 같았다.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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