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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 10:25
수학 수업을 듣는 Malott Hall 옆에 Kennedy Hall이라고 식당같은데가 있다. 늦은 잠에 정신없이 아침을 못먹고 수학 수업으로 달려가면, 수학 수업 후 독일어 수업 전 한 시간 사이에 가서 늦은 아침을 해결하곤 한다.

이번 주는 잘 살아왔었는데, 오늘 아침에 결국 늦잠을 자고 말았다. 정신없이 가서 숙제 제출하고 어김없이 아침을 먹으러 Kennedy Hall로 향했다. 가서 먹는건 늘 breakfast Sandwich with Cheese, Egg, and Bacon. 이제는 익숙해져서, 가볍에 말해주고 약간 옆으로 비켜섰는데, 요리하는 그 유쾌한 아저씨가 내 뒤에 서 있던 분에게 뭘 드실 거냐고 묻자 그 분은 떠듬떠듬 하다가 - Can I have exactly same? - 이라시더라. 중국계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아무래도 유학오신 분인 듯 했다. 나도 처음 갔을때 뭐라고 주문해야 할지를 몰라 엄청 겁먹고 우왕좌왕했었는데. 내가 처음 주문할 때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물론 속으로만 ㅎㅎ). 영어도 안되고 발음도 별로고 게다가 저기 저렇게 생긴 빵 사이에 저렇게 이렇게 넣어서 만든걸 뭐라고 부르는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샌드위치는 당연히 삼각형이라고 생각하고 자라왔는데.ㅎㅎ 참 그러고 보면 사소한 것에서 긴장하고 겁먹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직도 많다. 여전히 그 주문대 앞에 서면 내 발음을 못알아듣진 않을까, 내가 말했는데도 다시 되물으면 쪽팔릴텐데, 하는 등등 소심한 걱정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한다. 점차 익숙해져가고 있긴한데, 뭐랄까, 피식 웃음이 나는 얘기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을 받고 적당히 자리 잡고 앉으면, 항상 그 시간 무렵에 식사를 하시는 어떤 중국계 아줌마를 보게 된다. Kennedy Hall에서 일하시는 분 중 한 분 같은데, 항상 10시 좀 넘어선 시간에 늘 혼자 식사를 하신다. 백인 흑인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그렇게 일하는 아시아계 아줌마가 어느날은 갑자기 조금 처량해 보였다. 늘 혼자 식사를 하시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혼자 밥을 먹는니 안먹고 만다는 식의 사람들도 꽤나 있는데, 혼자 밥 먹는게 그렇게 싫다는데, 그런 이들이 저 아줌마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저분도 물론 혼자 밥먹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와 같이 먹는게 좋겠지. 하지만 그 분에게는 가정이 있고 자식들이 있을거고, 본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일을 해야하고 또 저렇게 결국 혼자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걸테지. 이런거 저런거 싫은걸 잴 여유도 없어 보이셨다. 아. 세상의 어머니들이란. 혼자 외롭지 않냐며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던 것이 한낱 어리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된 일, 외로움, 이런 모든 것들을 당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버텨내시겠지.

우리 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아줌마를 보면 늘 마음이 조금 아린다.
2007. 10. 29. 04:50

이곳에서도 풍물동아리 - 심타 - 를 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교때 사물놀이를 하고 난 후, 이 짓(!)을 또 하게 될줄은 몰랐다. ㅡ.ㅡ;;
그런데 여기는 고등학교처럼 미친듯이 하는 분위기인 것도 아니고, 주말에 한번씩 만나 교류하는 정도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나를 원해(?) 주셔서 함께 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ㅠ 제가 뭐라고ㅠ)

내가 처음 접한 사물, 풍물은 고등학교때의 어우러짐 이었기에, 나는 솔직히 다들 우리 같은줄 알았다. 악기간 미세한 소리 일치에 대한 지나치리만큼 집착적인 강조. 모션의 극대화. 소리의 세기에 대한 강조. 등등등. 일반인들, 심지어 명인들도 듣고 느끼지 못할 만큼 디테일한 부분에 우리는 정말 고생했고 고생시켰다.
그런데 우리가 2학년일때 명인의 공연을 처음 봤을때,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강박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곳의 심타를 접했을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어디가 더 우월하고 더 낫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다만 초점이 다르다는거.
채를 가지고 돌리며 장난치거나, 세워논 악기를 넘어뜨리거나, 악기를 막굴리거나, 등등의 경우에 우리는 열심히 혼났고 열심히 혼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악기를 신성시 했는지. 그 독했던 부산과학고 선후배 문화 중에서도 유독 보수적이었던 우리는 고작 한살이라는 차이 뿐임에도 선배들을 선생님 보다 높이 봤었고, 그렇게 후배들을 한살어린 동생이라기 보다는 까마득한 어린애들로 바라봤다. 연습 안나오면 혼나고 혼냈고, 못하면 못한다고 혼나고 혼냈다. 거기에 연주를 [즐기라고] 강압받았고, 강압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폐쇄적이고 우리들만의 규칙과 방식에 젖어든 집단을 만들고 유지시켜 나갔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 덕분에 너무나도 그립고 아련한 기억이 되버렸다.
선배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너무나도 감동받던 시절이었고,
그렇게 신성시한 덕분인지 악기만 바라보면 묘한 애착과 사랑을 느꼈고,
각자의 인생만을 살아왔던 서로들이 거의 처음으로 서로의 소리가 어떠한지에 대해 귀기울였고,
어떻게든 서로의 소리를 일치시키고 공명시키려 노력했고,
그 노력은 결국 우리들 마음 자체의 공명이 되어버렸고,
너무나도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생겼고,
다시는 무언가를 그렇게 힘들게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리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인지를 가장 제대로 이해할, 우리와 똑같은 무언가를 한 선후배들에게 이유없는 애정이 생겼고,
그리고 우린 정말 너무 잘했고!!
이 모든 것이 [고등학교]라는 가장 아련한 시기와 함께 속해버렸다.


3주후면 심타의 공연이다.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은 북춤. 연습을 지난 금요일에 시작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때 선반 생각이 물씬 났다. (선반은 서서 악기를 연주하는 곡을 말한다.)
소개해 주는게 좋을 것 같아 다음 주 만남때까지 고등학교때 했던 오북놀이 영상을 구해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수연이로부터 파일을 받았고, 방금 막 재생시켜서 보았다.
아... 정말이지 너무 잘한다.... ㅡ.ㅡ;;
선반 연습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처음 선배들이 이런게 선반이고 너네가 해야 한다 하고 보여주셨을땐,
난 솔직히 한숨나왔었다. - 저걸 어떻게 하지?
그리고 축제까지 대략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저녁먹고 잠들때까지, 7시부터 12시까지 매일 연습했다.
축제기간에는 아침먹고 잠들때까지 연습했다.
솔직히 일주일 가볍게 연습해도 할 수 있는 공연인데, 뭘 그렇게 열심히 했나 싶을 수 있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설명가능하려나?
80%의 완성도에서 90%의 완성도로 끌어올리는덴 0부터 80%까지에 필요한 노력 만큼이 필요하다는거.
투자한 시간에 대한 완성도의 그래프를 그리면 그 함수는 기울기가 계속 감소하는 함수일거라는거.
단위 노력에 대한 완성도의 상승이 점점 작아진다는거.
Exponetial Growth 그래프라는거.
(아.. 이공계적이다 푸훗)
12시에 기숙사로 돌아가면, 그제서야 숙제하고 할일하고 그러고 2-3시에나 되야 잤고.
당연히 모자란 잠은 수업시간에 보충했다. ㄲㄲ
그 경험 이후로 어떠한 스파르타 방식에도 불평하지 않게 되버렸다. 정점을 한번 찍어봤다고나 할까.
그렇게 공연했고, 후배를 만나 후배들에게도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선배들의 시범을 처음 봤을때처럼, 후배들도 적잖이 겁먹었었겠지.
저렇게나 멋있는걸 한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했을 녀석도 많았을 것이다.


선반동영상 속에서는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멋있는 모습 보여주려고 하던 우리들이 있었고,
그런 나를 응원하러 와준 친구들이 있었고,
마치고 헐떡거릴때 음료수 가져다주던 녀석이 있었다.
그렇게, 대강의 고등학교가 다 녹아 있었다.
솔직히 그들이 그리웠던건 지금보다 더 이전, 이곳에 온 극 초반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이제 적응해가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점차 친해져 가며 자리잡아가는 느낌이 드는 요즘, 다시 약간 고등학교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제 절절히 그리워하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아릿한 기분이 남는 고등학교가 되겠지.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인연을 만들고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겠지.
고등학교때는 공부든, 동아리든, 친구든, 생활이든, 기숙사든, 다 너무 징했다.


곧 학교에서는 축제라고 한다.
졸업한 old boy가 되면 축제를 찾아가는 멋진 선배(!)가 되겠다고 다짐했건만. 힘들게 되었다.
처음 OB가 된 우리기 녀석들, 바쁘겠지만 많이들 가 주었으면 좋겠다. 미안한 마음 뿐이다.
매년 이렇게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11명씩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솔직히는, 우리를 직접 가르쳐준 13기 선배님들과 우리가 직접 가르친 15기 후배들까지에게만
개개인적인 정이 가는건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그런 15기 후배들을 세트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이번 겨울일 것이다.
귀국한 직후엔 아직 고등학교가 방학하지 않으니까,
꼭 고등학교를 찾아가 써클실을 가보고, 예전 기분도 느끼고 밥한끼 사주고 싶다.
다들 참 보고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 8. 7. 20:31
언제였더라..? 대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즐거웠던 전날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채, 대전청사 앞에서 동서울 터미널 행 버스를 탔던 적이 있다. 버스를 탈 때 까지만 해도 괜찮은 날씨였는데, 곤히 잠들었다 깨어보니 도착한 서울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참, 어제 대전가는 길에 안그래도 우산을 가져갈까 망설였었는데, 가져올걸 그랬네.'
하는 후회가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지나간 일인걸.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변역까지 한 30미터? 정도만 가면 되니까 살짝 비 맞지 뭐'
터미널을 나오자 마자 냅다 강변역을 향해 뛰었다. 강변역 바로 앞 횡단보도에 도착해서,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오던 비가 나만 피해서 내리더라. 옆을 돌아보니,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쓰시던 우산을 내 옆으로 와서 씌워 주고 계셨다.
'각박한 서울에서 이런 인정을 느끼게 되다니.'
가벼운 미소와 함께 감사함을 표현했다.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는 역 안으로, 그 아주머니는 가시던 방향으로 가셨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7월 20일, 치과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돌아오던 길, 비가 오기 시작했다. 챙겨왔던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횡단보도에서 가만히 비를 맞고만 서 있는 교복입은 여학생을 만났다. 지난번 강변역 앞에서의 일이 떠올랐고, 그 여학생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다. 그러자 갑자기 갖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치근덕대는걸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가는 방향 다르면 괜히 뻘쭘하게 씌워주다 만 꼴 될텐데, 그러느니 그냥 가만히 있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헛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신호등 신호는 바뀌었고, 그렇게 나는 그 여학생이 계속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걸 보고만 있었다. 예상대로, 그 학생은 횡단보도를 건넌 후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버렸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난 괜한 부채의식에 시달렸다. 그 잠깐에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무척 한심스러웠다. 그때 내가 우산을 씌워주었어야, 내가 받은 고마움을 갚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인정이 사람과 사람을 타고 흐르는 건데, 왜 난 그렇게 겁이 많아 망설이기만 했는지.

요즘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 잠깐 비가 오다가도 금방 그치고, 또 그러다가도 다시 폭우가 내린다. 오늘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차 속에서 창밖으로 넘어보이는 횡단보도엔 어떤 또 다른 교복입은 여학생이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당황해 하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그 때 그 여학생이 떠올랐다.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음부턴 꼭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다짐해본다.
2007. 7. 16. 04:38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매일 새벽 4-5시 경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가 지나간다. 수거차량이 각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함에 멈추면, 3명 정도의 아저씨들이 차에서 내려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돌아가신다.

내가 중학생일때, 한메일넷에서 로그인 후 첫 화면을 이메일이 아니라 마이페이지 같은 것으로 띄워 주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새벽에 늦게 로그인을 하면 - 새벽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당신 - 이란 문구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새벽의 여유. 늘 내가 원하는, 가지고 있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 것, '여유'와 어울리는 시간대가 바로 새벽인 것일까.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그 페이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중학생이라면 늦어도 2시 가량이면 자는게 정상 아니었을까...ㅎㅎ 혹은 그 이후의 시간까지 자지 않더라도, 십중팔구 그것은 부모님 몰래 게임한다고 밤을 샌 경우일 것이다.(나도 종종 그랬으므로...) 그렇지만, 중학생때의 나는 공부한다고(!) 새벽까지 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방 불도 끈채 스탠드 불만 켜 놓고서 그때는 그렇게도 재미있게, 혹은 재미없어도 잘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던것 같다. 새벽이 깊으면, 내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사부작 대는 샤프 소리 뿐이었다. 그리고 주무시던 어머니께서 한번씩 터트리시던 재채기 소리 정도..?

그러던 어느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고 공부하고 있던 나는 처음으로 쓰레기 수거차의 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에 왠 트럭 소리지..?'하고 창 밖을 바라보니, 세 아저씨께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차로 옮기고 계셨다. 이 밤에 일을 하신다니.. 싶다가도, 하긴 낮에 그 음식물 쓰레기들을 흉하게 치워갈 수 는 없는 거니까. 싶기도 하고.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무척 감사하기도, 또 무척 안되 보이기도 했었다. 열대야가 심한 밤이나 아주 추운 겨울날이면, 시원한 물 혹은 따뜻한 커피 한잔 갖다 드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물론, 다 생각으로만 그친 일들이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론, 쓰레기 수거차가 온 소리를 들으면 하던일을 멈추고 창밖으로 아저씨들이 일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곤 했다. 어떤날은 3시가 채 안된 시간에 오시다가도, 어떤 날은 5시가 넘어서야 오시기도 하셨는데, 한동안 나는 일부러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가 오고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 차가 올때까지 공부하다 자야지.'하는 마음이었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이렇게 기특했던지..ㅎㅎ

새벽에나 있을 법한 재밌는 사건들도 많이 보았다. 공부하다 조금 지치고 질리는 기분이 들면 잠깐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돌리곤 했었는데, 그런 나의 휴식을 재밌게 살찌워 준 요소들이 바로 술에 취해 주정하는 아저씨, 밤늦게 연인을 집 앞까지 데려주고 돌아가는 승용차 등, 여러가지 새벽의 단면들이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건, 자주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여러번 보게 된, 아줌마A의 머리채를 쥐어 뜯고 계시는 아줌마B와 그 B를 말리는 어떤 아저씨C, 이 세 남녀의 모습이다. 불륜의 현장을 들킨걸까. 유사한 종류의 장면으로 아줌마 앞에서 무릎꿇고 비는 어떤 아저씨의 모습, 혹은 어떤 젊은 누나(?!)의 모습도 자주 보았다. 이상했던 점은, 꼭 A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좀 더 젋어보이시는 분들이었단 점이다..ㅎㅎ B역할을 맡으신 분들의 그 다양한 욕설과 폭넓은 음역을 감상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고는 혼자서 새벽의 정취를 느낄 기회가 무척 적어졌다. 아무래도 기숙사 생활이었으니까. 고등학교에서의 새벽,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학년때의 크리스마스 이브였던것 같다. 아, 12시가 넘었으니까 크리스마스 당일이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공교롭게도 그 시각도 딱 4시 가량이었지 싶다.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다들 정신없이 공부하고 있던 새벽이었다.
"에이 크리스마스인데 이게 뭐야, 공부나 하고 있고ㅠ"
"야, 공부안하면 뭐 우리가 딱히 거 있냐? 할거 없는데 여자친구 있는 것들 설치는거 보는게 더 서글프다 얌마"
이런 류의 궁상을 떨고 있던 4시 무렵,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새벽. 그 눈의 기억.
"야! 밖에 눈와! 봐봐!"
"지이이이잉~"
"아놔, 휴대폰 바로 반응온다. 눈온다고 저것들 문자질이네 아놔. 할튼 ㅉㅉ"
이미 쌍방향 화살표를 그리고 있던 친구녀석은 먼저 문자가 왔고, 혼자 열심히 빗나가기만 하는 화살을 쏘고 있던 다른 녀석은 문자를 보내고 있거나 전화를 걸고 있다. 나는? 그 땐 후자였었던듯..?ㅎ
"아 이 자식들.. 이거 뭐 연락할 사람 없으면 서러워서 살겠냐? 나도 아무나 잡고 문자나 보내봐...?"
하며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내방에 모인 친구들의 이런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다 문득 다른 방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남자 기숙사 이방 저방을 기웃거려봤는데, 하핫, 역시나, 다들 비슷한 분위기다. 하긴, 크리스마스고, 눈이오고, 게다가 새벽이기까지 하니까. 그때 내가 전화를 걸었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여자 기숙사도 똑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다. 괜히 아무한테도 연락 안오는 여자애가 소외감을 느낄 만한 정도..?ㅎ
"야, 장난없어~ ㄱ은 A한테서 전화오고, ㄴ은 B랑 지금 전화하고 있고... 야 근데 있잖아,, ㄷ한테 C가 전화걸었다?ㅋㅋ"
다음날 농담처럼 C한테 '그래, 어제 전화는 잘 했냐? 잘해봐라~' 라고 말하자, 녀석, 움찔하드라ㅎㅎ

그 외에도 새벽 4시에 얽힌 기억이 참 많다. 12시부터 밤새 전화해서 4시가 되어서야 끊은 적도 여러번 있고,, 비디오를 3개 빌려서 11시부터 연속으로 셋다 보고 4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적도 여러번이다. 늦게자서 잠을 줄이는게 아니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점호직후 바로 자서는 4시에 알람을 맞춰놓고서, 정작 4시에 알람이 울리면 그냥 끄고 자버린 것이 수십번은 될 것 같다. 기숙사 방에서 고스톱치다 날밤새본적도 있고, 러시아에서 학교 담밑으로 기어나갔다가 돌아온 시각도 4시였던듯..?

대학생이 되고 난 뒤로는 새벽 4시를 맞이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치만 누구나 예상하듯이, 고작 컴퓨터로 헛짓 하다가 시간이 흐른 경우 아니면, 술자리에서 맞이하는 4시였다. 역시나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사라지는 애틋함과 추억과 로망인 것이다. 오늘도 사실 헛짓하고 빈둥거리며 놀다가 시간이 이렇게나 늦은거거든..ㅎ 그치만, 지난 한학기는 아무래도 맘먹고 놀고 빈둥거린 시기니까. 앞으로의 내 대학생활 동안에는 새벽 4시에 대해 어떤 기억들이 만들어질까.


이제 4시 반인데, 오늘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 특유의 엔진소리가 들리지를 않는다. 아까 내렸던 비 때문에 오늘은 쉬시는 걸까...
2007. 5. 10. 04:19
오늘 오랜만에 대전을 갔다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대전을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매우 시간이 더디게 가는 반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허전하고, 금방 지나간다.(잠들어 버리므로.) 오늘도 그랬다. 가는 기차에서는 한숨도 못잤는데, 돌아오는 길엔 자리에 앉자마자 픽 쓰러져 잠들었다.

돌아오는 길, 서울역에 도착하여 잠에서 깨자 급격히 갈증과 허전함이 밀려와, 내가 좋아하는 서울역 맥도날드에 자리를 잡았다. 배는 그닥 고프지 않아 콜라랑 프렌치 프라이만 시키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 자리에 앉았다. 난 패스트푸드점이 좋다. 패스트푸드점 특유의 북적이면서 혼자인듯 한 분위기. 특히 맥도날드가 좋다. 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는 가장 맛있는 곳, 라지 세트라는 메뉴가 있는 곳. 특히 서울역 맥도날드가 좋다. 기차를 기다리며 자주 들렸던 그 곳. 각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들리는 그 곳. 특히, 서울역 맥도날드의 [그] 자리가 좋다. 모서리를 등지고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울함, 허전함, 혼란스러움 등 머리에 가득했던 부정적인 감정이 각양각색의 사람들 모습에 희석되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았다. 멍한 기분, 허전한 기분이 사라질 때 까지만 있다 가자. 하며 애써 허전함을 떨치려기 보다는 그 허전함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시간 아깝다는 생각 없이 이렇게 멍하니 있는 내 자신이 새롭고 신기했다. 시간은 늘 아깝기만 했었는데, 오늘 그냥 이렇게 기약없이 멍하니 앉아있다니.. 요즘엔 그런 일이 많다. 시간에 대해 별로 아깝다는 생각없이, 밀도 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그냥 멍하니 있는 경우. 기억에 남아있는 내 인생에 그런 기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지 않을까. 이 6개월 같은 기간이. 바삐 살고 있을 친구들이 보면 기분나빠할지도 모르겠다.

뭐, 나만 그런게 아니라 세상 사는 그 누구라도, 멍할 때 멍하니 있을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다 갑자기 멈추려고 했을때 느끼는 그 기분. 사실 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내 의지대로 멈춰지지 않는 그 기분. 오히려 맘 먹은데로 멈춰진 적이 없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기분.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럴때면 그냥 멈춰버린다. 내가 멈추고 싶어 멈춘거지만, 늘 그렇게 안됬었기에 오히려 낯선 이 기분. 이 여유. 나란 아이의 감정 스펙트럼이 좀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멍하고 허전할때 그저 멍하고 허전해 있기. 오는 8월까지는, 맘 놓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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