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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되는 글 4건
2012. 1. 15. 05:03
오늘
이정향 감독, 극본
송혜교, 남지현, 송창의, 기태영 출연
2011


자신의 생일날 연인을 오토바이 뺑소니로 잃은 전직 피디 다혜(송혜교). 가해자 소년을 용서하고 1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용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용서에 대해 늘 불안해 하다 결국은 그 소년의 소식을 알아보는데...



죄와 종교, 용서에 관한 영화라고 알려지면서 [밀양]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을 줄 알았지만 막상 보니 초점이 전혀 다른 영화였다. [밀양]이 그 상황 속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한다면 [오늘]은 그 상황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말을 하고 싶어하는 영화랄까. 뭐 물론 그게 그거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내 맘에 와 닿았던 건 여전히 그 상황 속 사람들의 삶이었다.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에 시달린다는 얘기는, 아마 스스로 용서받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우산만 갖고 내렸어도, 할인하던 휴지세트를 사지만 않았어도, 버스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 퍼즐 조각 맞춰지듯이 갖춰진 상황 속에서 벌어진 사고이지만, 다혜는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하늘의 그는 과연 자신을 용서했을까? 아니, 그런 나를 나 자신은 용서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다혜는 그 소년에 자신을 투영했던건지도 모른다. 용서되지 않는 자신을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 소년범을 용서한 척 하며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던 거다. 나 스스로에게 용서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나..... 사소한 우연 한 조각일지라도 그 사고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된다면 그 죄책감과 안타까움에서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모든 조각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저 시간만이 답일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사실 저럴땐 누군가의 절대적 사랑이 약인데, 그런면에서 다혜는 새 남자친구를 만났었어야 했다.ㅎㅎ 조건없는 절대적 사랑으로 누군가 위로해줬다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보듬어줬다면, 다혜의 상처가 조금은 더 아물었을까. 물론 그런 절대적 사랑을 해 줄 수 있을만큼 성숙한 남자는 세상에 없겠지만.ㅎㅎ 영화를 보고 문득 [굿 윌 헌팅]이 떠올랐다. 폭발하던 멧 데이먼을 껴안고 로빈 윌리엄스가 "It's not your fault."를 되네이던 그 장면. 다혜야, 네 잘못이 아냐. 네 잘못이 아냐.. 네 잘못이 아냐...



첨언
1. 이쁜 여배우는 분명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된다. 몇번씩 CF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 선덕여왕에서의 남지현을 보며 정말 많은 기대를 했는데, 영화속에선 많이 실망스러웠다. 근데 그런 2%의 어색함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이도 했다.
2011. 7. 1. 10:37
토이 스토리 Toy Story
존 라세터, 리 언크리치, 앤드류 스탠튼 John Lasseter, Lee Unkrich, Andrew Stanton
우디(톰 행크스), 버즈(팀 알렌), 제시(조안 쿠삭)


1. 픽사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올때마다 제작사가 드림웍스인지 픽사인지 늘 헷갈려했던 나에게 확실하게 픽사를 각인 시킨 영화는 [월-E]였다. 그래도 비교적 좀 더 어릴때 봤던 [니모를 찾아서], 케이블 채널에서 언뜻언뜻 비추던 [인크레더블], [업] 등을 통해서는 그저 - 컴퓨터 애니메이션 대표회사구나 -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월-E]는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최첨단의 기술과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만남. [슈렉]으로 대표되는 드림웍스의 파격적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선을 그으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픽사의 첫 작품이 바로 [토이 스토리]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고 늘 소개되기 때문에 내가 과소평가했던 걸까. [월-E] 이후 늘 픽사의 신작에 귀 기울였는데, 그런 와중에 전작들인 1, 2편에 대한 특별한 감흥없이 [토이 스토리 3]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E]에 대한 평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가 - 픽사는 다시 한번 최신 작품이 그들의 최고 작품임을 증명했다. -  였는데, 이번에도 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한 평론가들의 반응이었다. 어른도 울 수 밖에 없다는 소개글들에 너무나도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토이 스토리 3]이 극장에 걸려있을 때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2. 토이 스토리
어릴 적 한번쯤은 봤던 영화지만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의 생김새 정도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기에, 3편을 보기 전 명작에 대한 예의(^^)삼아 1, 2편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각각 95년, 99년 개봉했던 두 전작들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20대 중반의 청년이 봐도 숨막히게 긴장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나 1편 시작에서 장난감 병정들의 '정찰' 장면에선 그냥 탄성이 쩍쩍 튀어나왔다. 2편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가상) NG컷 모음 또한 재기발랄했다. 그 넘치는 재치와 위트, 아이디어, 유머감각.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전개와 유머장치들을 보며 나는 왜 애니메이션이 그저 아동용인게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 영화 장르로써 인정받는지 그 존재의미와 매력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장면 장면마다의 재치와 더불어, 스토리라인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이 있다. 1편에서 새로 나타난 장난감(버즈-우주전사)에게 앤디(장난감주인)의 사랑을 뺐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우디(카우보이)의 모습은 사랑받는 입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소년층에게는 새로 태어난 동생만 챙기는 부모님을 보며, 그리고 부모세대에겐 아빠랑 결혼할거라던 어린 딸이 커서 남자친구를 사귈때 느끼는 섭섭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새 학년이 되면 새로 만난 급우들에게 내 친한 친구를 뺏길까 걱정했던 경험도 한 두 번 쯤은 다 있을 것이다. 나는 구닥다리 카우보이인데, 사랑을 뺏기는 대상이 하필 우주전사라는 것도 가슴아픈 대조였다. 열등감과 조바심, 질투가 버무려진 그 묘한 감정을 어떤 거부감이나 외면하고 싶은 느낌없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장난감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버디영화적 전개 끝에 앤디가 사실은 우디와 버즈 둘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1편은 끝이 나는데, 이를 통해서 미래의 꿈나무들은 세상속에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힌트를 약간이나마 얻었을 것이다.

버즈의 캐릭터 또한 가슴아프다. 버즈가 TV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장면에선 정말 울 뻔 했다. 우주전사답게 독불장군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스스로가 우주전사가 아닌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심하는 버즈. 하지만 결국 우디와 다른 장난감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 다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여느 인간의 성장담과 다름없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유년기의 기억.

2편과 3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2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3편에서 결정판을 찍는 주제는 극 중 제시의 대사처럼 - 앤디가 대학에 가고 신혼여행 갈 때도 널 데려갈 것 같아? - 언젠가는 잊혀지고 버려질 운명에 대한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뒤틀린 결론을 엊고 삐뚤어진 캐릭터들이 만화적 상상력과 전개 속에서 갱생하거나 징벌받고, 꿋꿋이 앤디에 대한 사랑[혹은 충성]을 견지하는 우디와 친구들은 [프리즌 브레이크]에 버금가는 모험 끝에 행복을 맞이한다. 3편의 마지막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앤디의 텅 빈 방을 보며 앤디의 엄마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울먹이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앤디. 결국 사랑하는게 사랑 받는 것이다. 정작 사랑을 준 건 앤디였고 받은 건 우디와 친구들이었음에도 마치 앤디를 보살펴야 할 보호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장난감들의 모습은, 우리네 부모님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에 대한 통쾌하면서도 가슴아픈 아날로지다. '성인의 외모'를 지녔지만 정체성은 '장난감'인 우디의 아이러니적 상징은 그 어떤 명배우의 명연기보다도 더 찌릿찌릿했다. 

끝끝내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결국 장난감과 헤어지는 앤디. 마지막으로 장난감과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았던 것은 유년기의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잊을 건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당연한거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디와 친구들은 아마 앤디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앤디를 향한 그들의 사랑은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맞이하는 앤디에게 가슴 한 켠 속 든든한 고향이 되어줄 것이다.


3. 다시 픽사.
[월-E]에서도 확인했지만 픽사의 이야기는 무척 고전적이다. 흑백 무성영화나 50년대 할리우드 명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전개는 그들의 영화가 최첨단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오랜시간 사랑받는 원동력일 것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역할극 정도로도 스펙타클한 화면자랑은 충분하다. 최신 기술이라는 시제적 표현부터가 일단 그것의 일시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두고두고 사랑받는 캐릭터와 영화를 만들어내려면 시대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이를 멋지게 달성했다. 20세기에 디즈니가 그랬던 것처럼, 픽사는 21세기의 안데르센이요, 그림형제요, 이솝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처음이 [토이 스토리]였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2011. 5. 7. 22:10
로열 패밀리
MBC 수목 미니시리즈 오후 09:55~ (2011년 3월 2일 ~ 4월 28일) 총 18부작
김도훈 연출, 권음미 극본
염정아, 지성, 김영애, 차예련 주연

 
재밌다는 소문에 10화까지 방영되었을때 부대 내에서 찾아보았다. 주말만에 그 10화를 다 보고, 나머지 8화를 기다리고 보며 4월을 보냈다. 이제 5월 6월은 뭘로 보내지?

4화 47분경
- 우리집 여자들, 모유 못먹여. 올케 혼자 기쓰고 먹이겠다고 우겨서 생긴 일이야. 
- 그래서, 모유를 먹인다고 엄마를 가둬? 왜? 얘기 해. 나하고 김여사 사이는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니네집 치부엔 왜 꼭 입을 다무는거야?
- 가슴 모양 망가지잖아. 우리 엄마한테 며느리는 애엄마라기보다, 아들 노리게 감이거든. 

4화 58분
- 나 10살 때, 보스턴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었어. 한국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배아프다고.. 엄마가 뭐랬는줄 알아? 영어로 얘기하라구.. 세상에 허튼 돈이란 없다고. 돈 쓰면서 유학 갔으면 빨리 영어 배워야 한다고. 영어로 얘기하셨어. 난 울면서 영어로 얘기했어. 배아프다고.. 

단순한 재벌가의 이야기인줄 알고 처음엔 그 속도감과 흡인력에 빠져들었다. 재벌가에 대한 몇몇 묘사는 그저 드라마적 재미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놀라워서,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래도 설마, 실제로 저 정도이진 않겠지? - 싶다가도, - 사람 사는 일 모를 일이지 - 싶더라.
 

2화 56분경
- 김인숙씨, 나 고아에요. 그치만 우리 엄마 원망 안해. 버릴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죽을만큼 힘들었겠지. 그래, 본인만 행복하다면 정말 다행이다. 정말 그렇게 빌어요, 진심으로
- 함부로 말하지 마! 니가 자식버린 엄마 심정을 어떻게 알아!
- 왜 몰라! 사람 힘들면 자식이 아니라 간도 떼고 콩팥도 떼는 거야. 힘들면 버려야지 어쩌겠어! 사람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 김여사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잖아!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예전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순간에는 눈뜨고 쳐다보지조차 못했던 모습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우스운 추억거리가 된다. 그때
의 나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분석분류하고 단정지어서는 그런 나만의 명쾌한 세상 속에서 만족하며 살았는데, 내가 열심히 욕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알고보면 다 사연과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사연에 한번씩은 휩쓸렸고 어느덧 멈춰서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는 안타까워한다. - 네가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닌데.. - 그렇게 조금씩 내 이해의 폭은 넓어졌지만 더불어 명쾌함은 옅어져 왔다. 하지만 그래도 혼란스럽지 않았던건, 가장 밑바탕에 깔린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 

12화 43분경
- 왜 저 구명 하셨어요?
- 그게 왜 궁금한건데?
- 제가 법을 다뤄보니, 이제야 좀 알겠더라구요. 모든 정황이 저를 범인으로 가르키고 있었잖아요. 현지 주검 옆에서 나온 곰돌이, 흉기, 혈흔, 멍청한 제 거짓말, 이어진 자백. 정말 뒤집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왜 맡으셨어요? 돈, 명예?
- 허허. 그래 꿩 먹고 알 먹고지 임마! 허허
- 아이 정말 왜그러세요, 이제 좀 말씀 해 주세요. 너무 뛰어나신 분이라 남이 못보는 뭔가를 보신 거에요?
- 믿고 보면 보이는 것들, 믿지 않고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 김여사가 어디서 그 곰돌이가 없으면 니가 잠을 못 이룬단 얘기를 들은 모양이더라. 세상에 어떤 고아가, 엄마 대신에 곰돌이를 살해 현장에 던지고 오겠냐. 법 윤리책에 이런 말이 있지. 사람이 살해를 하는 동기는 535가지. 그런 그 동기를 뒤집을 수 있는 한 가지 절실한 이유만 있어도, 무죄를 전제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김인숙씨가, 날 움직였다. 너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

정황과 증거로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릴때, 인숙(염정아)은 지훈(지성)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그것이 지훈을 구원했다. 사실 그 믿음은 지훈보다도 더 꼬이고 상처입은 과거를 가진 인숙이 자기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후반 8화는 그런 인숙을 이제 지훈의 절대적 신뢰가 구원하는 모습을 그린다. 

14화 43분경
- 어쩌면 마리가.. 제일 힘든지도 몰라, 지훈아.
-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가 되요, 엄마는?
- 용서가 아니라, 믿는 거야. 

명백한 정황 속에서 지훈도 흔들렸지만, 지훈은 믿음을 놓지 않는다. 이유와 정황, 증거가 있어서 이해하고 믿고 용서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배경없이도 무조건 믿어야 하지 않을까. 증거에 의한 차가운 믿음은 자기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지만 치유나 구원이 되지는 못한다. 무조건적 믿음과 이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 인간적 따뜻함만이 절망의 벽을 녹이고 나를 다시 인간이 되게끔, 사람이 되게끔 한다.



그리고 기타 감상.
1. 그런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은 가족간의 사랑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훈과 인숙이 모자지간이라고 믿었다. 극중에서 지훈-인숙의 감정이 남녀관계적 사랑이라고 계속 암시할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는 지훈을 보며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따뜻했다. 그런 절대적 신뢰가 가족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거꾸로 보면, 남과 여가 서로에게 그런 믿음을 가질때 비로소 둘은 연인을 넘어 가족이 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 

2. 염정아 씨 연기력 정말 최고였다. 알듯 말듯한 미소와 표정, 그 예민한 미묘함에 감탄이 쩍쩍! 

3. 염정아, 차예련 정말 너무 이뻤다. 덕분에 다시 내 취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고 얇고 성숙한 여성미ㅋㅋ 차예련 씨에게는 보고 따라갈만한 롤모델로 염정아 씨가 정말 딱 좋지 않을까. 외모적 분위기도 정말 비슷했다.



첨언
입대 이후 감수성을 항상 집에 놓고 다닌 것도 있었고, 또 전역하고 나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던지라 계속 글을 못 쓰고 또 안 써왔다. 이제 전역까지는 두 달 남았다. 손가락 한번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포스팅을 시작한다. 물론 다음 글은 적어도 두달은 있어야 올라오겠지만? ^^

2009. 6. 25. 06:32
혈의 누
감독 김대승
출연 차승원 박용우
2009. 06. 21. 일요일 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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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에서 출발한 차승원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 본 영화 중 마지막으로 본 영화다. 대충 19세기 조선에서 영화 [세븐]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되는 줄거리인데, 사극이라는 장르 내에서 범죄 수사물을 시도하는 것이 무척 신선했고, 상세한 고증도 좋았다. 거기에 단순한 사극인 것이 아니라 근대로 넘어오는 19세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 덕에 드러나는 시대의 과도기적 특징들도 재미있었고, 또 그러한 부분들이 단순히 극의 배경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꽤나 맘에 들었다. 2005년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약간은 우리 영화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게 해 주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쳐지는 상황 전개가 약간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리고 재밌게도, 지금 시티홀에선 차승원과 정략 약혼한 사이로 나오는 김세아가 극중 주요 피해자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ㅋㅋ


사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
영화 속에서 이원규(차승원)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질문을 김인권(박용우)에게 소개해 주는 장면이 있다.
지름이 60보인 원에 내접하는 정오각형의 밭이 있습니다. 이 밭엔 3평방보에서 수확되는 보리의 양이 30되 인데, 9명의 소작농이 일년 동안 일해 나온 보리의 8할을 지주가 갖게 됩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이 밭의 3할에서만 보리가 수확되었다면, 지주가 가져야 할 보리는 몇 섬입니까?
처음 김인권은 (놀라운 암산 능력을 보이며) 34섬이라고 대답하는데, 이원규는 틀린 답이라고 한다. 영화가 한참 진행되고 난 후 다시 둘은 이 질문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데, 김인권은 자기가 실은 답을 알았다며, 지주가 보리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뜨끔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저 대화를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 연극 코펜하겐에 관한 글에서 했던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저 질문에 대해 34섬이라고 대답하면 수학자가 되고, 보리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대답하면 군자君子가 되는 것일거다. 순수한 학문이라 할지라도 그 밑에는 '인간'이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건데, 현실에의 끈을 놓은 채 (혹은 잘못된 현실과의 끈을 가진 채) 학문의 영역 내에서만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시야는 좁아지고 나도 모르게 지주가 34섬을 받아야 한다고 결론짓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 수학은 가치중립적인데, 군자의 도道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수학자일까 군자일까. 저 대사에 뜨끔했다는 건, 이제 고작 학부 2년을 마친 나조차도 그 학문이라는 우물 속에 어느정도 함몰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서 마주칠 수많은 저러한 질문들 앞에서, 나는 과연 군자의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단순히 대답만 하는 것을 넘어서서, 군자로써 행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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