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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6. 01:21
[]
The Pickup
나딘 고디머 Nadine Gordimer
Penguin Books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부유한 백인의 딸인 줄리 Julie이지만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고 싶어하며 자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장이 났는지 갑자기 그녀의 차가 길 한가운데서 멈춰서고, 자동차 수리공이자 불법 이민자 무슬림인 압두 Abdu가 마침 그녀를 발견하고는 도와준다. 그 인연이 어찌어찌 이어져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어느날 압두에겐 추방 명령이 내려지는데....


재작년 대학 들어갈 때 신입생 대상으로 읽으라고 나눠준 책이다. 그땐 안읽었었는데, 이번에 마침 책이 보이길래 읽어봤다.

하나.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가, 줄리의 시점이었다가, 압두의 시점이었다가 - 책은 화자를 자연스럽게 넘기고 바꾸어 가면서 진행된다.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각 주인공의 속 생각이 '나'라는 주어로 쓰여져 있는 식인데, 문맥상 그 '나'가 줄리인지 압두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해 놓긴 했지만 내 짧은 영어실력에 글 자체의 모호함 - 분명 원어민도 헷갈려 할거야! - 이 덧붙여 지면서 몇몇 부분에서는 대체 이 말의 화자가 누군지 너무나 헷갈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글의 시점 덕분에 책을 읽는 것에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게 되긴 하지만, 이 책이 각종 정치/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한 사랑이야기 임을 고려하면 같은 상황과 행동, 말에 대해 두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 같다.

둘. 인물
두 주인공의 신분 (혹은 사회경제문화적 지위)에서 어느 정도 책 속의 내용들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날때부터 모든걸 다 가진 줄리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나, 줄리에게 자신의 가족, 고향,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압두의 모습,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커져가는 둘 사이의 갈등. 각자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그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이지만 사실 책 속에서는 압두의 부정적임이 줄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부각되어 있다. 항상 사랑 앞에 진실하고 모든 걸 던질만큼 용감했던 건 압두보다는 줄리였고, 압두는 그런 줄리의 용감함을 부르주아계층 특유의 무모함 - 모든 것들을 힘들게 쟁취한 것이 아니라 당연스레 가지고 있었기에 잃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 으로 바라본다. 덕분에 대부분의 독자들이 압두보다는 줄리의 편을 들게 될 것 같다. 나 역시 압두가 답답했는데, 글쎄, 어쩌면 그건 압두에게서 지난 날의 내 모습들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셋. 재미
헷갈리는 글 때문인지 솔직히 책은 별로 재미 없었다.......... 별로 추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리고 갈무리들.

Page 119
The presence - this woman [Abdu's mother] with a beautiful face (she knew it was his mother he would look like) asserted beneath a palimpsest dark fatigue and grooves of unimaginable experience, addressed her majestically, at length and in their language, but her gaze was on her son and tears ran, ignored by her, down the calm of her cheeks.
//palimpsest의 뜻 - 거듭 쓴 양피지의 사본(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 - 을 사전에서 찾아보곤 palimpsest dark fatigue 라는 표현에 너무나도 감탄해버렸다.

Page 150
... pink flowers are thick with dust, like a woman who uses too much powder.
//화장을 안한 모습을 더 좋아하는 나로써는 거꾸로 된 비유가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은 장미꽃 위에 두껍게 쌓인 먼지 같은거야~


2009. 8. 25. 09:24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켄 케시 Ken Kesey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책으로보단 영화로 훨씬 더 유명한 작품. 처음 영화를 봤던게 고1 겨울방학때였는데, 잭 니콜슨의 멋진 연기가 일품이었다. 부조리한 정신병원 내의 현실을 바꿔보려고 애쓰는 제정신인 사람 맥멀피가 끝내는 정신병자가 되고 병원은 변하지 않는 걸 보고 저게 사실은 이 전체 사회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하나. 시점
책은 추장 Chief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펼쳐지는데, 그가 사실은 제대로 듣고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귀머거리에 벙어리라고 알려져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책 속 인물들은 주변에 그가 있든 없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모르는 척 하며 듣는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관찰자 시점이 가지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게 하고, 덕분에 1인칭 특유의 흥미로움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전지적 시점처럼 극을 이끌어 갈 수 있게 한다. 거기에 실제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추장의 독특한 비유적 상황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작가는 책의 배경 설정이나 주제에 너무나도 탁월하게 부합하는 방식으로 글을 이끌어 간다. 아주 기막힌 방법. (그러고보면 언제부턴가 내가 책의 시점에 대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둘. 주제?
이 책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고1의 내가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병원을 전체 사회에 투영시켜 본다면, 부조리한 세상에 불평불만은 많으면서도 사실상 비겁한 용기없음에 자발적으로 시대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맥멀피가 명백한 전과자에 문제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수간호사 Big Nurse에 대적하는 그에게 독자들은 (혹은 영화 감상자들은) 감정이입하면서 자연스레 동조하게 되는데 이 또한 사실 진짜 큰 문제는 개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있다는 메세지로 해석할 수도 있을거고, 또 완벽하지 않은 리더인 맥멀피가 병원 구성원들로부터 어떻게 의심받게 되는가를 따라가다 보면 이 미쳐버린 세상에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들의 성적 정체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책을 본다면, 자신의 여성성을 철저하게 감춘 채 사무적이고 냉정하게 근무하며 병원 내 남자 환자들의 남성성마저도 거세해 버린 수간호사와 그런 그녀에게 맞서는 자유분방한 강간전과자(!) 맥멀피의 모습에 주목할 수도 있다.

고1때에는 단순히 수간호사를 악역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사실은 그녀가 악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됬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방법이 철저하게 옳다고 믿으면서 그것을 철저하게 실행할 뿐이다. 긍정적인 단어들만으로 표현한다면 -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진정성을 다해 그 신념을 추구하는 - 그녀를 단순히 악역으로만 생각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그 신념과 진정성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이 나를 살아가고 나는 그 속에 함몰되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셋. 영화
영화가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고는 있지만, 책을 읽고나서 다시 영화를 보니 충분히 책을 살려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고 그 점에서 책을 읽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데,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국내에는 영화 극본외에 소설 자체가 번역/출간되지는 않은듯 하다.




그리고 갈무리들.

책 속엔 정말 기가 막히는 비유들이 많았다. 정신병원이라는 배경과 정신병자라는 인물들, 그리고 화자 자체도 정신병자라는 사실 덕분에 작가는 흐릿하고 환영적인 만화적인 표현과 비유들을 많이 쓰는데, 읽으면서 몇 번을 탄성을 지었는지 모른다. 웃음이 턱에서 뚝뚝 떨어져 내린다, 어두운 불빛이 희미한 가루를 뿌려놓은 것만 같다, 거울이 부서지는게 마치 물방울 튀는 모양 같다, 안개 속에서 흩어지는 사람들의 얼굴이 (사육제나 혼례 같은 때 뿌리는) 색종이 조각 같다, 회의 말미에 수간호사가 커피잔을 내려 놓는 소리가 마치 의사봉 소리같다, - 너무나도 기가 막힌 표현들이었다.

Page 24
"Ya know, ma'am," he says, "ya know - that is the ex-act thing somebody always tells me about the rules..."
He grins. They both smile back and forth at each other, sizing each other up.
"...just when they figure I'm about to do the dead opposite."

Page 45
The Big Nurse was furious. She swiveled and glared at him, the smile dripping over her chin.

Page 47
Pete had that big iron ball swinging all the way from his knees. The black boy whammed flat against the wall and stuck, then slid down to the floor like the wall there was greased.

Page 56
Harding takes a long pull off the cigarette and lets the smoke drift out with his talk.

Page 77
The light of the dorm door five hundred yards back up this hole is nothing but a speck, dusting the square sides of the shaft with a dim powder.

Page 86
Her own grin is giving away, sagging at the edges.

Page 118
So for forty years he was able to live, if not right in the world of men, at least on the edge of it.

Page 119
The faces blow past in the fog like confetti.

Page 131
I been in meetings where they kept talking about a patient so long that the patient materialized in the flesh, nude on the coffee table in front of them, vulnerable to any fiendish notion they took.

I been at it so long, sponging and dusting and mopping this staff room and the old wooden one at the other place, that the staff usually don't even notice me; I move around in my chores, and they see right through me like I wasn't there - the only thing they'd miss if I didn't show up would be the sponge and the water bucket floating around.

Page 136
She takes another sip and sets the cup on the table; the whack of it sounds like a gavel; all three residents sit bold upright.

Page 141
I smelled the breeze. It's fall coming, I thought, I can smell that sour-molasses smell of silage, clanging the air like a bell.

Page 160
McMurphy cuts the deck and shuffles it with a buzzing snap. ...... He cuts to shuffle again, and the cards splash everywhere like the deck exploded between his two trembling hands.

Page 172
...[he] ran his hand through the glass. The glass came apart like water splashing.

Page 201
There were little brown birds occasionally on the fence; when a puff of leaves would hit the fence the birds would fly off with the wind. It looked at first like the leaves were hitting the fence and turning into birds and flying away.
2009. 8. 22. 17:00
07/18 하이파 Haifa
어떤 면에선 상당히 부산같았던 도시. 해변으로부터 근접한 산 정상까지 걸쳐서 도시가 펼쳐지는 덕에 도시의 가장 높은 곳(즉,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압권이었다. 바하이 정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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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 정원과 하이파 전경



08/19 예루살렘
예수님이 십자가를 끌고 간 길 Via Dolorosa를 따라 걸었다. 예수의 죽음 300년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자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는 이스라엘을 들러 예수와 관련된 각종 지역들을 찾아내서 성당을 지었는데, 이스라엘 내의 상당수의 유서깊은 성당은 그 시기에 처음 지어진 것들이 많다. 채찍으로 걸음을 재촉당한 곳, 쓰러지면서 벽에 손을 대었던 곳,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타 언덕까지 크게는 성당이 작게는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지막 골고타 언덕엔 성묘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를 만들었는데, 반동의식이 강한 나로써는 저게 사실은 예수님 무덤이 아니라 딴사람 무덤이면 진짜 대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산) 근데, 300년이나 지난 후에 찾아낸 건데 그 시절에 무슨 방사선 동위원소를 재봣을 것도 아니고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신하겠나..?

재밌는 점은 기독교 내의 각종 종파(카톨릭, 그리스 정교,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등등)가 성묘교회 내부의 영역을 나누어 소유하고 있고, 분쟁의 소지 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대문을 걸어 잠구면서 관리하는 것은 이슬람교도에게 맡긴다고 한다. 그 무덤이 실제 예수님 무덤이라고 한들, 저 사실을 알면 아마 예수님이 땅을 치며 안타까워 하실거다.

덧붙여 당연한거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한점은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엄마 헬레나 모두 카톨릭의 성인이라는 점이다. 콘스탄티누스야 유명한 카톨릭 철학자라고 쳐도, (아주 비꼬아서 얘기하자면) 황제의 엄마라는 본인의 정치적 위치를 이용해 교회 몇개 지은 걸로도 성인이 되는 거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물론 진짜 성인스러우셨을 수도 있다 ^^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라는 성 안나 St Anne을 위해 만든 성당에서는 엉겹결에 한 신부님과 조촐한 대화를 나누었다. 탄자니아에서 20년간 포교활동을 하시다가 이제 십년째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신다던데, 성 안나 성당의 소리울림이 유명하다며 자꾸 노래를 불러보라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머뭇머뭇 하다 결국 애국가 한소절 부르고 말았다...



08/20-21 요르단 페트라 Petra
페트라는 정말 많이 망설인 끝에 방문했다. 가는 길도 험하고 멀 뿐더러 서양 문화와 매스미디어가 쇄뇌시켜놓은 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덕분에 꾸물꾸물 거리다가, - 언제 내가 여기 부근을 다시 오겠어, 좋아 가는거야 - 하고 큰맘먹고 길을 나섰다.

갔다온 지금은 당연히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당연히 그닥 위험할 것도 없었고 (택시기사한테 덤탱이좀 씌이긴 했지만..) 페트라의 경관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편에서 등장한 덕에 유명해졌고, 몇 년 전에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 페트라는, 기원전 6세기경 나바테이아 인들이 사막 한가운데의 바위 산들을 깎아 만든 유적이다. 주변의 황폐한 환경적 조건에 그 유적의 거대함이 더해지면서 고대인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피어나는 곳이었다. 한 달 전 쯤 예루살렘에서 헤제키아의 동굴을 보고 고대인들의 위대함을 생각했던 것이 나바테이아 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유적은 압도적이었다. 14세기경 잊혀졌다가 19세기 경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재발견 되었다는데, 그렇게 처음 재발견한 그는 페트라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호스텔에서 만난 Will이라는 영국 친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끝도 없이 주절주절 얘기도 많이했다. 캄보디아에서 5년간 기자 생활을 했었다는데, 특히 그 곳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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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스라엘에서 했던 각종 생각들.

하나. 셰룻 sherut
먼저, 이스라엘은 금토가 휴일이고 일월화수목이 주중이다. 금요일 해가 지고 나서 부터 토요일 해가 지고 난 얼마 후까지가 안식일 Shabbat 인데 중요한점은 이 동안은 버스, 기차와 같은 모든 대중교통도 멈춘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론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는데, 바로 셰룻 sherut 이라고 불리는 (주로 10인승) 소형 버스다. 대도시 내부나 혹은 주요 도시 사이를 매일 24시간 운행하는데,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10명이 꽉 차면 출발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대중교통이 끊긴 늦은 밤이나 안식일때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

꽤나 괜찮은 시스템 같아보여서 뭔가 수입하고 싶었다. ^^ 다른덴 몰라도 버스와 지하철이 끊긴 새벽에 강남역 출발 - 각 수도권 도시 도착으로 운행하면 수요도 충분하고 경제성 있지 않을까. ㅎㅎ


둘. 유대인 학생 캠프
각종 관광 도중에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을 많이 만났다. 알고봤더니, 미국/유럽의 유대인 학생들이 캠프에 참가한 것이었다. 수많은 재단과 복지가들이 있어 무료로(!) 학생들의 이스라엘 캠프를 지원하고, 알고봤더니 같이 여름 인턴을 하는 친구들 중에도 그런 기회를 통해 한두번씩은 적어도 이스라엘의 명소들을 다 둘러봤더라.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이런게 진정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아끼고 지켜나가는 것인데, 미래엔 미국의 한인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한국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셋. 종교 - 국가/민족주의
10주가 넘게 머무르고 지켜보면서, 유대교가 종교라기보다는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종교와 애국심이 너무나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이런 얘기에 한 친구는 - 그래도 국가는 치안과 같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그 덕에 애국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냐 - 는 얘기를 했는데, 이상적으로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국가가 내게 어떤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 설명만으로는 괜시리 가슴속부터 올라오는 민족애 따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이른바 '나와 좀 더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는 감정이 민족주의라면, 생각해보면 그 가까움이라는 것의 기준도 정말 애매하고 비논리적일 뿐이다. 서양인들의 민족주의가 약한건 그 대신 그들에게 기독교가 있어서였기 때문이고, 상대적으로 종교의식이 약한 우리 아시아인들은 그래서 민족의식이 강한 걸까. 다분히 민족주의가 강한 편에 속하는 나로써는 이런 일련의 생각끝에, 원래 가지고 있던 종교인들에 대한 내 약간의 거부감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넷. 여행
지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의 겨울에 이어 이번 여름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건, 혼자거나 동성 친구와 여행을 다닐때면 자잘한 돌 몇개 남은 유적이나 미술관을 찾을게 아니라, 거대한 자연이나 놀라운 고대유적 따위를 쫓아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그 편이 여행이 훨씬 즐겁고 또 많이 남는다. 로맨틱함은 여자친구와 만끽하고, 친구랑은 뻘뻘 땀흘리며 하이킹한 끝에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대자연, 놀라운 고대문명을 만나도록. 그런점에서 다음 여행으로는 차타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한바퀴 돈다거나, 중남미의 마야, 잉카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어졌다. 그랜드 캐니언이야 그래도 미국 안인데 언젠가는 가겠지 ㅎㅎ


다섯.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
예루살렘 밑에서부터 홍해에 접한 휴양도시 에일랏을 지나 요르단 국경을 넘고 페트라에 가기까지, 대략 대여섯시간 동안 창 밖에는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바람, 그리고 끝없는 사막 뿐이었다. 이 황폐한 땅에서 수천년간 인간이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외감이 느껴졌다. 덧붙여 이런 환경이니까 그렇게 수많은 성인과 종교가 발생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본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상상해보라 - 그 사막을 몇시간씩 땀을 흘리며 걷다보면, 바위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조차도 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마 초등학교때부터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 땅이라서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얘기에 익숙할 것이다. 기름나는 저 아랍 국가들은 얼마나 축복받았는가에 대해 많이들 한탄들 많이 한다. 어휴, 그나마 기름이라도 나면 다행이긴 한데, 난 차라리 기름 안나도 사계절 뚜렷하고 어딜가나 푸른색을 만날 수 있는 땅에 살련다. 그 황폐한 환경에서라면 내 마음도 따라서 황폐해질것만 같다. (그런데도 과할만큼 친절한 아랍인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식수를 공급받지도 못하면서 페트라 유적 내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아둥바둥 작은 것들에 속상해하고 서로를 상처주고 싸우고 했던 모습들이 미안해진다. 그 속에서도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밝고 친절하기만 한데.





정리.
이제 마무리 하고 한국이다. 솔직히 말하면 각종 미국 경험에 지난 겨울 이번 여름까지 아무리 여행이 좋다지만 너무 잦은 덕에 조금씩 질려가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2년 후면 다시금 고파지겠지..? ㅎㅎ

아, 그래도 이 여름의 주는 연구활동이었는데, 놀러다닌 얘기만 한 것 같아 연구실 사진도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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