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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7. 22:10
로열 패밀리
MBC 수목 미니시리즈 오후 09:55~ (2011년 3월 2일 ~ 4월 28일) 총 18부작
김도훈 연출, 권음미 극본
염정아, 지성, 김영애, 차예련 주연

 
재밌다는 소문에 10화까지 방영되었을때 부대 내에서 찾아보았다. 주말만에 그 10화를 다 보고, 나머지 8화를 기다리고 보며 4월을 보냈다. 이제 5월 6월은 뭘로 보내지?

4화 47분경
- 우리집 여자들, 모유 못먹여. 올케 혼자 기쓰고 먹이겠다고 우겨서 생긴 일이야. 
- 그래서, 모유를 먹인다고 엄마를 가둬? 왜? 얘기 해. 나하고 김여사 사이는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니네집 치부엔 왜 꼭 입을 다무는거야?
- 가슴 모양 망가지잖아. 우리 엄마한테 며느리는 애엄마라기보다, 아들 노리게 감이거든. 

4화 58분
- 나 10살 때, 보스턴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었어. 한국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배아프다고.. 엄마가 뭐랬는줄 알아? 영어로 얘기하라구.. 세상에 허튼 돈이란 없다고. 돈 쓰면서 유학 갔으면 빨리 영어 배워야 한다고. 영어로 얘기하셨어. 난 울면서 영어로 얘기했어. 배아프다고.. 

단순한 재벌가의 이야기인줄 알고 처음엔 그 속도감과 흡인력에 빠져들었다. 재벌가에 대한 몇몇 묘사는 그저 드라마적 재미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놀라워서,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래도 설마, 실제로 저 정도이진 않겠지? - 싶다가도, - 사람 사는 일 모를 일이지 - 싶더라.
 

2화 56분경
- 김인숙씨, 나 고아에요. 그치만 우리 엄마 원망 안해. 버릴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죽을만큼 힘들었겠지. 그래, 본인만 행복하다면 정말 다행이다. 정말 그렇게 빌어요, 진심으로
- 함부로 말하지 마! 니가 자식버린 엄마 심정을 어떻게 알아!
- 왜 몰라! 사람 힘들면 자식이 아니라 간도 떼고 콩팥도 떼는 거야. 힘들면 버려야지 어쩌겠어! 사람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 김여사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잖아!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예전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순간에는 눈뜨고 쳐다보지조차 못했던 모습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우스운 추억거리가 된다. 그때
의 나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분석분류하고 단정지어서는 그런 나만의 명쾌한 세상 속에서 만족하며 살았는데, 내가 열심히 욕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알고보면 다 사연과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사연에 한번씩은 휩쓸렸고 어느덧 멈춰서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는 안타까워한다. - 네가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닌데.. - 그렇게 조금씩 내 이해의 폭은 넓어졌지만 더불어 명쾌함은 옅어져 왔다. 하지만 그래도 혼란스럽지 않았던건, 가장 밑바탕에 깔린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 

12화 43분경
- 왜 저 구명 하셨어요?
- 그게 왜 궁금한건데?
- 제가 법을 다뤄보니, 이제야 좀 알겠더라구요. 모든 정황이 저를 범인으로 가르키고 있었잖아요. 현지 주검 옆에서 나온 곰돌이, 흉기, 혈흔, 멍청한 제 거짓말, 이어진 자백. 정말 뒤집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왜 맡으셨어요? 돈, 명예?
- 허허. 그래 꿩 먹고 알 먹고지 임마! 허허
- 아이 정말 왜그러세요, 이제 좀 말씀 해 주세요. 너무 뛰어나신 분이라 남이 못보는 뭔가를 보신 거에요?
- 믿고 보면 보이는 것들, 믿지 않고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 김여사가 어디서 그 곰돌이가 없으면 니가 잠을 못 이룬단 얘기를 들은 모양이더라. 세상에 어떤 고아가, 엄마 대신에 곰돌이를 살해 현장에 던지고 오겠냐. 법 윤리책에 이런 말이 있지. 사람이 살해를 하는 동기는 535가지. 그런 그 동기를 뒤집을 수 있는 한 가지 절실한 이유만 있어도, 무죄를 전제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 김인숙씨가, 날 움직였다. 너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

정황과 증거로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릴때, 인숙(염정아)은 지훈(지성)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그것이 지훈을 구원했다. 사실 그 믿음은 지훈보다도 더 꼬이고 상처입은 과거를 가진 인숙이 자기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후반 8화는 그런 인숙을 이제 지훈의 절대적 신뢰가 구원하는 모습을 그린다. 

14화 43분경
- 어쩌면 마리가.. 제일 힘든지도 몰라, 지훈아.
-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가 되요, 엄마는?
- 용서가 아니라, 믿는 거야. 

명백한 정황 속에서 지훈도 흔들렸지만, 지훈은 믿음을 놓지 않는다. 이유와 정황, 증거가 있어서 이해하고 믿고 용서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배경없이도 무조건 믿어야 하지 않을까. 증거에 의한 차가운 믿음은 자기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지만 치유나 구원이 되지는 못한다. 무조건적 믿음과 이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 인간적 따뜻함만이 절망의 벽을 녹이고 나를 다시 인간이 되게끔, 사람이 되게끔 한다.



그리고 기타 감상.
1. 그런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은 가족간의 사랑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훈과 인숙이 모자지간이라고 믿었다. 극중에서 지훈-인숙의 감정이 남녀관계적 사랑이라고 계속 암시할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는 지훈을 보며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따뜻했다. 그런 절대적 신뢰가 가족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거꾸로 보면, 남과 여가 서로에게 그런 믿음을 가질때 비로소 둘은 연인을 넘어 가족이 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 

2. 염정아 씨 연기력 정말 최고였다. 알듯 말듯한 미소와 표정, 그 예민한 미묘함에 감탄이 쩍쩍! 

3. 염정아, 차예련 정말 너무 이뻤다. 덕분에 다시 내 취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고 얇고 성숙한 여성미ㅋㅋ 차예련 씨에게는 보고 따라갈만한 롤모델로 염정아 씨가 정말 딱 좋지 않을까. 외모적 분위기도 정말 비슷했다.



첨언
입대 이후 감수성을 항상 집에 놓고 다닌 것도 있었고, 또 전역하고 나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던지라 계속 글을 못 쓰고 또 안 써왔다. 이제 전역까지는 두 달 남았다. 손가락 한번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포스팅을 시작한다. 물론 다음 글은 적어도 두달은 있어야 올라오겠지만? ^^

2009. 11. 20. 19:07

어쩌다 보니 저는 강원도 인제까지 와버렸습니다.
한 번 하는 군생활인데 인제정도는 되야 되지 않겠습니까ㅎㅎ
조금 추운거 제외하면 정말 생각한거 이상으로 너무나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등병이 인터넷을 쓰고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정말 놀랍습니다!)

개인적 연락을 못하는 건 이해해주세요.
마음편히 쉬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2009. 9. 14. 00:44
귀국 후 입대 전 3주간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텔레비전 광고는 대한항공 황하편이었다.



사기 이사열전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책 [오래된 정원]의 후기에서 황석영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나의 반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인 듯한 생각이 든다. 곡절 많은 세월이었지만 나는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문학을' 오롯이 살아냈다. 어쨌든 죽는 날까지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산전수전은 작가로서의 마음바탕이 되었으리라.



입대한다는 소식에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며 내게 말을 건넨 친구들에게 늘 했던 얘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이때쯤 되면 졸업은 얼마 남지 않았고, 뭔가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막연한 두려움 답답함은 지워지지 않고, 그런 현실을 도피하면서 좀 쉴 수 있는 아주 괜찮은 핑계로 군대가 딱이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투로 뱉은 말이긴 하지만 농담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대학교에서의 2, 3년 후 입대하는 친구들의 상당수가 저 말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어찌됬든 나의 지난 2년은 50점짜리였다. 뭣도 모르고 100점을 기대하고 시작했지만 나의 현실은 빵점이었고, 나름의 부단한 노력 끝에 점수를 끌어올리긴 했다지만 그러는 와중에 수많은 현실과 타협해버렸다. 그렇게 결국은 50점이라는 절충안에서 자리를 잡아버린 것 같다. 가끔씩 그런 현실과 내 자신이 몸서리치도록 싫었지만, 나약한 핑계를 대자면 그 속에선 도무지 더 어쩔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왜 결국 현역으로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냐고 물으면 이렇게 얘기했다. 현역 경험이 없다면 느낄 것만 같은 부채감이 5프로 정도, 군문제를 미리 해결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거라는 생각이 25프로 정도, 그리고 현실도피욕구가 70프로 정도. 제대 후엔 그래도 빵점이 아닌 50점부터 시작하는데, 그때엔 내 타협점을 100점까진 아니라도 90점으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2년 후에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과 그때의 현실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치만, 똑같은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해도, 중간에 평지에서 숨을 한번 고르고 난 후라면 그 길을 좀 더 잘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초연超然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용감하고 담담하게. 어떠한 믿음이나 신념을 맹신하거나 거기에 함몰되어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염세적이지 않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일 수 있는 마음. 나는 내가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히며 살아가면서도, 과정을 즐겼기에 훗날의 보상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은 되게 거창한데, 짧게 말하자면 -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 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ㅎㅎ



적다보니 출사표마냥 되어버려 좀 멋쩍다.ㅎㅎ 그치만 가벼운 마음으로 향한다.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