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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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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사실 이 책은 지난 겨울방학동안에 읽었던 책이고, 지금 동일 저자의 [농담]을 읽고 있다. [농담] 포스팅 전에 왠지 포스팅하고 싶어서ㅎㅎ 사랑에 대한 역사상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소설이라는 그의 소설. 읽으면서 다양하게 공감도 하고,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책의 넓은 스펙트럼에 감상도 삐죽삐죽 다양하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공산주의 시절의 체코가 이 책도, 또 [농담]에서도 배경이 되는데,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생각도 가지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최근 내가 체코랑 인연이 많구나ㅎㅎ 아래 토마스의 이야기는 나로써는 열렬한 공감을 자아냈고, [비굴의 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은 소름끼칠정도로 감탄스러웠다. 독특한 소설의 구성방식이 생소했는데, 찾아보니 포스트모더니즘적 소설의 시초라고도 하더라. 하여튼 그놈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밀란 쿤데라는 문장구성방식이 왠지 나랑 스타일이 맞는 느낌이다.(너무 건방진 소린가?ㅎ) 쉼표와 형용사의 겹치기 사용, 괄호를 통한 중간중간 끼워넣기. 글을 쓰다보면 이 두가지가 많이 사용되는 걸 느낀다. 문어적이기 보단 구어적인 특성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찌됬든, 읽어볼만한 책이다.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족을 달자면.. 요즘 사랑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구나..)


그리고 또 갈무리들. 정말 맘에 들었다.

25페이지
토마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와 잔다는 것과 여자와 잠든다는 것은 두 가지 상이한 열정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열정이야. 사랑은 성교행위의 욕구에서 표명되는 것이 아니라(이 욕구는 무수한 여자에게 해당된다), 공동의 수면 욕구에서 표명된다(이 욕구는 오직 한 여자에게만 해당된다).

67페이지
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마치 성자 프란츠 폰 아시시의 어깨 위에 내려 앉은 새들처럼.

141페이지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 힘을 종종 내게 쓰지 않나요?]
[사랑은 힘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하고 프란츠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사비나에게는 두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첫째, 방금 프란츠가 말한 이 문장은 참되고 아름답다는 것, 둘째, 바로 이 문장은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프란츠를 격하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222페이지
토마스는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말하자면 모두가 그에게 미소지었다. 모두가 그가 철회성명을 쓰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모두에게 일종의 기쁨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한쪽 사람들은 비굴의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 그들에게 잃어버린 명예를 되돌려 주기 때문에 기뻐했을 것이다. 다른 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그들이 포기하려 하지 않는 각별한 특권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비굴한 사람들에 대한 은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이들 비굴한 자들이 없이는 그들 자신의 확고한 태도는 일상적인, 소용없는, 아무도 경탄해 주지 않는 노력이 되고 말 것이다.

2007.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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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 A. M. 파인스, 윤영삼 옮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사랑학 강의의 중간고사 텍스트로 쓰였다는 소식에 일부러 찾아서 읽어본 책이다. 인천공항에서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사이사이 시간에 틈틈히 읽어보았다.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무언가(여기서는 사랑)에 대해 글을 쓰는 것에는 결국 두가지 방법 뿐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완벽하게 개인화하여 자신의, 혹은 어떤 한 개인의, 혹은 어떤 상상속의 어떤 개인의 사랑이야기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일반화하여 비교적 포괄적이고 많은 경우에 적용 가능한 어떤 글을 쓰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방식에서는 일반화의 필수적인 요소로써 그 지극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을 분류, 체계화하여 과학적인 근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함하게 된다. 이 책은 두번째 방식의 책이다. 사랑만을 연구해온 심리학자가 수많은 연인, 혹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담해 온 얘기들과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사랑에 관해,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1)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의식적 원인, 2) 무의식적 원인, 3) 사랑을 지속시키는 현명한 방법,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솔직히 1)의 부분은 다양한 심리 실험과 그 통계적 결과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느낌이 강하고, 왠만한 사람들은 경험상 이미 체화한 얘기들을 글로 서술해 놓았을 뿐이었기에 지루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얘기를 다루는 2)에 이르러서는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상당히 흥미롭다.

갈무리한 부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현대 사회에서의 사랑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다. 사실 나는 책의 이야기와 반대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종교의 대체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체로 종교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랑의 관계에서 초월성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느끼는게 매우 힘들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기둥이 되어줄 절대자를 찾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는 신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로써는 정말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싶다.

사실 나는 이 책은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이런 불편함은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꼈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또 본인 스스로 신비하고 초월적인 무언가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감정에 대해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인과관계를 따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스럽고 고귀한 무언가에 분석과 통계라는 자를 들이미는 것은 왠지 (오염, 모독, 부정)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남과 다르고 특별하다는 자아의식에도 어떤 흠집을 가하는 것 같다. 그런 분석이 허무맹랑한 소리에 불과하다면 그저 피식 웃고 넘기면 되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근거와 설득력을 가지기에 마음 한켠이 무척이나 기분 나쁘면서도 부정은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기분이 되어, 여러번 책을 읽는 걸 멈추고 잠시 덮어두기도 했다.

결국 책은 주위 환경적 요인과 자신의 성장 배경 등에 의해 사랑할 사람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랑에 대해 환상을 가질 만한 스물이라는 어린 나이인 나는) 그런 원인과 결과, 과학적 분석, 그리고 통계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통계 수치에는 항상 예외가 있고, 모든 일은 case-by-case 이니까.

모두에게 각자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리고 나에게 만큼은, 다른 누구의 사랑보다도 나의 사랑이 '특별'하다.


그럼 이하는 갈무리들. 유명 책이나 사람들의 말에서 인용해 놓은 문구들이 인상적인 경우가 특히 많았다.

27쪽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그토록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속적인 현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 랭크가 말했듯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예전에 종교가 제공하던 기능을 남녀 간의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다.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큰 것과 자신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 대 개인의 경험이다. 종교나 어떤 특정한 소명의식, 혹은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신성한 경험이 바로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이처럼 유례 없이 중요하게 부각된 낭만적 사랑을 데니스 드 로니몬트는 이렇게 말한다.
“문명이 시작된 이후 7천 년 동안 그 어떤 문명에서도 낭만적 사랑을 지금처럼 높게 형가한 적인 없었다.”

57쪽
사랑의 2요인론은 감정과 관련된 좀 더 보편적인 이론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강렬한 감정은 언제나 2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나는 생리적 요인으로 ‘육체적 각성arousal 상태’를 말하며, 다른 하나는 인지적 요인으로 ‘심리적 꼬리표label’를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생리적 각성, 다시 말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는 등의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육체적 각성 상태를 해석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육체적 각성 상태에 사랑, 분노, 고통, 공포, 질투와 같은 특정한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각성 상태에 어떤 꼬리표를 붙여야 할 지 이미 알고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부모, 선생, 친구를 통해, 또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배운다. 예컨대 생리적 경험은 똑같은데도, 친한 친구가 찾아왔을 때는 ‘기쁠’것이고 어둑한 거리에서 누군가 따라오면 ‘불안’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실제 느끼는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경험은 어떠한 생리적 각성과 인식적 꼬리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까?
정열적으로 사랑하려면 먼저 신체적인 각성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경이 오싹해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각성 상태를 인식하고 나서,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정열적인 사랑’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이것이 곧 진정한 사랑의 경험이다. 처음 느낀 신체적 각성이 사실 엉뚱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만나 끌렸다면, 또 그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해석하고 꼬리표를 붙였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 된다.

98쪽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많다. 하지만 그녀와 똑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는 없다. <나탄 알터만Natan Alterman, 사랑의 시Love Poems>

165쪽
우리 사랑은 지금 나약한 꽃봉오리에 불과하지만 만물을 여물게 하는 여름철 숨결을 받아, 다시 만날 때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있을 거에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234쪽
마음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블레이즈 파스칼>

305쪽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의 파편화된 자아, 억눌린 자아에 들어맞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억눌린 부분을 드러내거나 상징한다고 인식되면, 자기 자아 속에 그러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여자가 있다고 하자. 이 여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 여자는 어떤 남자를 선택할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남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평함으로써 자신의 억눌린 자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인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89쪽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날개 달린 큐피드가 장님으로 그려졌겠지.<셰익스피어, 한여름밤의 꿈>


2007. 5. 7. 02:12

결국 9일간의 전주국제영화제가 끝이 났다. 어떤 행사의 자원봉사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배운것도, 느낀것도 많은 2주 가량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초청팀의 인천공항팀 소속으로 공항에서 입국하는 해외 게스트들을 맞이하고, 전주행 버스에 태우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지루할 수 있는 일을 맡았다. 3명의 누나들과 함께 근무하였고, 많은 게스트들을 만났고, 누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4월 25일 수요일부터 5월 3일 수요일까지 공항에서 근무 후 전주로 내려가 영화제 마지막을 전주에서 다른 초청팀 형 누나들과 보냈다. 목요일은 게스트 센터에서 커피를 탔으며(!!) 금요일에는 리베라 호텔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가장 막내인 주제에 금요일에는 지각도 했다. 수목금 모두 뒤풀이를 하였고, 금요일에는 해뜨는걸 보고 잠에 들었다. 토요일 전주에서 바로 집으로 갔다가, 일요일 집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잠의 부족이나 일의 피곤함 혹은 지루함이 아니라, 매일같이 서울과 인천공항을 왕복하면서 탔던 버스에서의 시간이었다. 매일 3시간이 넘게 버스에 타고 있는 게 무척이나 피곤하고 힘들었다.

영화제를 통해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역시 아직은 내가 많이 어리다는 것이었다. 초청팀인지라 외국어 능통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다른 팀들에 비해 평균 연령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형들은 80년생도 수두룩 했고, 누나들도 다들 23-24세 였다. 나 다음으로 어린 형이 86이었으니. 형, 누나들은 처음에 전주에 연고도 없는데다가 나이도 스무살, 학력까지 서울대인 내가 멀리까지 무언가를 참여하려고 왔다는 사실에 무척 신기해했다. 전주에서 열리는 영화제이다 보니 대부분 전북대 학생이었고, 심지어는 서울대 학생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며 손 한 번 잡아보자는(!!) 형도 있었다. 학력적인 면의 차이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갔던 나였는데, 오히려 형들이 너무 그래서 쑥쓰러울 정도였다.

그래 뭐, 나는 서울대고, 곧 학부 유학까지 가는데, 형들은 전북대고, 지식적 측면에서는 내가 앞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은 [형]들이고 나는 까마득한 (게다가 머리에 피도 안마른) [동생]이다. 평소에 늘 해 왔던 생각중에, 내가 아무리 또래 중에서 생각이 깊다한들(실제로 그렇다는건 아니다) 1년, 2년의 경험 차이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있었다. 내가 나이 서른이 된다면 모를까, 아직 스물이란 나이에서는 1년 차이도 얕볼수 없는 경험의 차이가 있고, 그런 점에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 바로 [형]들이다. 나는 여전히 어리다. 이번에도 정말 많이 느꼈다. 또래중에선 그래도 수완좋고, 경우를 알고, 일 잘하는 축이지 않을까 했지만, 더군다나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것 같다. 조장 형부터 시작해서 형들, 누나들 모두 하나하나 딱히 무언가를 꼬집어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달랐다.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일하는 것, 사람을 대하는 법, 모두 배울 것 투성이었고, 모자라는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실제 어떤 행사를 치룬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세상인지를 아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도 있었다.(한 일이 없어서 매우 간접적이긴 했다.ㅡ.ㅡ;;) 역시 내가 할 줄 아는 건 공부(ㅡ.ㅡ;;)뿐이었다는 것도 느꼈다. 에휴... 뭐, 차근차근 열심히 배워야지.

아무튼, 길었던 지난 2주가량이 지나갔다. 이제 오는 토요일의 해단식만 참여하면 모든 게 끝이 날 것 같다. 간만에 바쁘게 시간을 보내게 되어 피곤했지만 보람차기도 했다. 더 이런거 저런거 많이 참여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남은 시간도, 꼭 뜻깊게, 보내야지.

그리고 기타 느낌들/정말 남자는 군대 안갔다 오면 할 얘기가 없다/한국사회에서는 조직내의 직위의 위아래와 나이의 위아래가 다를 경우 심한 갈등과 어려움이 존재한다/이동욱과 이종혁은 멋있다/인천공항이 이젠 너무 아늑하다. 구조도 빠삭하게 안다./전주 맛집에는 베테랑, 오원집이 있다. 사실 너무 많이 못가봤다./막내여서 많이 얻어먹었지만 점차 많이 부담스러웠다./난 하루 세끼 김밥만 먹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