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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1. 10:37
토이 스토리 Toy Story
존 라세터, 리 언크리치, 앤드류 스탠튼 John Lasseter, Lee Unkrich, Andrew Stanton
우디(톰 행크스), 버즈(팀 알렌), 제시(조안 쿠삭)


1. 픽사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올때마다 제작사가 드림웍스인지 픽사인지 늘 헷갈려했던 나에게 확실하게 픽사를 각인 시킨 영화는 [월-E]였다. 그래도 비교적 좀 더 어릴때 봤던 [니모를 찾아서], 케이블 채널에서 언뜻언뜻 비추던 [인크레더블], [업] 등을 통해서는 그저 - 컴퓨터 애니메이션 대표회사구나 -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월-E]는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최첨단의 기술과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만남. [슈렉]으로 대표되는 드림웍스의 파격적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선을 그으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픽사의 첫 작품이 바로 [토이 스토리]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고 늘 소개되기 때문에 내가 과소평가했던 걸까. [월-E] 이후 늘 픽사의 신작에 귀 기울였는데, 그런 와중에 전작들인 1, 2편에 대한 특별한 감흥없이 [토이 스토리 3]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E]에 대한 평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가 - 픽사는 다시 한번 최신 작품이 그들의 최고 작품임을 증명했다. -  였는데, 이번에도 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한 평론가들의 반응이었다. 어른도 울 수 밖에 없다는 소개글들에 너무나도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토이 스토리 3]이 극장에 걸려있을 때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2. 토이 스토리
어릴 적 한번쯤은 봤던 영화지만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의 생김새 정도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기에, 3편을 보기 전 명작에 대한 예의(^^)삼아 1, 2편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각각 95년, 99년 개봉했던 두 전작들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20대 중반의 청년이 봐도 숨막히게 긴장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나 1편 시작에서 장난감 병정들의 '정찰' 장면에선 그냥 탄성이 쩍쩍 튀어나왔다. 2편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가상) NG컷 모음 또한 재기발랄했다. 그 넘치는 재치와 위트, 아이디어, 유머감각.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전개와 유머장치들을 보며 나는 왜 애니메이션이 그저 아동용인게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 영화 장르로써 인정받는지 그 존재의미와 매력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장면 장면마다의 재치와 더불어, 스토리라인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이 있다. 1편에서 새로 나타난 장난감(버즈-우주전사)에게 앤디(장난감주인)의 사랑을 뺐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우디(카우보이)의 모습은 사랑받는 입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소년층에게는 새로 태어난 동생만 챙기는 부모님을 보며, 그리고 부모세대에겐 아빠랑 결혼할거라던 어린 딸이 커서 남자친구를 사귈때 느끼는 섭섭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새 학년이 되면 새로 만난 급우들에게 내 친한 친구를 뺏길까 걱정했던 경험도 한 두 번 쯤은 다 있을 것이다. 나는 구닥다리 카우보이인데, 사랑을 뺏기는 대상이 하필 우주전사라는 것도 가슴아픈 대조였다. 열등감과 조바심, 질투가 버무려진 그 묘한 감정을 어떤 거부감이나 외면하고 싶은 느낌없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장난감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버디영화적 전개 끝에 앤디가 사실은 우디와 버즈 둘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1편은 끝이 나는데, 이를 통해서 미래의 꿈나무들은 세상속에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힌트를 약간이나마 얻었을 것이다.

버즈의 캐릭터 또한 가슴아프다. 버즈가 TV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장면에선 정말 울 뻔 했다. 우주전사답게 독불장군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스스로가 우주전사가 아닌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심하는 버즈. 하지만 결국 우디와 다른 장난감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 다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여느 인간의 성장담과 다름없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유년기의 기억.

2편과 3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2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3편에서 결정판을 찍는 주제는 극 중 제시의 대사처럼 - 앤디가 대학에 가고 신혼여행 갈 때도 널 데려갈 것 같아? - 언젠가는 잊혀지고 버려질 운명에 대한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뒤틀린 결론을 엊고 삐뚤어진 캐릭터들이 만화적 상상력과 전개 속에서 갱생하거나 징벌받고, 꿋꿋이 앤디에 대한 사랑[혹은 충성]을 견지하는 우디와 친구들은 [프리즌 브레이크]에 버금가는 모험 끝에 행복을 맞이한다. 3편의 마지막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앤디의 텅 빈 방을 보며 앤디의 엄마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울먹이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앤디. 결국 사랑하는게 사랑 받는 것이다. 정작 사랑을 준 건 앤디였고 받은 건 우디와 친구들이었음에도 마치 앤디를 보살펴야 할 보호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장난감들의 모습은, 우리네 부모님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에 대한 통쾌하면서도 가슴아픈 아날로지다. '성인의 외모'를 지녔지만 정체성은 '장난감'인 우디의 아이러니적 상징은 그 어떤 명배우의 명연기보다도 더 찌릿찌릿했다. 

끝끝내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결국 장난감과 헤어지는 앤디. 마지막으로 장난감과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았던 것은 유년기의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잊을 건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당연한거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디와 친구들은 아마 앤디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앤디를 향한 그들의 사랑은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맞이하는 앤디에게 가슴 한 켠 속 든든한 고향이 되어줄 것이다.


3. 다시 픽사.
[월-E]에서도 확인했지만 픽사의 이야기는 무척 고전적이다. 흑백 무성영화나 50년대 할리우드 명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전개는 그들의 영화가 최첨단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오랜시간 사랑받는 원동력일 것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역할극 정도로도 스펙타클한 화면자랑은 충분하다. 최신 기술이라는 시제적 표현부터가 일단 그것의 일시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두고두고 사랑받는 캐릭터와 영화를 만들어내려면 시대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이를 멋지게 달성했다. 20세기에 디즈니가 그랬던 것처럼, 픽사는 21세기의 안데르센이요, 그림형제요, 이솝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처음이 [토이 스토리]였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